-
-
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
박홍규 지음 / 우물이있는집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박홍규 선생에 대해서 우선 몇 마디 해야겠다. 우선 이 양반-양반이란 표현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친밀히 부르는 호칭이며 전근대적 신분제도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은 영남대학교 법학과 교수다.
그런데 이 양반이 쓴 책을 보면, 법학관련 저술도 다수 있지만, 전혀 법학과 관련이 없는(?) 책이 더 많다. 월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 오노레 도미에, 내 친구 빈센트, 조지 오웰, 자유인 루쉰, 카뮈를 위한 변명, 카프카 권력과 싸우다등은 문학 예술가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 글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1권을 쓰기도 힘든 평전을 학문과의 직접적 관련이 없는 사람이 이렇게 많이 쓴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놀라움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마라는 책은 자유교육 선구자인 프란시스코 페레의 평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도 않은 사람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에리히 프롬의 저술을 정리한 우리는 사랑하는가라는 책을 썼으며, 지금 내가 소개하는 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우물이 있는 집)도 최근작이다. 게다가 이 양반은 무수히 많은 책들을 번역했다.
이 정도가 되면 전방위작가라고 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한편 박홍규 선생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다작(多作)이라고 해서 섣불리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박홍규 선생의 글쓰기는 우선 원자료에 대한 꼼꼼한 읽기에서부터 시작하여, 단순한 소개가 아닌 심도깊은 분석과 평론으로 완결되는 구조이다. 이와 같은 그의 학문태도는 우리는 사랑하는가(필맥)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단순히 원자료의 해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내에 나와있는 번역본에 대한 쫀쫀하다 싶을 정도의 꼼꼼한 비교와 분석, 평가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하면, 그의 책쓰기는 여가활동이나 영역외의 활동이 아니라 바로 그의 본업이라는 것이다. 그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많은 글을 읽고 쓰는 것일까? 그것은 그의 저술에 등장하는 인물의 공통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다룬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당대에 저항하여 당대를 넘어서려했던 사람이다. 이러한 점은 바로 그가 ,박홍규 선생이 당대의 현실에 분노하고 있다는 것, 그것의 올바른 방향을 나름대로 모색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의 삶을 소개함으로 자신의 욕망을 간접적으로 드러낼 뿐 아니라, 자신과 동맹할 동지(독자)들을 규합하려는 인정투쟁을 벌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나는 당당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박홍규 선생과 나는 사상적인 동지이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에드워드 사이드의 주저인 오리엔탈리즘을 번역해서 소개한 선생은, 이제 번역이 아니라 에드워드 사이드의 관점으로 우리내 사회를 삶을, 인식구조를 분석한다. 그 결과물이 바로 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이다. 이 책이 다른 책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은 이 책에서 박홍규 선생은 그의 감정을 조절하는데 실패했다는 데 있다. 다른 책들이 냉정함 속에서 쓰여졌다면 이 책은 분노 속에서 쓰여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 속에 만연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분노의 표시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학술서가 아니라 하나의 선동문으로 읽는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오리엔탈리즘에 쪄들어 살고 있는 지를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 책을 적극적으로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