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 '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우선 마음에 드는 글 하나를 인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

“사람의 마음은 본래 저절로 즐겁다. 배움이란 이 즐거움을 배우는 것이다. 즐겁지 않다면 배움이 아니고, 배우지 않으면 즐겁지도 않다. 즐거운 연후에야 배운 것이고, 배운 연후에야 즐거운 것이다. 즐거움이 배움이고 배움이 즐거움이다! 아아! 세상의 즐거움 중에 이 배움만한 것이 있는가?”

이 글은 명대 철학자 왕양명의 수제자인 왕심재(王心齋)의 것으로 고미숙 선생이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humanist)에 인용한 것을 다시 인용한 것이다. 자, 그렇다면 위의 즐거운 학문을 직접 실천하는 곳이 있다면 믿겠는가? 무질서(chaos) 속에 질서(cosmos)가 있는 카오스모시스(chaosmosis)의 공간이며, 유머의 공간이고, 스승과 친구가 하나가 되는 공간이자, 놀이의 공간이고, 일하고 먹는 일상의 공간이자, 배움터이며, 명상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곳!

고미숙 선생의 인류학적 보고서에는 ‘수유+너머’가 바로 그러한 공간이다. 고 선생은 자신이 속해있는 ‘수유+너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화했으며, 변화해갈 것이지, 또한 그러한 가운데서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해 놓고 있다. 이 보고서를 읽으면서 나는 엄청 부끄러웠고 부러웠고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말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학문과 실천이 동떨어져있고, 일상과 밥벌이가 전혀 관계없는 평범한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얼마나 놀라운 유혹이란 말인가? 물론 이 유혹에 빠져 들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선악과 시비, 혹은 장단이라는 익숙한 분별을 넘어서는 것. 자의식과 내면이라는 ‘강철갑옷’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것, 익숙하고 낡은 것을 가차 없이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 물론 이러한 대가는 하루 아침에 치러야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부대끼고 살아가면서 서서히 벗어지는 것들이다. ‘노마디즘’이라 칭할 수 있는 이러한 자세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구절을 보자.

“노마드란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유랑민이나 이주민이 아니다. 어떤 불모의 땅에서도 찰거머리처럼 들어붙어 새로운 삶과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능동적 주체들이다. 초원이나 스텝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선 자리를 초원으로, 스텝으로 만드는 이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야 한다. 비운다는 것은 그저 욕심을 버리는 정도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비운다는 건 소극적으로 내면에 침잠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외부의 역동적 흐름 속에 자신을 아낌없이 던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에 대한 집착, 지나친 인연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혀 있는 한 유목은 불가능하다. 비울 수 있는 자만이 새로운 삶을 구성할 수 있다!”

올해의 내 목표 중에 하나라면 조그만 연구소(?) 하나를 차리는 것이다. 연구소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뭐해서 그냥 󰡔행복한 공부공동체󰡕라고 작은 이름 하나를 마련해 놓았다. 그 공간을 어떻게 운영할 것이지, 무엇을 지향할 것인지에 대하여 구상하면서 참고가 될까해서 산 책이 바로 고미숙 선생이 쓴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이다. 전기로 감염시키는 것 같은 책!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반성하게 만드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 책을 읽어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아하! 이렇게도 살 수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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