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퀴엠 - CJK - 죽은자를 위한 미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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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 『레퀴엠』(휴머니스트)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이 책은 전쟁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장마다 전통적인 레퀴엄(진혼곡)의 가사로 시작하여 전쟁과 죽음을 소재로 한 종교예술작품을 수록하고 있으며, 미학의 관점에서 전쟁이라는 현상을 기록하고 있다. 전쟁은 인류의 역사 만큼 오래된 것이고, 그에 따른 죽음 역시 낯설지 않다. (나의 죽음과 연결되기 때문에 낯설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역설적으로 나의 죽음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낯설지 않은 것인지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가깝게는 미국이 침범한 이라크 전쟁 때문에 쓰여진 책이겠지만, 조금 멀리는 우리와 전쟁이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에 쓰여 졌을 이 책에서, 진중권은 그의 평소의 어투와는 달리 머뭇거린다. 그 머뭇거림이 오히려 거침없음보다 신뢰가 간다. 가령, 서문은 이렇게 끝난다.

“야만은 아직 우리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과연 평화주의자인가? 반전시위에 나갔던 우리는 이번 전쟁에 반대한 것일까? 아니면 모든 전쟁에 반대한 것일까? 모르겠다. 우리는 왜 이 전쟁에 반대했을까? 그것이 ‘전쟁’이기 때문에? 아니면 그 전쟁이 ‘부당’하기 때문에? 모르겠다. 아직도 우리는 ‘정의로운 전쟁’이 있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모든 전쟁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믿는 것일까? 역시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아직 평화주의자가 아닌지도 모른다. 선뜻 모든 전쟁에 반대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그만큼, 야만은 우리의 것이다.//그 야만의 희생자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한 문단 안에 물음표가 7개나, 모르겠다는 표현이 5번이나 적혀있다는 것은 조심스런 자기 부정이 아니면 성실한 성찰일 것이다. 어쩌면 전자가 후자와 연결됨으로 완성되는 것이겠지만. 진중권은 그렇게 전쟁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므로 전쟁에 대한 -특히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 보고서이자 미학적으로 포장된 성찰서이다. 진중권은 미국의 폭압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지와 야만을 괴로워한다. 그것은 이론 이전에 마음의 울림을 수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진중권의 다음과 같은 결말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시적이다.

“그 어떤 무기도 그 어떤 군대도 미군이 지키는 그 성(이라크의 바그다드 성)의 견고한 벽을 무너뜨리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소총 대신 촛불을 들고, 수류탄 대신 장미꽃을 꽂고, 폭탄 대신 의약품을 보내는 시민들의 평화시위 앞에서는 그 견고한 요새의 성벽도 언젠가 힘없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예리고 성을 무너져내리게 한 것은 노랫소리였다. 미군이 지키는 제국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것 역시 요란한 포성이나 찢어지는 총성이 아니라 고요한 반전평화의 노랫소리다. 사악한 자들이 날뛰는 시대에 야훼든 알라든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아마 이런 식으로 역사(役事)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이라크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독재자 후세인을 몰아내었지만, 제국주의자 미국이 여전히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라크 민중의 평화와 자주를 향한 조용하고 강한 전쟁은 지금 한창 진행 중일 것이다. 우리의 전쟁이 아직도 진행 중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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