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의 노래 1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의 <칼의 노래>(생각의 나무) 두 권을 마침내 다 읽었다. 아침에 짬짬이 읽을 생각이었는데, 한 번 잡으니 놓을 수가 없었다. 김훈의 힘!
소설의 부제(副題)격으로 달려있는 말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이순신-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김훈은 이 소설로 ‘가장 오랜 전통, 가장 높은 권위, 가장 많은 상금의 문학상’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을 두르고 있는 ‘가장 상업적인’ 띠지가 눈에 거슬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김훈의 작품이기에 참았다.
심사위원들은 수상촌평에서 이렇게 이 소설을 평가하였다. “김훈씨의 <칼의 노래>는 작가의 신체적 나이와 관계없이, 아주 젊은 소설이다. 그렇다는 것은 그 작품이 한국문학이 여태 만나지 못했던 세 겹의 대극(對極)을 창조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 대극의 하나는 제목이 가리키고 있듯이 칼과 노래 사이의 그것이다. 그 둘은 역사적 인간의 고독한 내면을 그림으로써 첨예하게 빚어진 역사와 개인 사이의 대극이다. 그 셋은 순수한 문체의 힘만으로 황잡한 세상과 맞선 데서 솟아난 이야기와 문체 사이의 대극이다. (……) 이 전혀 예고된 적인 없는 새로운 세계의 출현은 자발적인 유배를 택한 작가의 장인적 정신의 승리이자, 오랫동안 반복의 늪 속을 부유하고 있는 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심사위원들의 말의 성찬보다 김훈의 ‘책 머리에’ 실린 글이 더욱 이 소설을 읽는데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 “2000년 가을에 나는 다시 초야로 돌아왔다.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내 당대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었다. 제군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 있는가.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히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 나는 소설을 읽으며 소설의 이순신과 현실의 김훈이 자꾸 겹쳐졌다. 김훈화된 이순신? 이순신화된 김훈? 어찌 되었든 좋다. 나는 이 1인칭 주인공시점의 독백체 소설을 읽으며 가슴이 아팠고 뭉클했고, 울었다. 한 시대의 아픔에서 비켜서지 않으면서 온몸으로 부닥쳐야 했던 한 인물이 살아났다.
김훈은 이순신의 독백을 간결체로 처리하였다. 이순신이 무인이었기 때문일까? 나는 그 간결체가 마음에 들었다. 너무나 많은 생각이 담겨있기에 짧을 수밖에 없는 그 문체. 나는 소설을 읽으며 밑줄을 그었다. 이도 내 버릇에서는 없었던 이상한 짓. 그 중 하나 :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적에게 있을 것이었고, 적이 나를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나에게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삶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 평소에는 긋지 않을 곳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
나는 김훈의 소설을 문학적으로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다. 다만 나는 그의 소설을 읽을 뿐이다. 그것이 나의 임무인양. 나는 읽는다, 읽고 또 읽는다. 나는 이제 김탁환의 <불멸>(미래지정) 4권을 읽을 것이다. 역시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김훈의 <칼의 노래>가 독주(獨奏)라면 김탁환의 <불멸>은 교향곡(交響曲)이다. 김탁환의 소설은 임진왜란을 둘러싼 정치사와 전쟁사를, 그리고 문학사를 아우르고 있다. 선조와 유성룡, 정철이 나오고, 이순신과 권률, 원균이, 허준과 허균이 등장한다. 김탁환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 김탁환의 소설을 이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