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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루스 노부스 ㅣ 진중권 미학 에세이 2
진중권 지음 / 아웃사이더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가장 발랄하고 즐겁고 배꼽이 빠져라 읽었던 책을 꼽으라면 분명히 말할 것이다. 그것은 진중권이 쓴 <네 무덤의 침을 뱉으마>(개마고원)였다고. 그 음침하고 춥고 쓸쓸했던 영등포 구치소 독방에서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며 킬킬댔다. 미친 놈처럼. 간수가 다가와 불안하게 왜 그러느냐고 물었을 때 나의 대답 역시 킬킬거림이었다. 유쾌! 상쾌! 통쾌! 매스컴의 한 광고카피와 가장 어울리는 글이 바로 그 책이었다. 나의 그의 자기검열없는 어투와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풍자의 기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의 찬란한 언어유희와 거침없는 비유를 따르고 싶었다. 그러나 어불성설. 애당초 그와 나는 다른 종자였다. 그는 안장없이 달려가는 종마였다면, 나는 무거운 짐을 싣고 터덜거리며 걷는 당나귀였다.
그는 대책없이 웃기는 종자만은 아니었다. 그는 미학을 전공한 예술가였다. 그는 그림 한 장, 시 한 편 써댄 일이 없었지만, 나에게 그의 글은 예술이었다. 나는 <미학 오딧세이>(새길)을 읽으며 그의 책을 구성하는 능력에 찬탄했고, <춤추는 죽음>(세종)을 읽을 때에는 덩달아 죽음의 명상가가 되었다. 죽음도 통쾌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천국이나 지옥 따위는 개나 줘버려도 될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는 예술 작품과 놀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었다? 이다.
<시칠리아의 암소>(다우)나, <폭력과 상스러움>(푸른 숲)은 단편적인 글모음이라 긴장감은 떨어졌지만, 이른바 진중권 문체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좀 솔직히 말하자면 시간에 쫓기어 함량미달인 글을 읽었을 때에는 조금 실망도 했다. 그 실망은 내가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발산적 사고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대책없이 뻗어나가는 발산적 글쓰기는 조금 불안해 보였다.
그렇게 그가 나의 관심에서 조금은 벗어나기 시작했을 때,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앙겔루스 노부스>(아웃사이더)를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진중권의 대중적인 미학책의 연속선상에 놓여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화려한 양장에 칼라화보로 포장된 그의 책을 펼치며, 나는 옛애인의 옷을 벗기듯, 조심조심 그러나 한층 노골적인 포즈로 책을 탐닉했다,고 말해야할 것 같다. 그는 격조있는 글쓰기도 능숙한 작가이다. 그러나 그의 격조는 무겁지 않다. 무겁지 않게 무거운 주제를 전달하는 것 역시 그의 재주이다. 이번 주는 참으로 흥분되는 주간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그의 글의 한 도막:
“오늘날에도 과연 숭고의 글쓰기가 가능할까? 나는 포스트 모던의 글쓰기를 이 한 개의 물음으로 요약한다.(……) 아마 과거와 똑같은 형태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자연과 신과 인간의 위대함에 자신을 내맡기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를 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고귀한 존재로 끌어올리는 숭고의 글쓰기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제 영혼까지 팔아먹는 천민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제 영혼을 위해 제 자존심의 최소한을 지키려 하는 민주주의적 인간귀족들을 위한 존재미학으로서.”(85-86쪽)
[추신]그의 책을 읽으며 나는 디오게네스에게 매료되었다. 그래서 그가 참조한 책이 무엇인지 참고문헌을 살펴보았더니 독일어 원서다. 젠장, 나는 이럴 때 나의 한계가 참으로 화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