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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 - 동양고전총서 11
이지 / 홍익 / 1998년 11월
평점 :
절판
탁오(卓吾) 이지(李贄)의 <분서(焚書)>(홍익출판사)를 읽고 있다. 이지는 명나라 후기에 활약했던 후기 양명학자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지의 광적이고 자유분방한 학문세계는 그에게 양명학자라는 딱지를 붙이기에 너무도 부족하다. 유교와 불교, 노장사상을 넘나들었고 천주교와 이스람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명나라 후기의 어지러운 세상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당대 사상계에 불꽃과 같은 비판을 던졌던 사상가였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저서를 ‘태워버려야할 책’이라는 이름의 <분서>라 썼겠는가. 이지의 사상과 행동은 당대 지배층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고, 결국 그는 70세의 나이가 훨 넘어서 감옥에 갇혔으며, 그 속에서 자결함으로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 죽을 때까지 타협하지 않는 삶을 산 것이다.
그는 이념적 도그마를 멀리하고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였다. 그는 자신의 학문과정을 이렇게 정리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성인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읽었지만 성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몰랐고, 공자를 존중했지만 공자에게 무슨 존중할 만한 것이 있는지 몰랐다. 속담에 이르기를 난쟁이가 키 큰 사람들 틈에 끼어 굿거리를 구경하는 것처럼, 남들이 좋다고 소리치면 그저 따라서 좋다고 소리치는 격이었다. 나이 오십 전까지의 나는 정말 한 마리의 개와 같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자 나도 따라 짖어댔을 뿐, 왜 그렇게 짖어댔는지 까닭을 묻는다면, 그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없이 웃을 뿐이었다.”([성인의 가르침에 대하여])
책의 뒷표지에도 인용되어 있는 이 글은 자신의 학문세계에 대한 준엄한 자기비판이다. 자신이 그동안 공부해온 것이 영문도 모르고 짖어대는 ‘개소리’에 불과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에게 공부는 먹는 행위처럼 절박하면서도 실존적인 것이었다. 그는 며칠을 굶주리다가 기장밥을 얻어먹으며 이렇게 깨닫는다. “만약 내가 도를 추구하는 것이 지금 먹을 것을 추구하는 것과 같다면, 공자든 노자든 가릴 겨를이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하, 밥먹듯이 공부하라!
나는 지금 거짓에는 한치의 굽힘도 없이 오만한, 부정과 허위에는 한발의 물러섬도 없이 당당한, 자신에게 대해서는 ‘벌레’라 말할 정도로 겸손한 이지의 <분서>를 읽고 있다. 그의 글로 인해 차가워진 나의 마음에 불꽃이 일고 있다. 그로 글로 인해 당당한 삶이 무엇인지 느끼고 있다. 나의 시들한 중년을 다시 일으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