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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배반한 역사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그러니까 내가 얼치기 운동권으로 편입되었을 때, 신념 아닌 신념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 조직주의(?)였다. 계급이라는 명칭이 갖는 집단적 어투가 매력적이었고, 개인의 희생을 통해 보위되는 조직이 위대해 보였다. 자신의 안녕을 위하여 행동하는 자는 비판받아 마땅한 자였고, 동지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자는 해악적이라고까지 생각했었다. 했었다? 지금은 아니란 말인가?
사람(개인)보다 조직이 먼저인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그 때는 그런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사람(개인)보다 민족이나 계급이 우위에 서 있어야 하는가? 그 때는 그런 질문을 품지 못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잃었고, 많은 사람과 등을 돌렸으며, 많은 사람에게 아픔을 주었다. 역으로 나 역시도 아프고 외롭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아니 애써 외면해왔다. 무엇보다 개인을 살려야한다는 사실을, 하늘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개인이라는 것을, 그것이 민주주의의 주춧돌이라는 생각을 알지 못했다.
어떠한 사상도 한 사람과 맞바꿀 수 없다. 그 사람의 생명은 사상과 민족보다 먼저인 것이다. 한 사람이 자유로울 때 우리는 자유로운 것이다. 그 역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도 그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다. 죽음을 걸고 달려가는 이유도 그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다. 남에게 던졌던 돌을 추슬러 나에게 던지는 이유도 그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다. 그 한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고 당신이고 동지들이다. 조직을 만들기 위하여 사람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그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등치시켰던 모순 논리의 과거상황을 이제는 부끄러워한다. 이기주의는 이타주의와 대립쌍이었을 뿐, 개인주의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집단주의의 논리로 무시했던 개인주의를 이제는 건강하게 살려내야겠다. 숭고한 개인주의라는 말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다. 그 개인주의의 부활을 나는 박노자씨가 쓴 <나를 배반한 역사>(인물과 사상사)에서 읽는다. 상식이고 윤리였어야할 덕목을 이제야 부끄럽게 깨닫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