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무릇 그림이 많은 책을 사보는 이유를 거두절미하고 말하면 훔쳐보기 위해서다. 훔쳐보는 내용과 질의 문제겠지만 그 훔쳐봄을 통하여 우리는 무한한 상상을 할 수 있다. 근래의 훔쳐보기 책 중에서 가장 발군이 바로 강명관씨가 쓴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푸른역사)이다.

보통의 춘화도(포르노잡지)가 양물의 분기탱천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이 책의 미덕은 혜원 신윤복의 30여 풍속화를 통하여 조선 후기의 성풍속사를 은글슬쩍 그러나 자세히 드러내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발기되지 않은 상태로 성적흥분이 오래 지속되는 책이다. (남성적 표현을 용서하시라. 내가 남성인지라)

혜원의 풍속화는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그리고 있지 않고, 그 이전의 상태를 그려내고 있거나, 그린다 하더라도 감춤을 통하여 드러내고 있다. 그 이후나 그 속은 우리의 상상력의 몫이다. 물론 혜원의 풍속화의 목적이 우리의 성적 흥분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림을 통하여 조선 후기의 양반의 이중적 모습을, 아니 본래적 모습을, 여인의 감추어진 욕망을, 아니 본래적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조선조 사회가 근업과 유교가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성적욕망이 들끓는 사회였으며, 아무리 이를 막으려 막으려 해도 터지는 봇물처럼 삶을 축축히 적시고 있음을 알게된다.

술풍속, 놀이풍속, 기생풍속, 통틀어 유희적 풍속들이 그의 그림을 통하여 야하고도 아름답게, 꾸밈없이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독보적인 성풍속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로 인해 혜원은 공적자리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지만, 그의 거침없는 태도로 인해 우리는 풍요로운 정신을 얻게 되었다.

지은이 강명관씨는 이 풍속화에 대한 설명에 곁들여, 아니 풍속화 소개를 시발점으로 조선시대 성풍속사를 꼼꼼히 검토하고 있다. 그의 설명으로 인해 나는 선술집의 문화가 조선조 사회에서부터 시작된 것임을 처음 알게되었고, 풍속화의 이면을 감상하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음침한 성적 욕망이 예술적으로 승화되기를 바랐겠지만, 신윤복은 성적 욕망은 음침하지 않으며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것임을 예술적으로 입증함으로 프로이트를 뒤집었다. 그런 의미에서 신윤복은 성적 들뢰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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