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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일 없이 사는 아줌마의 사생활
최강윤정 지음 / 부크크(bookk) / 2022년 7월
평점 :
2022년 노자의 《도덕경》을 공부하는 모임을 4개나 만들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제일 나중에 만들어진 모임이 ‘행복한 책방’ 일산점의 책방지기인 신혜진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아줌마들의 모임입니다. 6명으로 구성된 모임은 나이와 성격과 활동이 다르지만, 책을 좋아한다는 것, 아니면 적어도 책방을 아지트로 삼아 활동한다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그 맴버 중 한 명인 최강윤정님이 최근에 POD방식으로 사진에세이집을 냈습니다. 제목은 《별 일 없이 사는 아줌마의 사생활》입니다. 책을 펼치지 안쪽 날개에 작가소개가 재밌습니다. “골목을 달리던 다섯 살 여자 아이는 좁은 길 사이 시간을 달려 반백의 아줌마로 자랐다. 부실한 다리로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별 일 없는 아줌마로, 잘 하고 싶은 것도, 그리 대단히 잘 살아야 한다는 목표없이 공중분해하는 시간 속에 부유하는 먼지처럼 산다. 그래도 사는 건 재밌고 설렌다는 걸 아는 사람.”
소개글만 보아서는 유한(有閑)마담 같아보이지만, 저 ‘별 일 없는’ 경지에 도달하기 전에 그에게 온갖 별 일들이 벌어졌음을 글 읽는 내내 절감합니다. 몽골로 간 남편의 사업이 무너지자, 돈이 없어 집을 처분한 후 달랑 20만원을 들고 두 어린 아이들과 해인사 근처로 기차타고 내려간 일, 그곳에서 다행히 좋은 스님을 만나 거지신세는 면했지만, 삶은 늘 가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가난 속에 파묻히지 않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아이들과 지내며 살아냅니다. 남편이 있는 몽골로 무작정 건너가서 지냈던 시절도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계절의 바뀜처럼 총천연색의 삶이 아니라 온통 잿빛 먼지가 뒤덮은 나날을 겨우 살아냅니다. 무심히 창문을 바라보며, 거리의 한산함과 우울함을 무심히 카메라에 담으며. 몽골에서의 삶은 불안과 두려움의 나날이었지만, 오히려 자신의 삶보다는 몽골민중의 희망없음에 더 안타까워합니다.
“가난한 나라의 백성은 흘러 다니는 눈물 같다. 나라는 개인의 고충을 모른 채 하고, 나라님은 일개 개인의 고충 따위 안중에 없다. 제 배 부르고 자기집 장판에 차곡차곡 돈 쌓아두기만 바쁘다. 아이의 가방엔 가망 없는 미래만 가득 채워져 있지만, 아무도 아이의 미래엔 관심 없다. 당장 모두의 오늘이 허기로 가득 할 테니.”(144쪽)
그렇게 아무 것도 없이 빈손으로 국내로 돌아와서 살림살이가 나아진 것도 아닙니다. 부실한 몸과 세월 속에 늙음을 얻어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책의 내용이 온통 우울과 비탄, 상처와 원망으로 뒤덮여보일 듯 하지만, 오히려 글은 정반대입니다. 곳곳에서 생명이 싹트고, 웃음소리가 들리고, 하루하루 즐기며, 자신의 불행을 관조하여 행복으로 뒤바꾸는 놀라운 낙관성이 있습니다. 노자가 아줌마로 돌변하면 이런 글을 쓰지 않을까 눈을 비비게 됩니다. 가난 속에서도 풍자와 웃음을 잃지 않았던 장자가 여인이 되었다면, 이런 글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게 됩니다.
가령, “행복은 유난스럽지 않다. 그저 마주 보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있고, 오늘 하루 수고했다. 위로의 말 전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 만족한 한 끼 든든히 채우면 그 뿐이다. 평범한 일상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은 보통의 삶을 챙기면 그만이다. 행복은 소소한데서 온다. 단순하게 사고, 소소하게 살고, 나누면서 살다보면 무거운 마음은 덜어지고, 가벼운 마음은 채워지게 되어 있더라. 그러면 너무 많은 걱정에 치이지 않아도 좋다.”(248쪽)라는 글을 읽을 때, 또 “그래서 가난은 괜찮다. 돈으로 산 선물이 아닌 마음을 명품으로 만들려 애쓰니까. 그 마음 아는 이들과 나눌 수 있으니 가난은 부족해서 족한 것이더라.”(215쪽)라는 글이 밑줄을 그을 때, 나는 이 ‘목표없이 공중분해하는 시간 속에 부유하는 먼지처럼’ 살아가는 아줌마의 모습에서 ‘화광동진(和光同塵)’의 노자를 읽어내고, ‘부실한 다리로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별 일 없는 아줌마’의 모습에 ‘소요유(逍遙遊)’의 장자를 읽습니다.
이 책을 보고(사진집이므로) 읽는(에세이집이므로) 내내 나의 별 일 없이 사는 하루가 ‘반짝’ 생기를 얻었다고 말해야겠네요. 그래서 게으른 몸을 살짝 잊은 채, 늦지 않게 짧은 글을 남겨 이 ‘별 일 없는’ 아줌마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POD형식으로 책을 냈으니 주문생산이다. 찍는데 일 주일 걸립니다. 참을성이 없고 시간이 아까운 사람은 e-book으로 주문하면 바로 읽을 수 있지요.
"가난한 나라의 백성은 흘러 다니는 눈물 같다. 나라는 개인의 고충을 모른 채 하고, 나라님은 일개 개인의 고충 따위 안중에 없다. 제 배 부르고 자기집 장판에 차곡차곡 돈 쌓아두기만 바쁘다. 아이의 가방엔 가망 없는 미래만 가득 채워져 있지만, 아무도 아이의 미래엔 관심 없다. 당장 모두의 오늘이 허기로 가득 할 테니."(144쪽)
"그래서 가난은 괜찮다. 돈으로 산 선물이 아닌 마음을 명품으로 만들려 애쓰니까. 그 마음 아는 이들과 나눌 수 있으니 가난은 부족해서 족한 것이더라."(215쪽)
"행복은 유난스럽지 않다. 그저 마주 보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있고, 오늘 하루 수고했다. 위로의 말 전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 만족한 한 끼 든든히 채우면 그 뿐이다. 평범한 일상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은 보통의 삶을 챙기면 그만이다. 행복은 소소한데서 온다. 단순하게 사고, 소소하게 살고, 나누면서 살다보면 무거운 마음은 덜어지고, 가벼운 마음은 채워지게 되어 있더라. 그러면 너무 많은 걱정에 치이지 않아도 좋다."(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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