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일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 땅과 이웃, 시 이야기, 2022 ARKO 문학나눔 선정도서 한티재 산문선 4
김해자 지음 / 한티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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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자 시인(나는 누나라고 부른다)의 세 번째 에세이집 《위대한 일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한티재, 2022)을 읽습니다. 늘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를 글로나마 만나서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온몸이 따뜻해집니다. 코로나 3년 동안 이렇게 살고 계셨구나 새소식을 듣습니다. 그 사이 큰 수술을 또 받으셨구나 알게 되고, 무심한 후배의 속절없는 마음이 아파집니다. 나 힘들다 말할 때 누나는 더 힘든 시기를 넘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럼에도 주변에 속 깊고 마음 따뜻한 이웃이 있어 웃으며 지내는 누나를 상상하며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살아계셨군요.     


3부로 구성된 에세이집은 부담없는 크기에 230쪽 밖에 되지 않아 순식간에 읽힙니다. 1부 ‘시를 심는 사람들’은 시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에서 서로를 보살피며 지내는 농촌의 이웃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분들의 보살핌 덕분에 누나가 웃음을 잃지 않고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치 내 누이들을 보는 듯 마음이 푼푼해집니다.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웃분들의 목소리가 정겹습니다. 시는 쓰지 않았지만 시처럼 사시는 분들의 이야기지요. 2부 ‘환하고 맛있고 즐거울 겁니다’는 자장을 조금 넓혀 세상의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누나가 사는 ‘텃밭 공화국’이야기도 있습니다. ‘귀촌을 묻는 당신께’ 전해주는 팁도 정겹습니다. 백수로도 살 수 있겠구나 생각됩니다. 아내와 더불어 누나가 있는 곳으로 한 번 가봐야겠다 생각했습니다.

3부 ‘방주에 실린 해피랜드’는 더 자장을 넓어 코로나 정국을 이야기하고, 그 속에서 문학하는 자리를 톺아봅니다. 시론(詩論)이라 할 수도 있고, 시론(時論)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담하게 펼쳐집니다. 아픈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리고, 힘든 사람과 함께 하려는 누나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인류의 ‘구원’은 기한이 지나버렸고, 이제 ‘구조’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모두가 낡아버린 한 배를 타고 이 시대를 건너가지만, 그래도 ‘해피랜드’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읽어볼만 하냐구요? 나는 책을 평가할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누나는 나에게 종교와 같습니다. 더도 덜도 말고 김해자 누나처럼만 살고 싶습니다. 이 분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책의 품질이나 가치를 묻지 마시기를. 그냥 김해자 시인이 뭔가를 책으로 엮어냈다면 통장을 깨서라도(^^) 구입하시기를 바랍니다. 시인의 책을 구입해서 얼마나 시인에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시인의 생각을 널리 전하는 것은 아마도 시인이 간절히 바라는 것일 겁니다. 책을 읽다보면, 여러분도 저처럼 김해자 시인의 신봉자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추신> 책을 다 읽고 뒷표지까지 읽다가 피식 웃었습니다. 초판 발행일이 3월 21일로 되어 있는데,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는 날이 3월 18일입니다. 어럅쇼. 나오지도 않은 책을 구입하여 읽고 있네.       

저는 이반 일리치처럼 "지구상에서 지워져 버린 주체에 대해, 그 흔적이 짓밟혀 버렸거나 바람에 날아가 버린 사람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농민과 유목민, 마을 문화와 가정 생활, 여성과 아이"들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아무리 역사학자가 연구하려 해도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땅속에 묻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뼈만 앙상한 역사 속에서 숱한 사람들이 속담과 이야기와 수수께끼와 노래 속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삶을 조각하려 노력해봅니다.(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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