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도 배달됩니다 열린어린이 청소년소설 2
박채란 지음 / 열린어린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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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는 평소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이젠 상점을 받기 위해 선생님 심부름을 도맡아 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세 번은 배달을 하고, 가끔 운동장 스탠드에서 혼자 오카리나를 분다. 가희는 멀리서 그런 민호를 보곤 한다. 이제야 가희는 민호가 자신과 좀 다른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세계의 질서 바깥에 살고 있는, 온순하지만 누구도 길들일 수 없는. 가희는 알고 있다. 민호와 다시 가가운 사이가 되지는 못할 거라는 것을. 하지만 민호 같은 애가 세상에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가희는 오래오래 생각했다.(123)

 

박채란 작가의 청소년소설 한 그릇도 배달됩니다를 읽었다. 내가 청소년 철학소설이라는 형태로 5권이나 책을 냈지만 다른 작가의 청소년소설을 읽은 것은 참으로 오랜만에 일이었다. 내 아이들이 청소년 시절에는 청소년소설을 가끔 읽었지만, 아이들이 성장하여 청년이 되어버린 후에는 더욱 청소년소설을 읽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박채란의 청소년소설을 읽은 이유는 그가 나와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라는 점, 그 활동내용이 나름 매력적이라는 점, 게다가 작년 말에 페미니즘 모임을 같이 했던 점 등 몇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나의 삶의 태도가 작년 말쯤 조금 바뀌었다는 걸 들어야겠다. 그것은 나의 작품들이 응원을 받아서 내 삶이 풍성해진 것처럼, 내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의 작품이나 활동을 응원해주어야겠다는 일종의 작은 다짐이다. 책 한 권 산 것이 얼마나 응원이 되겠냐마는, 작가에게 가장 큰 응원은 바로 그 작품을 구입하여 읽는 것이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생태계가 건강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소중한 첫걸음은 작가에게는 작품을 구입하여 읽는 것이 될 터이고, 강사에게는 강의를 시간내어 찾아가 듣는 것이 될 터이며, 예술가에게는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 소소한 응원이 바로 문화생태계를 살리는 길이다.

이번에 박채란의 청소년소설집에는 4편의 단편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사랑은 떨림>, <하루에 추선 번 아니 수만 번>, <한 그릇도 배달됩니다> <횡단보도 앞에 서다> 등이다. 마지막 작품의 주인공이 교사임용고시를 5년째 준비하는 청년이라는 점만 빼면, 모두가 고등학생이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다. 사랑의 대상을 선택하든, 문이과를 선택하든, 취업과 입시를 선택하든, 진로선택의 지속이냐 중단이냐를 선택하든, 모든 작품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어느 시기가 되었든 삶의 기로에서 선택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선택을 하려면 자신의 능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황과 변수들도 고려해야 하고, 특히 그 선택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확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확신이라는 것이 과연 변하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특히 다양한 경험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게는 꿈(이나 확신)이 막연한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선택에는 두려움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박채란 작가는 소설 속 청()년을 따뜻한 시선으로 세심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소리없이 응원한다. 그러면서도 손쉬운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쉽게 연애는 성사되지 않고, 진로선택에 있어서도 난관에 부닥치며, 취업의 길도 만만치 않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희망은 쉽게 발견되지 않지만, 그래도 따뜻한 관계가 있어 선택에 온기를 부여한다.

어차피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그 어려운 선택을 말없이 따뜻하게 바라보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뒤에서 응원해주는 것만으로 무거운 짐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가족의 응원이 되었든, 친구간의 응원이 되었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따뜻한 온기임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박채란 작가의 건필을 응원한다.


코로나 시기에 이 책이라도 많이 팔려 작가의 집안에 온기가 돌았으면 좋겠다. 박채란 작가의 장기인 빵과 과자만들기의 재료값은 충당되려나?

민호는 평소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이젠 상점을 받기 위해 선생님 심부름을 도맡아 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세 번은 배달을 하고, 가끔 운동장 스탠드에서 혼자 오카리나를 분다. 가희는 멀리서 그런 민호를 보곤 한다. 이제야 가희는 민호가 자신과 좀 다른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세계의 질서 바깥에 살고 있는, 온순하지만 누구도 길들일 수 없는. 가희는 알고 있다. 민호와 다시 가가운 사이가 되지는 못할 거라는 것을. 하지만 민호 같은 애가 세상에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가희는 오래오래 생각했다.(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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