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김이듬 지음 / 열림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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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울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내 몸에서 흐르는 것들을 좋아한다. 노래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날은 적어졌지만, 눈물과 땀을 흘리는 날이 곱절 많아졌지만, 아무튼 내 몸에서 배출되는 물기들이 좋다. 피와 냉, 오줌도. 글도 내 몸에서 손가락을 통해 흘러나오는 물질 같다. 흘러나오는 이것들이 이따금 구질구질하고 지저분해 보이기는 하지만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일기도 아니고 넋두리도 아니고 시는 더더욱 아닌 이 글을 나는 쓴다. 열심히는 아니고 마치 배가 고파서 밥을 먹는 아이처럼. 뭔가 쓰는 것은 사람의 기본적이고 자연스러운 욕구다.(80쪽)    

 

책이 나오기도 전에 미리 구매한 책을 며칠 전에 찾아가 받았다. 농가에서는 이러한 구매법을 ‘입도선매(立稻先賣)’라고 하고, 문화계에서는 예매(豫買)라고 한다. 책방을 운영하는 김이듬 시인의 산문집이다. 표지는 하드카버이고 그림도 분위기 있다. 제목이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열림원, 2020)이다. 시인은 산문집을 나에게 주면서 너무 두껍지 않냐고 물었다. 340쪽 되는 분량이니 두꺼워 보이지만, 시원한 편집 덕에 금새 읽힐 것 같다. 게다가 정가가 13,400원. 분량에 비해 겁나(^^) 싸다. 


책방이듬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산 호수공원 근처에 있었는데, 월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대화동으로 이사하여 두 번째 둥지를 틀었다. 월세는 줄었는데, 평수는 넓어졌고 훨씬 쾌적하다. 이 책은 호수공원 근처에서 책방을 운영했던 1천 여일 동안 썼던 시인의 내밀한 기록(?)이다. 시도 있고, 일기도 있고, 산문도 있고, 단상도 있다. 글의 분량도 제각각이다. 한쪽도 못 되는 것도 있고, 서너 쪽을 넘기는 것도 있다. 부러 분량을 늘이거나 줄이지 않은 시인의 글쓰기가 퍽이나 마음에 든다. 딱 필요한 분량만큼만 쓸 수 있었던 것은 발표를 염두에 두지 않았던 탓이기도 하겠지만, 시인의 환경과 생각의 리듬에 따라 자유롭게 글을 쓴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김이듬 시인의 이러한 자유로움을 좋아한다.

글에는 호수공원도 종종 등장하는데 – 사실 나도 호수공원이 좋아 일산으로 이사했다 – 시인이 바라보는 호수공원이 신선하다. 너무 좋아 종이 끝을 접어두었던 문장은 이렇다. “관광객들이 보트를 타고 호수에 들어가는 오후에도, 아무도 오지 않는 계절에도, 나는 호숫가에 서 있다. 호수를 좋아하지만 접촉하지 않는다. 내가 몰라도 되는 것을 증명하는 사람과 비밀이 없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선을 유지하며 증상 없는 사랑을 실험한다.”(113쪽)

‘증상 없는 사랑’이라는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것은 삶이 무뎌진 결과가 아니라, 삶을 온전히 받아낸 사람이 쓸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들이 치기어린(?) 마음으로 시작했던 많은 공간들이 얼마 못 가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무너져내리는 것을 하도 많이 봐와서 3년 넘게 수익도 거의 나지 않는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이듬시인이 신기했다. 이제는 무너질 만도 한데, 왠 걸, 다시 출발한다. 그것은 고집이 아니라 사랑이다. 시절 지난 인연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인연들이 빚어내는 이 기적과 같은 새출발의 시점에 바로 이 산문집이 나왔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글은? 물론 놀랄 만큼 좋다. 시인이 산문을 쓰면 이렇게 쓰는구나. 이 책을 읽으며 자주 놀란다.

내 주변에 에세이를 쓰고 싶어하는 예비작가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책의 목록에 올려놓았다. 길게 쓰지 않아도, 뭔가 교훈을 주지 않아도, 강제로 끝맺음을 하지 않아도 글 자체로 빛날 수 있다는 것을 김이듬의 산문은 증명하고 있다. 세상을 바꿀 만한 사상이 없어도, 삶을 뒤집을 만한 경험이 없어도, 독자를 깜짝 놀라게할 표현이 없어도, 이처럼 절묘하게 자신의 일상을 그려낼 수 있다는 걸 김이듬 시인은 보여주고 있다.

편편이 좋아서 맛있는 음식을 아껴먹듯 야금야금 책을 읽었다. 줄치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 차라리 안 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살짝 그 매력 – 혹은 마력 –을 소개하기 위해 나는 <『사라진느』를 읽고>를 선택한다. 이 글은 한쪽도 안 되는 분량이지만 변화하는 계절 속에 인생관을 담은 빛나는 글이다. 후하게 3문단 중 뒤의 2문단을 소개한다.     


“지난여름 내내 암울했지만, 삶이 없었다고 말해버리면 안 되겠다. 울고 있었지만 지워지는 건 없었다. 빗물에 씻긴 과일의 단맛은 사라진 게 아니다. 달고 따뜻한 빗물로 풀벌레들을 살찌웠다.

이어서 혹한이 닥칠 것이다. 사람은 예견할 수 있다. 영원히 자취를 감추는 것은 없다. 내가 확인할 수 없을 뿐. 사람이라면 깨닫는다. 사라지면서 찰나적으로나마, 순간적 숭고, 순간적 완성이 반복되다 보면 되고 싶은 존재와 되어가는(becoming) 신비가 발생하리라. 성스러움은 인간의 본질이다.”(216~217쪽)    

지금도 울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내 몸에서 흐르는 것들을 좋아한다. 노래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날은 적어졌지만, 눈물과 땀을 흘리는 날이 곱절 많아졌지만, 아무튼 내 몸에서 배출되는 물기들이 좋다. 피와 냉, 오줌도. 글도 내 몽에서 손가락을 통해 흘러나오는 물질 같다. 흘러나오는 이것들이 이따금 구질구질하고 지저분해 보이기는 하지만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일기도 아니고 넋두리도 아니고 시는 더더욱 아닌 이 글을 나는 쓴다. 열심히는 아니고 마치 배가 고파서 밥을 먹는 아이처럼. 뭔가 쓰는 것은 사람의 기본적이고 자연스러운 욕구다.(80쪽)

"관광객들이 보트를 타고 호수에 들어가는 오후에도, 아무도 오지 않는 계절에도, 나는 호숫가에 서 있다. 호수를 좋아하지만 접촉하지 않는다. 내가 몰라도 되는 것을 증명하는 사람과 비밀이 없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선을 유지하며 증상 없는 사랑을 실험한다."(113쪽)

"지난여름 내내 암울했지만, 삶이 없었다고 말해버리면 안 되겠다. 울고 있었지만 지워지는 건 없었다. 빗물에 씻긴 과일의 단맛은 사라진 게 아니다. 달고 따뜻한 빗물로 풀벌레들을 살찌웠다.

이어서 혹한이 닥칠 것이다. 사람은 예견할 수 있다. 영원히 자취를 감추는 것은 없다. 내가 확인할 수 없을 뿐. 사람이라면 깨닫는다. 사라지면서 찰나적으로나마, 순간적 숭고, 순간적 완성이 반복되다 보면 되고 싶은 존재와 되어가는(becoming) 신비가 발생하리라. 성스러움은 인간의 본질이다."(216~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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