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모험 - 철학자들과 함께 떠나는
황산 지음 / 북바이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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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이 쓴 철학자들과 함께 떠나는 글쓰기의 모험(북바이북, 2020)을 주문해 읽었다. 8명의 철학자의 글쓰기를 소개한 책이다. 각 꼭지들은 출판전문잡지 기획회의에 연재한 글들이다. 연속적인 글이 아니라 독립적인 글모음이다. 연재했을 당시에 제목이 철학자들의 글쓰기였다. 이번에는 책읽기를 앞에서부터 뒤로 하지 않고, 저자의 마무리글을 빼고, 뒤에서부터 앞으로 읽었다. 그래도 아무 문제 없는 책 구성이다. 이렇게 거꾸로 책을 읽어보기는 처음이다.

다른 꼭지들도 좋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철학자는 모리스 블랑쇼다. 인용한 문장들은 모두 블랑쇼의 글쓰기에 소개된 인용구들이다. 블랑쇼의 글을 읽으며, 블랑쇼의 책 카오스의 글쓰기카프카에서 카프카로를 추가 주문했다. 책은 책으로 연결된다. 황산에 의견에 따르면 카오스의 글쓰기재난의 글쓰기로 변역하는 것이 원문에 가깝다. 나도 동의한다. 한편 내가 왜 블랑쇼의 글쓰기에 주목하였을까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전세계적 재앙이 코로나19 사태를 겪고 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이전의 생각과 삶의 방식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총제적이고 재난적 상황을 전지구가 맞이하고 있다. 모든 것을 괄호치고 제로 베이스에서 새로 생각하고 글을 써야하는 것 아닌가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나의 생각을 더욱 격발시키는 작가가 모리스 블랑쇼였다. 아마도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나는 분명 니체나 들뢰즈에 더 주목했을 것이다. 삶의 처지가 달라지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고, 이전 같았으며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블랑쇼가 자슴에 들어와 박혔다. 글을 쓸 수 없는 시기에 글을 쓴다는 것, 자신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절망적 상황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기독교 초장기때 바울의 글쓰기가 블랑쇼의 글쓰기 정신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다


<추신> 황산이라는 작가를 작가서랍에 넣어두었다.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글을 쓰려면 굽히지 말라.
희석시키지 말라.
논리적으로 만들려고 애쓰지 말라.
유행에 맞추어 당신의 영혼을 편집하지 말라.
당신의 가장 강렬한 집착을 무조건적으로 따라가자."
- 프란츠 카프카, 《카프카의 생각》(힘찬북스, 2019)

카프카가 쓰지 않으면 미칠 것 같기 때문에 쓴다는 사실을 한 친구에게 알려줄 때, 그는 쓴다는 것이 이미 광기, 자신의 광기이며, 일종의 의식 밖에서 깨어있는 것, 불면의 상태에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광기에 대항하는 광기인 것이다.(66쪽)

정념과 괴로움을 겪는 것, 맹목적인 복종, 신비함 속에서 기다라면서 밤을 맞아들이는 것, 따라서 헐벗음, 자기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뿌리 뽑히는 것, 집착 없음을 포함해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게 만드는 집착 없음, 또는 자기 밖으로의(주도권도 없이, 동의하지도 않고 겪는) 추락.(68~9쪽)

읽지도 쓰지도 말하지도 않는 것, 그것은 묵언 가운데 머무는 것이 아니다. 아마 그것은 전대미문의 방식으로 웅얼거릴 것이다. 으르렁거림과 침묵.(69쪽)

쓸 때, 쓰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글쓰기는 –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 변한다. 그것이 카오스(재난)의 글쓰기이다.(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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