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 무리 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
박홍규.박지원 지음 / 사이드웨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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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자로서 존경해마지 않는 분들이 여럿이 있다. 그중에서 급진적 사상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 분이 두 분 있다. 한 분이 녹색평론 대표인 김종철 선생이고, 또 다른 한 분이 법학자이자 상상을 불허하는 엄청난 인문학적 책을 저술하고 번역한 박홍규 선생이다. 김종철 선생으로 치자면 1991년부터 지금까지 격월간으로 녹색평론이라는 생태사상 잡지를 내고 있으니, 그 저력은 상상을 불허한다. 박홍규 선생도 마찬가지. 그가 쓴 저술을 소개한 내용을 보자.

그동안 아돌프 히틀러, 누가 헤밍웨이를 죽였나, 카프카, 권력과 싸우다, 복지국가의 탄생, 헤세, 반항을 노래하다, 제우스는 죽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조지 오웰, 니체는 틀렸다, 인문학의 거짓말, 왜 다시 마키아벨리인가, 내 친구 톨스토이, 함석헌과 간디, 독학자 반 고흐가 사랑한 책, 독서독인, 마르틴 부버, 이반 일리히, 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다시 보기, 반민주적인, 너무나 반민주적인,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 윌리엄 모리스 평전,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생각하라, 자유인 루쉰등을 집필했으며,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유한계급론, 군주론, 산업 민주주의, 간디가 말하는 자치의 정신, 간디, 비폭력 저항운동, 유토피아, 이반 일리히의 유언, 학교 없는 사회, 자유론, 간디 자서전, 오리엔탈리즘, 사상의 자유의 역사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 중에 내가 사고 읽은 책만 반이 넘는다. 나도 어지간이 읽은 셈이다.

이 정도면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내내 썼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박홍규 선생이 이번에 대담집을 냈다. 박지원이 묻고 박홍규가 답한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사이드웨이, 2019)이다. 제목에서 확인하듯이 그의 쓰기는 읽기의 반영이다. 내내 읽었으니, 내내 썼던 셈. 현재 박홍규 선생은 교편을 접고 그의 아내와 경북 경산의 시골로 가서 600평의 땅에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휴대폰도 없이, 자동차도 없이, 매일 도시락을 싸들고 도서관으로 출퇴근한다. 주말이면 아내와 산책도 하고 영화도 본다. 책 표지를 보니, 그러한 박홍규 선생의 삶을 고독한 독서인’, ‘영원한 이단아’, ‘르네상스적 지식인등 다양한 타이틀을 붙여 소개해놨다. 부제는 무리 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이라 지었으니, 번다하고 과하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박홍규 선생의 삶을 생각해보면 모두 고개가 끄덕여지는 명칭이다.

이 대담집은 박홍규 선생의 다른 책에 비해 읽기가 수월하다. 질문도 쉽거니와, 대답도 동네에 지혜로운 노인의 말처럼 쉽고 명료하다. 독서, 고독, 사회, 인간 등을 주제로 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다정다감하다. 지적으로 무장한 박홍규가 아니라, 자상하고 친절한 박홍규를 보는 것이 낯설지만, 글이 날 서있다고 삶이 날 선 것이 아니라 생각하니 그 또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일체의 명예나 지위도 갖지 않고 오직 독서와 집필에만 몰두하는 그의 고독한 삶은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부럽다기보다는 경외감이 든다. 일본작가 마루야마 겐지 정도와 맞먹는 인물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나와 동시대에 박홍규 선생과 같은 지성인이 한 하늘에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뿌듯해진다. 일독을 권한다.


생각을 깊이 하라, 많이 하라는 말은 세상에 얼마나 많나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그처럼 ‘생각의 힘’을 막무가내로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저는 생각한다는 일의 진정한 힘은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이라고 믿고 있어요. 다양한 생각들이 자기 안에 축적되어 있고, 그래서 자기 생각의 좌표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것. 그런 축적과 인식의 연쇄 과정. 그게 바로 생각의 가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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