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상[思想]이
내 묵상[默想] 이
한 동안 한적한 곳에
묻혀 살면 좋겠다
사람 냄새 없는
흙 냄새 모래 냄새
원시 바람만 떠도는
햇살이 팔베개하고 잠드는 곳
이름 모를 새들이 와
한 낮을 울어 대다 떠나는 곳
이름 모를 벌레들이 모여
밤새 울다 지쳐 잠드는 곳
밀물이 파도 없이 밀려와
모래알 굴리며 소근대다
모래 몰래 살며시 떠나는 곳
진주를 다듬느라 신음하는
자궁 없는 조개들 모여 사는 곳
울어 울다 읊어 읊다
내 묵상[默想]이 시상[詩想]되어
시심(詩心)되어 시[詩] 낳는 곳
이런 곳이라면
혼[魂]이 따라 묻혀도 여한이 없겠다
여보
어느날 이승에서 나 재 되거든
섧다 야속타 슬프다 울지 말고
셋으로 나눠
한 줌은 흐르는 강물에
훌훌 널리 뿌려 주고
한 줌은
파란 하늘 허공(虛空)에
허위 허위 높게 날려 주고
깊숙히도 말고 얕이도 말고
그늘 안지는 터 골라 묻어 주고
비석 같은 거 거추장스럽소
'사랑했오 사랑하오'
여덟 글자 한줄 돌판이면 충분하오
머리도 말고 배도 말고 가슴 덮은
그 흙 위에 돌판 얹어 가려 주구려
이리 해줄 수 있겠오? 여보야
닭 꼬리 개 꼬리 소 꼬리 뱀 꼬리 쥐 꼬리 돼지 꼬리
사람 꼬리
꼬리란 꼬리는 다 모여라
닭이 불러 모았다
궁둥이를 까 보여라
어디 한번 보자꾸나
누구 꼬리가 기냐
누구 꼬리가 굵냐
누구 꼬리가 쎄냐
뉘 꼬리가 잘 났냐
잣대 한번 대보자
간사한 뱀놈이 문제로다
이리 저리 재보는데
어디까지 몸통이며
어디부터 꼬리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역시 사람이 문제로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돼지 삼겹살 몸통만 있고
도무지 꼬리를 못 찾겠다
인간은 영장[靈長]이라지?
영장은 무슨 영장[靈長]
허허
끊어진 궁둥이 개 꼬리만도 못 하구만
그래 그놈이 그놈이지
호박아 이른 봄 네 씨를 묻어새 싹을 보고 초록 잎을 보고여름 밤 노란 꽃 되어 잠들때
보름달 보다 맑은 네 얼굴에 달빛 사뿐 내려 앉는 걸 보고 꽃술 맴도는 이슬도 보았거늘이제 탐스러운 호박 되었으니
너로 하여금
세월을 알고 자연을 알고
님의 섭리를 알았도다호박꽃아 호박아 우리 함께 님께 감사하자꾸나
어느 날 겨울 아침에
차가운 창밖을 내다 보는데
나무에 걸린 혼[魂]이란 실체를 보았네
초록 빨강 노랑 잎이 눈꽃을 이고
나무 가지에 색색이 싱싱 걸렸네
추위 무섬 타는
딱정벌래/무당벌래 혼[魂]은
어디 숨었나 모를 일
벌거벗은 자작나무/사시나무 좋다
온 몸으로 휘감아 올라 갈 줄만 아는
줄기가 몸이고 몸이 줄기인 담쟁이도
뿌리가 있어 한 혼[魂]이로다
한 생명이로다
어찌
받은 혼[魂]이 없고서야
생기들이 이리 싱싱하다더냐
빛 없이 물 없이 바람 없이
자라는 이생 것 보았더냐
빛/물/바람/사이 사이에
혼[魂]이 같이 있었구나
생기가 함께 사는 구나
창조주 여기 계시구나
하얀 겨울에
눈꽃 만발한 이 아침에내 혼이 밖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