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른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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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도 물도 

세상 만유를 

불에 녹여 

없이 하실지라도

님(任)이 

새로이 창조하시는 

새 하늘 

새 땅에

'사랑한다' 인(印) 치신 우리들 

거룩타 구별하여
님의 새 나라에 

영영 같이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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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을 껴안고

열병을 앓았습니다.
온 몸 깊숙히
아픔이 박혔습니다

길가의 차돌맹이
클로버 잡초
하루살이 개똥벌래까지
영영 되찾을 수 없는
서글픔을 보았습니다

길 지나던 행인들이 
쌓아올린
언덕위 서낭당 돌더미가
와르르
무너져 버렸습니다


다만 시장에서 만난
참외와 포도 호박이
나를 반기고
바람과 그림자가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고층 아파트가
네 고향을 삼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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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다

갈새는 얼마 아니하야 잠이 든다

물닭도 쉬이 어느 낯설은 논드렁에서 돌아온다

바람이 마을을 오면 그때 우리는 섧게 늙음의 이야기를 편다

 

보름달이면

갈거이와 함께  언덕에서 달보기를 한다

강물과 같이 세월의 노래를 부른다

새우들이 마른 잎새에 올라 앉는  때가 나는 좋다

 

어느 처녀가  잎을  갈부던 결었노

어느 동자가  잎 닢  갈나발을 불었노

어느 기러기  순한 대를 입에다 물고 갔노

어느 태공망이  젊음을 낚아 갔노

 

 몸의 매딥매딥

잃어진 사랑의 허물 자국

 많은 어느  강을 날여간 강다릿배의 갈대 피리

비오는 어느 아침 나룻배 나린 길손의 갈대 지팽이

모두  사랑이었다

 

해오라비조는 곁에서

물뱀의 새끼를 업고 나는 꿈을 꾸었다

벼름질로 돌아오는 낫이 나를 다리려 왔다

달구지 타고 산골로 삿자리의 벼슬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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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시방 
물레방아 큰 바퀴가 돌아간다
동네 한 귀퉁이 보리를 찧는다 
 
보리밥 한끼도 못 먹어 
굶던 때가 많던 날 
자고나면 크는 때에
하루 건너 굶었나니 
 
순이와 방앗간 아들이
짚 깔고 사랑을 하였더라
배 고파도 사랑은 하였더라 
 
뉴욕 북쪽 한적한 동네
봄이 오느라 분주한데
동네 오가는 길목에
추억 나무 한 뿌리 심는다
여기는 뉴욕 시방 이른 봄
물레방아 바퀴가 돌아간다
동네 한 귀퉁이 보리를 찧는다 
 
보리밥 한끼 못 먹어 
굶던 때가 많던 날 
자고나면 크는 때에
하루 건너 굶었나니 
 
순이와 방앗간 아들이 보리개떡 하나 나눠 먹고
보리 짚 깔고 사랑이란걸 하였더라
배 고파도 사랑은 하였더라 
 
뉴욕 북쪽 한적한 동네
봄이 오느라 분주한데
동네 오가는 길목에
한국 추억나무 한 뿌리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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