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만난 화성남자 금성여자
존 그레이.바바라 애니스 지음, 나선숙 옮김 / 더난출판사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화성남자 금성남자' 시리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스테디셀러다. 서로 다른 별에서 온 것마냥 이해할 수 없는 남과 여를 분석하여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나아가 관계를 개선할 수 있도록 작성된 일종의 '이성에 관한 설명서'이다. 그 시리즈의 저자 존 그레이와 '성별이해 지능'이라는 개념을 주창한 바바라 애니스가 함께 작성한 이 책에서는 직장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나아가 직장에서 어떻게 하면 이성 동료를 더 잘 이해하고 협동하며 공동의 목표를 위해 능률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지 조언하는 역할도 톡톡히 한다.

   이 책은 뭉뚱그려 남자를, 혹은 여자를 말하는 대신 직장생활에서 자주 발생하는 오해 8가지에 집중하여 그에 관한 상반된 남과 여의 입장을 다룬다. 그리고 그 입장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설명을 제공하면서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한 쉬운 해석을 반복해준다. 책에서 다루는 풍부한 예시를 따라가다 보면 이 세계의 직장에서 나타나는 남자와 여자의 갈등은 천차만별이지만 그 핵심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서 경쟁적으로 일하는 걸 좋아하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며 타인의 질문이나 참견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남자와 협동하여 일하는 걸 좋아하고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시하며 질문이나 충고로 관심을 표현하려 하는 여자. 같은 팀에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다 보면 남자와 여자는 자꾸만 서로의 차이점을 확인한다. 때로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로 인해 분노하기도 하고, 종국에는 사직서를 내고 직장을 완전히 떠나게 되기도 한다. 회사에 완전히 등을 돌리는 그 순간까지도,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책을 읽다 보면 공감이 가는 대목도,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대목도 있었다. 어느 부분은 여성에 대해 다소 차별적이라 느껴진 반면, 어느 대목은 여성이 지닌 특징을 더 나은 것으로 부각시켜 남성 독자들에게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마 존 그레이와 바바라 애니스가 함께 써내려간 책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다 말았다. 남성 작가가 남성들의 편을, 여성 작가가 여성들의 편을 들었을 거라는 생각도 편견이었기 때문이었다. 다 읽고 나니 책을 읽으며 남과 여에 대해 고민한 그 과정 자체가 두 성을 이해하고 그 간극을 좁힐 수 있었던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이 책에서 그리는 '남성'과 '여성'은 결코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완벽한 모델이 아니다. 때로는 책에서 묘사한 남성의 특징이 나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여성적인 측면이 나와 무척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책이 풍부한 예시를 다루고 있는 만큼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적어도 하나쯤은 있었다. 이 책이 지니는 의미는 거기에 있다. 존 그레이와 바바라 애니스는 '모든 남성은 이렇다'거나 '모든 여성은 이렇게 대하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당신이 직장에서 만난 '어떤 남성은 이럴 수 있다'고, '어떤 여성과는 이렇게 일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할 뿐이다. 직장생활을 하던 어느 날 이성 동료와의 반복되는 갈등에 너무도 지쳐버렸다면, 상사와 소통하는 게 너무도 힘이 든다면, 나를 너무도 힘들게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책을 펼쳐보면 어떨까 싶다. 뜻밖의 지점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보이지 않던 상대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볼 실마리를 얻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책을 읽으며 두 작가가 던지는 조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든다. 업무 자체만으로도 벅차고 힘든데 이런 것까지 일일히 신경써야 하나? 어떻게 이런 면까지 다 맞춰주지? 이런다고 누가 내 노력을 알아줄까? 이게 그렇게 가치있는 일인가? 함께 협력해야 하는 프로젝트에 관해 상의하는 중에 자기 피피티 고치기에 여념이 없는 남자 동료를, 시간에 쫓기는 희의 시간에 자꾸 질문을 하는 여자 상사를, 내가 왜 굳이 이해해주려고 노력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꽤 중요한 일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직장에서 불편하고 잘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개인적인 성격이나 문제 때문에 불편한거라면 그 사람 1명만 열심히 피하면 될 일이지만, 상대가 남자, 혹은 여자여서 불편한 일이 생기는 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요즘은 대부분의 회사에 남자 직원과 맞먹는 수의 여자 직원이 있다. 사무실에서, 회의실에서, 점심시간 구내식당과 회식자리에서 필연적으로 이성 동료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들을 대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면 회사 생활 자체가 힘들어지고 만다. 때로는 직장을 그만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말이다.

   결국 이성인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바바라 애니스가 말하는 '성별이해 지능'을 갖추는 것은 상대를 위하는 일인 만큼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매일같이 짜증나게 하던 누군가의 행동이 이해가 되는 순간, 편해지는 건 바로 내 마음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만난 화성남자 금성여자'는 어려운 책이 아니다.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읽기도 좋다. 회의실에서 실컷 싸우고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을 때, 이 책을 펼쳐 몇 페이지 읽어보는 건 그렇게 대단한 노력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사소한 행동이 내 직장생활을, 나아가 연인과의 관계나 가정생활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만으로도 99%는 달성한 셈이다. 마지막 1%의 진짜 이해는, 아마 이 책이 가져다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읽어보면 좋은 대목들

 

   남녀 간의 균형을 비슷하게나마 유지하고 문화적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일터에 있는 남녀의 마음속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똑같지 않고, 꼭 똑같아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여자가 남자처럼 행동하거나 남자가 여자처럼 행동하지 않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남녀평등을 이루고 유지하는 길이다.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며, 받아들이는 것이 행복과 성취감, 그리고 남녀평등으로 가는 진정한 길이다.

- p. 48


   엄마가 어떤 요구를 할 때,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 절대로 못 마땅하거나 짜증스러운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얼핏 보기에 별 해로울 게 없는 듯한 이 작은 제스처가 엄마의 가치를 깎아내릴 뿐 아니라 아들에게 나중에 다른 여자들을 그런 식으로 무시해도 된다고 가르치는 것과 같다.

- pp. 222-223


   여자의 말 또는 행동: "괜찮아요."

   남자의 성별이해 지능: 여자가 짧게 대답하는 것은 상황이 그리 괜찮지 않다는 뜻이다.

- p. 269


   성별이해 지능이 있는 남자라면 자신이 나서서 대화를 이어나갈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녀에게 '함께'라는 느낌을 전달할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배려해주는 남자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믿을 것이다. 그 남자는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며, 여성을 상품화하는 대화가 이어질 경우 거기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남자들의 그런 행동을 시대에 뒤떨어진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기며, 그 대화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남자들에게 그게 유치하고 잔인하며 수준 낮은 짓이라는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 p. 286


   여자들에게는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 사소한 것들이 큰 차이를 만들어내고, 남편이 아내를 위해 하는 작은 행동들이 진짜 중요한 것으로 인식된다. 여자는 그런 행동을 보면서 남자가 자신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아차린다. 이런 게 남자에게 그리 힘든 일은 아닐 것이다. 아니, 힘든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뭔가를 계속 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늘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며 그에 맞게 대접할 때,  둘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신뢰가 자라나는 한편, 둘 사이의 관계도 함께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 p. 305


   앞에서도 몇 번 언급했듯이, 여자들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 하지만, 일과 삶의 조화를 찾는 면에서는 이 능력이 저주가 될  수 있다. 여자들은 너무 과도하게 일하고, 너무 많은 것을 약속하며, 모든 일에 성과를 내려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죄책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 p. 347


   "다 가질 수는 있지만, 모든 걸 다 할 필요는 없다."

   이 말은 우리가 여성들에게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다. 경력을 쌓아 가거나 계획하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소중한 통찰력을 제공해줄 것이다.

   늘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먼저 생각하고, "안 돼", "나중에"라는 말을 하지 못하며, 자신을 돌보지 못한다면, 그리고 죄책감 때문에 이 모든 일을 하고 있다면, 분명 '다 갖지' 못할 것이다. 죄책감은 스트레스를 키운다. 스트레스 수준이 높아질수록, 남들을 위해 해줘야 할 일들의 리스트는 끝도 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여자들은 그 리스트 맨 밑에 자신을 적어 넣을 것이다.

   퇴근 후에 왜 원하지도 않는 술을 마시러 가는가? 동료들과 출장 갔을 때 왜 즐겁지도 않으면서 밤새 깨어 있는가? 남자들은 "난 이제 자러 들어갈래. 너희들끼리 재미있게 놀아"라는 말을 쉽게 할 뿐 아니라 거기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남자들의 그런 말에는 전혀 개인적인 감정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상대방 남자 역시 "내일 보자!"는 그 말에 대해 화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여자들은 남이 아닌 자신을 생각하는 게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믿음을 갖게끔 길들여졌다. 관계를 형성하려면 서로 공감하고, 시간과 관심을 쏟고, 그 보답으로 비슷한 관심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자신을 돌보는 훈련을 받은 여자들은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더 충분히 생각하게 되는 효과를 경험한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며, 누군가에게 이해와 격려를 받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더 소중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 pp. 356-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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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메이 페일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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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존 피글러는 법을 준수하는 고등학생이다. 그는 편지에 자신은 내 책을 거의 다 읽었으며 이제 내가 평생 동안 써온 작품의 핵심에 있는 단 하나의 사상을 말할 준비가 돼 있다고 썼다. 그는 이렇게 썼다.

   "사랑은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공손함은 항상 승리할 것이다."

   

   작품 속에서 버논 선생님이 교실 뒷편에 액자로 걸어둔, 포샤가 자신의 소설 제목으로 차용한, 더불어 작가인 매튜 퀵이 이 책의 제목으로 삼은 '러브 메이 페일'의 출처는 위에 적은 커트 보네거트의 '제일버드'의 한 대목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사랑이 실패하는 순간, 그것을 뛰어넘고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공손함보다는 또다른 사랑이다. 그것은 좋은 남자와 새로 시작하는 사랑일 수도, 한번도 변한 적 없었던 엄마의 사랑일 수도, 선생님을 어떻게든 구하고 싶은 제자의 사랑일 수도 있다. '러브 메이 페일'은 완벽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랑으로 서로 보듬고 위로하며 다시 일으켜 세우고 눈에 반짝이는 빛을 돌려주는 이야기이다.

   책의 각 챕터에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붙어있고, 그 인물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쉽사리 '러브 메이 페일'의 주인공은 누구다, 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어느 시점에는 포샤도, 버논 선생님도, 매브 수녀님도, 척도 이야기의 주인공 위치에 선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느 순간을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또 어느 순간은 우리 주변 소중한 사람의 이야기에 기꺼이 조연이 되어준다. 때로는 아주 잠깐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한다.

   소설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포샤는 그녀가 쓴 소설의 주인공처럼 '웃기고 재치 있고 상처받고 망가진 캐릭터지만 마음씨가 곱다'. 그녀는 포르노 산업의 큰손으로 늘 여자의 권리를 짓밟는 영화만 제작하며 페미니스트이자 소설가를 꿈꾸는 포샤의 꿈을 짓밟는 남편 켄의 외도 현장을 목격하고 분개해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 곳에서 그녀를 맞아주는 건 변함없는 모습의, 정신이 온전치 않은 호더인 어머니이다. 그러나 우연같은, 혹은 운명같은 만남들을 통해 그녀는 옛 친구인 다니엘과 재회하고, 그녀에게서 오래 전 포샤의 인생을 변화시켰던 버논 선생님의 소식을 듣고, 또 다니엘의 오빠인 척을 알게 된다. 그리고 포샤는 버논 선생님을 구하기로 결심한다. 그게 어떤 방법이 되었든 간에, 그 모험을 해보기로.

   포샤의 모험은 순탄치 않다. 버논 선생님은 그녀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에서 한참 변한 상태로 오직 자살만을 원한다. 그에게는 그만의 사정이 있고, 성질 급한 포샤는 열정이 넘치지만 정작 그의 마음에는 가닿지 못한다. 3일만에 버논 선생님을 구하겠다던 포샤의 포부와는 달리, 버논 선생님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매브 수녀가 죽기 직전까지 답장 없는 아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남겼던 편지들. 밉지만 또 안쓰러운 친구의 아들을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했던 캐서린 원장. 포샤의 소설. 그렇게 다시 일어선 버논 선생님은, 그 긴 시간동안 세상의 벽에 부딪혀 다시금 부서지고 녹초가 된 포샤를 다시 서게 한다. 아주 오래 전 어느날 어린 소녀였던 그녀에게 그랬듯이. 그렇게, 제각기 부서지고 아픈 삶을 살던 '러브 메이 페일'의 주인공들은 서로를 구한다. 그래서 이 책은 종교적이라 하기엔 헤비메탈과 술과 담배와 마약과 욕설이 너무 많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반드시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매튜 퀵이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아프게 넘어져도 일어설 때까지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러브 메이 페일'은 동화가 아니다. 그래서 포샤의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지도 않고, 평단의 찬사를 받지도 못한다. 오히려 포샤가 꿈에 그리던 소설가로의 데뷔는 참담하고, 그녀의 인생이 다시 회색빛으로 오그라드는 계기가 되고 만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자꾸 넘어지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좋은 날이 온다는, 그런 희망적인 말들은 다 거짓말이고 성공한 사람들의 위선일 뿐이라고 아마 포샤는 소리를 질러댈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불씨가 사그라질 것만 같던 위기의 순간에, 그녀의 남편 척과 친구 캐서린 원장, 그리고 버논 선생님은 힘을 합쳐 그녀를 위해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 준다. 쏟아지는 종이비행기, 반짝이는 눈빛의 아이들, 고사리 같은 손에 들린 '러브 메이 페일'. 어느 학교 방과후교실 아이들에게 사인을 해주었다고 해서, 그 아이들의 눈빛에서 그녀를 진심으로 작가로 존경하는 마음을 읽었다고 해서 포샤의 인생에 달라지는 것은 엄밀히 말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때로는 그토록 아무것도 아닌 일이 구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종류의 기적이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억에 남는 문장들

 

   근사한 남자들은 다 동성애자거나 순교자 콤플렉스가 있는 신의 아들들이다. 맹세코 우리 이성애자 여자들은 운이 다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 Part I '포샤 케인', p. 44


   "넌 왜 현실에서 뛰어내렸니? 침실 창문에서 말이야. 너 정말 그 동반 자살 협약에 따라 그렇게 한 거니?"

   <멋진 인생>이란 영화에서 수호천사 클라란스가 조지 베일리를 속여서 그의 목숨을 구하려고 다리에서 뛰어내린 거 기억나요? 클라란스가 이런 말을 했죠. "내가 뛰어내리면 당신이 날 구해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렇게 해서 내가 당신을 구했어요." 우린 지난 2년 동안 크리스마스마다 그 영화를 같이 봤어요. 기억나요? 거기서 내가 아이디어를 얻은 거죠. 당신을 구할 방법을 알아냈단 말이에요.

   "날 구하기 위해 네가 뛰어내렸다고?"

   알베르 카뮈는 마치 맞아요, 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내 입술을 한번 핥았다.

   "하지만 나는 널 구하지 못했어."

   그렇다고 자살하지도 않았잖아요. - Part II '네이트 버논', p. 216


   "방금 날 '고양이'라고 부른 거야?"

   나는 바보같이 허공에다 대고 손가락으로 인용 부호를 만들어보이면서 말했다.

   네, 그랬어요. 이건 개가 또 다른 개에게 쓸 수 있는 가장 나쁜 욕이에요. 고양이. 지금 주인님은 그렇게 굴고 있잖아요. 남을 헐뜯고, 이기적으로 굴고, 자기밖에 모르고, 남은 믿지도 않고, 뚱해 있는 고양이 같아요. 믿음직스러운 개가 되세요, 네이트 주인님. 진실하고 선량한 개는 상냥하고 사랑이 넘치고 친절하고 모험을 떠날 준비가 항상 돼 있어요. 온 세상에 오줌을 갈겨서 구석구석 영역 표시를 하는 거죠. 그래도 자기 오줌이 고갈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이야기가 좀 이상해지는데, 알베르 카뮈. 암만 내가 이상한 인간이라도 그렇지. 이건 인정해야겠어."

   새 삶을 살아보세요. 주인님의 본질인 오줌으로 세상에 영역 표시를 하세요. - Part II '네이트 버논', pp. 303-304


written by. 가비

* 이 서평은 박하출판사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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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맨의 재즈 밀리언셀러 클럽 144
레이 셀레스틴 지음, 김은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1918년, 도끼를 든 살인마가 미국 남부의 도시 뉴올리언스를 공포에 떨게 한다. 도끼 살인마 '액스맨'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침입해 사람을 무참히 살해한 후, 훼손된 상처 부분에 '정의'와 '심판' 타로카드를 꽂아둔 뒤 유유히 현장을 떠난다.

   피해자는 시칠리아 출신의 이민자들. 살인범은 신문사에 지옥에서 보내는 편지를 남길 정도로 대담하고, 겁이 없으며,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차 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에게 군중을 심판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그가 든 도끼가 정의의 여신이 내려치는 검이라도 되는 것마냥.

   20세기 초의 뉴올리언스는 소외된 자들의 도시이다. '북으로는 크리올 흑인이, 남으로는 아일랜드인, 서쪽에는 아프리카 흑인이 살았고 중앙에 위치한 리틀이탈리아에는 이탈리아인이 살았'던 분열된 도시의 잔혹한 연쇄살인은 고립과 의심을 증폭시킨다. 시칠리아인이 희생되면 마피아가 범죄의 배후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 희생자가 발생한 리틀이탈리아에서는 흑인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길거리를 걷던 선량한 흑인들이 린치를 당하고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도시를 지배한다. 그렇게 액스맨은 각 개인을 무참히 살해하는 것을 넘어 뉴올리언스 사회를 파괴한다. 공포는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과 타인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와 관용을 좀먹는다. 재즈가 울려퍼지는 낭만의 도시 뉴올리언스는 그렇게 불안과 광기에 잠식당한다.

   '액스맨의 재즈'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액스맨을 추격하는 여정을 담았다. 그것은 정의를 위한 길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간절하게 스스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길고 질긴 인연의 의리를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뉴올리언스의 도끼 연쇄살인은 분명 끔찍한 범죄다. 하지만 사건의 진행과 함께 드러나는 것은 인간 내면 깊은 곳의 추악한 단면들, 사람이 사람에게 품게 되는 다양한 감정, 같은 행동 뒤에 숨어 있는 다른 의도와 목적, 그렇게 온통 벌거숭이가 된 인간 그 자신이다. 어쩌면 마이클이, 루카가, 그리고 아이다와 루이스가 잡으려 했던 것은 액스맨 그 자체인 동시에 온통 벌거벗겨진 뉴올리언스에 덮어줄 새 이불이었을지 모른다. 흙먼지 너머 쇼걸처럼 누워있는 어두운 도시에 살포시 얹어줄 희망을. 함께 피흘린 시간을 딛고 화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말이다.


100년의 간극


 실제 사건이었던 뉴올리언스의 도끼 연쇄살인사건은 약 100년 전에 일어났던 실제 사건이다. 레이 셀레스틴은 과거의 기록을 되짚으며 소설의 형태로 재탄생시켜 극적 요소를 가미하면서도 팩트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100년 전의 살인사건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그 모습이 현대와는 어떻게 다른지, 당시의 수사기관은 어떤 증거를 놓쳤고 어떤 부분을 분석할 수 없었는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범인이 피묻은 신발 밑창을 피해자의 부엌에서 씻고 가며 거기서 떨어진 진흙이며 피를 고스란히 싱크대에 남기고 갔는데도 그걸 저기서 부츠를 씻고 갔군, 하고 넘기는 모습에 경악했다. 그러다 100년 전에는 싱크대에서 지문을 채취하여 전산에 등록된 수많은 지문과 대조할 수도, 잔여물을 끌어모아 섞여있을지 모르는 범인의 상피세포 속 DNA를 분석할 수도 없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액스맨이 1918년이 아닌 2018년을 범행의 무대로 삼았다면 그토록 오랜 시간 많은 희생자를 남기며 유유히 사라질 수 있었을까. 아마 그가 악마에 빗댈 정도로 뛰어나다 생각했던 기술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고, 첫 희생자의 사체가 수습되며 이미 꼬리가 밟히기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세기 초라는 시대상이, 그 당시의 낙후된 기술과 수사의 한계가, 그리고 무엇보다 신문에 범인에 대한 명확한 정보 대신 새벽에 길거리를 거니는 악마를 보았다는 제보를 보내는 사람들의 인식이 액스맨을 지옥의 심판관으로 만들어주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과학수사가 태동하기 이전 시대의 수많은 잔혹한 범죄들에 대하여. 억울함조차 풀지 못하고 죽어가야 했던 수많은 희생자들에 대하여.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


   처음 제목을 접하고 당연히 미국 작가의 소설일 줄 알았는데, 작가 레이 셀레스틴이 영국 소설가라는 걸 알고는 깜짝 놀랐다. 더구나 '액스맨의 재즈'가 데뷔작이라는 걸 알고는 더더욱 놀라고 말았다. 생애 첫 소설로 100년 전 일어난 미국의 범죄사건을 다루려는 영국 신예 소설가라니. 그러나 이 주제에 자신이 있다는 듯, 그리고 명확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듯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레이 셀레스틴은 차분하고 침착하다. 그래서 '액스맨의 재즈'는 주제의 잔혹성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감각적인 슬래셔 같지도, 그렇다고 팩트만 나열하는 역사기록 같지도 않다. 그 중간 어딘가를 걸으며 실제와 허구를 교묘히 엮고 독자를 1919년의 뉴올리언스로 홀리듯 끌어당긴다. 마치 그 곳을 좀 보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 곳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그 때 사람들은 이런 마음으로 이런 공포에 떨며 이렇게 살아가야 했다고. 그리고 독자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는 다른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종류의 범죄가 일어났을 때, 우리는 서로를 어떤 시선으로 돌아보는지, 누군가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하고 의심하며 증오하지는 않는지, 때로는 범죄 그 자체보다도 더 잔인한 마음으로 서로를 상처 입히지는 않는지. 21세기에 액스맨은 없지만, 뉴올리언스의 그 깊고 짙은 어두움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드리워져 있다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악마는, 우리 안에 있다.


written by. 가비

* 이 서평은 황금가지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고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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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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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타터스'의 후속작인 '엔더스'. 전작을 읽지 않은 나에게는 초반 줄거리와 인물들, 그리고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했다. 아마 '스타터스'부터 읽어온 독자라면 보다 쉽고 빠르게 책에 빠져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엔더스'부터 읽은 것의 장점은, 작은 설정 하나하나가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는 점이었다. 나이대에 따른 스타터, 미들, 엔더의 계층 구분, 포자로 대표되는 새로운 생화학 무기에 의한 이른 바 전쟁 후의 몰락한 사회, 그 디스토피아에서 태동하는 신기술들. 권력을 쥔 엔더들이 칩을 이용하여 젊은 스타터의  몸을 대여한다는 건 정말로 새로운 발상이었다. 노인이 젊은 육체를 꿈꾼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박범신의 '은교'에서 화제가 된 후 다소 익숙해졌지만, 그 욕망을 실제로 실현하는 건 새로운 차원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용당하고 계속해서 사회 하위계층으로 밀려난 스타터들이 개혁을 꿈꾼다는 건, 다소 뻔하지만 설득력 있는 전개였다.

   주인공 캘리는 동생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신체 대여에 참여한다. 그러나 엔더에게 몸을 대여한 동안 자신의 의식이 온전히 사라지는 다른 스타터들과 달리, 캘리는 엔더에게 몸을 내준 상태에서도 자신의 의식이 유지되며 한 몸 안에서 공존한다. 동시에 그녀의 칩은 유일하게 살인이 가능한 칩이기도 하다. 즉, 엔더에게 신체를 대여하면 어떤 행동이든 가능하지만 살인만큼은 제한되는 다른 스타터들과 달리, 캘리를 대여한 엔더는 그녀의 몸으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칩은 유일한 것이 되고, 그녀는 악의 중심인 '올드맨'에게 쫓기는 몸이 된다. 그리고 보통의 일상을 되찾기 위해 캘리 역시 그에 맞선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친구들, 새로 밝혀지는 진실들, 그리고 조금씩 찾아오는 변화가 소설의 골자를 이룬다.

   '엔더스'는 탄탄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내가 경험하는 사회와 전혀 다른 모습의 세계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동시에 '엔더스'의 디스토피아는 우리 사회의 갈등을 반영하고 있어 현실을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고령화 사회로 치닫는 현재, 우리에게도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게 된 '엔더'들이 사회의 모든 권력을 쥐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부모보다는 조부모를 보호자로 둔 것이 더 우월한 조건으로 생각되는 날이 올지도. 그 날에, 아마 '엔더스'가 생각나지 않을까.


우리는 늘 누군가를 이기고 생존한다

 

   '엔더스'에서 가장 참신한 설정은 기존 소설에서 늘 약자로 분류되었던 노인층을 기득권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끔찍한 포자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백신을 투여받을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약자 계층이었고, 그렇기에 오히려 가장 강했던 중장년층, 즉 미들보다 많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상상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지. 그렇게 살아남은 엔더들은 신체를 단련하고, 권력을 탐하고, 재산을 축적하고, 스스로를 가꾸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견고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간다. 그러나 그들은 젊고 강한 스타터들이, 그리고 살아남은 일부 미들이 두렵다. 그렇기에 권력으로 그들을 압도한다. 보호자가 없는 스타터들은 감옥에 가까원 보호소에 보내지고, 그 곳에서 기본적인 생활 여건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비참하게 살아가고 또 죽임을 당한다. 그 상황에서 일부 스타터들은 자신의 몸을 대여해주기 위해 내놓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엔더스'의 세계는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사회적 틀을 뒤집어 엎었음에도 결코 유토피아가 되지 못한다. 결국 누군가는 또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 행복을 취한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없다.


그래도 희망을 본다

 

   작가 리스 프라이스는 책의 첫 장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엔더, 진에게 바칩니다'라고 쓴다. 주인공 캘리는 수많은 엔더들과 싸우고 그들에게 핍박당하며 괴로운 시간을 보내지만, 이후 그녀의 후견인을 자처하며 그녀의 가족을 지켜주는 사람 역시 엔더인 로렌이다. 그녀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하이든의 충직한 보디가드인 어니는 미들이고, 하이든의 연구실에서 함께 올드맨을 막기 위해 연구에 몰두하는 레드먼드는 엔더이다. 비록 나이로 구분되는 계층간의 갈등을 다룬 작품이지만, 이 작품에서 캘리의 친구들은 결코 스타터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녀가 만난 좋은 사람 중에는 엔더도 있고 미들도 있다. 또한 그녀를 이용하고 착취하는 사람 중에는 역시 스타터 역시 몇 명 포함되어 있다. 도슨은 캘리와 하이든, 마이클을 가두고 끔찍하게 다루지만 결국 브로크만을 무찌른 이후에는 그녀의 동료가 된다. '엔더스'에는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은 모두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그 관계 속에서 누군가 나에게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데에는 수없이 많은 요소들이 관여한다. 그 사람이 엔더인지 스타터인지는 그 중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이 이야기의 끝에서 친구와 적을 나누는 기준은 나이도, 사회적 지위도 아닌 관계에 있다. 그리고 관계는 변한다.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그게 이 이야기의 희망이다.


written by. 가비

 * 황금가지의 '엔더스'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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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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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읽기 힘든 곳이 몇 군데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그랬다면, 나 역시 쓰기 힘든 곳이 몇 군데 있었다는 말을 꼭 해 두고 싶다. 스티븐 킹이 책의 닫는 글에서 처음 꺼내는 이 말대로, 책을 읽으며 더 이상 읽기 힘든 순간이 이따금씩 찾아왔다. 처음 책을 펼쳐든 건 시청에서 카메라를 찾아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 안이었는데, 사람으로 가득 차 안 그래도 공기가 희박한 퇴근시간대의 버스에서 '1922'의 살인 장면 묘사를 읽다가 결국 멀미가 나서 덮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빅 드라이버'에서 테스가 강간당하는 장면도, '행복한 결혼 생활'에서 계단에서 떨어져 널부러진 밥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도 한 줄 한 줄이 힘들었다. 역시 나는 스티븐 킹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여러번 했다. 그럼에도 6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손에서 쉽게 놓지 못하고 며칠만에 다 읽었다.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불편하고 때로는 읽기에 괴롭지만, 그래도 뒷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다시 펴게 되는 것.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는 마지막에 실린 '행복한 결혼 생활'이었다. 실존인물인 일명 'BTK 살인마' 데니스 레이더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는 이 이야기는 잔인한 연쇄살인범의 가까운 가족이 우연한 계기로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고민하고, 사고하고, 또 행동하는지를 다룬다. 27년의 결혼생활 내내 큰 불화 한 번 겪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온 다아시는, 남편 밥이 출장으로 집을 비운 어느 날 아주 우연히 차고에서 남편이 살인마 '비디'라는 증거를 발견한다. 전화기 너머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아내가 모든 사실을 알았다는 걸 느낀 밥은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고, 다시는 살인을 하지 않겠다며 아내에게 자신을, 그리고 아이들을 감싸주기를 부탁한다. 아이들을 평생 살인마의 자식으로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모성, 사람들이 자신을 알고도 모른 척한 공범으로 몰아갈 것에 대한 두려움, 희생자들에 대한 죄책감, 이제는 완벽하게 알게 된 줄 알았던 남편 안에 전혀 모르는 사람이 숨어 있었다는 데에 대한 공포. 밥과의 결혼생활은 변하지 않지만, 다아시는 점차 어두운 세계에 침잠한다. 그리고 부업이자 취미로 화폐 수집을 하던 밥이 평생 찾아 헤매던 더블 다이를 우연히 손에 넣고 너무 기뻐 과음한 날, 다아시는 주저없이 남편을 계단에서 밀어 떨어뜨린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남편의 입에 비닐봉지에 싼 수건을 밀어넣어 끝을 낸다. 그리고 경찰에 전화를 건다. 남편이 과음하고 계단에서 굴렀다고, 어쩐지 죽은 것 같다고, 서럽게 울면서. 이 이야기의 가장 큰 매력은 순간 순간마다 다아시가 완벽하게 이해된다는 점이다. 남편 밥이 10명이 넘는 여성과 어린이를 잔인하게 고문하고 살해한 인물임을 알고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침묵하는 것도, 그런 남편과의 계속되는 생활 속에서 점차 메말라가는 것도, 결국에는 자신의 손으로 종지부를 찍는 것도 모두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모습들이다. 실제 살인범들의 가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은 남편의, 아들의, 오빠의, 아버지의 범행을 처음 안 게 언제였을까, 그 순간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야기의 끝에서 많은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남아있는 것도 좋았다. 잠깐 영화 '영도'를 떠올렸다. 그리고 영도보다 다아시가 훨씬 건강한 선택을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나의 영혼을 갉아먹은 것은 누구인가, 무엇인가

 

   '1922'는 잔인한 살인 묘사로 책을 읽는 데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던 문제의 작품이었다. 전반에 걸쳐 끔찍한 묘사가 가장 많은 작품이기도 했다. 땅 때문에 아들을 꼬드겨 함께 아내를 살해한 윌프레드의 인생을 그 비참한 최후까지 추적하는, 윌프레드 본인이 쓰는 자기고백 형식의 소설. 사실 작품을 읽으며 몇 번이나 어깨를 움츠려야 했던 것에 비해서 다 읽은 후에는 개운한 기분이 들었는데,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가 권선징악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결국 윌프레드를 괴롭히고, 공포에 떨게 하고, 종국에는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그 자신이 저지른 죄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덧붙여진 신문기사 형식의 짤막한 글을 읽고 과연 이야기의 어디까지가 현실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순간이라도, 쥐는 실제로 있었을까.


빅 드라이버를 쫓다

 

   가장 마음 아프게 읽었던 작품은 '빅 드라이버'였다. 어느 날 작은 북클럽의 모임에 강연 연사로 초청을 받은 30대 여류작가 테스는 그 곳의 도서관 사서 라모나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지름길을 추천받는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그 길에는 못이 박힌 목재가 굴러다니고, 결국 그녀의 차는 펑크가 나고 만다. 그리고 같은 길에 들어선 '트럭을 입고 다니는 듯한' 거구의 남자는 타이어를 갈아주겠다며 선뜻 도움의 손을 내민다. 그러나 테스가 남자의 트럭 뒷좌석을 흘낏 본 순간 거기에는 길에 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목재가 널부러져 있고, 테스에게 다가온 남자는 주먹을 날린 뒤 그녀를 근처의 버려진 상점으로 끌고 가 강간한다. 그리고 숨이 끊어졌다고 생각하는 테스를 다른 시체 두 구가 썩어가는 배수로에 버린 뒤 유유히 사라진다. 그 배수로에서 살아 돌아온 테스는 공포와 수치심 속에서 스스로 복수할 계획을 세우고, 그 복수에 성공한다. 라모나와 그 두 아들을 죽인 이후의 삶이 행복할 지는 누구도 보장할 수 없지만, 적어도 모든 이야기를 벳시에게 털어놓고 걸어가는 테스의 뒷모습은 더 이상 겁에 질려 있지 않다.

   어쩐지 강간을 다룬 작품은 유난히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특히 이 이야기는 사건이 있은 후 며칠에 걸친 테스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어 더욱 그렇다.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고도 어쩐지 자꾸만 움츠러들고 세상 앞에 나서기가 두려워지는 피해자의 심정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테스의 복수가 옳았는지는 다른 문제이지만, '저들을 경찰에 신고해서 내가 얻는 게 뭔데?'를 끊임없이 묻는 그녀의 마음만큼은 정당하지 않을까.


언제나 대가는 존재한다

 

   네이버 웹툰 중 배진수 작가의 '금요일'이 생각나던 작품이었다. 사실 가장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기는 작품이기도 했다.

   아직 젊은 나이에 말기암 선고를 받고 모든 희망을 잃은 한 남자 앞에 한산한 도로 옆에 좌판을 차린 노점상이 눈에 들어온다. 연장(extension)을 판다는 노점상을 정신병자 취급하던 남자는, 그의 생명을 연장해줄 수 있다는 말에 장난처럼 응한다. 당신 몸 속의 그 덩어리는 그냥 없애는 게 아니라고,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옮겨주게 되어 있다고 설명하며 싫어하는 사람을 말해보라는 노점상에게 남자는 가장 친한 친구의 이름을 댄다. 늘 자신보다 잘났던, 그래서 끊임없이 열등감을 안겨주었던 친구의 이름을. 그 일이 있고 남자의 암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행복한 가정에 부유한 사업을 운영하던 남자의 친구는 연속된 불행으로 점차 모든 것을 잃어간다. 그의 아내는 암으로 죽고, 딸은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뒤 아이마저 사산하고, 첫째 아들은 심장마비로 영구적인 정신지체를 얻고, 막내아들은 아내를 폭행하여 감옥에 갇힌다. 회계사의 횡령으로 회사는 부도가 나고, 친구는 아이들에게 보험금이라도 남겨주기 위해 사고로 위장한 자살을 택할 생각을 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이 거래의 대가는 매년 연 수입의 15%를 주는 것이었다. 남자는 기꺼이 그 돈을 보낸다. 그러나 진짜 대가는 친구의 인생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고작 암이 낫는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한 집안의 끔찍한 불행. 남자는 처음 거래를 할 때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게 이런건가? 하고 농담조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친구의 거듭된 불행에 속으로 즐거워하며 더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남자는, 이미 악마 그 자체가 되어버린 듯하다. 이미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거래는 늘 공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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