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더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스타터스'의 후속작인 '엔더스'. 전작을 읽지 않은 나에게는 초반 줄거리와 인물들, 그리고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했다. 아마 '스타터스'부터 읽어온 독자라면 보다 쉽고 빠르게 책에 빠져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엔더스'부터 읽은 것의 장점은, 작은 설정 하나하나가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는 점이었다. 나이대에 따른 스타터, 미들, 엔더의 계층 구분, 포자로 대표되는 새로운 생화학 무기에 의한 이른 바 전쟁 후의 몰락한 사회, 그 디스토피아에서 태동하는 신기술들. 권력을 쥔 엔더들이 칩을 이용하여 젊은 스타터의  몸을 대여한다는 건 정말로 새로운 발상이었다. 노인이 젊은 육체를 꿈꾼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박범신의 '은교'에서 화제가 된 후 다소 익숙해졌지만, 그 욕망을 실제로 실현하는 건 새로운 차원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용당하고 계속해서 사회 하위계층으로 밀려난 스타터들이 개혁을 꿈꾼다는 건, 다소 뻔하지만 설득력 있는 전개였다.

   주인공 캘리는 동생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신체 대여에 참여한다. 그러나 엔더에게 몸을 대여한 동안 자신의 의식이 온전히 사라지는 다른 스타터들과 달리, 캘리는 엔더에게 몸을 내준 상태에서도 자신의 의식이 유지되며 한 몸 안에서 공존한다. 동시에 그녀의 칩은 유일하게 살인이 가능한 칩이기도 하다. 즉, 엔더에게 신체를 대여하면 어떤 행동이든 가능하지만 살인만큼은 제한되는 다른 스타터들과 달리, 캘리를 대여한 엔더는 그녀의 몸으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칩은 유일한 것이 되고, 그녀는 악의 중심인 '올드맨'에게 쫓기는 몸이 된다. 그리고 보통의 일상을 되찾기 위해 캘리 역시 그에 맞선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친구들, 새로 밝혀지는 진실들, 그리고 조금씩 찾아오는 변화가 소설의 골자를 이룬다.

   '엔더스'는 탄탄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내가 경험하는 사회와 전혀 다른 모습의 세계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동시에 '엔더스'의 디스토피아는 우리 사회의 갈등을 반영하고 있어 현실을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고령화 사회로 치닫는 현재, 우리에게도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게 된 '엔더'들이 사회의 모든 권력을 쥐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부모보다는 조부모를 보호자로 둔 것이 더 우월한 조건으로 생각되는 날이 올지도. 그 날에, 아마 '엔더스'가 생각나지 않을까.


우리는 늘 누군가를 이기고 생존한다

 

   '엔더스'에서 가장 참신한 설정은 기존 소설에서 늘 약자로 분류되었던 노인층을 기득권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끔찍한 포자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백신을 투여받을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약자 계층이었고, 그렇기에 오히려 가장 강했던 중장년층, 즉 미들보다 많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상상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지. 그렇게 살아남은 엔더들은 신체를 단련하고, 권력을 탐하고, 재산을 축적하고, 스스로를 가꾸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견고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간다. 그러나 그들은 젊고 강한 스타터들이, 그리고 살아남은 일부 미들이 두렵다. 그렇기에 권력으로 그들을 압도한다. 보호자가 없는 스타터들은 감옥에 가까원 보호소에 보내지고, 그 곳에서 기본적인 생활 여건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비참하게 살아가고 또 죽임을 당한다. 그 상황에서 일부 스타터들은 자신의 몸을 대여해주기 위해 내놓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엔더스'의 세계는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사회적 틀을 뒤집어 엎었음에도 결코 유토피아가 되지 못한다. 결국 누군가는 또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 행복을 취한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없다.


그래도 희망을 본다

 

   작가 리스 프라이스는 책의 첫 장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엔더, 진에게 바칩니다'라고 쓴다. 주인공 캘리는 수많은 엔더들과 싸우고 그들에게 핍박당하며 괴로운 시간을 보내지만, 이후 그녀의 후견인을 자처하며 그녀의 가족을 지켜주는 사람 역시 엔더인 로렌이다. 그녀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하이든의 충직한 보디가드인 어니는 미들이고, 하이든의 연구실에서 함께 올드맨을 막기 위해 연구에 몰두하는 레드먼드는 엔더이다. 비록 나이로 구분되는 계층간의 갈등을 다룬 작품이지만, 이 작품에서 캘리의 친구들은 결코 스타터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녀가 만난 좋은 사람 중에는 엔더도 있고 미들도 있다. 또한 그녀를 이용하고 착취하는 사람 중에는 역시 스타터 역시 몇 명 포함되어 있다. 도슨은 캘리와 하이든, 마이클을 가두고 끔찍하게 다루지만 결국 브로크만을 무찌른 이후에는 그녀의 동료가 된다. '엔더스'에는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은 모두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그 관계 속에서 누군가 나에게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데에는 수없이 많은 요소들이 관여한다. 그 사람이 엔더인지 스타터인지는 그 중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이 이야기의 끝에서 친구와 적을 나누는 기준은 나이도, 사회적 지위도 아닌 관계에 있다. 그리고 관계는 변한다.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그게 이 이야기의 희망이다.


written by. 가비

 * 황금가지의 '엔더스'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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