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워크북 - 육아 궁금증을 해결하고 아이 개성을 발견하는 체크리스트 가득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프란스 X. 프로에이 지음, 유영미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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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발달심리학자가 들려주는 육아 이야기


프란스 X. 프로에이의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는 이미 엄마들 사이에서는 소문난 베스트셀러다. 아이의 발달단계에 따라 전문적이면서도 부모의 눈높이에 맞는 조언을 해주는 뛰어난 육아 지침서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출간된 워크북은 그 동안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를 읽으며 아이를 키웠던 엄마들이 가장 많이 품었던 의문들과 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담았다. 나아가 '글로 배운 육아'에서 끝나지 않도록 책 하나만으로 곧바로 응용하여 내 아이의 발달을 체크하고 기록할 수 있는 육아일기 기능까지 하나로 엮었다. 이 책이 산후조리원 선물로도 각광받는 이유다.

이런 게 궁금해요

자라는 아기는 너무도 신비로운 존재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흡수하여 점차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간다. 그렇게 부모는 매일 아기의 눈을 들여다보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그러나 아기와 함께하는 하루가 매일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육아는 리셋 버튼이 없는 게임이고, 그렇기에 어느 순간 모든 게 막막해지기도 한다. 결정의 순간, 내 작은 실수가 아이의 일생을 망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 때로 부모의 마음은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럴 때, 부모에게도 선생님이 필요하다. 답이 없는 것 같은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내놓아줄 수 있는 선생님 말이다.
질문의 종류는 다양하다. '이유식은 언제쯤 시작할까?', '각 월령에 맞는 놀이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같은 육아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는 실용적인 질문부터 '엄마로서 때때로 화나는 것이 정상적일까?' 같은, 대부분의 엄마들이 스스로에게 던지지만 차마 누구에게도 의논하지 못했던 의문들까지. 더불어 '아기들도 악몽을 꿀까?' 같은, 부모가 아니라도 누구나 한번쯤 궁금해할 만한 것들도 있다. 이 책은 그런 질문들에 친절히 답을 해준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궁금한 게 생겼을 때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도록, 그렇게 꼼꼼한 답을 잘 분류하여 책에 담아두었다. 그게 바로 육아지침서의 진정한 기능이니까 말이다.

쉽게 쓰는 육아일기

육아일기는 일종의 로망이다. 내 아이의 하루하루를 소중히 기록하여 언젠가 훌쩍 커버려 그 지난날을 기억 못할 아이에게 물려주는 것,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예쁜 시간들을 담아두는 것, 부모로서의 경험을 오롯이 기록하는 것. 그러나 막상 부모가 되어보면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시간마다 우유 먹이고 기저귀 갈고 재우고 어르고 달래느라 24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겠는데, 그 와중에 기록까지 남기는 건 어떨 때는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시중에 그토록 많은, 깔끔하게 정형화된 육아일기장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육아일기를 쓰고 싶은데 혼자 시작하기에는 막막한 모든 엄마 아빠들을 위해서.
이 책 역시 그 점에 착안한다. 그래서 아이의 발달단계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육아를 하기 위해 책을 펼치는 부모들이 별다른 번거로움 없이 바로 자기 아이에 관한 내용을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두고 있다. 아이가 몇개월에 어떤 발달단계를 완수했는지 체크하는 것부터 아이의 모습을 실제 사진으로 기록하여 붙이는 것까지, 책의 지침대로 아이의 성장을 기록하다 보면 어느새 훌륭한 육아일기가 완성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는 전세계 15개국에 번역되어 100만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언어도 문화도 관습도 모두 다르지만 육아의 고민은 어딜 가나 똑같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이 책은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잔잔한 응원을 보낸다. 당신만 힘든 게 아니라고,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위대한 일이라고, 지금 당신의 품에서 자라는 건 또 하나의 세계라고. 그리고 가장 어려운 순간을 위해, 우리가 여기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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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럴센스 1 - 남들과는 '아주 조금' 다른 그와 그녀의 로맨스!
겨울 지음 / 북폴리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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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정지후


반듯한 겉모습도, 깔끔한 일처리도 무엇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모범사원 정지후에게는 비밀이 있다. 바로 그의 성적 취향. 지후는 명령을 받거나 지배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매저키스트이다.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가던 그가 처음으로 큰 맘 먹고 구입한 SM 도구, 사람에게 채울 수 있는 개목걸이. 그런데 집에서 받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회사로 주문한 택배가 택배기사의 사고로 동료인 정지우의 손에 들어가면서, 그는 처음으로 취향을 들켜버리고 만다.


S, 정지우


차갑고 도회적인 겉모습, 늘 무표정하고 시크한 태도. 정지우는 겉보기에는 전형적인 차도녀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저 언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늘 타이밍을 놓치고 마는 소심쟁이에 불과하다. 그런 그녀에게 같은 회사의 정지후는 우상이자 완벽한 이상형이고 가슴 속에만 담아둔 짝사랑이다. 그리고 어느 날, 택배 하나로 원치 않게 그 짝사랑의 치명적인 비밀을 알아버렸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그렇게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로 접점이 없었던, 그래서 서로를 멀찍이서 바라보며 각자 상대방에 대한 자기만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던 그들은 점차 서로를 알아가고, 진실한 모습의 서로에게 좀 더 다가서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그들 사이에 희미하게 존재하던 감정 역시 좀 더 진실되게 만든다.

누군가의 명령을 받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는 지후의 모습은, 어쩌면 지우가 짝사랑 속에서 그려왔던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지후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될 때 지우의 감정 역시 올곧게 홀로 서게 된다. 그 이전에 존재했던, 혼자 삭이던 마음은 어쩌면 정지후라는 사람이 아닌 정지후라는 사람에 대한 환상을 바라보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지우를 보는 지후의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차갑고 도도한 이미지의 지우는 지후가 꿈꿀 수 있는 완벽한 S였다. 그러나 정작 직접 만나 부딪히며 알게 된 정지우라는 여자는 한없이 소심하고 여리며 착하다. 차갑게 명령을 내리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렇게 지우 역시 지후의 이상형에서 벗어나고 말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제대로 설 수 있게 된다.


유쾌하고 편안한 SM 이야기


웹툰 원작의 이 만화는 분명 로맨틱 코미디이고 오피스물이지만, 동시에 SM물이기도 하다. SM은 분명 마이너한 성적 취향이고, 어찌 보면 거부감을 줄 수도 있는 소재일 터. 그러나 작가는 주제를 지나치게 무겁지도, 지나치게 자극적이지도 않게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이야기에 녹여내며 이 'SM 만화'를 누구나 마음 편히 볼 수 있고 쉽게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줄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

이는 단순히 지후와 지우의 관계가 생각보다 건전하게 그려져서만은 아니다. '모럴센스' 전반에는 SM 역시 하나의 취향일 뿐, 누군가를 평가하고 비판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깔려있다. 그렇기에 작품의 제목인 '모럴센스'는 되려 누가 어떤 자격으로 다른 사람의 도덕성을 평가할 수 있냐고 독자 스스로 자문하게 만든다. 지후는 지배받는 걸 좋아한다. 자기 목 사이즈에 맞는 개목걸이를 주문하고 그 목걸이가 도착하기를 설레며 기다린다. 그런데 그게 뭐가 어쨌다는 말인가. 지후의 그 취향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SM이 생소할 수 있는 주제인 만큼 작품 곳곳에서 관련 용어에 대한 간단한 소개 역시 만나볼 수 있다. 이 역시 작가의 소소한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또한 SM을 그저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자극적 형태로만 보여주고자 하는 게 아니라, 디테일하고 섬세한 누군가의 '취향'으로 내보이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기도 하다.

이 만화를 보고 나서 SM에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다. 나는 누군가를 지배하고 싶지도, 누군가에게 지배 당하고 싶지도 않다는 마음 역시 변함이 없다. 그러나 '모럴센스' 덕분에 SM을 멀고 낯선 것에서 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를 친숙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그리고 내 주변에도 몰래 택배를 시키며 자기 취향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당신의 취향은 무척 멋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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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션 일레븐 스토리콜렉터 45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한정아 옮김 / 북로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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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모니터링을 위해 도착한 가제본을 받아들었을 때, 우주에 관한 SF물일거라고 추측했던 기억이 난다. 언뜻 미래소설이라는 설명을 봤었는데, 제목이 이러니 아마 스테이션 일레븐은 우주정거장이나 새롭게 마련된 우주거주공간을 뜻할 거라고 짐작했었다. 아주 틀린 추측은 아니었다. 실제 작품의 제목인 '스테이션 일레븐'은 우주와 관련이 있으니까 말이다.


'세기말을 그린 소설 중 이토록 아름다운 소설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우주 이야기를 기대하며 책을 펼쳤는데 첫장면이 무대 위 리어왕 공연이어서 당황했고, 공연 이야기인가 하는데 갑자기 주연배우가 쓰러져 숨을 거두면서 자세를 다시 잡고 읽기 시작했는데, 살인사건 얘기구나! 하는 순간 갑자기 스페인 독감에 비견할 전염병이 지구를 휩쓸었다. 그 모든 게 첫 50페이지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서,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책의 전개속도에 내가 밀려 잠깐 머릿속을 정리해야 했다.

그러니까 이건 저 추천사처럼 세기말을 그린 소설이다. 전염병이 지구를 휩쓴 이유, 황폐해진 땅에서 살아가는 생존자들의 이야기. 문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그래도 생존 이상의 무언가를 추구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고군분투. 그 몸부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랑악단을 통해 다시 묻는 인간 존재의 의미.

전염병 이전의 세상, 그러니까 지금의 우리가 아는 것 같은 세상에는 선택지가 많았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철학적인 영역의 것이었고 깊은 사유를 동반했다. 삶의 의미, 라는 것에 대해 떠올리면 끝도 없이 많은 것들이 생각났다. 끝도 없이 많은 것들이 가능했다.

전염병 이후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음식이 귀하고 물이 귀한 세상, 백골 시신이 누워있는 안방 옷장에서 옷을 끄집어내어 꿰어입어야 하는 세상, 그 와중에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아 독재와 폭정과 광신이 혼재한 세상. 그 곳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물으면 돌아오는 가장 간단한 답은 생존이다.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 지랄맞은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스위치 하나 누르면 전구라는 게 켜지던 시절이 있었음을 어렴풋이 떠올리면서, 때로는 이것을 기억하는 게 더 괴로운 일은 아닐까 곰곰히 생각하면서 오늘도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것. 살해당하지도, 강간당하지도, 팔려가지도, 매를 맞지도 않은 채 다음날을 맞이하는 것. 그런 게 살아가는 의미가 되는 세상에서, 커스틴은 여전히 문명의 조각들을 모으며 살아간다. 소중한 스크랩을 품에 안고 시신이 된 낯선 이들의 눈을 감겨준다. 그리고 무대에 선다. 햄릿을, 한여름밤의 꿈을, 리어왕을 연기한다.


'내가 오랫동안 기억할, 그리고 끊임없이 되돌아갈 책'


이 책의 가장 첫장면, 리어왕을 연기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한 할리우드 배우 아서 리앤더의 전처인 미란다는 그래픽노블을 그린다. 어쩌면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지도 모르는 책이지만, 그 책을 완성하는 것이 그녀의 삶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릴적부터 늘 마음 속에 있던 이야기, 너무 선명하게 알고 있어서 오히려 그리기 어려운 이야기를 그녀는 마침내 책으로 세상에 내보인다. 그 책을, 세번째 아내를 만나며 미란다를 버린 아서가 아역배우이던 커스틴에게 선물한다. 그렇게 '스테이션 일레븐'은 전염병 이전의 세상과 이후의 세상, 아서와 미란다, 그리고 커스틴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소설의 현재는 분명 종말 후의 세상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끊임없이 뒤로 돌아가 종말 이전의 세상을 비춘다. 화려했던 할리우드를, 한때 파파라치였던 남자와 화려한 삶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던 여자의 짧은 만남을, 종말 전 마지막 날의 사투를. 그렇게 묻는다. 어떤 것에 의미가 있냐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살고 있었냐고.

'예언자'에게 극단의 어린 여자아이를 넘겨주는 걸 거부한 유랑악단은 결국 쫓기는 신세가 되고,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흩어진 상태로 점차 한때 공항이었던 '문명 박물관'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그들과 어떤 기억을 공유했던 사람들, 그리고 이제 모든 문명이 잠든 이 곳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함께 망원경으로 전기가 들어오는 마을을 바라보며 커스틴과 지반의 모습은 또렷하게 유랑악단의 마차 뒤에 써있던 메시지와 겹친다.


'생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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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새겨진 소녀 스토리콜렉터 44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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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가 달린다. 가시덤불에 걸려 살갗이 찢어지면 비명을 지르면서도, 맨발이 아파 힘겨워하면서도 쉼없이 달린다. 멀리 집 한 채가, 그 집을 막 떠나려는 차 한 대가 보인다. 저 차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여자아이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른다. 차가 그냥 떠나는 것 같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그러나 아이가 바닥에 널부러지는 순간, 속도를 올리던 차가 멈춰서고 노부인이 내려서 뛰어온다. 아이를 안아들고 황급히 남편을 부른다. 그리고 아이의 등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이의 등에는 지옥이 새겨져 있다. 지옥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그런 고통을 동반했을 문신들이다.


또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또다른 곳에서는 한 여자가 비를 쫄딱 맞은 채 차를 운전한다. 오늘은 영 일진이 좋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는 기쁨이 깃들어 있다. 내내 일하고 싶던 곳에서 드디어 기회를 얻었다. 그 곳에는 여전히 식지 않은 감정이 남아있는 옛 애인이 있다. 그녀가 향하는 곳에는 어떠한 가능성, 어떠한 희망이 있는 것만 같다. 드디어 도착한 새 직장은 생각만큼 친절하지 않다. 그러나 그 사실은 그녀에게 그닥 중요하지 않다. 그녀의 마음을 무너뜨린 건 다름아닌 옛 애인의 입원 소식이다. 모두가 쉬쉬하는, 자세히 말해줄 수 없다고만 얼버무리는 어떠한 이유로 중태에 빠졌다는 그 남자의 이야기가 그녀를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한다.


결국 그것은 같은 이야기


넬레 노이하우스를 필두로 한국에 연이어 소개된 독일 크리미(범죄물)의 특징은, 서로 전혀 다른 곳에서 전개되는 것 같던 이야기들이 결국 어느 지점에서 서로 맞물려 하나가 된다는 데에 있다. 납치되었다가 1년만에 의문의 문신과 함께 다시 나타난 클라라, 연방범죄수사국에서 호흡을 맞추게 된 마르틴 슈나이더와 자비네 네메즈, 자비네의 옛 애인인 에릭, 그리고 클라라를 면담하게 된 검사 멜라니 디츠. 소설 초반 다양한 인물의 등장이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점차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면 그들이 각자 가고자 하는 길이 서로 교차하고 엉키며 하나의 진실로 향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게 독일 크리미의 매력이다. 엉망이 된 실타래처럼 보이던 어느 순간 뜻밖의 진실이 튀어나오는 것. 그렇게 끝을 알고 나면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것. 어느 날 숲속에서 나타난, 말을 하지 못하는 의문의 소녀를 통해 안드레아스 그루버는 또다시 한국의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깊숙이 끌어당긴다.


진실은 어디에


등에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을 묘사한 문신을 새긴 채 나타난 클라라. 그 이후 클라라가 발견된 빈 외곽의 숲에서 연이어 발견되는 등의 피부가 벗겨진 채 살해된 소녀들의 주검. 한편 뮌헨에서 독일 전역에 걸쳐 발생한 살인사건들이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임을 직감하고 수사를 시작하는 슈나이더와 자비네. 사건의 행적은 또다른 사건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모든 것이 연결되었을 때 23명의 피해자가 관련된 어마어마한 사건이 실체를 드러낸다. 그 너머의 진실을 보는 것은, 이제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창고 화재로 '지옥이 새겨진 소녀' 1쇄본이 대부분 불에 타서 사라졌다고 한다. 아픔을 겪은 책인 만큼 결과는 더 좋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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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하이든
사샤 아랑고 지음, 김진아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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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 그의 책은 전세계의 언어로 번역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힌다. 가히 천재적인 소설가라 할 만하다. 그 남자에게는 어떤 매력이 있다. 잘생긴 외모에 달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어떤 의미있는 존재로 여기게 하는 분위기. 한때 그는 그 매력으로 여자들을 등쳐 먹으며 하루하루를 근근히 이어갔다. 그 매력으로 처음 마르타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고, 어찌 보면 그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도 자수성가한 인생이다.
한 여자가 있다. 진짜 천재는 이쪽이다. 그녀가 매일 밤 타자기로 찍어내는 이야기 속에는 사람을 매혹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녀의 삶에는 존재하지 않는 매력이 그 안에 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 매력을 세상과 공유할 마음이 전혀 없다. 그녀에게 글은 흘러나오는 것이다. 흘러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매일 밤 타자기 앞에 앉아 종이에 옮겨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옮겨진 글은 그녀에게 어떠한 가치도 지니지 않는다. 지하실에서 천천히 썩어갈 뿐이다.
그 남자와 그 여자, 헨리와 마르타가 만났다. 두 사람의 이해관계는 깔끔하게 맞아 떨어졌다. 아내의 글을 가로채 자기가 쓴 것처럼 출판하는 남편이라니, 세상에 둘도 없는 개자식 같지만 사실상 그건 마르타가 원한 일이기도 하다. 마르타의 글로 헨리가 유명작가가 되어 돈방석에 앉는 건, 적어도 둘 사이에서는 반칙이 아니다. 둘은 잘 맞는 팀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헨리가 그렇게 손에 얻은 돈과 명예로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니는 건, 심지어 그렇게 만난 여자가 헨리의 아이를 임신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거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 헨리가 보낸 마르타의 소설을 처음 발견한 사람, 이후 헨리의 충실한 편집자가 되어준 사람, 때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마르타보다 더 헨리의 아내같이 보이던 사람, 베티가 임신했다. 자신의 삶의 근간을 흔드는 그 사건 앞에서, 헨리는 별안간 살인충동을 느낀다.


선택이 사람을 말한다


헨리는 원래부터 그닥 고상한 인간은 아니었지만, 밑바닥 인생 중에서는 잔챙이에 속했다. 여자와 원나잇을 즐기고 자잘한 금품을 털어 달아나는 게 고작이었던, 남에게 피해를 주긴 해도 그 정도가 몇 마디 욕을 해주고 나면 될 정도에 그쳤던. 그러나 평생 다시 없을 행운으로 손에 넣은 화려한 삶을 잃게 되는 위기의 순간에서, 헨리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표면으로 떠오른다. 밑바닥보다 더 깊은 무언가. 보통의 사람들은 평생 들여다보지 않고 살아가는, 아주 깊고 어두운 것. 그렇게 헨리는 베티를 없애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헨리의 인생에 행운이란 마르타와의 만남이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절벽에서 베티의 차를 자신의 차로 밀어 떨어뜨린 후 집에 돌아온 헨리는 얼마 후 초인종을 누르는 손님의 모습에 기겁한다. 거기에 바로 베티가 서 있다. 그리고 베티가 전하는 진실은 헨리를 얼어붙게 만든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마르타가 베티를 찾아갔다는 것. 베티의 차를 몰고 절벽으로 갔다는 것. 그렇다면 지금 차와 함께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된 건 베티가 아닌 마르타다. 그리고 그것은, 헨리에게 더 이상의 소설이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 헨리는 생각해야 한다. 그의 지금을 만드는 아주 큰 거짓말이 부서져 내리지 않도록, 영리하게 굴어야 한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진실은 자꾸만 수면 아래에서 찰랑인다. 그리고 헨리는 초조해진다. 초조함은 또다시 헨리의 내면 깊은 곳의 무언가를 건드린다.

헨리 하이든의 가장 큰 장점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결코 스스로를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거짓말이 불러온 파멸, 그 끝에서 그는 과연 어디에 서있을지.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는 어떤 심연을 들여다보게 될지. 단순한 스릴러를 뛰어넘어 인간의 본성을 자문하게 하는 소설, '미스터 하이든'을 만나볼 시간이다.

썩어가는구나.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안에서부터 밖으로 썩어가고 있어. 그래, 난 썩을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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