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주말 대*동사무소 환*연 도서바자회가 있었습니다. 참* 일로 만날 일도 있고해서 들렀는데 수중에 돈도 없고, 은행도 찾고자니 그렇고해서 *국장에게 빌었는데.... 품절인 이면우 <저석양>, 호서문화사, 윤중호 시집을 단돈 1000냥에 구하는 횡재를 했네요. 로또만큼의 뿌듯함은 아니지만 괜찮은 맘의 수입인 셈입니다. 아이들 책도 몇권 사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월요일은 대학생 자원활동 학생들의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꼼꼼한 준비와 발표에 무척이나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학생들의 지식과 노력이 섞일 수 있다는 것 모두 좋은 경험이 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말미 수고의 여운이 조금 길어졌고, 할 이야기도 있곤해서 참*일꾼들과 시간을 잡아당기려 애를썼습니다.
2.
이야기를 나누며 몇달간 말의 여운을 쫓다보니, '신뢰'가 과연 있는가? '믿음'이 남아있는가? 서로를 안을 수 있을까? 계파만 있고 일은 소멸되고, 손가락은 상대를 가르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연 자성의 목소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의아심이 점점 진해지는 것은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활인이 한나라당을 찍고, 친구들이, 식구들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음에 대한 예민한 촉수는 없어진 듯 하고, 그 불감증은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남탓에 너무 익숙해있는 조짐, 소식들이 번번히 들려 괴롭더군요. 그래서 가까운 지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우리를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을 믿느냐고? 서로 잘하는 구석들은 없느냐고?
매도해도 되지 않겠지만, 일을 하기에 앞서 어떤 계보인지부터 확인하거나, 정세를 문건이 없으면 알 수 없는 수준이거나 한 상태는 아닐까? 그런 처지에서 무슨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당을 쪼개라' '주고 나와라' '해산해라' 라는 발언들까지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을 볼 때, 제대로 일들을 해나갈 수 있을까? 지금까지 온 2년과 앞으로 2년은 대동소이한 것은 아닐까?하는 헛생각만 들게 되더군요.
'신뢰 불감증'이라고 할까요? 우리라는 것이 함께 포옹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닐까요? 장점은 보려하지 않고 단점을 보고 증폭시키는 것이 문화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유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수준을 바닥이라고 여기는 것이 차라리 편한 것은 아닐까요?
자신의 거울만 보고 왜 그렇게 못생겼느냐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요? 과연 우리가 (나-너)로 보듬어 밖으로 보려는 시선은 있는 것일까요? <피해의식>의 역사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당사자들이 풀지않는 이상 누구도 그것을 해줄 수 없을 것 같더군요.
3.
서로를 안을 수 있을까요? 두 팔을 벌려 상대방을 믿고 뒤로 넘어질 수 있을까요? 믿음과 신뢰가 실종된 상태에선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믿는 것도 걷는 것처럼 달리는 것처럼 연습을 하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는 그런 것은 아닐까요? 아직도 예전엔 어땠는데, 옛날엔 뭐했는데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활동하지 않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떠벌이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요? 활동엔 끊임없는 지금이 소중할 뿐인 것은 아닌가요?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지난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혼자 살 수 없고 붙어 살 수밖에 없음의 뺄셈을 하더라고 손해봐야 그대로니 한번 연습해볼 일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