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씨앗-세상을 바꾸는 또 다른 방법들

자유 - 저는 '자유' 그 자체만을 떼어서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다소 거부감이 있습니다. 그건 마치 남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내를 언급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이런 차원에서 자유란 안전보장이라는 개념과 결혼한 용어라 할 수 있습니다....자유없는 '안전보장'이란 노예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안전보장 없는 '자유'란 혼란이자 불확실성이며, 계속되는 두려움과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자유와 안전 사이의 관계를 선형적인 발전 과정이 아니라, '진자운동'과 같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방식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48-49


문명화 - 문명화란 자유와 안전보장의 상호교환이라고 프로이트는 말합겁니다. 그가 지적하는 문제는 역사적으로 볼 때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안전보장을 얻는 대가로 너무나 큰 자유를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심리학적으로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을 양산한 '불확실성'에 연유하는 겁니다...현대 세계는 불안정한 안전보장, 불확실한 확실성, 불안전한 안전을 특징으로 합니다. 52-53


부수적인 피해 - 사적인 영역을 전면적으로 노출해야 한다는 요구가 극심해졌습니다. 이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공적인'장이 이제는 '사적인' 영역까지도 파고들어 이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오늘날 프라이버시의 위기라는 것은 비단 사적 영역의 침범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의 파괴까지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유'라는 권리의 침범이자, 약간의 안전을 얻기 위한 대가로 인간의 근본 존엄을 지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63


사회성의 상실 - 지금 우리의 아고라는 소위 '고해성사의 장'이 되어버렸습니다...정치적인 의제나 정책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유명인사에 대한 사적인 관심 격으로 사람들에게 회자될 것입니다. 정책의 문제란 옳고 그름, 정의와 부정의의 문제인 반면, 사적 대화란 진실 혹은 거짓, 도덕적인가 부패했는가, 진정성이 있는지 아니면 속임수가 있는지 등을 따져 묻습니다. ...사적 공간과 공적 영역을 잇는 이 다리가 없다면 공동의 대의는 목적지를 잃은 풍선처럼 떠다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이 갖는 고통과 문제 상황은 사회적 문제로 수렴되지 못한 채 고립될 것입니다. 64-65


방황하는 개인들의 사회 - 법률상 개인으로서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느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당신에게 기회는 주어졌고, 그 기회를 사용하지 못했다면 이것은 애석하게도 당신의 잘못입니다....하지만 진정한 개인, 즉 실질적 개인이 되기 위해서 모든 인간은 자원을 필요로 합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든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든 당신은 적절한 수단과 방법이 필요합니다. 지나치게 오랫동안 무직 상태로 있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나 자신의 능력에 걸맞은 직업을 갖는 것 등도 이에 포함됩니다. 이것은 당신이 어떤 도시나 지역공동체 등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것도 해당됩니다. 67-68


표류하는 잉여인간 쓰레기들 - 프랑스의 정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루이 쇼벨이 르몽드에 쓴 칼럼의 제목 배제된 청년들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여기서 쇼벨은 프랑스 대학생들에게서 "분노를 넘어선 증오"를 이미 몇 년 전부터 감지했다고 말합니다. 74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지극히 개인적이고 향락적인 개별 소비자들이 단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은 아닐까요? '프로레타리아'나 '중산층'이라는 용어는 이미 유효기간이 끝난 용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울리히 벡은 이것들을 이미 "좀비가 된 용어들"이라고 규정할 겁니다. 가이 스탠딩 교수는 이러한 개념들을 '프레카리아트'라는 용어로 대체했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제가 양산한 최대의 결과 중 하나가 '중산층의 프레카리아트로의 전락'이니까 말입니다....이런 고통들은 합쳐지지 않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분화하고 갈라놓습니다. 그들은 서로 비슷한 운명이라는 것을 부인합니다. 연대를 요청하는 건 터무니없는 일로 치부합니다...개인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사회적 보장의 부재에는  필연적으로 치욕과 자기 경멸이 뒤따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종래의 프롤레타리아를 투쟁하는 계층으로 전환하는 데는 엄청난 힘이 필요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프레카리아트들은 원자화되었고, 세대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투쟁 주체의 탄생은 점점 더 불가능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84-87


도덕적 신경안정제 - 소비주의 시장경제는 도덕의 영역을 식민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습니까? 이 물건을 사세요."라는 광고들을 따라 소비주의적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아버지나 좋은 남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느낌이지요. 그러니 선물은 도덕적 죄의식을 경감시켜주는 신경 안정제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겁니다. 그거나 이것은 아주 위험한 현상입니다....고통이 없었으니까 병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치료하기에 너무 늦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시장을 통해 제공되는 도덕적 신경 안저제는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이러한 신경 안정제는 여러분이 가족, 이웃, 배우자 등과의 관계에서 무엇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끔 만든다는 점에서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인간 유대의 연약화'라고 부르는 사회 현상의 주된 원인입니다. 90-93


허약한 윤리, 무력한 주체, 무한한 타자  - 레비나스는 도덕적 자아의 탄생과 행동 양식을 '두 명의 도덕적 당사자'라는 개념에 기반하여 설명합니다. 나와 타자의 원초적인 대면이 그 출발점이며,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서도 나에게 도덕적이기를 요구하는 ' 타자의 얼굴'과의 조우가 도덕의 탄생지라는 것입니다.(내가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그것을 하도록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 '좋은 정치', 혹은 제 역할과 임무에 충실한 '정치'란 도덕적 경험의 원초적 장면 속에서 자신의 기원을 인식하면서, 동시에 사회 정의를 향한 추구를 제 목적과 존재 이유로 삼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2인 사이의 도덕적 책임을 무한히 지면서, 제3지대로의 초월을 감행하는 형태 말입니다. 95-98


행복들 하십니까 - 괴테는 자신의 시에서 "화창한 날이 계속되는 것만큼 견디기 어려운 것은 없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행복한 나날이 연속으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금세 지루해지고, 짜증이 절로 나며 절망에 빠질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괴롭히는 환상이고,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제가 '삶의 기술'이라고 부른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될 겁니다.  101 행복이란 이성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상상력의 이데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약 삶을 살고자 선택했다면, 당신은 앞으로의 삶에서 맞닥뜨리게 될 어려움들을 감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들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정확한 길입니다. 102-103 저는 이전보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엄밀히 말해 행복을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삶의 공허함과 의미없음을 피하기 위한 방안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이것이 바로 불행이 우리 삶에서 갖는 가장 고결하고 위대한 지점입니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 의미없음입니다. 104


권력과 정치의 결별 - 현재 우리에게는 '정치에 의해 규제되지 않는 권력'과 '권력을 빼앗긴 정치'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둘을 다시금 결합시키는 일입니다.  111


포스트 베스트팔렌 시대 - 20세기 30년 동안 참혹한 세계 전쟁이 끝나고 생긴 것이 '유엔헌장'입니다. 제2조 4항을 보면 다른 국가의 영토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한 그 어떤 무력의 공격을 금지하고 있고, 제2조 7항을 보더라도 한 국가의 통치권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위급한 것이든 이에 대해 외부에서 개입할 여지를 분명히 제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국민국가와 정치, 국민경제 등등 상호의존성의 범위와 이에 대응해야 하는 기구들이 미치는 범위 사이의 간극은 이미 골이 깊습니다. 날이 갈수록 더욱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 간극을 메우거나 그 사이에 다리를 놓은 일이 우리의 '메타 도전'이 될 것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몰두하고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란 바로 이러한 난국을 헤쳐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현존하는 정치 기구가 이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가의 문제일 것입니다....이 모든 것들이 교황의 월권으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기독교 유럽의 군주들이 단행했던 투쟁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113-119


유럽 문명 - 유연성과 역동성의 측면에서는 단연 독보적입니다. 유럽 문명이라고 불리는 고유한 삶의 양식은 분명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미-존재-하는 것'에 대한 특유의 반감과 '아직-도래하지-않은 것'을 향하는 본능적인 기질, 그리고 그러한 반감과 불만을 행동과 실천으로 재구성하려는 본래적 저항 정신, 즉 경계를 뛰어넘는 초월 정신 등을 그 안에 가집니다....하버마스에 따르면, 민주적 법치 국가의 힘이란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를 통해 사회 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는 가능성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족 공동체는 정치 공동체에 선행하지 않습니다. 정치 공동체가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산물일 뿐입니다...유럽에게 주어진 과제는 칸트의 말을 빌리자면 "인류의 보편적 통합"과 "영구 평화"라는 소명을 달성하고자 희망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121-124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열려 있는 협동-리차드 세넷

 

 


새로운 대안, 변혁의 가능성 - 사람들은 '함께 있음'의 경험에 순식간에 중독된 것입니다. 바로 연대의 힘에 말입니다. 이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변화의 의미는 곧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겠죠. 이를 달성하는 데는 큰 노력이 들지 않았습니다. '혼자'를 뜻하는 이 고약한 단어에서 철자 하나를 바꾸어 '연대'로 변화를 꾀하는 정도의 노력 정도라고 할까요? 이 연대는 요구가 관철되는 그 순간까지 지속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연대는 특정한 대의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를 갖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나와 너와 광장에 있는 우리 모두가 목적을 갖는 것이고, 곧 삶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여름텐트 시위를 하는 이스라엘 여성) 137


군중이 불이다 - 이스라엘의 중산층 봉기의 슬로건인 '우리는 닿을 수 있는 미래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중산층과 중하류층의 사람들은 이제 그들의 이 '미래'가 결코 우리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고, 바로 이 사실을 자신들의 지도자에게 알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141


새로운 인텔리겐치아의 출현 - 막스 베버가 묘사했던 현대적이고, 합리적이며, 제도화된 자본주의적 구조가 형성되어 굳어버리기 전에, 특정한 사회적 요소들은 사전에 탄탄한 기반을 형성해야 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청렴하고 강직한 재판관, 정직한 상인, 사리사욕 없는 사회적 활동가,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수공업자 등이 사회를 먼저 구성해야만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조건들이 선행되지 않고 전근대적 자본주의의 구조를 그대로 물려받아 답습하게 된다면, 이러한 선결조건들을 만들거나 토대를 다지기는커녕, 이들을 없애버릴 수도 있으며, 또 이들의 부재를 메울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브로델의 이러한 논리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예가 바로 러시아의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148


인간 가능성의 실천 -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이와 함께 치욕 속에 있는 이들도 있다. 세상이 그 어떤 역경을 줄지라도, 나는 이 둘 모두에게 충실할 것이다." 알베르 까뮈의 신념이 담긴 이 선언이 공동선의 실천에 대한 답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넷의 말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열령 있는 협동"에 맡기면서... ..158


우리는 파국을 맞이해야만 파국이 왔다는 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 같다. 프란츠 카프카의 메시아처럼 지혜나 예견이라는 것은 결국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만 온다는 것이죠. 거듭해서 시도해보지 않는 한.  166


문예와 과학 사이 - 사회에 대한 탐구는 언제든 폄하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오직 인간 조건이 타락할 때에 동반되는 일이라는 것. 하지만 인간 조건이 추락하는 것을 불가능한 것으로 막아내는 바로 그 노력이 모든 사회학적 탐구의 본질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과학의 기준을 바탕으로 얻어진 진리란 실제로 그렇든 가정된 것이든 데카르트의 주체/객체 이분법의 적용가능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말해, 그러한 이분법이 적용되는 한에서만 유효한 것입니다. 그러니 객체, 즉 인간이 주체성을 상실한 상태의 '과학'에서만 유의미한 논쟁이라는 겁니다....존재론적이나 인식론적으로 배치되지 않는 실험자와 피실험자의 인간적 정체성이라는 지위가 또 존재하는 것입니다...사회과학이 '인간의 얼굴'을 잃는 한, 그것의 학문적 토대는 금세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167-176


액체근대 - 근대는 견고한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무시무시한 징후들과 어두운 전망으로 촉발되었습니다. 하지만 몇세기 후, 고체성과 액체성, 지속가능성과 변화가능성, 견고함과 유연함 등의 가치 우열은 뒤바뀌었습니다. 이러한 급격한 역전의 변화 속에서 이제 세상의 모든 가치와 체계는 설령 그것이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고 해도 전복되거나 뒤바뀌거나 폐기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인간의 유대는 쉽게 깨질 수 있게 되었고, 의무는 쉽게 저버릴 수 있는 것이 되었으며, 원칙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수 있는, 혹은 이 이상의 많은 것들이 유동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새로움을 찾아 영원히 멈추지 않는 사냥을 해야 하는 처지에 내던져진 것입니다. 191

 

볕뉘.

 

1. 마지막 꼭지를 읽어두었지만 남겨둔다.(나르시시즘, 사랑 외) 읽는 내내 깔끔한 기획과 준비, 인터뷰 항목의 깊이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그 사이를 루쉰이 절망으로 끌고 가며 세상을 부패하지 않게 했다면, 그 사이 희망주의자들이 제3의 지대를 만들고 채워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불행을 안은 행복, 절망을 감안한  희망은 동전의 양면이다.   

 

2. 리차드 세넷이 여러차례 인용된다. 먼댓글의 메모 흔적이 남아 있다. 이리 정신이 없다니...참고하시면 더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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