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과 말이 낳는 논리의 함정들
# 0.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란 실험을 했어도 정작 그 산 사이에 있는 민주주의를 실험해낸적이 없다. 다 살아있는 것 바깥의 정신나간 가치를 포획해내기 위해 삶을 다 죽여버렸고 죽이고 있다. 수십억이 죽어나가며 여성이란 이유로 수백년간 차별이 당연한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 숱한 학문도 진리도 삶을 한번도 구해낸 적이 없다.
# 2. 학문이란 학이란 울타리를 둔 것으로 학문간의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서로 소통을 하지 못하게 만든 것처럼, 모임과 모임사이도 유사한 것이 아닌가? 채우고 높이높이 키우려고만 할뿐 소통해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보면 운동이 고정된 가치만을 가져오려고 할 경우 아무것도 이룰 것이 없다. 운동은 삶을 가져와야하고 존재를 모셔와야하고 울타리와 울타리의 껍질을 벗는 아픔을 경험하지 않고 이룰 것이 없다.
나란 주제넘은 생각이 세상을 망쳐왔고, 인류는 좋은 삶과 사회의 관계에 있어 진도를 나가 본적이 별반 없다. 삶과 사회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논리도 상황에 따른 것이지 그 종합적이나 정연함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자유와 평등도 관계를 발라낸 나로만 생각을 출발시켜 온전하지 않다. 사회속에 관계를 전제로 하여 등식을 만든다면 그렇게 로망이나 진정한 자유주의자이며 평등을 추구하는 듯하지만 근거없는 논리가 되는 셈이다. 저 멀리 노예를 사람으로 본 묵자와 사람을 논리의 구조에 넣을때 무력해지는 연역,귀납의 논리가 허망해지는 것이다. 그것을 학문의 근거로 삼고 그것으로 사유하고, 그것으로 법체계를 만들고 국가를 만들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 괴물에게 세상을 맡기고 있다.
그래서 사람(너-나-너)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사람과 삶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것만 생각에 넣어도 지금까지 갈지자로 걸어온 길은 다시 걸어볼 수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느낄 수 있다. 자유라는 것도 나의 자유가 아니라 유적존재인 너에 비추거나 붙어있는 너-나의 관계, 그 관계맺음이나 결사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람과 삶 속에서, 그 맥락을 돋궈낼 때 얼마나 그 자유가 위태롭고 싸가지 없음인지 느낄 수 있다. 평등도 그러하며, 하물며 국가라는 괴물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국가론에 다시 망치를 들어야 될지도 모른다.
주체가 구심력과 응집력이 없으면 자본이 우리를 따 시키는 속도가 더 빠르기에 자본주의를 잡아낼 수 없다. 자본주의 잡아 싸려면 기껏 혁명이란 이름으로 몇번만 포획해낸 느슨한, 삶을 자양분으로 갖는 열린 주체가 있어야 한다. 가치만 포획해서 유통하는 무리가 아니라 서로 삶을 기대는 존재들이 들어서야 하는 것이다.
# 1. 민주화 20년에 과기운동이 관점을 바꾸어내지 않는 이상, 자본의 색깔이 물들여지는 지점에 대한 고민과 과학기술의 사회적사용이란 저류를 바꾸려 하지 않는 이상 활동은 매몰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국가과학기술위의 최근 논의처럼 대행 조직을 만들면 마치 잘 될 수 있는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힌다. 운동이 원점을 논의할 능력이나 토대를 잃어버리고 현실의 급급한 급류에 휘말려가는 일만 붙잡게 되는 것은 아닌가. 법제화를 하는 논의의 기본발상은 수도 서울처럼 집중의 집중을 고민할 뿐 분산의 분권을 고민하지 않는다. 기껏 정책이란 것이 책상머리에서 나오는 정책일 뿐이며 인류학자가 민속지를 연구하듯 실상을 알아내려는 노력조차 없다. 늘 기술의 자본에 사로잡혀 그것을 국가가 대행하는 것이 근본문제이며, 그 기술과 과학의 사회적 사용이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 연구원을 과학기술노동자로 이름을 붙이며 결속을 했듯이 지난 이십년이상의 시간은 관점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 3. 민주화 20년은 똑같이 자본화 20년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얼마나 미세하게 조정되며 국가가 정밀하게 물이 드는지 다시 보고, 또 다른 시각으로 다른 문제를 만들어야 된다. 학문처럼 자신의 관점을 넘어서 통채로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노조문제만, 과학문제만, 환경문제만, 여성문제만이 아니라 학문처럼 자신의 시야를 버릴 때만 자신의 문제가 보일 수 있다. 어떤 문제도 모임과 모임사이로 연결될 수 있으며 관점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울타리와 우물 밖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몸의 눈을 만들려고도 하지 않고, 시도도 하지 않는다.

뱀발. 참* 모임이 있었고 이른 시간에 뒤풀이를 시작한다. 1차가 끝날 무렵 친구가 이야기가 고프단다. 어려운 얘길 듣고 싶다고 지난 몇번의 만남을 먼저 정리해서 이야기 앞마당을 마련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고 개인사를 보태고 중간에 1차자리의 참*위원장 이야기를 보태어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