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점 1979-1996
미야자키 하야오 / 황의웅 / 대원씨아이 / 560쪽
(2014. 08. 22.)

 

 


  스스로 '자신이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작품'을 위해 '5밀리라도 1센티라도 좋으니 전진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낯설지 않다. 바로 몇 대를 이어가며 한 분야에 집중하는 일본의 장인의식이다. 이런 장인의식은 남을 의식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려 한다. 매일매일 똑같은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설명대로 5밀리라도, 1센티라도 전진하고 싶다는 생각이 바로 자기 자신과 싸우는 장인정신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은, 그리고 그의 삶은 일본식 장인의식의 철저한 반영이다.
(P.6)

 

 

  어린 시절이라는 것은 어른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일 때 밖에 맛볼 수 없는 것들을 맛보기 위해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5분의 체험은 어른의 1년 체험을 이겨요. 트라우마도 그때 생기는 거고요, 그 시기에 사회 전체가 어떻게 지혜를 짜서 아이들이 얼마나 무럭무럭 잘 자라 살아갈 수 있게 하느냐가 중요하죠.
  개성이니 뭐니 하는 말들을 하는데, 개성은 그 어린 시절의 체험에서 자라는 겁니다. 처음부터 개성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개성을 키운다는 둥 얘기를 하는데, 그런 걸 멈추고 어린이들을 어른의 감시하에서 한번 해방시켜 보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놀이터가 아니라도 놀 수 있어요.
(P.18)

 

 

  인간이 매일 경험하는 걸 종합해 자신 안에서 부풀려가는 능력은 훨씬 어렸을 적에, 그때 경험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몸에 익혀가는 겁니다.
  나무에 매달린 순간, '아 이거 부러질 것 가으니 위험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서 알게 된 건지 기억에 없죠. '여기를 밟으면 가라앉는다'거나 '여긴 질퍽거리니 밟지 않는 게좋다'는 것은 어느샌가 압니다. 그건 유아기에 많은 실제 상황을 만나며 실패도 하면서 기억한 겁니다. 그걸 최근엔 하지 않는 게 아닐까. 그런 판단을 만들어가는 구조도 아무래도 후천적으로 얻어가는 거라고, 경험으로 저는 생각하게 됐는데, 그걸 이 민족은 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P.25)

 

 

  나의 애니메이션관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신이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작품, 그것이 나의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의 세계는 넓다. TV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CD, 실험영화, 극장요 영화 등이 있다. 하지만 그 분야에서 내가 만들고 싶지 않은 작품은 제3자가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내게는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적인 입장에서의 애니메이션관이고, 만약 일이 되면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은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가운데 <미래소년 코난>은 나에게 '만들고 싶은 작품'이었고 기쁜 일이었다.
  요컨대 애니메이션은 만화잡지도 아동문학이나 실사영화도 아니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가공, 허구의 세계를 완성해서 그곳에 마음에 드는 등장인물을 집어넣어 하나의 드라마를 완성한다. 결론처럼 되었지만, 나에게 애니메이션이란 것은 그렇다.
(P.40)

 

 

  애니메이션의 세계는 '허구'의 세계지만, 그 중심에는 '리얼리즘'이 있어야 한다. 허구의 세계더라도 어떤 방법으로 진짜 세계를 만드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바꾸 말하면, 관객에게 '이런 세계도 있구나' 생각하게끔 하는 거짓말이다.
(P.44)

 

 

  여러 가지를 얘기했지만,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물으면, 그 작품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하는 것, 테마이다.
  이런 근본적인 것을 잘 알지 못해 때로는 기술이 선행되기도 한다. 기술 수준이 높아도 표현하고 싶은 것이 애매한 작품은 얼마든지 있다. 이런 작품을 보면 뭐가 뭔지 알 수 없다.
  반대로, 기술은 뒤떨어지더라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한 작품은 완성도가 떨어져도 그 하나만으로 높게 평가하고 싶다.
(P.45)

 

 

  마오쩌둥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창조적인 일을 이루어내는 3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1)젊을 것, (2)가난할 것. (3)무명일 것."이라고요.
(P.196)

 

 

  인간은 어른이 돼도 그 안에 어린아이가 한 명씩 있어서 사랑할 때나 작곡, 회화는 - 소설은 종종 그런데, 때로는 학문도 - 그 아이가 담당합니다. 마음 속 깊은 곳으로 갈 때는 어른인 자신이 행동하지만, 창조적인 일을 하는 건 아이의 역할이에요. 다만 나이를 먹으면 자신 안의 아이가 메말라 좋은 경치를 봐도 춤출 기분이 들지 않게 됩니다.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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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람 권정생 - 발자취를 따라 쓴 권정생 일대기
이기영 지음 / 단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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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람 권정생
이기영 / 단비 / 316쪽
(2014. 08. 15.)

 

 

 

<강아지똥>,<몽실언니>의 작가 선생님으로 가난하게 태어나서 교회 종지기 생활을 하시며 문간방에서 아이들을 위해 동화, 동시를 쓰시다 돌아가실때는 10억이나 되는 유산을 기부하고 가신 분, 아이들에게 읽어줄 책을 고르다. 자연스레 알게된 선생님이신데 이분의 작품뿐아니라 평소 이야기를 읽어 보니 한없이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권정생은 전쟁과 가난과 병마의 고통 속에서 몇 번이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남아 훌륭한 동화를 많이 남겼다. 그리고 삶과 글이 일치하는 거의 성자 같은 삶을 살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권정생을 우리와는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았던 사람으로 추앙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권정생은 우리와 동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다는 점이다. 그랬기에 그의 삶은 '현실' 속에서 이야기되어야 한다. 그가 살았던 삶이 평범한 길이 아니었다 해서 미화시키거나 성역화해서는 '권정생'을 온전히 만날 수 없다.
(P.6)

 

 

  권정생은 '아동문학 작가'이다. 시와 소설, 산문 등 많은 글을 남겼지만 무엇보다 '어린이'를 위해서 글을 썼다. 그는 민들레꽃이 아니라 그것을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 준 강아지똥 이야기를 썻고 가난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이야기인 몽실언니를 썼다. 다른 동화작가들이 꽃, 별, 무지개처럼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것에 대해 쓸 때 그는 누구도 쓰지 않았던 '똥' 이야기와 '거지' 이야기를 썼다. 그는 똥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거지가 부자보다 더 행복하다고 믿었다.
(P.6)

 

 

  그는 날마다 새벽이면 일어나 종을 쳤다. 겨울이면 종 줄에 성에가 끼고 꼬장꼬장 얼어 손이 무척 시렸다. 그래도 그는 장갑을 끼지 않고 종을 쳤다. 맨손으로 종 줄을 조절해서 잡아당겨야 가장 좋은 종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을 치다 보면 깨끗한 하늘에 수없이 빛나는 별들과 종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우주의 구석구석까지 아름다운 음악으로 채워지는 것 같았다. 권정생은 새벽마다 종을 치며 마음속 기도를 드리고 그 아름다운 종소리에 괴롭고 고달픈 마음을 날려 보냈다.
(P.120)

 

 

  세상 보는 눈을 달리했다는 것은 단순히 세상을 '다르게' 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다르게'는 남들과 같지 않다는 '차이'에 불과하지만 '거꾸로'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내보이며 기존의 것을 반대로 뒤집는 것이다. 그래서 권정생이 나사로를 알고부터 세상을 '거꾸로' 보게 되었다고 하는 말에는 세상에 대한 강한 '저항정신'이 담긴다. 돈과 권력을 쥔 부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거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 이것이 권정생이 '거꾸로' 보는 세상이다.
(P.122)

 

 

  세상을 '거꾸로' 보니 권정생은 싸움을 일으키는 부자보다 평화로운 거지가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다. 예수가 높은 보좌에 임금처럼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서 함께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고통을 함께 나누며 사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눈앞에 예쁘게 핀 꽃보다 거름이 되어준 똥에게로 문길이 가고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는 것이다.
(P.123)

 

 

  어느 비오는 날 산책길에서 그는 강아지똥이 잘게 부서진 자리에 민들레꽃이 핀 것을 본다. 사람들은 민들레꽃에 눈길을 주었지만 권정생은 '거꾸로' 제 몸을 잘게 부수고 있는 강아지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강아지똥은 지렁이만도 못하고 똥강아지만도 못하고 그런데도 보니까 봄이 돼서 보니까 강아지똥 속에서 민들레꽆이 피는구나."
(P.126)

 

 

  권정생은 세상이 알아주는 유명한 사람이 되고, 돈이 많아지고, 건강해진다면 좋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만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잃는 것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을 날리고 돈이 많아지면 가난한 이웃을 잃을 것이고 건강해지면 병든 이웃을 잃을 것이다 그는 자신만 병마와 가난에서 탈출하여 이웃을 잃고 싶지 않았다.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위안을 주고 희망을 주고 싶었다. 이야기로 그들의 가슴에 맺힌 것을 풀어주고 싶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떠나면 그에게 '이야기'는 더이상 없다. 그들과 함께 살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들려주는 것이야말로 그가 글을 쓰는 진정한 이유였기 때문이다.
(P.139)

 

 

  거지가 아름다운 것은 '내 것'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거지들이 '내 것'을 가지어 잘먹고 잘살게 되는 세상이 아니라 부자들이 창고를 버리고 거지처럼 가난하게 하루 먹을 것만 가지는 세상을 꿈꾸었다. 거지가 부자들의 세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이 거지처럼 아무것도 갖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을 위해 그는 자신만이 아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거지들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P.203)

 

 

  슬픈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믿은 권정생은 아이들도 슬픔 이야기를 읽고 눈물을 흘릴 수 있기를 바랐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몽실 언니>를 마을 할머니들, 시장터 술장수 아주머니, 공사판 노동자 아저씨들까지 읽어"준 것이 그는 정말 기뻣다. '곰곰이 생각하는 아이'가 되어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사람답게 사는 삶'을 잃지 않은 '몽실 언니한테서 우리 모두 조그마한 것이라도' 배울 수 있기를 권정생은 소망했다.
(P.234)

 

 

  마지막까지는 그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과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을 걱정하다가 "어매"를 부르며 2007년 5월 17일 오후 2시 17분 눈을 감는다.
  죽어서 "바람이 되어 씽씽 날기도 하고, 산들산들 춤추기도 하고, 물이 되어 강물 따라 흐르기도 하고, 빗방울이 되어 꽃잎에 내리고, 겨울에는 얼어서 눈이 되어 솜털처럼 내리고" 싶었던 권정생은 그가 바란 대로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 저기 뿌려"졌다. 그는 빌뱅이 언덕 작은 집 뒷산에 뿌려져 흙이 되고 물이 바람이 되어 자유롭게 날아갔다.`
(P.304)

 

 

  권정생 '작품'을 읽지 않고는 진정으로 '권정생'을 만날 수 없다. 통일을 꿈꾸며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편에서 쓴 그의 작품으로 그를 만날 때에야 비로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공중부양된 그를 이땅 위에 제대로 안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권정생은 동화, 소설, 시 뿐만 아니라 동극과 콩트도 썼고 1990년대 이후붜 2000년대 들어서는 산문을 많이 썼다. 그 산문을 모아 펴낸 책이 <우리들의 하느님>인데, 사실 권정생의 소박하고 가난한 삶과 사상을 만나려면 꼭 읽거야 할 책이다.
(P.307)

 

 

  권정생은 세상 사람들이 꽃이 아름답다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했다. 꽃의 거름이 된 똥이 더 아름답다며 세상에 '불복종'했다. 그는 돈의 농계가 되지 않았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그들과 함께 살았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먼저 세우기 위해 그는 스스로 똥처럼 거름이 되어 살았다. 권정생, 그는 똥이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똥이 거름으로 귀하게 쓰이는 세상이야말로 사람이 가장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P.311)

 

 

* 참고내역
1. 《강아지똥 (세종문화사, 1974)》
2. 《똘배가 보고 달나라 (창작과 비평, 1977)》
3. 《사과나무밭 달님 (창작과 비평, 1978)》
4. 《몽실언니 (창작과 비평, 1984)》
5. 《초가집이 있던 마을 (분도, 1985)》
6. 《벙어리 동찬이(웅진, 1985》
7.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분도, 1985)》
8. 《달맞이 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 (햇빛, 1985)》
9. 《꽃님과 아기양들 (새벗, 1986)》
10.《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지식산업사, 1988)》
11.《바닷가 아이들 (창작과 비평, 1988)》
12.《점득이네 (창작과 비평, 1990)》
13.《할매하고 손잡고 (올바름, 1990)》
14.《하느님의 눈물 (산하, 1991)》
15.《팔푼돌이네 삼형제 (현암사, 1991)》
16.《짱구네 고추밭 소동 (웅진, 1991)》
17.《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산하, 1994)》
18.《강아지똥 (길벗어린이, 1996)》(그림책, 정승각 그림)
19.《오소리네 집 꽃밭 (길벗어린이, 1997)》(그림책, 정승각 그림)
20.《깜둥바가지 아줌마(우리교육, 1998)》
21.《한티재 하늘 1, 2 (지식산업사, 1998)》
22.《먹구렁이 기차 (우리교육, 1999)》
23.《밥데기 죽데기(바오로딸, 1999)》
24.《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우리교육, 2000)》
25.《아기소나무와 권정생 동화나라(웅진, 2000. 7.15)》
26.《황소아저씨 (길벗어린이, 2001)』(그림책, 정승각 그림)》
27.《비나리 달이네 집(낮은 산, 2001)》
28.《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이철지 엮음, 종로서적, 1986)》
29.《내가 살던 고향은 (웅진, 1996.10)》(이원수 이야기)
30.《우리들의 하느님 (녹색평론사, 1996.12)》
31.《남북 어린이가 함께 보는 전래동화1-10(사계절, 1991)》
32. 한국의 민화·10 《눈이 되고 발이 되고(국민서관, 1992)》
33. 한국의 민화·12 《훨훨 날아간다(국민서관, 1992)》
[출처] 권정생 책 목록 (꼬마 책갈피-봉일천성당 동화모임) |작성자 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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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흑(2)
스탕달 / 이규식 / 문학동네 / 472쪽
(2014. 08. 06.)

 

 

 

  '항상 남이 기대하는 것과 정반대로 행동하라.'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유일한 종교입니다. 열광해서도 안 되고 거짓으로 꾸며도 안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이 늘 당신에게 열광과 허식을 기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P.89)

 

 

  음모는 사회의변덕으로 얻은 모든 지위를 소멸시킬 수 있다. 반면 죽음을 각오하고 뛰어드는 사람은 대번에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 패망한 쪽은 정신마저도 권위를 잃어버리고 만다.
(P.122)

 

 

  우리가 시도하는 순간에 극단적이지 않은 위대한 행동이 어디 있겠어? 상식적인 사람들에게 가능해 보이는 것은 그것이 완성될 때인 거야. 그래, 모든 기적을 거느리고 있는 사랑이 내 마음을 지배하게 될거야. 나는 나를 타오르게 하는 불꽃에서 그것을 느껴. 하늘은 내게 그런 은총을 주실 거야. 단 한 명에게 모든 혜택을 모아주신 것이 헛일은 아닐 거야. 내 행복은 나에게 합당해. 내 하루하루의 행복은 차갑게 식은 전날의 행복과는 같지 않을 거야. 사회적 신분으로 볼 때 나와 너무나 거리가 먼 남자를 감히 사랑한다는 것에는 이미 위대함과 대담함이 있어. 그런데 그가 계속해서 내 사랑을 받을 만한 남자일까? 그에게서 처음으로 나약함을 보게 될 때 나는 그를 버릴 거야. 나 같은 신분의 처녀가, 그리고 사람들이 인정하는 기사 같은 성격을 타고난 처녀가 바보처럼 굴 수는 없어.
(P.144)

 

 

  그런데 독자여, 소설이란 큰 길을 어슬렁거리는 거울이다. 때로는 당신 눈앞에 창공을 비춰줄 것이고, 때로는 도로에 파인 웅덩이의 진흙을 비춰줄 것이다. 그런데 채롱에 거울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을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다니! 그의 거울이 진흙을 비추는데 당신은 거울을 탓하는 것이다! 차라리 웅덩이가 파인 큰길을, 아니. 그보다는 물이 괴어 웅덩이가 파이도록 방치한 도로 감시인을 비난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P.213)

 

 

  겁이 없고 당당한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이 한 걸음 차이일 뿐이다. 이 경우에는 무섭게 화내는 것이 강렬한 기쁨이 되기도 한다.
(P.227)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떤 인상을 주는지 야심적으로 살피는 삶의 방식이 가져다주는 권태, 그런 것이 가져다주는 성공에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실제적인 기쁨이 없는 법이다.
(P.304)

 

 

  내가 왜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가? 나는 끔찍하게 모욕을 당했기에 죽였으며, 그러기에 죽어 마땅하가. 그게 전부다. 나는 모든 인간들에 대한 결산을 하고 죽는 것이다. 나는 어떠한 의무도 남겨두지 않았다. 나는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다. 단두대에서 죽는다는 것 말고 나의 죽음은 부끄러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정말이지 단두대에서 처형당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베리에르 부르주아들이 보기에 치욕으로는 충분하다. 그러나 지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보다 더 멸시할 일도 없다! 그들에게 존경할 만한 인물로 보일 한 가지 방법이 내게 남아 있다. 사형장으로 가면서 사람들에게 금화르 던져주는 것이 그것이다. 그들에게는 나에 대한 기억이 금화라는 관념과연관되어 번쩍번쩍 빛날 것이다.
(P.367)

 

 

  '자연법'이라는 건 없다. 그 말은 요전날 나를 몰아세운 차장검사에게나 어울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어리석은 말일 뿐이지. 그 인간의 조상도 루이 14세의 몰수재산 덕에 부자가 되었을 거야. 그런 짓을 할 경우 벌을 부어 막는 법이 있을 때에야 법이라는 것도 존재하는 것이다. 법이 존재하기 전에는 사자의 힘이나 춥고 배고픈 존재의 욕망, 요컨대 '욕망'만이 자연스럽다. 그렇다. 존경받는 사람들이란 다행히도 현행범으로 붙잡히지 않은 사기꾼들일 뿐이다. 사회가 내 뒤를 쫓으러 보낸 고발자도 수치스러운 짓으로 부자가 되었을 뿐이다. 나는 살인을 저질렀다. 그러니 나는 당연히 사형이다. 하지만 그 행위만 제외하면 나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발르노 같은 인간은 나보다 백배는 더 사회에 유해한 인간이다.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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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흑(1)
스탕달 / 이규식 / 문학동네 / 360쪽
(2014. 08. 02.)


 

 

  그는 자신이 받아들여진 상류사회에 대하여 증오와 혐오감밖에 느끼지 않았다. 사실 테이블의 끄트머리 자리 하나 차지 했다는 것이 아마 그의 증오와 혐오감을 설명해주는지도 몰랐다.  때로 화려한 만찬이 열리곤 했다. 그럴 때면 그는 자기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하여 증오를 간신히 억제하고 했다. 어쩌면 저렇게 청렴을 자랑해댄단 말인가! 그는 소리쳤다. 저런 게 유일한 미덕이라고 하겠찌. 그런데 빈민의 복지를 담당하면서부터 재산을 두 배, 세 배로 늘린 자에 대한 정중한 태도와 치사스러운 존경이라니! 저 작자는 다름 사람들보다 몇 곱절 더 비참한 저 불쌍한 고아들을 위해 마련한 돈까지 들어벅고 있는 게 틀림없어!
(P.58)

 

 

  돈 있는 자들이란 다 그렇지 뭐. 모욕을 주고서 그런 다음에는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면서 모든 걸 보상할 수 있다고 믿는단 말이야!
(P.66)

 

 

  쥘리앵은 커다란 바위 위에 서서 8월의 태양으로 이글거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위 아래 풀밭에서 매미들이 울어젖혔고, 그 소리가 멎을 때면 주위의 모든 것이 고요했다. 그는 발 아래의 넓은 땅을 굽어보았다. 그의 머리 위 큰 바위에서 날아오른 새 한마리가 때때로 소리 없이 거대한 원을 그리며 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쥘리앵의 시선은 기계적으로 그 맹금의 뒤를 쫓았다. 새의 유유하고 힘찬 동작에 탄복했다. 그는 그 힘이 부러웠고 그 고독이 부러웠다.
  그것인 나폴레옹의 운명이었다. 언제 그것이 쥘리앵 자신의 운명이 될 것인가?
(P.101)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인간은 어리석은 인간이다. 돌은 무거우니까 밑으로 떨어진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언제부터 돈 때문에 영혼을 파는 습관을 들였단 말인가? 저들과 나 자신에게서 존경받으려면 남들의 부유함과 거래하는 것은 내 가난 뿐이고 내 영혼은 그들의 불손으로부터 수천 리와 떨어진 곳, 그들의 사소한 경멸이나 호의의 표시가 당도하기에는 너무 높은 창공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P.110)

 

 

  그는 자신이 자아낸 흥분이나 그 흥분의 강도를 높여주는 회한에 주의를 기울이는 대신에 '의무'에 대한 관념에 줄곧 사로잡혔다. 자신이 따르기로 마음먹은 이상적인 모델에서 벗어나면 끔찍한 후회를 겪고 영원한 웃음거리가 될까봐 두려우하고 있었다. 요컨대 쥘리앵을 뛰어난 존재로 만드는 점이 바로 자기 발 아래에 놓인 행복을 맛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흡사 매혹적인 살결을 지닌 열여섯 살 처녀가 무도회에 가려고 연지를 바르는 것처럼 미친 짓이었다.
(P.135)

 


  이 세상의 헛된 화려함의 결과란 바로 그런 것일세. 자네는 분명 웃는 낯에만 익숙할 거야. 그야말로 거짓투성이 연극이지. 이보게, 진실은 엄격한 것이라네.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사명 또한 엄격하지 않을까? 자네의 양심이 '외면의 헛된 우아함을 향한 지나친 감수성' 이라는 약점을 경계하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네.
(P.272)

 

 

  나는 지상에 혼자뿐이다. 아무도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다. 내가 아는 모든 출세한 인간들은 내게는 어림도 없는 뻔뻔함과 냉혹함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나의 유순하고 착한 천성 때문에 나를 미워한다. 아! 머지않아 나는 배고픔 때문에 또는 그처럼 냉혹한 인간들을 봐야 하는 슬픔 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P.275)

 

 

  쥘리앵은 생각했다. 나는 베리에르에서 얼마나 터무니없는 자만심을 가지고 있었던가! 나는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만 삶을 준비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이제 나는 세상에 나왔다. 진정한 적들에 둘려싸여 내 역할이 끝날 때까지 그것을 찾아야 하는 세상 말이다. 그는 또 생각했다. 매순간 이렇듯 위선 속에 산다는 것은 얼마나 크나큰 어려움인가!
(P.282)

 

 

  인간의 의지는 강하다. 나는 도처에서 그것을 목격한다. 그러나 의지만으로 그와 같은 혐오감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까? 위인들의 임무는 쉬웠다. 위험이 아무리 무섭다 해도 위인들은 그 위험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를 제외하고 그 누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추악한 것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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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 메디치미디어 / 328쪽
(2014. 07. 25.)

 

 


  글에 관한 대통령들의 욕심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떻게 쓰느냐와, '무엇을 쓰느냐'의 차이다. 어떻게 쓰느냐,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멋있게, 있어 보이게 쓸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것은 부질없는 욕심이다. 그러나 무엇을 쓰느냐에 대한 고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글의 중심은 내용이다. 대통령의 욕심은 바로 무엇을 쓸 것인가의 고민이다. 그것이 곧 국민에게 밝히는 자신의 생각이고,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자신이 없다고 하는 사람 대부분은 전자를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명문을 쓸까 하는 고민인 것이다. 이런 고민은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담감만 키울 뿐이다.
(P.16)

 

 

  김대중 대통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의견(생각)이 있는 사람이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의견이 없는 사람이다."고 할 정도로 생각을 중시했다. 생각과 관련한 세 가지의 '세 번 원칙'도 있었다.
  첫째, 이 일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지 생각한다.
  둘째, 나쁜 점은 무엇인지 생각한다.
  셋째,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한다.
(P.26)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글을 잘 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특히 자신이 써야 할 글이 정해지면 그 글의 주제에 관해 당분가은 흠뻑 빠져 있어야 한다. 이처럼 빠져있는 기간이 길수록 좋은 글이 나올 확률이 높다.
(P.28)

 

 

  와인이 부드럽고 깊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숙성 기간이 필요하듯이, 글도 생각의 숙성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단박에 써 내려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조바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생각이 안 나면 머리 어디쯤엔가 잠시 내버려둬도 좋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다. 언제일지 모르고, 어느 장소일지 모른다. 혼자 걷다가, 혹은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또는 화장실에서 떠오를 수도 있다.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붙잡으면 된다.
(P.28)

 

 

  독서는 세 가지를 준다. 지식과 영감과 정사다. 책을 읽고 얻는 생각이다. 그중에 글 쓰는 데는 영감이 가장 중요하다.
  독서와 글ㅆ기는 뗄겨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고, 생각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 따라서 독서 없이 글을 잘 쓸 수 없으며, 글을 잘 쓰는 사람치고 책을 멀리하는 사람은 없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그랬다.
(P.46)

 

 

  정약용, 아인슈타인, 링컨, 에디슨, 김대중 노무현,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메모의 달인이라는 것이다.
(P.57)
 
  "생각의 길이와 글의 길이를 서로 같게 한다는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생각을 충분히 드러내기에 말이 부족하면 글이 모호해지고, 생각은 없이 말만 길게 늘어뜨리면 글이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오락가락하지 않으려면 세 가지가 명료해야 한다. 첫째는 주제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나는 이 글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가, 둘째, 뼈대다. 글의 구조가 분명하게 서 있어야 한다. 셋째, 문장이다. 서술된 하나하나의 문장이 군더더기 없이 명료해야 한다.
(P.69)

 

 

  짧은 말은 긴 말보다 결코 쉽지 않다. 짧은 말 속에 모든 것을 얘기해야 하고, 또한 핵심을 찔러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명문장가 이덕무 선생은 이를 이렇게 얘기했다. "간략하되 뼈가 드러나지 않아야 하고, 상세하되 살찌지 않아야 한다." 
(P.160)

 

 

  "상대방이 내 말을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글쓰기는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니 무조건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이 좋다."
  김 대통령의 충고다. 그의 '대통령 수칙' 7번이 '국민이 이해를 못 할 때는 설명 방식을 제고하자'다. 상대가 내 말을 못 알아들을 때는 그를 탓하지 말고, 내 표현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어렵게 말한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당연히 쉬운 말로 써야 한다. 둘째, 명확하게 짚어줘야 한다. 셋째, 사례를 들고 비유를 한다. 넷째, 반복해줘야 한다.
(P.172)

 

 

  요즘을 한 줄로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게 좋은 글이다. 필자의 생각과 독자의 생각이 같아야 좋은 글이다. 열이면 열 사람 모두 같은 내용으로 요점 정리를 한다면 만점이다.
(P.182)

 

 

  글 잘 쓰기는 잘 듣기로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 스스로 중심만 잡을 수 있으면 많이 들을수록 좋다. 잘 들어야 말을 잘 할 수 있고, 말을 잘해야 잘 쓸 수 있다.
(P.216)

 

 

  글만 잘 쓰는 사람, 생각만 많은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생각도 있으면서 그것을 글로 옮길 수 있고, 그 글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글이 글로 끝나서는 의마가 없다고 생각한다.글은 실천과 함께 가야 한다. 나는 그게 가능한, 흔치 않은 두 분과 만났다. 정말 분에 넘치는 영광이었다.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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