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말꽃모음
이오덕 / 단비 / 201쪽
(2014.09.30.)
(노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놀이'와 '일'이 아주 다른 것이 아닙니다. 또 놀이와 일이 같은 것이 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놀고 일하는 가운데서 재능이 싹트고, 창조력이 뻗어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그러니 '놀이' '일' '공부'이 세 가지가 하나로 되는 것이 참교육의 길입니다.
(P.13)
(논다는 것은 귀한 삶이다)
아이들은 놀면서 공부를 한다. 아니, 노는 것이 공부고, 공부가 노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예닐곱 살 때까지 집 안에서, 골목에서 뛰놀면서 제 어머니 나라의 말을 죄다 익힌다. 결단코 학교에 가서, 책을 배워서 말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뛰노는 동안에 몸으로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이다. 학교에 가서 책으로 익히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도리어 우리말을 해치는 불순한 글말이고, 외국에서 들어온 잘못된 말이다.
(P.15)
(사람이 훌륭하게 되려면)
사람이 훌륭하게 되려면 두 가지 아주 다른 방법의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 하나는 책을 읽거나 남의 행동을 보고 자기가 갖지 못했던 새롭고 훌륭한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본 받고 따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속의 깨끗하고 바른것, 자칫하면 남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여 짓밟히기 쉬운 것을 아끼고 키우고 그것을 끝까지 지켜 나가는 태도입니다. 이 두가지는 정반대가 된다고 할 수 있지만 두 가지 노력이 다 필요합니다.
(P.27)
(대학을 나와서 무엇 하나?)
대관절 대학을 나와서 모두 무엇을 하고 있는가? 취직을 못 해서, 대학원을 나와도 일자리가 없다고, 외국에 가서 또 무슨 학위를 따 와도 놀고 있기가 예사다. 내가 알기로 이런 실업자들을 가장 많이 구제해주는 곳이 온갖 과외 공부를 시키는 학원이다. 이래서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에서부터 책 읽기 공부로 영어 공부를 시달리는 판이 되었다. 어느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과외를 열다섯 군데나 다닌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이와 같이 잘못된 교육의 결과는 다시 또 더 잘못된 교육의 씨를 뿌리고, 이래서 우리 아이들의 불행은 끝없이 되풀이되고, 역사의 비극은 끊어질 줄 모른다.
(P.38)
(어린이답게 키우는 것이 사람답게 키우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떤 아이라도 그 스스로 끝없이 자라나고 뻗어나갈 재주와 힘을 그 몸속에 감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나지 못하는 것은 모두, 뻗어 나가려고 하는 그 싹을 어른들이 짓밟아버리거나, 비닐로 덮어씌워 숨도 못 쉬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아이를 아이같이 기르지 않고 하루빨리 어른이 되도록 훈련을 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P.48)
(어린이 마음2)
나는 아이들이야말로 가장 깨끗하고 바르고 참된 사람이라고 봅니다. 아이들은 정직합니다 거짓말을 하는 아이는 어른한테 배운 것이고 어른들이 만든 잘못된 환경이 거짓말을 가르친 것입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헛된 욕심이 없으며, 약삭빠르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만약 계산을 하고 약삭빠르게 행동한다면 그것은 어른들한테 비참한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또 아이들은 동정심이 많다는 점에서 어른과 다릅니다. 남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지요. 아이들이 갖는 이 정직함과 계산하지 않음과 동정심 - 세 가지는 아이들 마음의 속성이요, 어른들이 잃어버린 가장 사람다운 마음의 본바탕입니다.
(P.75)
(글벙어리)
아이들은 글쓰기를 어려워한다. 저희들끼리 말하는 것을 들으면 참으로 재미있고 그런 말은 그대로 글로 적는다면 얼마나 좋겠나 싶은데, 글을 쓰라고 하면 대개는 글벙어리가 된다. 어찌 아이들뿐인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것은 글이 말과는 다르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을 글자로 적어놓은 것이 글일 터인데, 글이 말에서 멀어져 말과는 아주 다른 질서를 가진다는 것은 매우 좋지 못한 현상이다. 더구나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게 되어있는 우리글이 우리말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있다면 아주 크게 잘못된 일이다.
(P.91)
(책이 사람을 만듭니다)
책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답고 충실한 문화의 꽃이요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빛나는 문화를 이어받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고, 이 빛나는 문화를 이어주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도록 하는 것이지요. 책은 역사와 사회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으로 보면, 책으로 직식을 얻고 생각을 넓히며, 삶의 수단과 지혜를 찾아내고,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배웁니다.
(P.123)
(어째서 문학책을 읽혀야 합니까?)
아이들에게는 주로 문학책을 읽혀야 합니다. 실제로 어린이 책이라면 그 대부분이 문학입니다. 왜 그럴까요?
무엇보다도 어린아이들은 감성(느낌)으로 자라납니다. 그래서 지식이나 사상을 주기보다 (그 이전에) 바로 구체적인 삶을 보여주어 그것을 느낌으로 받아들이도록 해야 합니다. 관념이나 이론은 아이들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노래와 이야기와 그림을 주어야 됩니다. 어린이 문학은 이래서 필요한 것입니다.
(P.126)
(좋은 책 고르기)
좋은 책이란 어린이 마음을 착하고 참되게 하고, 올바른 생각과 행동을 하게 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야 하고, 깨끗한 우리말로 쓴 책이라야 합니다. 이런 책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매우 드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책방에 가면 온갖 책들이 수없이 널려있고 꽂혀있어서 그 가운데서 좋은 책을 골라내기가 퍽 어렵습니다. 또 나이와 학년에 따라서 알맞는 책을 골라야 하지요.
(P.128)
(가짜 시와 진짜 시)
무엇을 보는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가슴에 울려 오는 느낌은 살아있는 자신의 것입니다. 그런 느낌이나 생각을 잡아서 쓰면 시가 될 수 있니다. 그러나 실제로 느낀 것이 아니고 느낀 것처럼 재주를 부려 만들어 쓸 때는 가짜가 되고 거짓이 됩니다. 그러니 느낀 것처럼 꾸며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남의 글을 볼 때도 그 글이 실제로 겪은 것을 쓴 것인가, 거짓으로 만든 것인가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P.150)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이란 무엇인가 하고 물었을 때, 여러 가지 복잡한 말로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아주 쉽게 '몸과 마음이 튼튼한 사람을 키워가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몸과 마음이 튼튼한 사람'일까요?
첫째는 몸에 병이 없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사람을 슬기럽게 하는 지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셋째는 사람다운 넉넉한 감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넷째는 도덕성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P.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