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 박형규 / 범우사 / 504쪽
(2014. 11. 13.)
<전쟁과 평화>는 <안나 카레니나>와 함께 톨스토이 문학의 최대 걸작이자 톨스토이 예술의 극치를 이루는 작품으로서 전 세계 문예비평가나 톨스토이 연구가 그리고 문학 애호가의 바이블적인 일대 로망이다. 또한 <전쟁과 평화>는 그 양이나 질 제재의 스케일에 있어서도 세계 문학 가운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나 견줄, 근대 유럽 문학 최대의 예술 작품으로 헤아려지는 서사시적 대하소설이다.
즉, 로망 롤랑이 말한 바 '19세기의 전(全) 소설계에 군림하는 거대한 기념탑'이자 '근대의 <일리아스>'이며, 그 구성으로 보아 아마 오늘날까지 씌어진 작품 가운데서 최대의 군중 소설이며 서사시일 것이다.
(P.5)
피에르는 안드레이 공작을 온갖 완성된 것의, 그것도 그 전형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안드레이 공작이 피에르가 갖고 있지 못한 모든 자질을 가장 완전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질을 한만디로 말한다면 의지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온갖 계급의 사람을 침착하게 응대할 수 있는 능력, 비범한 기억력, 박학 - 그는 많은 책을 독파하고 온갖 사상에 밝고, 온갖 세상에 대하여 식견을 갖고 있었다. - 그리고 또 무엇보다도 귀중한 노동과 연구의 능력, 이러한 안드리에 공작의 자질에 대해 피에르는 경이의 눈을 돌리고 있었다. 또 자주 안드레이 공작의 공상적, 철학적 능력 - 피에르는 특히 이러한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 의 결여라는 것이 피에르 놀라게는 했지만 그는 그것을 단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힘이라고 까지 느끼고 있었다.
(P.56)
아무리 사이가 좋고 아름답고 흉허물 없는 관계라 해도 아첨이라든가 찬사라는 것은 수레바퀴의 움직임에 기름이 필요한 것처럼 역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P.57)
니콜라이 안드레예비치 볼콘스키의 지놀넹 의하면, 모든 인간 악행의 근원은 두 가지인데 그것은 즉 게으름과 미신이며, 또한 마찬가지로 미덕에도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활동과 지능이라는 것이다. 이 두 주요한 덕성을 딸의 내부에서 발달시키기 위해 스무살까지 그녀에게 대수와 기하를 가르치고 그녀의 생활 전체를 끊임없는 공부에 바치게 해왔던 것이다.
(P.157)
출발을 앞두고 생활에 변화가 일어날 때에는, 자기의 행위를 신중하게 고려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흔히 진지한 사색적 기분에 젖는 법이다. 이런 경우에는 대체로 과거가 검토되고, 미래의 계획이 세워진다. 안드레이 공작의 얼굴은 몸시 명상적이고 부드러워 보였다. 그는 뒷짐을 지고 앞을 바라보면서 구석에서 구석으로 방안을 거닐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머리를 내저었다.
전쟁에 나가는 것이 두려운지, 그렇잖으면 아내를 두고 가는 것이 슬픈지, 아마도 그 양쪽 모두였으리라. 복도를 걷는 무서운 발소리가 귀에 들리자, 그는 자기가 이런 상태에 있는 것을 보이고 싶지 않은 듯 허둥지둥 뒷짐 진 손을 풀고 마차 돈궤의 덮개를 덮고 있는 체하면서 탁자 옆에 발을 멈추고, 여느 때처럼 침착하고 헤아리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P.183)
니콜라이 로스토프는 얼굴을 돌려 마치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처럼 먼 경치며, 도나우 강물이며, 하늘이며, 태양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보였다. 어쩌면 저다지도 푸르고 고요하고 깊을까! 그리고 저물어 가는 태양은 어찌 저다지도 휘황하고 장엄할까! 저 멀리 있는 도나우의 강물은 어찌 저다지도 부드러운 빛으로 반짝이고 있을까! 또 멀리 도나우 강의 저쪽에 검푸르게 바라보이는 산들, 수도원, 신비에 잠긴 계곡, 나무 끝까지 안개가 낀 소나무 숲, 이러한 것들은 더 한층 훌륭했다...... 거기에는 고요와 행복이 가득 차 있었다...... '만약 내가 거기에 있을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텐데' 하고 로스토프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 개인과 그리고 저 태양 가운데에는 그지없는 행복이 있다. 그런데 여기는...... 신음과 고통과 공포와 그리고 이모호한 분위기, 허둥거리는 듯한 기분...... 글쎄, 또 무엇인가가 소리 지르고 있다. 그리고 다시금 모두들 뒤쪽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나도 그들과 함께 달려간다. 아아, 바로 저것이, 저것이, 매 머리 위와 나의 주위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그렇다, 죽음이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이제 이 태양도, 이 강물도, 이 골짜기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P.258)
'나는 누구에게도 필요 없는 인간이다!'하고 로스토프는 생각했다. '누구 한 사람 도와주는 사람도, 가엾게 여겨 주는 사람도 없다. 전에 집에 있을 때에는 건강하고, 쾌활하고,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은 적도 있었건만' 하고 그는 한숨 쉬었다. 그리고 한숨과 더불어 저절로 신음 소리가 나왔다.
"아니 어디 아프십니까?" 하고 병사가 불 위에다 셔츠를 털면서 물었다. 그리고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기침을 하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오늘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로스토프는 병사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불 위를 이리저리 날고 있는 눈송이를 보면서 러시아의 겨울...... 따뜻하고 밝은 집, 푹신푹신한 털외투, 쏜살같은 썰매, 건강한 몸, 가족의 애정과 걱정,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아, 무엇 때문에 나는 이런 곳에 왔을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P.342)
보리스는 이 순간 자기가 접하고 있는 인간이 최고 권력의 존재인 것을 알자 가슴이 울렁거리 것을 느꼈다. 그는 자기가 연대에 있을 때, 자기도 보잘것없는, 온순하고 부질없는 한 부분으로 느끼고 있던 그 거대한 집단의 움직임을 모두 좌우하고 있는 원동력, 그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직접 접촉하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는 것이었다.
(P.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