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자들의 국가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12명 / 문학동네 / 232쪽
(2014.12.04.)

 

 


  '최선'을 다하겠단 얘길 들었다. '최대'한 힘쓰겠다는 말도, '모든걸 동원'하겠다는 약속도 들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 들었다. 그럴듯한 말들은 주로 '위'에서 내려왔다. 그 안에는 부사와 형용사, 서술어와 추상명사가 많았지만, 시제와 동사, 주어와 고유명사는 잘 보이지 않았다. 곧이어 '책임'이란 말이 들려왔다. '적폐'라는 말, '엄벌'이란 말도 등장했다.그런데 그 말을 끝까지 다 들어도 대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죄송하다'는 말보다 '기다려달라'는 청보다 선명하게 들린 건 지도층의 막말과 실언이었다.
(P.13)

 

 

  앞으로 '바다'를 볼 때 이제 우리 눈에는 바다 외에 다른 것도 담길 것이다. '가만히 있어라'는 말 속엔 영원히 그늘이 질 거다. 특정 단어를 쓸 때마다 그 말 아래 깔리는 어둠을 의식하게 될 거다. 어떤 이는 노트에 세월이란 단어를 쓰려다 말고 시간이나 인생이란 낱말로 바꿀 것이다.
(P.14)

 

 

  역사는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는가? 말했다시피 이건 나이가 든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은 지혜로워진다는 것만큼이나 거대한 착각이다. 인간은 저절로 나아질 수 없고, 그런 인간의역사 역시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지 않는다. 가만히 놔두면 인간은 나빠지며, 역사는 더 나쁘게 과거를 반복한다. 즉 진보의 관점에서 보자면, 과거가 더 낫게 미래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이반 일리치는 "미래는 삶을 잡아먹는 우상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오직 희망만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P.40)

 

 

  세상은 신의 노여움을 잠재울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하는 게 아닐 것이다. 세상은 분명 질문에 대답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질문하는 사람 자리로 슬쩍 바꿔 앉는 순간에 붕괴될 것이다.
(P.113)

 

 

  신자유주의는 고전적인 경제 자유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사회를 오직 시장으로만 표상한다. 그러나 또한 그와 달리 자유방임 원리에 따라 '보이지 않는 손'의 조화에 의존하면서 사회에 개입하지 않는 권력을 원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오히려 표상에 의거하여 사회가 재편되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에서 "경제적인 것에 의한 통치"다. 바로 이런 이미에서 신자유주의는 경제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 되도록 만든다. 이와 같은 대체의 가장 명백한 결과는 공공영역의 민영화 내지는 사유화에 그치지 않고, 바로 '자기 경영'이나 '자기 계발'이라는 익숙한 말들이 나타내듯이 주체성 자체의 사유화이자 사유화된 주체성의 생산으로 확장된다.
(P.208)

 

 

  진실에 대해서는 응답을 해야 하고 타인의 슬픔에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좋은 문학이 언제나 해온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 말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는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4월 16일의 참사 이후, 상황은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진실은 수장될 위기에 처했고, 슬픔은 거리에서 조롱받는 중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은 모두 세월호 참사 이후 출간된 계간 '문학동네' 2014년 여름호와 가을호에 게재된 것들이다. '문학동네' 편집위원들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인들과 사회과학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숙연한 열정으로 써내려간 이 글들이 더 많은 분들에게 신속히 전달되어야 한다는 다급한 심정 속에서 이 단행본을 엮는다. 이 책은 얇지만 무거울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진실과 슬픔의 무게다. 어떤 경우에도 진실은 먼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며 정당한 슬품은 합당한 이유 없이 눈물을 그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제 이 책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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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vs 학부모
SBS 스페셜 부모 vs 학부모 제작팀 / 예담 / 360쪽
(2014. 12.01.)

 

 

 

  모친살해, 게임중독, 자실 그리고 사교육 별천지 대치동. 언뜻 나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당신은 쓰지만 몸에 좋은 보약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공부 잘했으면 하고 바라는 부모를 아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부모와 아이 관계가 왜 자꾸 삐걱대는지,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에 숨은 함정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설마?'는 '아하!'가 되고 불안은 사라질 것이며 화도 다스려질 것이다.
  세상이 달콤하고 행복으로만 가득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그래서 정말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해야만 한다. 남편이나 아내, 아이와의 관계에서 꼭 해야 하지만 두려워서 나누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는가? 드디어 마주앉아 미루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내놓을 때처럼 마음을 가라앉힐 차 한잔을 준비해도 좋겠다. 가, 그럼 부모와 아이의 마음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P.15)

 

 

  보통 부모들은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감기 같은 질병을 치료하듯 아이 문제에만 집중한다. 아이가 아픈 것이니 아이만 치료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아이의 행동과 심리 문제는 반드시 온 가족이 함께 풀어야 한다.
(P.34)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부모들에게 경고한다. 지금은 학업 부담과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나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겉보기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아이들도 마음을 놓기 어려운 지경이 되어가고 있다. 반항을 하는 아이들은 그래도 숨통이 트이기 때문에 자살을 하지는 않는다. 안타까운 것은 더 이상 달릴 에너지가 남지 않았는데 그런 사실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부모에게 전달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은 부모가 보기에는 별 탈 없이 잘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속으로 병들다가 결국에는 무너지는 것이다.많은 경우, 그들이 부모에게 신호를 보내지 못하는 이유는 부모가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 여기거나 아니면 부모에게 차마 말을 할 수 없어서이다. 부모가 강압적인 경우도 있고 아이가 너무 착해서인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P.72)

 

 

  중고교 시절을 기억해보시라. 이 책을 읽는 부모들에게도 친구들과 '죽고 못 살던' 시절이 있지 않았나? 친구들이 인정해주면 나는 가치 있는 존재가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늘 짧고 아쉬웠다. 밤새워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틈날 때마다 어른들이 금지하는 것들을 감행하는 모험을 하면서 그만큼 자랐다고 우쭐 대기도 했다. 그때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고 놀러 다니는 걸 부모가 가로막는 게 얼마나 싫었던가. 그렇게 하고도 다들 멀쩡한 성인으로 자라나지 않았나. 지금 아이들은 그렇게 할 시간조차 없다. 아이들이 잠깐이라도 한눈파는 걸 부모들이 점점 더 못 참게 되는 것에는 그들이 경쟁에서 뒤질지 모른다는 부모의 불안감이 더 커지는 것과 함께 아이를 가르치는 데 드는 비용 가운데 점점 더 많은 부분이 부모의 주머니에서 나오게 되는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친구도 추억도 없이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조금은 더 너그러운 시각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P.95)

 

 

  "아이들 믿는다는 건 굉장히 힘듭니다. 너무너무 힘들어요. 어떤 때는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의구심이 생기고 불안감도 있죠. 그래도 참을 인 자 세 개 쓰고 마음을 놓으니 제 맘도 편해지고 아이와 관계도 좋아지고, 그러니까 아이도 결국 공부에 집중을 하더라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아주길 정말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P.114)

 

 

 우리는 왜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려고 하는가? 집안에 모셔둘 명문대 졸업장이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명문대를 발판 삼아 더 나은 미래를 꿈꾸도록 하기 위함인가. 요즘의 20대는 서울대와 카이스트를 졸업하고도 여지없이 취업난을 겪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세상은 달라졌으며 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세대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미래에 살게 될 것이며, 그 세상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 아이의 인생은 길고, 대입은 그중 한 시점에 불과하다. 교복을 벗은 뒤, 누가 더 힘차게 오래 달릴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명문대 졸업장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의 신뢰와 배려 속에서만 성장할 수 있는 자기주도성이다. 당신은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가? 서울대 학생의 부모인가? 아니면 행복한 아이의 부모인가?
(P.119)

 

 

  주변과 비교해서 이 정도면 괜찮은 부모라고 안심하기보다 내 아이가 얼마나 아파하는지에 더 관심 갖는 것, 아이만 바라보고 아이 문제에 집중하기보다 매일 마음속의 거울을 닦고 부모로서의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 변화는 아이가 아니라 언제나 부모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 말이다.
(P.146)

 

 

(도전에 직면한 자녀에게 하는 말)
(좋은 예 / 나쁜 예)
넌 할 수 있어! / 별것도 아닌데 잘할 거야.
아빠가 항상 옆에서 응원할게. / 얼마나 잘하는 한번 보자
네 속도대로 성장해가면 되는 거야 / 네 나이에 이 정도는 해야지
실수해도 괜찮아. 편안히 시도해보는 거야 / 아빠는 우리 아들(딸)만 믿어!

 

(자녀가 성취, 성공했을 때 하는 말)
(좋은 예 / 나쁜 예)
네가 내 딸(아들)이어서 너무 기뻐 / 쪽팔리게 불합격할까 봐 죽는 줄 알았다
너무 수고 많았어 / 100점이구나! 뭐 먹고 싶어?
네가 꼭 맞는 방법으로 열심히 노력했구나 / 우리 아들(딸) 천재구나!
값진 노력이 결실을 맺었구나! / 시험이 쉬었구나?
정말 열심히 했구나! / 다른 아이들은 몇 점 맞았니?
네가 바라던 대로 돼서 너무 기쁘다/ 넌 우리 가문의 보배야

 

(자녀가 학업적 부분에서 실패했을 때 하는 말)
(좋은 예 / 나쁜 예)
앞으로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 진짜 이것밖에 못하겠어?
한 번에 잘할 수는 없단다 / 아빠가 너만 했을 때는 말이야
몇 번 넘어졌다고 좌절할 필요 없어 / 형(동생)은 안 그런데 너는 왜 그러니?
잘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 안 되는 건 그냥 포기해
괜찮아. 다시 일어서면서 성장하는 거야. / 다른 사람이 널 어떻게 생각하겠니?

 

(자녀가 일상적인 부분에서 실수했을 때 하는 말)
(좋은 예 / 나쁜 예)
아빠도 그런 적 많아 / 너는 왜 이렇게 바보 같니?
그렇게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야 /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혹시 고민스러운 일이 있니? / 요즘 너 계속 그딴 식으로 한다.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거야 / 너 내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
계속 실수하니까 많이 속상하겠구나 / 너 솔직히 일부러 이러는 거지

 

(자녀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할 때 하는 말)
(좋은 예 / 나쁜 예)
그 일에 대해 어떻게 하고 싶니? / 뭔데 진짜. 아빠가 해결해줄게
그동안 고민이 많았겠구나 / 어린 게 별 소릴 다 하네.
그래, 그런 생각도 들 수 있어 / 에이,아니야. 우리 아들(딸) 착하지?
아빠가 항상 네 옆에 있단다 / 계속 울면 너 안 본다
네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알려주겠니 / 고민하면 밥이 나와, 떡이 나와?
신중히 생각해서 합의점을 찾아보자 /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게 좋을 수 있니?

 

(자녀가 부모와 대립할 때 하는 말)
(좋은 예 / 나쁜 예)
하고 싶지 않은 마음 충분히 알아 / 왜 이렇게 까다롭게 구냐?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 / 그런 식으로 하면 절대 용서 못한다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자 / 그까짓 게 뭐 화낼 일이니?
조금만 표현을 순화해서 말해줄래? / 아빠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아빠가 무슨 오해가 있나 보다 / 아 진짜, 얘 또 시작이네.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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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 박형규 / 범우사 / 534쪽
(2014. 11. 22.)

 

 

 

  '행복의 순간을 붙잡아라. 자신을 사랑하게 하고, 자신이 사랑하라. 이것이야말로 인생에서 유일하고 참된 것이며, 다른 것은 모두 무의미하다. 이 세상에 있어서의 우리들의 일은 오직 이것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P.69)

 

 

  대체 악이란 무엇이며, 선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미워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이며, 또 나는 무엇인가? 살밍란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떠한 힘이 만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하고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서 단 하나의 해답도 얻지 못했다. 오직 하나 해답 같은 것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조차 논리적인 대답은 못 되며, 또 전혀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대답도 아니었다. 그 대답이란. '죽어 버리면 모든 것은 끝난다. 죽으면 모든 것을 알게 되든가, 그러잖으면 이런 의문을 갖지 않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죽는다는 것도 두려운 일이었다.
(P.97)

 

 

  '아무것도 생각해낼 수가 없다.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다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의 지혜의 극한이다.' 그에게는 자기의 내부와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난잡하고, 무의미하며, 혐오스러운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한 이 혐오 속에서 오히려 피에르는 일종의 초조한 기쁨을 발견하고 있었다."
(P.99)

 

 

  "당신의 생각은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고 늙은 조합원은 말했다. "당신이 말씀하시는 사고방식. 말하자면 당신 자신의 지적인 노력에 의해서 생긴 것이라고 자신하고 계시는 그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불과합니다. 오만과 나태와 무지에서 생긴 진부한 결과입니다. 실례의 말씀입니다만, 백작, 만약 내가 당신의 마음을 몰랐다면 이렇게 당신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을 겁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은 슬픈 망상이라는 것이지요."
(P.102)

 

 

  "나는 젊음과 정력이 넘쳐 있는 동안에 충분히 나의 자유를 향락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는 혼잣말을 했다.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는 행복의 가능성을 믿지 않으면 안 된다고 피에르가 말한 것은 진리다. 나도 지금 그것을 믿는다. 죽은 자와 죽은 자로 하여금 매장케 하란 말이다! 하지만 생명이 있는 한은 살아서 행복해져야 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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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 박형규 / 범우사 / 504쪽
(2014. 11. 13.)

 

 


  <전쟁과 평화>는 <안나 카레니나>와 함께 톨스토이 문학의 최대 걸작이자 톨스토이 예술의 극치를 이루는 작품으로서 전 세계 문예비평가나 톨스토이 연구가 그리고 문학 애호가의 바이블적인 일대 로망이다. 또한 <전쟁과 평화>는 그 양이나 질 제재의 스케일에 있어서도 세계 문학 가운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나 견줄, 근대 유럽 문학 최대의 예술 작품으로 헤아려지는 서사시적 대하소설이다.
  즉, 로망 롤랑이 말한 바 '19세기의 전(全) 소설계에 군림하는 거대한 기념탑'이자 '근대의 <일리아스>'이며, 그 구성으로 보아 아마 오늘날까지 씌어진 작품 가운데서 최대의 군중 소설이며 서사시일 것이다.
(P.5)

 

 

  피에르는 안드레이 공작을 온갖 완성된 것의, 그것도 그 전형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안드레이 공작이 피에르가 갖고 있지 못한 모든 자질을 가장 완전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질을 한만디로 말한다면 의지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온갖 계급의 사람을 침착하게 응대할 수 있는 능력, 비범한 기억력, 박학 - 그는 많은 책을 독파하고 온갖 사상에 밝고, 온갖 세상에 대하여 식견을 갖고 있었다. - 그리고 또 무엇보다도 귀중한 노동과 연구의 능력, 이러한 안드리에 공작의 자질에 대해 피에르는 경이의 눈을 돌리고 있었다. 또 자주 안드레이 공작의 공상적, 철학적 능력 - 피에르는 특히 이러한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 의 결여라는 것이 피에르 놀라게는 했지만 그는 그것을 단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힘이라고 까지 느끼고 있었다.
(P.56)

 

 

  아무리 사이가 좋고 아름답고 흉허물 없는 관계라 해도 아첨이라든가 찬사라는 것은 수레바퀴의 움직임에 기름이 필요한 것처럼 역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P.57)

 

 

  니콜라이 안드레예비치 볼콘스키의 지놀넹 의하면, 모든 인간 악행의 근원은 두 가지인데 그것은 즉 게으름과 미신이며, 또한 마찬가지로 미덕에도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활동과 지능이라는 것이다. 이 두 주요한 덕성을 딸의 내부에서 발달시키기 위해 스무살까지 그녀에게 대수와 기하를 가르치고 그녀의 생활 전체를 끊임없는 공부에 바치게 해왔던 것이다.
(P.157)

 

 

  출발을 앞두고 생활에 변화가 일어날 때에는, 자기의 행위를 신중하게 고려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흔히 진지한 사색적 기분에 젖는 법이다. 이런 경우에는 대체로 과거가 검토되고, 미래의 계획이 세워진다. 안드레이 공작의 얼굴은 몸시 명상적이고 부드러워 보였다. 그는 뒷짐을 지고 앞을 바라보면서 구석에서 구석으로 방안을 거닐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머리를 내저었다.
  전쟁에 나가는 것이 두려운지, 그렇잖으면 아내를 두고 가는 것이 슬픈지, 아마도 그 양쪽 모두였으리라. 복도를 걷는 무서운 발소리가 귀에 들리자, 그는 자기가 이런 상태에 있는 것을 보이고 싶지 않은 듯 허둥지둥 뒷짐 진 손을 풀고 마차 돈궤의 덮개를 덮고 있는 체하면서 탁자 옆에 발을 멈추고, 여느 때처럼 침착하고 헤아리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P.183)

 

 

  니콜라이 로스토프는 얼굴을 돌려 마치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처럼 먼 경치며, 도나우 강물이며, 하늘이며, 태양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보였다. 어쩌면 저다지도 푸르고 고요하고 깊을까! 그리고 저물어 가는 태양은 어찌 저다지도 휘황하고 장엄할까! 저 멀리 있는 도나우의 강물은 어찌 저다지도 부드러운 빛으로 반짝이고 있을까! 또 멀리 도나우 강의 저쪽에 검푸르게 바라보이는 산들, 수도원, 신비에 잠긴 계곡, 나무 끝까지 안개가 낀 소나무 숲, 이러한 것들은 더 한층 훌륭했다...... 거기에는 고요와 행복이 가득 차 있었다...... '만약 내가 거기에 있을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텐데' 하고 로스토프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 개인과 그리고 저 태양 가운데에는 그지없는 행복이 있다. 그런데 여기는...... 신음과 고통과 공포와 그리고 이모호한 분위기, 허둥거리는 듯한 기분...... 글쎄, 또 무엇인가가 소리 지르고 있다. 그리고 다시금 모두들 뒤쪽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나도 그들과 함께 달려간다. 아아, 바로 저것이, 저것이, 매 머리 위와 나의 주위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그렇다, 죽음이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이제 이 태양도, 이 강물도, 이 골짜기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P.258)

 

 

  '나는 누구에게도 필요 없는 인간이다!'하고 로스토프는 생각했다. '누구 한 사람 도와주는 사람도, 가엾게 여겨 주는 사람도 없다. 전에 집에 있을 때에는 건강하고, 쾌활하고,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은 적도 있었건만' 하고 그는 한숨 쉬었다. 그리고 한숨과 더불어 저절로 신음 소리가 나왔다.
  "아니 어디 아프십니까?" 하고 병사가 불 위에다 셔츠를 털면서 물었다. 그리고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기침을 하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오늘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로스토프는 병사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불 위를 이리저리 날고 있는 눈송이를 보면서 러시아의 겨울...... 따뜻하고 밝은 집, 푹신푹신한 털외투, 쏜살같은 썰매, 건강한 몸, 가족의 애정과 걱정,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아, 무엇 때문에 나는 이런 곳에 왔을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P.342)

 

 

  보리스는 이 순간 자기가 접하고 있는 인간이 최고 권력의 존재인 것을 알자 가슴이 울렁거리 것을 느꼈다. 그는 자기가 연대에 있을 때, 자기도 보잘것없는, 온순하고 부질없는 한 부분으로 느끼고 있던 그 거대한 집단의 움직임을 모두 좌우하고 있는 원동력, 그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직접 접촉하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는 것이었다.
(P.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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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장하준 / 김희정 / 부키 / 368쪽
(2014. 11. 09.)

 

 

 

  이 책이 반자본주의 성명서는 아니다.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고 해서 자본주의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수많은 문제점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좋은 시스템이라고 믿는다. 그저 지난 30여 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특정 자본주의 시스템, 즉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싶을 뿐이다. 자유 시장 체제가 자본주의를 운영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며, 지난 30년 동안의 성적표가 말해 주듯 최선의 방법은 더더욱 아니다. 이 책은 자본주의를 더 나은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만들 방법이 있음을 보여 준다.
(P.14)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고 내가 말하는 '경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서,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요구하는 데에는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날마다 전문적인 지식 없이 온갖 종류의 판단을 내리고 있다.
  주요 원칙과 기본적인 사실을 알고 나면 상세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단, 한 가지 전제 조건은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씌워 놓은 장밋빛 색안경을 벗어 달라는 것이다. 이 색안경을 쓰고 보면 온 세상이 단순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이제 안경을 벗고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 보자.
(P.15)

 

 

  자유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시장에는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종의 규칙과 한계가 있다. 시장이 자유로워 보이는 것은 단지 우리가 그 시장의 바탕에 깔려 있는 여러 규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규제로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규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방법도 없다. 자유 시장은 정치적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이 정부의 정치적 개입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정부는 언제나 시장에 개입하고 있고, 자유 시장론자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이다. 객관적으로 규정된 자유 시장이 존재한다는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야 말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다.
(P.19)

 

 

  일반적으로 '성장을 촉진하는 부자들을 위한 정책', 그리고 '성장 감소를 부르는 빈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의미를 양분해서 말을 하는데, 실제로 부자들을 위한 정책은 지난 30년의 세월 동안 성장을 가속화사는 데 실패했다. 따라서 부자들에게 더 큰 파이 조각을 주면 결국에는 전체 파이가 커진다는 트리클다운 이론의 첫 번째 단계는 설득력이 없다. 또 두 번째 단계, 즉 윗부분에서 창출된 보다 큰 부가 아래로 흘러내려 결국 가난한 사람들에게 스며든다는 이른바 트리클다운 현상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트리클다운 현상이 조금식 일어날 수는 있으나 그것을 시장에 맡겨 두면 그 효과는 미미하기 때문이다.
(P.184)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이유는 그곳에 사는 개개인의 기업가적 에너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기업가적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들이다. 부자나라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기업가적 에너지를 집단적 기업가 정신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 덕분이다.
(P.219)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각각의 개인(과 기업)들은 다른 누구와 소통없이 제각기 따로따로 어떤 결정을 내리지만, 이런 각각의 결정들은 누가 일부러 나서서 조정하지 않아도 서로 조화를 이룬다고 본다. 그들은 바로 이것이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상징되는 자유 시장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경제 주체들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의 어법에 따르면, 어떤 한 경제 주체가 '합리적'이라는 의미는 그가 자기 개인의 현 상황과 이를 개선하는 방법을 다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P.224)

 

 

  교육은 소중하다. 그러나 교육의 진정한 가치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잠재력을 발휘하고 더 만족스럽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 경제를 발전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교육을 확장하면 크게 실망할지도 모른다. 교육과 국민 생산성 사이의 연관성이 약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교육에 대한 과도한 열의는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생산적인 기업과 그런 기업을 지원할 제도를 확립하는 데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
(P.250)

 

 

  기회의 균등은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물론 훌륭한 성과를 올린 사람은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한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아이가 배가 고파서 수업 시간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면 선천적으로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성적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공정한 경쟁이 되려면 그 아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배불러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집에서는 생계비 지원을 받아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학교에서는 무료 급식을 통해 밥을 굶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 기회의 균등이 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의 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부모가 아이를 굶기지 않을 정도로는 돈을 벌 수 있어야 그 아이도 같은 조건에서 다른 아이들과 경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P.276)

 

 

  좋은 경제 정책을 수행하는 데 좋은 경재학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경제를 가장 잘 운영한 경제 관료들은 대부분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었다.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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