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대한 개츠비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 김영하 / 문학동네 / 252쪽
(2013. 05. 31.)
디카프리오 주연의 <위대한 개츠비>가 개봉하면서 영화 덕분에 인터넷 서점들에선 여러 출판사에 출간된 개츠비들이 사은품을 덧붙여 50% 할인된 가격에 판매되고 있어서 이 책을 구매하기에 요즘이 아주 절호의 찬스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이유는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 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상실의 시대>에서 아래 내용을 읽고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싶어 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싶다.
"열여덟 살의 나에게 최고의 책은 존 업다이크의 <켄타우로스>였는데, 몇 번 되풀이해 읽는 사이에 그것은 처음의 광채를 약간씩 잃게 되었고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게 베스트 원 자리를 내놓게 되었다.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는 그 후 줄곧 내게는 최고의 소설로 남아 있었다.
나는 마음이 내키기만 하면 책꽂이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 부분을 오랫동안 읽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는데, 단 한번도 실망을 맛본 적이 없었을 만큼 단 한 페이지도 시시한 페이지는 없었다. 이렇게 멋진 소설이 또 있을까 싶었다."
내가 처음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민음사'에서 나온 책이 이었는데, 생각보다 상실의 시대의 주인공만큼 많은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역시 나의 문학적 감수성은 아직 미약한 것일까 잠깐 자괴감에 빠졌다가 바로 잊고 있었는데…….
어느날 소설가 김영하님의 팟케스트를 듣다가 김영하님께서 직접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다는 얘기를 듣고 언젠가는 꼭 사서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요즘처럼 아주 저렴하게 개츠비가 판매되는 절호의 찬스에 그동안 눈으로 찍어 놓았던 문학동네 "위대한 개츠비"를 구매하고 단숨에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번역이란 창작과도 같아서 번역가에 따라 그 느낌이 다 달라질 수 있고, 어느 번역이 틀린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개성이 반영된 또 다른 하나의 문학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소설을 쓰시는 분이 번역한 것이라 그런건가, 민음사 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느낌들이 나를 뒤엎어 버렸다. 비록 번역본이긴 하지만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문장 속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감동 그 자체였다…….
아직 3/2밖에 읽지를 못했는데도 좋아하는 구절을 표시하는 포스트잇이 책 옆면에 가득 차 넘쳐다고 있다. 드디어 상실의 시대 주인공의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지금보다 어리고 민감하던 시절 아버지가 충고를 한마디 했는데 아직도 그 말이 기억난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서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버지의 말이 훨씬 더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따. 그런 식으로 우리부자는 말 한 마디 없이도 서로의 뜻을 이상하리만치 잘 알아차리곤 했다.
(p. 11)
인간의 개성이라는 게 결국 일련의 성공적인 제스처라고 한다면, 그에겐 정말 대단한 것이 있었다. 1만 마일 밖의 흔들림까지 기록하는 지진계처럼 그는 인생에서 희망을 감지하는 고도로 발달된 촉수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민감성은 '창조적 기질'이라는 미명하에 흔히 미화되고 하는 진부한 감성과는 차원이 달랐다. 희망, 그 낭만적 인생관이야말로 그가 가진 탁월한 천부적 재능이었으며, 지금껏 그 누구도 갖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성질의 것이었다. 아니, 결국 개츠비는 옳았다. 인간들의 설익은 슬픔과 조급한 기고만장에 대해 내가 잠시나마 관심을 일게 되었던 것은 개츠비를 삼킨 것들, 그리고 개츠비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부유하는 더러운 먼지들 때문이었다.
(p. 13)
"너무 행복해서 몸이 마, 마비돼버렸어."
그녀는 대단히 재치 있는 말을 했다는 듯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나를 올려다보며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늘 이런 식이었다. 그녀는 귓속말로, 턱으로 균형을 잡고 있는 여자의 이름이 베이커라고 속삭였다(데이지가 귓속말을 하는 건 사람들을 자기 쪽으로 가까이 오게 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말도 안 되는 험담이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그 귓속말의 매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p. 20)
그가 사려 깊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사려 깊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긴 미소였다. 그것은 변치 않을 확신이 담긴, 일생에 네다섯 번쯤밖에 마주치지 못할 특별한 성질의 것이었다. 잠깐 전 우주를 직면(혹은 직면한 듯)한 뒤, 이제는 불가항력적으로 편애하지 않을 수 없는 당신에게 집중하고 있노라는 그런 미소였다. 당신이 이해받고 싶은 바로 그만큼을 이해하고 있고, 당신이 스스로에 대해 갖고 있는 믿음만큼 당신을 받고 있으며, 당신이 전달하고 싶어하는 호의적 인상의 최대치를 분명히 전닯다았노라 확신시켜주는 미소였다. 그리고 바로 그순간, 그 미소는 홀연 사라져버렸다.
(p. 65)
빵빵대는 클랙슨 소리는 크레셴도로 커져만 가고, 나는 몸을 돌려 잔디밭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했다. 나는 뒤를 힐끗 돌아다보았다. 웨이퍼 과자 같은 달이 개츠비 저택을 비추고 있었다. 달빛은 아직 훤한 개치비네 정원의 소음과 웃음소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밤을 밝히고 있었다. 갑자기 창문과 커다란 문으로부터 공허함이 넘쳐나, 포치에 선 채 정중히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집주인의 실루엣에 완벽한 고독을 더했다.
(p. 74)
거대한 다리를 통과하는 동안, 대들보 사이를 통과한 햇빛이 지나가는 자동차들 위에서 쉴 새 없이 번쩍거렸고, 다리 건너로는 흰 각설탕 더미처럼 생긴 도시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냄새 없는 돈으로 지어 올리려는 소망으로 빚어진 도시가. 퀸스버러 다리 위에서 보이는 뉴욕은 처음 보는 이에게는 언제나 세상의모든 신비와 아름다움, 그것에 대한 최초의 담대한 예언처럼 느껴진다.
(p. 88)
그곳에 앉아 그 옛날 미지의 세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가 문득 개츠비가 데이지네 집의 잔교 끝에서 빛나는 초록색 불빛을 처음 찾아냈을 때의 놀라움에 생각이 이르렀다. 바로 이 파란 잔디밭까지 오기까지 그는 참으로 먼 길을 돌아왔다. 이제 그의 꿈은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있었다. 그는 몰랐다. 자신의 꿈이 어느새 자기 등 뒤에, 저 뉴욕 너머의 혜량할 수조차 없는 불확실성 너머, 밤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미국의 어두운 들판 위에 남겨져 있었다는 것을.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에게서 멀어지기만 하는 황홀한 미래를. 이제 그것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뭐가 문제겠는가.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리고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러면 마침내 어느 찬란한 아침...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 새 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p. 224)
==================================================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사상사) 중에서
열여덟 살의 나에게 최고의 책은 존 업다이크의 <켄타우로스>였는데, 몇 번 되풀이해 읽는 중에 그것은 처음의 광채를 약간씩 잃게 되었고,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게 베스트 원의 자리를 양보하게끔 되었다.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는 그 후 줄곧 내게 있어서는 최고의 소설로 지속되었다.
나는 마음이 내키기만 하면 책꽂이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 부분을 한바탕 읽는 것이 습관처럼 돼 있었는데, 단 한 번도 실망을 맛본 적이 없었을 만큼 단 한 페이지도 시시한 페이지는 없었다. 이렇게 멋진 소설이 또 있을까 싶었다.
어느 날 내가 식당의 양지쪽에서 볕을 쬐며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있자니까, 옆에 와 앉아서 무엇을 읽느냐고 물어 왔다. <위대한 개츠비>라고 말했더니 재미있냐고 물었다. 훑어 읽는 건 세 번째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가 있다고 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하고 그는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듯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는 나 같은 건 따라잡을 수도 없을 정도로 굉장한 독서가였는데, 죽어서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원칙적으로 손도 대려고 하지 않았다.
"현대 문학을 신용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다만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것을 읽느라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지. 인생은 짧아."
"나가사와 선배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지요?"
"발자크, 단테, 조셉 콘래드, 디킨스"하고 그는 막힘없이 잘도 대답했다.
(p.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