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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ㅣ 에를렌뒤르 형사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이기원 옮김 / 영림카디널 / 2023년 10월
평점 :
"저 사람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군요." 에를렌두르가 말했다.
"저 사람은 여기서 그냥 도어맨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시내의 큰 호텔 지하방에서 칼로 난도질당한 시체가 발견된다.
그는 이 호텔의 도어맨이자 산타였다.
20년 넘게 호텔에서 살면서 도어맨으로, 각종 수리를 도맡아 한 잡역부로, 크리스마스엔 산타 할아버지로 분장해왔던 그 사람에 대해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인지...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이렇게 쓸쓸했던 적이 없다.
한때는 보이 소프라노로 어린이 스타였던 구드라우구르.
가장 눈에 띄는 모습으로 일했지만 아무의 눈에도 띄지 못한 남자.
크리스마스라는 시기가 한 남자의 죽음을 더 외롭게 만든 <목소리>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를 자신의 욕심으로 키워낸 아버지.
멋진 목소리를 가진 아이는 큰 공연장에서 그만 '늑대 목소리'가 되고 만다.
12살 어린 나이에 최고의 자리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아이.
그런 아이에게 실망한 모습만을 보여준 완고한 아버지.
아들의 비밀을 알게 된 아버지는 아들과 언쟁을 벌이다 그만 계단에서 떨어져 불구가 된다.
그 뒤로 아들은 집을 떠나고 서로 연락조차 하지 않고 지낸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슬픔을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마음엔 어떤 감정이 담겨있을까?
심하게 폭행당한 아들을 발견한 아버지는 학교폭력으로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직감적으로 아이의 아빠를 의심한다.
처음엔 완강히 부인하던 아이의 아빠는 묵비권을 행사하고, 그 와중에 아이는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운다.
이 이야기의 반전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어린 시절 눈 속에서 동생의 손을 놓친 어린 형은 혼자만 구조되었다.
어린 아들들을 데리고 산을 올랐던 아버지는 산속에 남겨진 아들을 찾지 못한 그날 이후부터 다른 사람이 되었다.
혼자 구해진 아이는 홀로 그 죄책감과 고통을 감내하며 형사가 되었다.
아직도 그에게는 어린 동생의 훌쩍임이 들린다...
고질적인 아버지와 아들들이 등장하는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목소리>
배경이 크리스마스 시기여서 그런지 피해자의 삶이 더 외롭게 느껴졌다.
게다가 곁가지로 들려주는 또 다른 아버지들과 아들들의 이야기 역시 가슴에 돌덩어리 하나를 얻어 놓은 듯하다.
어린 시절의 죄책감을 이고지고 살아온 에를렌두르의 삶은 거기서 멈춰 있었다.
변성기로 인해 아름다운 목소리를 잃어버린 구드라우구르처럼...
각자 어른이 되지 못한 소년들.
한 사람은 살해되고, 한 사람은 범인을 쫓는다.
그렇게 오래된 상처는 들춰지고, 헤집어지고, 풀어내진다.
에를렌두르의 메가리 없는 캐릭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전작 <저주받은 피>에서처럼 사소한 단서를 가지고 깊게 파내려 가 단순해 보였던 사건에서 깊디깊은 과거의 행적을 파헤쳤던 에를렌두르는 이번 <목소리>에서는 사건을 파고드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더 많이 파고든 거 같다.
웬일인지 이번에는 에를렌두르 보다 시구르두르와 엘린보르그의 활약이 더 돋보였다.
아이슬란드는 지나치게 들뜨지도, 지나치게 모험적이지도 않은 나라여야 한다.
아이슬란드 스릴러 독특한 매력이 있어 좋은데.
거 이름들, 고유명사들, 정말 어렵다~ 어려워~
술~술~ 읽다가 이름이나 고유명사 나올 때마다 한 글자 한 글자씩 곱씹어야 함.
진짜 여러모로 먼~ 나라 아이슬란드.
그러기에 그 독특한 분위기가 매력으로 느껴지나 보다.
가 본 적 없지만 아이슬란드의 독특한 문화와 생활, 사람들의 생각들을 알 수 있어서 재밌는 시리즈다.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목소리>를 읽으며
가족들 중 소외당하고 주목받지 못한 사람이 있는지 살펴봤으면 좋겠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옛 어른들 얘기는 모든 자식들에게 골고루 사랑을 준다는 뜻으로 해석되지만
깨물어 보면 압니다. 덜 아프거나 더 아픈 손가락이 있게 마련이라는걸.
모름지기 더 아픈 손가락에 주의를 기울이는 게 정석.
이제는 덜 아픈 손가락에도 관심을 기울여주자.
그게 바로 이 <목소리>에 담긴 보이지 않는 메시지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