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이자 제 개인적으로는 친구의 아버지이기도 한 조세희 선생님이 오늘(2022.12.25) 7시 20분경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 문학하는 이들이라면, 또 문학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선생님의 인품과 작품으로부터 영향 받지 않은 이가 없을 줄 압니다. 선생님은 2011년의 한 문학 강연자리에서 자신에 대해 ‘송장세대’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불의한 체제에 맞서 싸웠으나 이제는 분노할 힘마저 부족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노하라고 하는데 힘이 있어야 분노를 하는 것”이라며 “지금은 분노할 힘조차 없다.” 그럼에도 “20대들은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라. 냉소주의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 공동의 일, 공동의 숙제를 해낼 수가 없다. 냉소주의는 우리의 적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당신은 강연 말미에 철학자 야스퍼스의 말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연대감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잘못된 일과 불의, 특히 그 앞에서 그가 알고 있는 가운데 저지른 범죄행위들을 책임지게 되는 것이다. 악을 저지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때 나는 그것들에 대한 책임을 나눠 지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세상의 아픔과 더불어 점점 깊어가는 지병으로 고통받아 오셨습니다. 이제 오랜 고통에서 벗어나 평안을 찾으시길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ㅠ..ㅠ

[訃告] 故 조세희님께서 별세 하셨기에 아래와 같이 부고를 전해 드립니다. ▶故 조세희님 부고◀ https://samga.co.kr/obituary.do?bn=292485 황망한 마음에 일일이 연락드리지 못함을 널리 혜량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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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12-26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어제 좀 바빠 여기 못 들어왔는데 이런 소식을 접하다니 정말 황망하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바람구두 2022-12-27 10:01   좋아요 0 | URL
ㅠ..ㅠ

감은빛 2023-01-02 2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요일 밤에 지인의 기자 친구로부터 소식을 듣고 순간 아무 생각이 안 들더라구요.
함께 조촐한 송년회를 갖고 있던 지인들 모두 갑자기 숙연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저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 외에 뭐라 보탤 말을 못 찾겠네요.
 

저는 사람들에게 계획을 세울 때,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단기적인 계획과 나를 단련시켜줄 수 있든 중·단기 계획을 함께 세우라고 조언합니다.

 

예를 들어 단기적인 계획이란 오늘 저녁에 뭐 먹지?’ 또는 평소 같으면 약간의 죄책감이 들어서 선뜻 구매하기 어려웠던 나를 위한 선물을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는 거죠. 저는 이번에 책을 내고 나서 그동안 수고한 저를 위해 건프라(라는 장난감 피규어) 몇 종을 구입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중·장기 계획은 지난 번 모임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짧게는 6개월 단위 공부 계획이나 2, 3년짜리 공부 계획 같은 것을 세우는 것입니다. 왜 공부 계획을 최소 6개월 단위로 짜느냐면 그래야 포기하지 않게 되고, 내가 목표로 세운 계획에 다소 미달하게 되더라도 나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저는 지난 상반기에 문화콘텐츠스토리텔링에 관한 공부에 집중했고(물론 이 공부를 올해 갑자기 했단 의미는 아닙니다. 제 전공 분야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공부를 해나가는 와중에 예술과 철학(또는 미학)에 대한 3~4년짜리 공부 계획을 준비해서 조금씩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지금껏 지켜보셨으니 아시겠지만, 3~4년짜리 계획은 매일매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하는 형태로, 자료를 모으고, 관련도서들을 사들이는 일 정도로 하고 있어요.

 

계획이란 건 언제든 변경될 수 있는 것이고, 독학을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지치고, 도망가면 안 되는 공부이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파고들겠다는 마음이 들 때까지 슬슬 저변을 넓혀나가는 공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무모한 생각이란 사실, 좋은 아이디어이지 결코 성취될 수 없는 소망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들을 오늘이나 내일, 이번 달이나 다음 달에 실행에 옮겨야지, 올해나 내년에 당장 하겠다고 마음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마치 버킷리스트처럼 언젠가는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잊지 않는 마음이죠. 그런 마음을 품고 있으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길을 걷다가도, 서점에 갔을 때, 또는 영화를 봤을 때, 문득문득 내가 마음에 품고 있었던 그 생각과 계획들이 떠오르게 됩니다.

 

관련한 공부 책들을 한꺼번에 사면 큰 비용이 들겠지만, 이렇게 생각해두었던 것들을 서점에 갔을 때 발견할 때마다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책을 한두 권씩 쟁여두다 보면 언젠가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마다 펼쳐서 읽게 되거든요. 그런 방식으로 실천하면 지치지 않고, 무리하지 않아도 서서히 내가 정한 방면의 공부가 축적됩니다. 공부에 비약은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비약의 순간은 있지만, 그것은 축적의 결과를 어느 순간 스스로 인지하게 되는 순간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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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광섭은 인생이란 시에서 너무 크고 많은 것을 혼자 가지려고 하면 인생은 무자비한 칠십 년 전쟁입니다. 이 세계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닙니다. 신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낮에는 해 뜨고 밤에는 별이 총총한 더 없이 큰 이 우주를 그냥 보라고 내 주었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사랑하는 딸이 함께 세상의 꽃과 별, 우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중한 존재로 느끼길 바란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사랑에는 사랑으로, 신뢰에는 신뢰만으로 나눌 수 있는 세상에서 살 수 있길 바란다. - 전성원, 길 위의 독서서문 중에서

 

사람은 살면서 이런 입장에도 서보고 저런 입장에도 서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공부란 낯선 삶을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갈등을 경험하게 되고, 수많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결국 그 무수한 선택이 한 인간의 삶을 만든다. 그런데 갈등의 상황에서, 딜레마적인 상황에서 한 인간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은 결국 관점에서 나온다.

 

영감님은 나에게 항상 남이 잘 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사람이 잘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이 잘 되기 위해선 남을 짓밟고 앞서는 길이 있을 테고, 그와 반대로 남이 잘 되게 해서 더불어 잘 되는 길도 있을 게다. 그 목표를 선택하는 것도 각자의 몫이고, 그 목표에 이르는 길도 다양하겠으나 누구든 그가 잘 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도움과 조력, 관계의 힘이 작동한다. 우리는 때로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기도 하지만, 때로 전연 기대하지 않았던 이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북풍한설이 몰아쳐야 소나무가 푸른 것을 알게 되듯, 고난과 시련의 시기에 이르면 내 주변에 누가 참이고 거짓인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참인지 거짓인지 헤아리기 위해 시간을 쏟고 공을 들이는 것은 나로서는 참으로 부끄럽고, 허망한 일이다. 그 시간에 도리어 내가 남이 잘 되도록 도와주는 데 시간과 공을 들이는 편이 자신을 위해서도 훨씬 나은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이 말과 글로는 사람을 얼마든지 속일 수 있지만, 행동으로는 속일 수 없다고 때때로 말한다. 앎이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문화적 실천이라고 했을 때, 인생을 무자비한 칠십 년 전쟁으로 허비하기 보다는 세상의 꽃과 별, 우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중한 존재로 느끼며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그래서 이번 책의 저자 서명에는 하늘의 별과 들판의 꽃을 바라보며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이란 말을 적고 있다. 내 책이 나왔기에 내 책과 독자들에 대한 성의를 다하기 위해 당분간 노력하겠으나 본래 내가 하던 일, 누군가 펴낸, 한 땀 한 땀 공들여 써내려 간, 좋은 책을 성실하게 읽는 일도 멈추지 않아야겠다. 어차피 이 차가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 정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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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김담 외, 고성과 나 고성을 여행하는 일곱 가지 방법, 고성문화재단, 2022.

 

어머니에 대해 말하려는 자가 모성과 여성의 문제를 어찌 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진 시대인 것처럼 고향에 대해 말하려는 자들은 주둥이가 노란 자()’, 다시 말해 촌스러운 향토주의로 비판받을지 모를 위험을 넘어서야 한다. 어머니에 대해 말하려는 자일수록 처지(處地)가 곤란할 수 있듯, 고향에 대해 말하려는 자들 역시 난처(難處)할 수밖에 없다. 많이 배운 자, 처지가 괜찮은 자들은 때때로 그 곤란과 난처의 문제를 자신의 입장에서 손쉽게 정치적 올바름으로 치환하고 재단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만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마음속에 어른이 없다는 말을 자주해왔고,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말도 자주 했다. 실제로 처한 현실이 그러했다. 어려서 바라본 어른의 세계는 갱스터나 마피아들과 진배없었고, 고향으로 삼을 만한 곳은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돌아서면 어느 샌가 모두 파헤쳐져 사라지고 없었다. 고성과 나는 강원도 고성이라는 작은 군(), 이 책의 공동저자 중 한 명인 김담 선생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다.

 

고성은 어떤 곳입니까? 제가 어느 강연에서나 고성군을 이야기할 때면 휴전선과 38선 사이에 놓인 군()이라고 말씀드리곤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질문을 드립니다. 비무장지대 철책 즉 남방한계선 철책은 언제 쳐졌을까요? (……) 군사분계선인 휴전선은 서쪽으로 예성강과 한강 어귀의 교동도(喬桐島)에서부터 개성 남방의 판문점을 지나 중부의 철원금화를 거쳐 동해안 고성의 명호리에 이르며 1292개의 말뚝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인천과 고성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고성과 나의 묘한 인연은 현재 강원도 고성에 살면서 고성문화재단이 펴낸 이 책을 책임 편집한 온다프레스 대표 박대우 씨가 나와 함께 한때 황해문화를 만든 후배 편집자였다는 것이고, 다른 인연은 내 책 길 위의 독서를 만들어준 정선우 편집장도 고향이 고성이라는 거다. 그런 실낱같은 인연들 덕분인지 몰라도 고성인천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낯설지 않은 고장이고, 어쩐지 정겨운 곳이다.

 

내 나름대로 인천에 품은 애정과 고마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엔가 나는 또 외지(外地)에 살다가 인천에 온 사람이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지역에서 태어나 이 땅에서 자라난 이들이 켜켜이 쌓아온 추억의 무게가 나에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인천에서 아이들과 뛰어 놀았던 뒷골목이 없고, 으슥한 곳을 찾지 못해 환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첫사랑의 손목을 부끄럽게 거머쥔 기억이 없다.

 

지역을 가리키는 여러 말이 있다. 지역지방 같은 말도 있지만, 공간(space)과 장소(place)란 표현도 최근에는 많이 사용한다. ‘공간(Space)’이란 말은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를 뜻하는 단어인 반면 플레이스(Place, 장소)’우리가 살고 머무는 장소, 인간화된 공간(Humanized Space)’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삶을 통해 여러 공간을 만나게 되지만, 공간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어 이야기를 전하지 않는 대신, 공간에 머물다 떠난 사람들에 의해 그 장소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를 전달한다. 공간은 짧던 길던 그 곳에 머물다 지나간 사람들에 의해 '장소'가 된다. 공간에 대한 스토리가 탄생하고 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의미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드라마 <모래시계> 이전의 정동진역은 무명의 간이역에 불과했지만, 드라마의 감동을 마음에 품은 이들에게 정동진역은 깊은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변화한다. 공간에 대한 스토리텔링에 따라 특정 공간에 대한 의미가 생기고, 이 공간에서 창조된 이야기(Story)를 통해 특정 공간은 다른 외지인들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의미를 새롭게 창조하게 된다. 이제 드라마 <모래시계>를 보고 그 감동을 찾아 정동진을 찾는 사람은 드물지만, 대신에 그 공간에서 연인과 함께 신년 해돋이를 보았거나 가족과 함께 즐겨 찾게 되면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발걸음, 재미있고 신선한 것을 찾아 이동하는 관광객의 발걸음은 그곳에서 정주하는 이들의 손때 묻은, 웅숭깊은 삶의 이야기와 충돌할 때가 있다. 인간의 길이 자연에 깃들어 살고 있는 생명에게는 멸절의 길이 되듯, 역사가 말할 수 있는 자들, 강자들이 의미 있다고 판단하는 이야기이듯 지도 역시 그들의 편의와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다. 세상에는 지도에는 없는, 수많은 길들이 있고, 문화는 이와 같은 길의 다채로운 이름들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것을 알고자 하지만, 머무는 자들은 그 길의 이름을 쉽게 내어주려고 하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으면 말이다.

 

우리 동네에는 건봉령이라는 고개가 있습니다. 다들 진부령, 미시령, 소파령은 알지만 건봉령은 처음 들어보셨을 겁니다. 건봉령은 인제, 양구를 거쳐 서울 가는 길로 연결되는, 아는 사람들은 아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런 길은 지금 지도에는 없습니다. , 제가 사는 송강리에서 화진포로 가는 길도 하나만 있지 않습니다. 어느 마을에나 이웃마을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고개들이 있지 않습니까. 옛날 사람들은 그 길마다 다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를테면 원당고개, 자진고개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지역마다 비온 뒤 죽순 자라는 격으로 많은 문화재단들이 생겼고, 저마다 내 고장을 사랑하는 책자를 발간하고, 지역을 자랑하는 문화행사들이 치러진다. 고성과 나역시 그런 책자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간단하게 치부할 수 있다. ‘주둥이가 노란 자들이 국민 세금 가지고 만드는 책놀음에 가까운 책들도 많은데, 이 책은 뭐가 남다른가?

 

나는 가끔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 내 손이 지갑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하곤 한다. 냉정과 합리의 세상에서는 고성에 대해 그 지역이 고향인 사람들, 정주하고 있는 이들의 고향 자랑일 수 있는 책을 굳이 사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다.

 

문제는 그것을 극복하고 구입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것인데, 이 책 고성과 나는 객관적으로도 그 이상을 보여주는 책이다. 지역과 지역문화, 공간 스토리텔링을 고민하는 분들은 물론, 인문학 에세이로서도 탁월한 성취를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들은 낯선 외지인들에게 자신들이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해온 것들을 내어주고 있다. 당신이 이 책을 읽으려는 노력만 기울인다면, 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은, 그 사람들만 아는 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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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후배 편집자가 써온 원고청탁서를 반려시켰다.

 

그동안 꽤 여러 명의 후배들과 함께 일했고, 상당히 많은 편집자들과 작업을 하고, 인연을 맺었다. 황해문화는 수도권이긴 하지만(서울 사람들에게는 서울이 아닌 모든 지역이 외지(外地), 동시에 후지(後地)), 수도 서울이 아닌 인천에서 발간되기 때문에 인력 충원이 어렵다. 그래서 지금껏 나와 일한 이들 대부분은 경력이 전혀 없었다. 전공도 제각각이었다. 아주 드물게 경력 있는 후배를 만나 일하기도 했지만, 내가 누군가의 선배로서, 직장상사로서 제대로 된 트레이닝을 받은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편집장을 맡은 초창기에 만난 후배들은 무능한 ’, 아직 경험이 일천한 선배 사수 때문에 고생했다.

 

사람들은 편집자란 직업이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란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불리는 직업의 이면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일이 있는지, 각기 다른, 많은 전문성이 요구되는지, 다시 말해 이들이 서로 얼마나 다른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지, 실제로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인지 사실 잘 알지 못한다. 어쩌면 독자들은 굳이 알 필요가 없다.

 

편집자는 책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인문학 전문 편집자, 사회과학 전문 편집자, 문학, 역사, 경제, 의학 및 과학, 경영 등 실용서 편집자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영역이 있으며 어린이책, 그림책, 사진책으로 가면 거의 큐레이터가 되어야 한다. 때로 출판사 편집자(와 마케터)는 문학평론가들보다 더 중요한 판단을 내린다. 이 작가의 책이 팔릴 것인가? 팔리지 않을 것인가? 또 편집자의 역할 중에서 기획이 점점 더 중요한 업무가 되어가고 있다. 과거엔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인들이 출판사 대표 주변에서 중요한 기획자 역할을 많이 했지만(물론 여전히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과거에 비해 전문기획자의 역할이 더욱 중시되고 있다.

 

기획이 강조되다보니 과거 전통적으로 중시되었던 교정·교열 작업을 손쉽게 외주화로 해결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출판편집자로 시작했다가 결혼 이후 이른바 경단녀가 된 여성 편집자들 중 많은 수가 외주교정자로 일한다. 부끄럽게도 한국에서 뛰어난 경력과 능력과 경험을 가진 여성편집자들이 결혼 이후 경력이 단절된 채 집에서 인형 눈을 박듯, 원고교정을 보면서 한국 출판의 하부구조를 지탱하고 있다.

 

그래서 현업 여성편집자들 중에는 어차피 나도 결혼하면 외주 교정자가 될 텐데, 현직에 있을 때 외주교정자 단가라도 올려주고 나가자는 자조 아닌 한탄을 이야기하곤 한다. 어떤 이들은 판권에 편집자로 이름이 오르지만, 편집과정에 거의 전혀 관여하지 않고, 해외번역서 에이전시 업무만 진행하고 전체 편집 작업을 외주작업자에게 책임 편집이란 형태로 떠맡겨 버리기도 한다. 심지어 책이 나올 때까지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언론사 릴리즈를 위한 보도자료까지 외주자에게 맡긴다.

 

그런가하면 제법 큰 규모의 출판사는 제작 실무를 도맡아 진행해주는 제작 전문가들이 있어서 어떤 편집자들은 종이 발주 내는 법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다. 과거 내가 일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지질은 물론 종목과 횡목까지 따지던 시절에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그만큼 우리 출판이 전문화되는 경향이기도 하지만, 출판계 편집자 중에서 30년 이상 경력의 현업 편집자가 몇이나 있으려나 헤아려 볼 일이다. 만약 훗날 독립해서 출판사를 차릴 생각이라면, 미리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어쨌든 후배를 새로 들이면 몇 가지는 반복해서라도 꼭 가르쳐주려는 교훈이 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늘은 압축해서 세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한다.

 

첫 번째. 일 잘하는 건 기본이다. 일을 잘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건, 일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다.

 

편집자는 협업자이기도 하다. 저자(필자), 디자이너, 제작자, 서점 관계자, 독자 등등과 협업해야만 책이란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신뢰와 배려다.

 

신뢰는 상대로 하여금 나를 믿고 함께 일할 수 있겠다고 믿게 만드는 힘이고, 배려는 작은 친절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상대가 나와 협업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도록 여유를 주고, 동기를 부여해줄 수 있어서 더 높은 수준의 작업 결과물이 도출되도록 할 수 있다.

 

두 번째. 편집자는 의견이 없을 때조차 의견이 있어야 한다.

 

결정적으로 오늘 후배의 원고청탁서를 반려시킨 이유다. 우리는 살면서 모든 상황에 대해 의견을 가질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지만, 편집자는 매 순간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작은 문장 하나, 토씨 하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빼도 무방한가? 살려둬야 하는가? 같은 작은 일로부터 보다 큰 결과까지 책임지고 선택한다. 잡지 편집자에게 있어 원고청탁서란, 단행본 편집자에게 있어 출판기획서와 흡사한 의미를 지닌다.

 

편집회의를 통해 어떤 주제의 원고를 누구에게 청탁할 것인가까지 결정되었다고 해서 바로 원고청탁서를 보낼 수 있고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편집위원이나 기획자가 청탁서까지 써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청탁을 하는지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물론 시나 소설은 그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의도가 반영된다. 그 경우엔 어떤 시인, 어떤 작가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편집진의 메시지가 독자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계간 황해문화2017년 겨울호(통권 97) 같은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편집자는 원고의 모든 내용을 저자나 필자(또는 번역자)보다 더 많이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당신에게 왜 이런 글()을 청탁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또한 편집자의 의견이자 의도이기 때문에 나중에 원고를 받았을 때(PC), 1차 교정 과정에서 저자(필자)에게 편집자의 의도를 의견으로 알려주고, 이에 대한 수정 요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편집자에게 의견이 없다는 것은 의도가 없다는 것이고, 의도가 없다는 것은 식당에 가서 주문한 대로 음식이 나오지 않아도 그냥 주는 대로 받아먹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 그래서 오늘 원고청탁서를 반려시키면서 매정하게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공부하기 싫다면 편집자를 그만 둬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세 번째(병 주고 약 주고). 어느 순간에라도 자신의 호흡을 잃지 말라고, (자기중심)를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

 

편집자가 항상 자신이 열어둔 무대에서 춤추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과 협업하는 과정은 그만큼 다종다양한 스트레스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게다가 저자(내지 필자)들은 대부분 편집자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 있게 마련이다. 요리사가 자신이 상품으로 요리하는 우럭이나 광어로부터 감정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라곤 여간해선 일어나지 않지만, 편집자에겐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책은 잘 되기도 어렵지만, 잘 되면 대부분 저자 덕분이거나 나머지 힘센 자들의 순서대로 그 공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물론, 잘못되면 천하의 역적은 오로지 편집자다.

 

나는 항상 후배 편집자들에게 이곳에서 너의 편은 오로지 나뿐이지만, 심지어 나조차도 네 편이 아닐 때가 있으므로 절대 남을 믿지 말라고 이야기해준다. 네가 네 눈으로 확인한 것만 믿어라. 심지어 내가 내 눈으로 확인한 것도 믿으면 안 되는 자가 편집자다. ? 절대로 내가 지시한 대로 교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제대로 업무 지시를 내렸더라도 상대가 그대로 해준다는 보장이 없다.

 

출판은 이렇게도 봤다가 저렇게도 봤다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보게 된다. 예를 들어 본문 디자인은 세세하게 보면 잘 보이지 않다가도, 멀리서 크게 보면 작은 오류들이 보일 때가 있다. 디자이너들에게 글자 사이를 반각만 띄워달라는 요구를 하는 자들이 편집자이기도 하다.

 

여러 사람들과 일하다보면 각자의 사정이나 상황 심지어 후배 편집자와 나의 문장 감각조차 다르기 때문에 교정은 둘째고, 교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게다가 한국의 문법은 경우에 따라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서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도 경우에 따라 다른 문법 체계를 구사할 때가 있다. 게다가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고집을 가진 필자와 만나기라도 하면 일일이 다 물어봐야 한다.

 

그럴 때마다 혹은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공연히 기죽지 말라고, 후배들에게 해주는 충고가(우선 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순간에라도 자신의 호흡을 잃지 말라고, (자기중심)를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 편집자도 띄어쓰기, 맞춤법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 자신감을 잃어버리면 너무나 뻔히 알고 있는, 심지어 내가 가나다를 제대로 쓰고 있는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있다.

 

가끔 멀찍이 서서 책에서 꼬투리 하나 잡고 즐겁고,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보면서 욕하는 사람들일 때가 많다. 그래도 어찌하랴. 우리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 책을 팔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도 무사히! 프로는 오늘만 살지 않고, 내일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직장인이지 순교자가 아니니까.

 

우리 후배 편집자님은 어제의 실패를 발판삼아 오늘은 여러 자료를 검색하고 공부한 뒤 멋진 원고청탁서를 작성했고, 저도 흔쾌히 잘 하셨다고 칭찬을 드렸습니다. 신입편집자는 나날이 성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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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12-18 1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햐~! 정말 좋은 글이네요.
우리나라처럼 편집자가 홀대 받는 직업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잘되면 작가 탓. 못 되면 편집자 탓이란 말은 예전부터 들어 온 말입죠.
천하의 하루키님도 편집자 말이라면 고개를 숙인다는데
우리나라는 언제쯤이면 편집자가 대우 받는 시절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든든하게 버텨주시는 바람구두님 같으신 분들이 계시니
언젠간 그날이 오겠죠. 편집자 홧팅입니다!
그 신입편집자 승승장구하면 좋겠네요. 외로워도 슬퍼도...^^

바람구두 2022-12-18 21:39   좋아요 1 | URL
^^ 후배들에게 1년만 기다리면 더 이상 야단 맞을 일이 없을 거고, 3년이 지나면 도리어 날 타박하게 될 거라고 이야기해주곤 합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