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김담 외, 고성과 나 고성을 여행하는 일곱 가지 방법, 고성문화재단, 2022.

 

어머니에 대해 말하려는 자가 모성과 여성의 문제를 어찌 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진 시대인 것처럼 고향에 대해 말하려는 자들은 주둥이가 노란 자()’, 다시 말해 촌스러운 향토주의로 비판받을지 모를 위험을 넘어서야 한다. 어머니에 대해 말하려는 자일수록 처지(處地)가 곤란할 수 있듯, 고향에 대해 말하려는 자들 역시 난처(難處)할 수밖에 없다. 많이 배운 자, 처지가 괜찮은 자들은 때때로 그 곤란과 난처의 문제를 자신의 입장에서 손쉽게 정치적 올바름으로 치환하고 재단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만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마음속에 어른이 없다는 말을 자주해왔고,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말도 자주 했다. 실제로 처한 현실이 그러했다. 어려서 바라본 어른의 세계는 갱스터나 마피아들과 진배없었고, 고향으로 삼을 만한 곳은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돌아서면 어느 샌가 모두 파헤쳐져 사라지고 없었다. 고성과 나는 강원도 고성이라는 작은 군(), 이 책의 공동저자 중 한 명인 김담 선생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다.

 

고성은 어떤 곳입니까? 제가 어느 강연에서나 고성군을 이야기할 때면 휴전선과 38선 사이에 놓인 군()이라고 말씀드리곤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질문을 드립니다. 비무장지대 철책 즉 남방한계선 철책은 언제 쳐졌을까요? (……) 군사분계선인 휴전선은 서쪽으로 예성강과 한강 어귀의 교동도(喬桐島)에서부터 개성 남방의 판문점을 지나 중부의 철원금화를 거쳐 동해안 고성의 명호리에 이르며 1292개의 말뚝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인천과 고성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고성과 나의 묘한 인연은 현재 강원도 고성에 살면서 고성문화재단이 펴낸 이 책을 책임 편집한 온다프레스 대표 박대우 씨가 나와 함께 한때 황해문화를 만든 후배 편집자였다는 것이고, 다른 인연은 내 책 길 위의 독서를 만들어준 정선우 편집장도 고향이 고성이라는 거다. 그런 실낱같은 인연들 덕분인지 몰라도 고성인천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낯설지 않은 고장이고, 어쩐지 정겨운 곳이다.

 

내 나름대로 인천에 품은 애정과 고마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엔가 나는 또 외지(外地)에 살다가 인천에 온 사람이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지역에서 태어나 이 땅에서 자라난 이들이 켜켜이 쌓아온 추억의 무게가 나에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인천에서 아이들과 뛰어 놀았던 뒷골목이 없고, 으슥한 곳을 찾지 못해 환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첫사랑의 손목을 부끄럽게 거머쥔 기억이 없다.

 

지역을 가리키는 여러 말이 있다. 지역지방 같은 말도 있지만, 공간(space)과 장소(place)란 표현도 최근에는 많이 사용한다. ‘공간(Space)’이란 말은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를 뜻하는 단어인 반면 플레이스(Place, 장소)’우리가 살고 머무는 장소, 인간화된 공간(Humanized Space)’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삶을 통해 여러 공간을 만나게 되지만, 공간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어 이야기를 전하지 않는 대신, 공간에 머물다 떠난 사람들에 의해 그 장소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를 전달한다. 공간은 짧던 길던 그 곳에 머물다 지나간 사람들에 의해 '장소'가 된다. 공간에 대한 스토리가 탄생하고 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의미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드라마 <모래시계> 이전의 정동진역은 무명의 간이역에 불과했지만, 드라마의 감동을 마음에 품은 이들에게 정동진역은 깊은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변화한다. 공간에 대한 스토리텔링에 따라 특정 공간에 대한 의미가 생기고, 이 공간에서 창조된 이야기(Story)를 통해 특정 공간은 다른 외지인들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의미를 새롭게 창조하게 된다. 이제 드라마 <모래시계>를 보고 그 감동을 찾아 정동진을 찾는 사람은 드물지만, 대신에 그 공간에서 연인과 함께 신년 해돋이를 보았거나 가족과 함께 즐겨 찾게 되면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발걸음, 재미있고 신선한 것을 찾아 이동하는 관광객의 발걸음은 그곳에서 정주하는 이들의 손때 묻은, 웅숭깊은 삶의 이야기와 충돌할 때가 있다. 인간의 길이 자연에 깃들어 살고 있는 생명에게는 멸절의 길이 되듯, 역사가 말할 수 있는 자들, 강자들이 의미 있다고 판단하는 이야기이듯 지도 역시 그들의 편의와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다. 세상에는 지도에는 없는, 수많은 길들이 있고, 문화는 이와 같은 길의 다채로운 이름들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것을 알고자 하지만, 머무는 자들은 그 길의 이름을 쉽게 내어주려고 하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으면 말이다.

 

우리 동네에는 건봉령이라는 고개가 있습니다. 다들 진부령, 미시령, 소파령은 알지만 건봉령은 처음 들어보셨을 겁니다. 건봉령은 인제, 양구를 거쳐 서울 가는 길로 연결되는, 아는 사람들은 아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런 길은 지금 지도에는 없습니다. , 제가 사는 송강리에서 화진포로 가는 길도 하나만 있지 않습니다. 어느 마을에나 이웃마을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고개들이 있지 않습니까. 옛날 사람들은 그 길마다 다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를테면 원당고개, 자진고개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지역마다 비온 뒤 죽순 자라는 격으로 많은 문화재단들이 생겼고, 저마다 내 고장을 사랑하는 책자를 발간하고, 지역을 자랑하는 문화행사들이 치러진다. 고성과 나역시 그런 책자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간단하게 치부할 수 있다. ‘주둥이가 노란 자들이 국민 세금 가지고 만드는 책놀음에 가까운 책들도 많은데, 이 책은 뭐가 남다른가?

 

나는 가끔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 내 손이 지갑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하곤 한다. 냉정과 합리의 세상에서는 고성에 대해 그 지역이 고향인 사람들, 정주하고 있는 이들의 고향 자랑일 수 있는 책을 굳이 사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다.

 

문제는 그것을 극복하고 구입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것인데, 이 책 고성과 나는 객관적으로도 그 이상을 보여주는 책이다. 지역과 지역문화, 공간 스토리텔링을 고민하는 분들은 물론, 인문학 에세이로서도 탁월한 성취를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들은 낯선 외지인들에게 자신들이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해온 것들을 내어주고 있다. 당신이 이 책을 읽으려는 노력만 기울인다면, 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은, 그 사람들만 아는 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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