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김광섭은 「인생」이란 시에서 “너무 크고 많은 것을 혼자 가지려고 하면 인생은 무자비한 칠십 년 전쟁입니다. 이 세계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닙니다. 신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낮에는 해 뜨고 밤에는 별이 총총한 더 없이 큰 이 우주를 그냥 보라고 내 주었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사랑하는 딸이 함께 세상의 꽃과 별, 우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중한 존재로 느끼길 바란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사랑에는 사랑으로, 신뢰에는 신뢰만으로 나눌 수 있는 세상에서 살 수 있길 바란다. - 전성원, 『길 위의 독서』 서문 중에서
사람은 살면서 이런 입장에도 서보고 저런 입장에도 서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공부란 낯선 삶을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갈등을 경험하게 되고, 수많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결국 그 무수한 선택이 한 인간의 삶을 만든다. 그런데 갈등의 상황에서, 딜레마적인 상황에서 한 인간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은 결국 관점에서 나온다.
영감님은 나에게 항상 “남이 잘 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사람이 잘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이 잘 되기 위해선 남을 짓밟고 앞서는 길이 있을 테고, 그와 반대로 남이 잘 되게 해서 더불어 잘 되는 길도 있을 게다. 그 목표를 선택하는 것도 각자의 몫이고, 그 목표에 이르는 길도 다양하겠으나 누구든 그가 잘 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도움과 조력, 관계의 힘이 작동한다. 우리는 때로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기도 하지만, 때로 전연 기대하지 않았던 이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북풍한설이 몰아쳐야 소나무가 푸른 것을 알게 되듯, 고난과 시련의 시기에 이르면 내 주변에 누가 참이고 거짓인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참인지 거짓인지 헤아리기 위해 시간을 쏟고 공을 들이는 것은 나로서는 참으로 부끄럽고, 허망한 일이다. 그 시간에 도리어 내가 남이 잘 되도록 도와주는 데 시간과 공을 들이는 편이 자신을 위해서도 훨씬 나은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이 말과 글로는 사람을 얼마든지 속일 수 있지만, 행동으로는 속일 수 없다고 때때로 말한다. 앎이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문화적 실천’이라고 했을 때, 인생을 무자비한 칠십 년 전쟁으로 허비하기 보다는 세상의 꽃과 별, 우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중한 존재로 느끼며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그래서 이번 책의 저자 서명에는 “하늘의 별과 들판의 꽃을 바라보며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이란 말을 적고 있다. 내 책이 나왔기에 내 책과 독자들에 대한 성의를 다하기 위해 당분간 노력하겠으나 본래 내가 하던 일, 누군가 펴낸, 한 땀 한 땀 공들여 써내려 간, 좋은 책을 성실하게 읽는 일도 멈추지 않아야겠다. 어차피 이 차가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 정도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