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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페이퍼를 쓰는 이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고른 책들을 만날 확률은 지극히 적고, 고스란히 내 장바구니에 들어가게 될지라도

이 책들을 한데 모아 구경하고 글을 쓰는 이 시간을 *_*!

 

 

 

 

 

 

 

김남희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여행과 일상의 중간지대에서 여행의 설렘을 느끼면서 일상의 익숙함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평소보다 덜 쓰고, 덜 바쁘면서 더 충전된 시간을 보낼 수 없을까.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는 12년 동안 전 세계 80개국을 다녀본 여행가 김남희가 추천하는 여행지의 이야기를 담아낸 에세이이다.

그녀는 추운 겨울만 되면 몸과 마음이 얼어붙는 탓에 겨울이 오기 시작하면 남쪽 나라로 가는 생활을 해왔다. 기본적으로 한국과 많이 멀지 않고, 한국의 겨울과는 반대의 계절을 가진 나라. 물가가 비싸서 몇 달을 머물러도 생활비가 부담스럽지 않고, 여자 혼자 머물러도 안전하며, 동시에 문화적인 인프라는 풍부해서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나라. 그렇게 찾아낸 나라가 바로 발리, 치앙마이, 라오스, 스리랑카이다.

푸른 생명의 의지가 넘실대는 초록의 나라 발리, 야생동물과 옛 도시의 흔적을 간직한 스리랑카, 덜 벌어도 삶에 더 충실한 예술가들의 터전 치앙마이, 스님들의 탁발로 새벽을 여는 고요한 나라 라오스. 책은 그녀가 겨울마다 찾아가서 이곳에서 머무른 '체류기'로 네 나라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다. 

 

*

 

꽤나 독한 감기를 앓고 있는 중에, 신간페이퍼를 쓰려고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문득 따뜻한 나라에 가고 싶어졌다. 추위 못지않게 더위도 잘 타는 나지만, 그래도 따뜻한 건 괜찮지 않을까 하고.

 

비단 감기 때문만이 아니라 김남희 작가님의 이 책은 출간 되었을 때부터 눈여겨 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 책 저 책에서 작가님의 짧은 글을 읽었지만, 온전히 한 권을 읽은 적이 없다.

 

겨울이 가기 전에, 이 책으로 작가님의 책을 시작해보고 싶다.

 

 

 

 

홍화정 <혼자 있기 싫은 날>

 

남들은 마음을 달래러 가는 제주도에서 혼자 직장 생활을 하던 홍화정 작가가 쓰고 그린 작은 이야기들을 담은 그림에세이. 누구나 겪었고 겪을 수밖에 없는 나 자신에 대한 고민, 사람에 대한 고민, 그리고 일과 생활에 대한 생각들을 사랑스러운 필치로 풀어냈다.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게 좋지만, 너무 다가오면 도망치게 되고 그러다가 곁에 아무도 없으면 외로워지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싶지만, 돈도 좀 있었으면 싶고. 다른 사람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지만, 또 그렇게까지 노력하고 싶지는 않은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알록달록한 이야기들이 모여 있다.

 

*

 

두번째 문단에 특히 공감이 간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싶지만, 돈도 좀 있었으면 싶고.

다른 사람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지만, 또 그렇게까지 노력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

 

정말이지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혼자 있기 싫은 날이 있는 것처럼.

 

 

 

 

오지은 <익숙한 새벽 세시>

 

오지은 산문집. 서른다섯의 가수 오지은은 이 책을 이런 말로 시작한다. "시작은 어디였을까. 3집을 내기 전부터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무언가가 죽어가고 있었다. 앨범을 만들 때의 내 마음은 장송곡을 만드는 기분과 흡사했다. 정확하게 무엇이 나를 떠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노래를 만들고, 녹음을 하고, 공연을 하면서 나의 세계가 천천히 회색이 되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회색의 세계에서 바라본 "나라는 사람은 형편없었다"라고 말한다. 나이만 어른인 게 아니라, 이제를 정말 어른의 세계를 마음으로 만난 사람의 두려움에 찬 고백이다. 오지은은 이 막막함을, 보통의 어른들이 그러는 것처럼 체념하듯 흘려보내지 않기로 한다. 이 책의 진가가 발휘되는 지점이다.

"열심히 하면 돌이 없는 또는 돌이 굉장히 적은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왔던 어른이 되지 않기로 한다. 그는 말한다. "길 앞에 놓여 있는 돌을 치우면 다른 돌이 또 나타난다." 그리고 내친 김에 더 나아간다. "그 돌은 더 크고, 더 단단히 땅에 박혀 있다." 오지은은 이 책에서 어디까지 가려는 것일까. 독자라면 조금 겁이 난다.

그러나 그는 이 책을 쓰면서 삶이 숨기고 있는 비밀에 가까이 다가가려 용기를 낸 것이다. 회색의 세계, 성장이 없는 세상, 단단하게 박힌 돌이 가득한 길을 그는 힘없이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용기 있게 바라본다. 그가 체념 대신 용기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우리에게 힘이 되어준다.

 

*

 

나 역시 회색의 시간을 지나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읽고 보고 듣는 건 많았지만

늘 공허했던 적이 있다.

그 회색의 시간에서, 달리 방법을 못 찾은 나는 모든 걸 멈추는 걸 택했다.

미친듯이 잠을 자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도 때려보고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니 보였다.

채우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었음을.

가끔은 멈춰서서 내가 무엇을 거쳐왔는지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역시 소중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내게 회색의 시간은 그랬다.

 

오지은의 회색의 세계가 궁금한 건 이 문장 때문이었다.

'보통의 어른들이 그러는 것처럼 체념하듯 흘려보내지 않기로 한다.'는 것.

이 글을 쓴 사람 역시 이 책의 진가가 발휘되는 지점이라고 힘을 실었다.

 

오지은의 회색의 세계는 과연 어떤 세계였을까.

 

 

 

우다 도모코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오키나와 나하에는 독특한 서점이 하나 있다. 도무지 서점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시장 한구석, 겨우 손님 셋이면 꽉 들어차는 다다미 세 장 크기의 헌책방이다. '일본에서 가장 작은 서점'으로 유명한 이곳, 한 번 들으면 잊지 못할 그 이름은 바로 '울랄라'다.

저자는 자신이 왜 회사를 그만두고 헌책방을 열었는지 진중하게 고백하지도, 시대를 뛰어넘는 책의 가치를 설파하지도 않는다. 그저 소소한 나날을 친구와 통화하듯 하나하나 풀어놓는다. 단골손님과의 대화, 전구가 나간다거나 자전거를 잃어버린 사사로운 에피소드, 책방에 앉아 구경하는 시장 풍경, 오키나와의 명절, 헌책 경매 시장 같은 처음 경험해보는 많은 일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들이 쌓여가는 동안 그녀는 낯설었던 오키나와 생활에 시나브로 녹아들고 어느새 시장 사람들과도 끈끈해진다.

우물쭈물 망설이는 듯하면서도 '에라 모르겠다' 식인, 가끔 심드렁하고 종종 뜬금없고 꽤 건조한 그녀의 글에서 오키나와,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에 대한 깊은 애정이 뭉근하게 배어난다.

 

*

 

서점에 갔다가 이 책을 발견했는데, 큰 헌책방에서 보물 같은 책을 찾아낸 기분이었다.

담백한 책에서 느껴지는 그 다부짐이란.

 

자신이 왜 회사를 그만두고 헌책방을 열었는지 진중하게 고백하지도,

시대를 뛰어넘는 책의 가치를 설파하지도 않는다는 점이 멋있다.

멋들어진 이야기도 좋지만, 결국 헌책방을 채우는 건 소소한 일상이니까.

그 일상에 '책'에 대한 깊은 애정이 뭉근하게 배어있다는 이 책.

 

이러니 눈길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있나 :)

 

 

 

 

노희경 <겨울 가면 봄이 오듯 사랑은 또 온다>

 

 2015년 드라마 작가 데뷔 20주년을 맞은 노희경 작가. 그녀가 20년간 매일, 약 7300일간 고민하고 쓰고 고쳐가며 완성한 22편의 드라마와 에세이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에서 희망과 사랑을 전하는 명대사 및 명문장 200개를 골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유독 명대사가 많아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았던 [거짓말], [굿바이 솔로], [그들이 사는 세상], [괜찮아 사랑이야] 외에 작가의 단막극, 2부작 또는 4부작 드라마, 44부작의 장편 등 모든 드라마에서 선별한 명대사가 감성 캘리그라퍼 배정애 작가의 아름다운 제주 사진과 어우러져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책 뒤에는 노희경 작가가 집필한 22편의 드라마 목록과 작품 설명을 수록했다.

 

*

 

작년에 잘한 일 중 하나는, 반쯤 보다가 내려놓았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를 다시 챙겨보는 일이었다.

내려 놓은 사이에 챙겨봤던 회차까지 가물가물해서, 아예 처음부터 다시 봤다.

드라마를 보면서 내 멘탈 소비가 굉장했고 그걸 감당하지 못했던 게 드라마를 내려 놓게 만들었던 것 같다.

해수의 삶에, 재열이의 삶에 몰입하게 될수록 우울했다.

시간을 내서 드라마를 챙겨 보면서까지 이래야 하나 싶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이 드라마를 마주하자 다짐했던 건,

해수와 재열이가 그랬듯 나 역시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갇혀있는 문제에서 자꾸만 피하고 도망치는

해수와 재열이, 그런 두 사람에게서 문득 문득 나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결심하고 마주한 것처럼, 나도 이번엔 마주하자고 다짐했다.

아팠지만, 그리하여 행복을 찾은 해수와 재열이처럼.

 

물론 나에게는 드라마를 다시, 끝까지 챙겨보는 일부터가 시작이었다.

나는 아직 멀었지만, 겨울 가면 봄이 오는 것처럼

사랑은 또 오고, 그 사랑이 당연히 행복을 가져올 거라 믿지 않지만

끝내 행복할 거라 믿는다. 피하고, 도망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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