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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은 하루 (윈터에디션)
구작가 글.그림 / 예담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이제는 저마다에게 추억이 되었을 싸이월드’. 유독 싸이월드에 정을 붙이지 못했던 내게도 좋은 기억이 하나있다. 바로, 귀 큰 토끼 베니와 그런 베니를 그린 구작가님을 만난 일이다. 블로그에서 직접 스킨을 만들어 쓰는 게 익숙했던 나로서는 스킨을 구매해서 꾸며야하는 싸이월드의 서비스가 불편했다. 상술이라기보다는 싸이월드의 스타일로 생각하고, 마음에 드는 스킨을 찾고 또 찾던 어느 날 베니를 만났다. 높디 높은 책 앞에, 그 책만한 높이의 의자를 두고 책을 읽던 베니. 여러 가지 버전의 베니 스킨을 구경하면서 자연스럽게 베니를 그린 작가에게 관심이 생겼다.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귀여운 토끼를 그리는 걸까, 싸이월드 스킨말고 또 다른 그림은 없을까 하고. 그러다가 구작가님의 홈페이지에 들어가게 되었고, 주요 글에서 의뢰나 문의는 메일로만 받는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전화를 받지 못하니 메일로만 받는다는 그 말에 나는 한참을 먹먹해했다. 작가님의 사연도 사연이지만 그런 사연 옆에 누구보다 밝고, 행복해보이는 토끼 베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베니를 다시 만났을 때, 작가님의 사연은 조금 더 먹먹해져 있었다. 청각 장애에 이은 망막색소변성증. ‘왜 내 것만 자꾸 뺏어가는 걸까요?’하고 생각하셨다는데, 충분히 이해갔다. 사연을 전해 듣는 나도 어떻게 이럴 수 있나싶었으니까. 앞으로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감당할 수 없는 분노만 마음속에 커져가던 그때, 작가님은 선교 프로그램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와서 취소할 수 없었기에 설명할 수 없는 분노로 가득한, 새까맣게 탄 마음을 안고 어쩔 수 없이 떠난 그때의 일화가 인상 깊었다. 이런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무슨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싶었던 작가님은 그곳에서 한 소년을 만난다. 태풍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한 남자아이. 사진작가가 되어서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다며 수줍게 웃으며 말하던 소년. 그런 소년의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고, 그냥 그림 한 장을 소년에게 그려준 게 전부였던 작가님. 그런데 그 아이는 그 그림이 그저 너무 좋았는지, 밥도 먹지 않고 한참을 보더니, 소중하게 자신의 품에 감싸 안았다고 한다. ‘그때,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다는 문장을 읽는데 나 역시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것을 잃은 소년도 저렇게 꿈을 꾸며 좋아하는데 자신에게는 그래도 많은 것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야기. 작가님의 작은 그림이 그 아이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작가님을 180도 변하게 만든 건 분명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마음에 가득했던 빨간 덩어리를 서서히 녹였듯, 소년 덕분에 조금은 투명해지고 깨끗해진 마음을 안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 후 보게 된 첫눈. 하얗고 깨끗하고 순수한 눈을 보면서 작가님은 다짐한다. ‘이제부터 나를 위해. 앞으로의 시간은 행복하게 살아보자. 아무런 후회도 없이눈이 안 보이게 된다고 해도 미련이 안 남게 살자.

 

그렇게 작가님은 버킷리스트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나 역시 버킷리스트를 쓴 적이 있고, 지인들과 버킷리스트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타인의 버킷리스트는 그렇구나 하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이렇게 와 닿은 버킷리스트는 처음이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났기 때문이다. 자신의 버킷리스트 이야기를 끝내고 작가님은 이렇게 덧붙인다.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버킷리스트를 고민해보라고. 그럼 진짜 소중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게 된다는 게 정말로 어떤 기분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내게는 내일 당장이라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일이 누군가에겐 버킷리스트에 적어 넣는 일이라는 것을. 소소한 일인 것 같지만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작가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감동을 전해준다.

 

그렇지만 눈이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의 또 다른 인생이 있겠죠. 그리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감각들이 제게 남아있으니까요.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꽤 괜찮은 오늘 하루가 선물처럼 오니까요. 아직 혼자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오늘, 오늘이 저에게는 기적이에요.’

 

평생을 먹먹하게 살아왔을 작가님. 내게도 먹먹함을 안겨주는 작가님의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먹먹함 가운데 굳건하게 자리한 희망. 그리고 이 희망은 이 책의 제목처럼 그래도 괜찮은 하루가 모여서 그래도 괜찮은 나날이 될 거라 믿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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