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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이유 - 가슴 뛰는 여행을 위한 아홉 단어
밥장 글.그림.사진 / 앨리스 / 2014년 12월
평점 :
누군가 내게 ‘떠나는 이유’를 묻는다면, 첫째로 일탈이고 둘째로 기차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내게 있어 여행이 그랬다. 저 멀리 해외가 아닌 국내로 떠나는 여행이지만 매일 같은 일상을 벗어난다는 그 사실은 충분히 ‘일탈’이 되었다. 여름엔 다른 지역의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고, 겨울 바다의 수평선을 한 없이 바라보고, 한적한 관광지를 여유 있게 거니는 일은 지금까지 열심히 버텨온 것에 대한 보상이었고, 일상을 다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힘’이었다. 그리고 기차. 기차 안에서 나는 챙겨간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때때로 글을 쓰는 그 시간을 참 좋아한다. 책을 읽거나 손으로 글을 쓰는 데 부담 없는 흔들림과 적당한 소음,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질리지 않는 차창 밖 풍경 등 기차를 좋아하는 이유는 많지만, 사실 기차는 그저 좋다. 때로는 기차를 타고 싶어서 떠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저마다 ‘떠나는 이유’가 있고 어떤 이유가 옳고 그르다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이 책 『떠나는 이유』를 읽고 내게 새로운 이유가 생겼다.
책 『떠나는 이유』는 글 쓰는 일러스트레이터 밥장님의 새로운 책이다. 이전의 책 『밤의 인문학』이 병맥주 한 병을 손에 쥐고 마시면서 인문학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인문학 이야기를 듣던 중 여행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려달라고 다음 날 다시 모여 앉아서 이번에는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여행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사실 그의 여행기는 그의 블로그 여행 카테고리에서 몇 백 편으로 만날 수 있지만, 『밤의 인문학』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재밌게 읽었던 나로서는 책과 밥장님의 조합을 지나칠 수 없었다.
10여 년간 이어져온 여행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단순하다. ‘출발. 여행을 떠나며’라는 챕터에서 그는 루이 페르디낭 셀린느와 닐 도널드 월시의 말을 빌려서 이렇게 밝힌다. 무미건조하게 산다는 것은 감방 속의 삶이며, 진짜 인생은 우리가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순간 시작된다는 것이라고. 길 위에서 이런 교훈을 마주하기까지 여행에서 찾은 ‘행운, 기념품, 공항+비행, 자연, 사람, 음식, 방송, 나눔, 기록’이라는 아홉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여행도 인생도 진짜 내 것으로 만드는 밥장 식 여행의 한수를 공개한 책인데, 나는 그 중 ‘기록’이라는 키워드 앞에서 두근두근했다. 이 챕터에서 나는 꼼꼼하게 기록을 남긴 작가 반 고흐를 다시 만났는데, 흔한 카페나 식당, 여인숙이 고흐 덕분에 고흐보다 더 오랫동안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는 단연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물론 고흐가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예상해서 작품과 기록을 남긴 건 아니었을 거라고, 어쨌든 자신 또한 고흐를 ‘본받아’ 자주 가는 카페 감싸롱과 신촌 파스타, 함박식당에다 그림 그리고 블로그에 사진도 올리고 몰스킨에다 이야기를 남긴다고, 자신과 자신의 기록 덕분에 감싸롱이 100년 뒤에도 여전히 홍대 골목에서 패티 굽는 냄새를 풍길지도 모른다는 밥장님의 글에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이쯤에서, 내게 생겼다던 새로운 이유에 대해 써야겠다. 내가 밥장님을 알게 된 이유와 연관되어 있는데, 바로 ‘몰스킨’이다. 뭐든 기록하기 좋아하는 내게 ‘몰스킨’을 구입해서 기록하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지인에게서 들은 바 있는데, 그땐 그 돈으로 책을 한 권 더 사 읽겠다며 받아쳤지만 지인의 말이 맞았다. 하루 이틀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전부는 아니어도 한 카테고리쯤은 몰스킨에 기록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손때가 잔뜩 묻은 똑같은 몰스킨이 열네댓 권 쌓여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보고 몰스킨을 쓰게 되었다는 밥장님. 나는 그런 밥장님의 기록을 보고 몰스킨을 써야겠다 마음 먹고, 어쩌면 내가 몰스킨을 쓰는 것을 보며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도 몰스킨을 따라 쓸지도 모른다. 내 몰스킨에 담기는 기록은 밥장님처럼 한 장 한 장이 알찬 기록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이제니 시인은 『아마도 아프리카』에서 “나를 달리게 하는 것은/ 들판이 아니라 들판에 대한 상상”이라고 하였습니다. (p.336)
이 책을 읽게 하는 것은 단순히 밥장님의 새로운 책이어서가 아니라 이 책의 온전한 매력에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던 여행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 곳곳에서 마주치는 인용된 책 속 구절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음악을 찾아 듣는 재미, 아기자기 혹은 느낌 있는 일러스트가 알차게 담겨있는 책.
인생은 당신이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순간 시작된다. - 닐 도널드 월시
책 곳곳에 꽂혀있었던 책갈피를 꺼내며 생각한다. 나의 다음 여행은 어떤 인생이 될까 하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