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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20년 동안 시사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라디오 PD로 일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온 정혜윤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오기 전에 나는 이런 글을 썼다. '중요하지 않아서 잘려 나갔으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므로 만들어진 그녀의 릴테이프. 릴테이프에 담겼을 이야기들이 이상하게도, 더 잊히지 않고 오랫동안 가슴 속에 남아 영원히 살아 남을 때가 있다.'고 말이다. 표지도 노랗고, 속지도 노란 이 책을 받아들고 읽어 나가면서 나는 내 말이 실현됨을 느꼈다.

 

나는 자유인입니다가 아니라 나는 자유다라고 말하는 통영의 한 어부 이야기, 중요한 건 수준을 높이는 게 아니라 낮추는 거라던 빠삐용의 아버지 이야기, 어두운 밤거리를 걸을 때 나를 걷게 하는 것은 천사의 날갯짓 소리가 아니라 바로 옆 사람의 발소리였다는 말로 끝난 주먹맨 이야기, 내가 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두 갈래 길이 나타났을 때 내가 택한 길이 맞기를 진심으로 바랐는가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려웠다는 선배 이야기, 사랑의 변신은 없었지만 요리의 세계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삶의 변신은 있었다는 선배 이야기, 사라진 라디오와 노트를 발견하기를 여전히 기다리며 수수께끼를 안고 사는 남자 이야기, 죽음을 앞두고 듣고 또 듣고 수십 번 들은 브람스 교향곡 4번을 통해 삶이란 내가 언뜻이상한 아름다움이라 생각한 선배 이야기, 장승에 글귀를 새길 때 내 삶에 대못을 박았다며 니만 그렇게 살아라가 아니고 나도 그렇게 살 끼라고 만천하에 공개했다는 소원을 70퍼센트 이룬 노인 이야기, 처음 듣는 말을 마지막 듣는 말처럼 잘 듣는 할머니 이야기, 한상균 전 지부장의 눈으로 다시 읽은 마지막 잎새 이야기, 살다 보니 알게 된 건 인생에 쓸데없는 것은 없더라는 낚시꾼 이야기, 내가 내 몸을 놀려서 일한 만큼 딱 그만큼 벌었으니 달이 기가 막히게 이뻐 보인다는 간월도 아낙 이야기, 심리가 아니라 윤리를 말하고 젊은데도 지혜로운 제일 부러운 사람현주씨 이야기, 낮에는 앞치마를 두르고 피로에 지친 모습으로 흥정하고 잔돈을 계산하고 손님을 기다리지만 밤에는 자기 자신의 위대한 치유사로 변신하는 야채장수의 이중생활 이야기까지.

 

14편의 이야기를 읽어 나가면서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내 안에 이렇게 차곡 차곡 쌓이고, 이 책의 부제처럼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로 다가오는구나 싶어서 신기하기도 했다. 사연이 흐르는 라디오 프로보다는 노래가 계속해서 흐르는 라디오 프로를 선호하던 내가, 이렇게 진정한사람 이야기를 집중해서 읽은 게 얼마만인가 싶기도 했고.

 

책 속에서 또 다른 책 이야기를 자주 하던 그녀답게, 이 사람 이야기를 하다 말고 자연스럽게 저 사람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이 부분 또한 마음에 들었다. 이런 책이 있으면 또 이런 책도 있듯이 이런 사람이 있으면 또 그런 사람이 있는 법이니까.

 

그러고 보니 책에 그은 밑줄이 죄다 이 사람 말이고, 저 사람 말이다. 때때로 이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 그녀의 말이기도 하고.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던 교보문고 설립자, 대산 신용호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드는 건, 책 앞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한 사람 그 자체가 살아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 밑줄 친 구절들

 

- 인간은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야. '인간은 대답을 추구하는 질문'이란 말이 있어.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 살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이것이 삶의 형태를 만들어.

 

-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 이야기를 하지. 이담에 천국 가서 만나자고 하지. 하지만 나는 천국과 지옥은 이미 우리 삶 속에 다 있다고 생각해. 짝사랑 한번 해봐. 바로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여기랑 다른 천국과 지옥이 따로 있다고는 생각 안 해. 만약 천국과 지옥이 있어도 아마 지금이랑 같겠지. 아주 닮았겠지. 여기서 하던 일을 하고 살지도 모르지. 여기서 그리워 하던 사람을 그대로 그리워 할지도 모르지.

 

- '슬픈데도 행복하니까 강한 인간이다.' 나는 다시 한 번 노점상 할머니들이 자기 삶을 사랑하는 방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 왜냐하면 '우린 고생스러워도 버티니까, 살아내니까 강한 인간이다'라고 말하지 않았거든. '슬픈데도 행복하니까, 행복할 줄 아니까 강한 인간이다'라고 말했거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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