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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실감은 나지 않는다는데, 자꾸만 한 해가 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표식 같은 것들이 문득 문득 들이닥쳐 깜짝 놀라곤 한다. 이를테면, 얼마 전 모 작가의 행사에서 사인을 받았는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써주시는 걸 보고 화들짝. 보졸레 누보를 마신 적은 없지만, 보졸레 누보가 나온다는 소식도 나에게는 아, 올해가 가고 있구나, 라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소식. 게다가 어제는 누군가 크리스마스 캐롤을 틀려고 하는 걸 뜯어말리기까지 했다.
어제는 하이킥을 보는데, 겨울이 왜 싫으냐는 이순재의 물음에 김자옥의 대사.
나이든 여자가 겨울 좋아하는 거 봤어요? 이제 또 한살 먹는구나. 생각하는 거죠.
아. 내가 나이든 여자가 되어가고 있어서, 또또 (지난 해 숱하게 지적 받았던) 계절병, 나이먹는거 싫어병을 앓고 있구나. 라는 걸 깨닫는다.
2
다음주에는 예전예전예전부터 계획만 잡아놓고 준비는 하나도 안하고 손놓고 있던 휴가를 떠난다. 준비된 건 비행기 티켓과 숙소 예약뿐이고, 그걸 이미 7월에 마쳐놓은 후, 나는 정말 속수무책으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매우 솔직히 말하자면 교토에서 묵는 숙소는 H가 예약했으므로 어딘지 이름도 모른다. 비행기 출발 시간 및 도착 시간도 잘 기억도 안난다. 떠나기 3일 전인데 이런 상황. -_-
H가 거의 모든 준비를 하고 마지막으로 스케줄 확정하고 예산을 짜자고 불렀을 때도 나는, 그냥 발길 닿는대로 가고, 마음 닿는대로 쓰자. 뭐 이런 무책임한 발언을. ㅋ 사실 예산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게, 너무 빡빡하게 짜서 가다 보면, 그대로 쓰려면 그대로 쓰는 일이 스트레스, 그대로 못쓰게 되면 그게 또 스트레스 아닌가. 그렇다고 돈이 많아 흥청망청 쓰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뼛속까지 좀 비굴한 나는 돈 앞에서도 비굴하기 때문에, 굳이 예산을 짜지 않아도 머리와 마음의 제동장치가 알아서 작동해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H도 마찬가지이다. ㅎㅎㅎ 환전은 니가 할래? 라는 말에도, 미안, 나 정말 여유가 없어, 니가 좀 해주라.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으니, 버럭하는 H앞에 나는 그저 '업어줄까?' 한마디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아. 미안해라. 가서 정말 잘해줘야지.
대신 내가 준비한 건, 홀가. (그런데 중형 필름을 깜빡잊고 안샀다. 화요일까지 안오면 직접 가서 사야하는데, 그럴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건 전적으로 레와님의 영향이 매우 크다. 레와님 서재에 올려둔 홀가로 찍어낸 사진들이 내게 주었던 느낌들이 홀가를 사겠다고 결정하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6*6으로 찍으면 필름 한롤당 12장밖에 못찍는 이 이기적인 카메라가, 빛조절도 잘 안되고, 어두운데서도 잘 안찍히고, 필름도 어두운데서 넣어달라는 이 까탈스러운 카메라는 그러므로 뭔가 매력적인 느낌이다. 하루에 1롤. 딱 12장씩만 찍어야지, 생각. 고르고 골라서, 정성을 다해 찍기. 그래도 절반은 안나올테니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아. 연습비가 너무 비싸지만, 노래연습장 가격보다는 싸니까 참아야지) 하하. 그러고보니 정말이지, 준비한게 이것밖에 없구나. 주중엔 또 시간이 없을테니. 오늘은 짐을 싸둬야할텐데. 아. 뭘 싸야할지도 잘 모르겠고. (뭐 사람 사는 데인데 다 있지 않을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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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인생의 낙이 있다면 하이킥과 선덕여왕이었는데, 선덕여왕은 미실의난부터 골로가기 시작하더니, 고미실 퇴장 이후에는 시청의 의지를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다. 역시나 하이킥이 좀 짱이다. 아. 김병욱 초천재. 최다니엘 초간지. 신세경 초미녀. 정해리 빵꾸똥꾸짱. 신애는 좀더 힘내라. (해리한테 밀려서 슬쩍 가슴이 아파요)

이런 색감의 아가일니트를 찾아 헤매고 있다. 다니엘코디천재. (다니엘 몸이 천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