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방송 비비씨의 아침 프로그램에서 세월호 사고 소식을 처음 들었었다. 배가 완전히 뒤집혔는데 사망자가 2명이라는소리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저녁에 네이버에 들어가 보니 이삼백 명이 실종 상태라고...

비비씨와 시엔엔에서 계속 첫 소식으로 한국의 세월호 참사 소식을 알려줬다. 염려가 가득한 낮은 목소리로 소식을 전하는 기자들과 앵커들의 태도가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희생자 대부분이 어린 학생들이라는 것, 그리고 선장이 승객들에게는 객실에서 대기하라고 해놓고 자기들만 탈출했다는 사실은 이곳 사람들에게도 (당연히) 충격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이곳 뉴스들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사태에 접근한다. 예를 들어 해난 사고의 전문가가 나와서 배가 침몰할 경우 선장이 최후까지 승객들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세월호 사고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 아직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선장이 먼저 배를 떠난 것에 대한 비난을 유보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세월호 사고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친구는, "신고도 학부모가 먼저 했다면서?"라며 어이없어 하기도 한다. 

몇 칠 전엔 한국의 대통령이 세월호 선장등을 가리켜 살인자와 같다고 비판했다는 소식이 한동안 머리 기사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놀랐었다. 행정부의 수장이 그런 사법적 판단을 언급해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이곳 언론들도 한국의 대통령을 비꼬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발언을 전하고 나서 바로 대통령이 비난의 화살을 선장에게 돌리고 있다고 코멘트하였다. 아마 이곳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 -승객들의 안전을 지켜야 할 선장도, 사태 수습의 최고 책임자도, 그 누구도 자기의 책임을 떠안으려 하지 않았다.

많은 뉴스를 통해 세월호 참사는 언제고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래된 똥배고, 증축을 한 상태고, 화물 결박 장치가 비싸다고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았고, 당시 운항을 하고 있던 기관사와 조타수가 초보급이고, 선장이 노령에 적은 돈을 받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선장을 욕하고 있고, 또 그것이 응당한 일이긴 하지만 다른 한 켠으로 보면 선장을 이해할 만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운항때마다 심하게 흔들리고 화물 결박 장치도 제대로 구비되지 않은 똥배에 상당히 적은 연봉을 받는 상태에서 무한 책임을 지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저런 상태에서는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런 물질적 조건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선의지만을, 의무만을 강요하는 사회처럼 나쁜 사회는 없을 것이다. 한 쪽에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면서 다른 한 쪽은 일방적 권리와 부를 누리는 상태에서라면 더더욱이 그럴 것이다. 세월호와 같은 똥배를 운항하도록 한 선사나 감독 기관등은 선장에게만 승객들의 생명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지우고 자신들은 그 책임에서 쏙 빠져나와 돈을 긁어 모으고 있었을 것이다. 

두 가지 긍정적인 모습을 본다. 하나는 한국의 국민들이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월호를 작은 대한민국으로 인식한다. 위기 상태가 닥치면 자력구제 말고는 답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것이 현재의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나는 성장에 있어 자신에 대한 객관적 인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이번 세월호 참사 때 학생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모습이다. 결과적으로는 참사로 이어져 버렸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학생들이 위기 상황에서 침착하게 방송의 지시를 잘 따랐고, 일부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한국에 안좋은 일이 벌어질 때마다, 한국의 상황에 낙담할 때마다 나에게 희망을 주는 이들은 언제나 어린 세대였다. 이번에도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요즘 스피노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스피노자에 대해 잠깐 회의를 느껴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배를 먼저 떠난 선장은 스피노자주의자일지언정 칸트주의자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희생적인 학생들(그리고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피노자주의 안에서 이타주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었다. 이런 고민은 에티카 5P23에 대한 숙고로 이어졌고, 지금은 잘 해결된 것 같다고 느끼고 있다. 한국에서 벌어진 사태, 특히 한국의 어린 세대들의 의연한 모습에 자극되어 하나의 사고가 촉발되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여기 이렇게 포스팅을 한다. 이제 다시 침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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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4-24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의료계도 세월호의 모순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한쪽은 일방적인 권리와 부를 다른 한쪽은 조건이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한책임을. - 한국 사회 전체가 (아니면 세계 전체가)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한 신자유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단면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