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하모니카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와 하모니카』










**




<개와 하모니카>


제38회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수상작이자 표제작.


새로이 떠나고, 다시금 돌아오는 곳, 공항. 공항은 이름만 들어도 괜히 아득해지는 설렘을 지닌 공간 같다. 더불어 혼란한 풍경들. 서로 다른 방향을 가지고 지나치는 사람들은 사소한 계기로 엇갈리거나, 스치는 인연이 되기도 한다. 


이릴드는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이다. 사회인 자원봉사자에 지원하여 스키 강사로 일하기 위해, 낯선 나라 일본에 도착하게 된다. 세무사 일을 하고 있는 겐지는 몇 달 전 이혼을 통보한 아내의 휴가차 떠난 시애틀 여행에서 돌아올 딸과 아내를 마중나간다. 되돌리고 싶은 관계를 위한 노력으로 딸이 아끼는 인형을 가지러 가기까지 한다. 스미코는 영국남자와 결혼한 딸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타국을 향하게 됐다. 쌍둥이 손녀 조안나와 에이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보게 된 차분한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를 통해 손녀들과의 여행을 상상해본다. 가온은 공항의 풍경 속에서 한 가족을 바라보고 있다. 이상하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이상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소년과 그의 소란스러운 가족을. 이릴드는 가온의 엄마, 즉 겐지의 아내에게 가온의 언니냐고 묻는 실수를 하고, 스미코는 서툰 영어로 이릴드에게 수줍은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산발적으로 흩어진 사람들의 이야기 속 하나의 구심점이 되어주는 듯한 소란스러운 한 가족으로 인해 시선이 한데 묶였다, 또 다시 엉키다 풀어지곤 한다. 스치는 풍경 속에 각기 다른 사정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공항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며,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것 같다. 지나친 활기 가득한 공간 속에 속해 있다, 곧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데서 오는 왠지 모를 공허함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가온의 말과 달리 세상에는 말로만 어른들이 천지이고, 이를 다 세어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항은 이러한 결이 다른 개인의 고독이 잘 숨겨지기도 때론, 너무나도 잘 드러나는 공간이 아닐까 싶다. 파묻혀 숨어버리기도, 한껏 그 존재감을 드러내 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모두가 각자의 몫으로 지닌 고독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무늬만 어른들은 대체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 세상에는 어른이 너무 많다. 온통 어른투성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 많은 어른들을 전부 숫자에 넣었다가는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20쪽


<침실>


성향이 잘 맞지 않는 아내와 달리 열다섯 살이나 어린 매력적인 애인 리에에게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후미히코. 늘 좋은 말만 해주었고, 서로의 존재와 관계성이 점차 당연스럽게 여겨졌다. 아내와 이혼을 생각하고 있던 그에게 리에는 슬프지도, 화내지도 않는 태도로 말한다. 리에의 헤어짐은 덤덤한 듯 했고, 후미히코의 속은 한없이 요동쳤다. '곤란한 사람'이란 무슨 의미일까. 집으로 들어와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침실의 풍경과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되는 후미히코. 헤어짐을 통해 문득 자신의 옆에 존재하는 사람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떤 향기를 좋아하고,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언젠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딱히 정의할 수도 없는, 그런. 마치 무언가를 잃고 나서 본래 자신의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듯이 말이다. 


나와는 상성이 잘 맞지 않는 것인지, 당연하게 등장하는 불륜 이야기에 사실상 반감마저 느낀다. 아름다운, 특유의 감성과 감각적인 문장이 함께 한다 하더라도. 내겐 잘 와닿지 않는다. 그 나라의 일부 당연한 정서, 일반적인 풍토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호였다. 누구에게나 취향이라는 건 존재할 테니. 이를 흥미롭게 읽어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저 나의 취향이 아니었을 뿐..



<늦여름 해 질 녘>


늘 고독의 품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시나는 이타루라는 남자에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흠뻑 빠지게 된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함께 여행을 떠났고, 순간의 욕망과 끌림은 다소 과격하게 그를 먹어 치우고 싶다는 격한 표현으로 내뱉게 되고, 이에 자신의 살갗을 도려내어 전해주는 사람이라니. 한편으로는 너무 잘 맞는 두 사람이 아닌가. 시나는 그동안의 연애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그가 곁에 없는 순간에도 그를 느껴야만 직성이 풀릴 정도이다. 우연히 지나쳐 가는 한 여자아이를 보며 문득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고독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마치 소녀와 여인의 경계를 허물듯이.


시나는 홀연히 이해했다. 자신이 지금도 고독하다는 것을.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여자아이를 바라보며 친구라고 생각했다. 저 아이는 그렇게 생각해주지 않겠지만 우리는 친구다, 라고.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시간처럼 천천히 흘러갔다.

 73쪽



<피크닉>


큰 계기 없이, 소개로 조금씩 친해졌고, 어느새 연애를 하며 결혼까지 하게 됐다. 잔잔하고 소소한 어느 부부의 일상, 그리고 피크닉. 왜 이런 풍경이 낯설게 느껴져야만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바깥에서 식사를 하고 싶었고, 그에 따라 집에서 싸온 음식으로 피크닉을 하게 된 것인데. 이런 시간과 행위가 전혀 뜻밖의 것이고, 놀림과 부러움이 대상이 된다는 게 어쩌면 더 안타까운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다정한 듯 무심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건 편안하고 즐거웠다. 타인과의 결속이 그런 게 아닐까, 어딘지 모를 흔적 같지만, 어느새 내 삶에서 떨어뜨려 놓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게. 어쩌면 피크닉은 이 두 사람이 갖는 또 하나의 충전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쿄코 본인이 가장 놀랐을 테지만, 나란 존재가 그녀에게는 불쾌하고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이물질이다. 이렇게 바깥으로 끌어내어 볕을 쬐이고 바람을 쏘여 조금이나마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으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89쪽


내게도 쿄코는 이물질이다. 짙은 갈색 깃털을 지닌 작은 새 한 마리와, 관목수풀 사이를 가로질러 간 검은 고양이와, 세발저전거를 탄 아이와 마찬가지로 내게는 이물질이다. 90쪽



<유가오>


에쿠니 가오리의 시대소설이라니, 퍽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보면 작가 고유의 개성은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하건 확연히 드러나는 것 같다. 이름 없는 풀꽃, 유가오. 그 청초한 아름다움에 대해. 모두에게 사랑 받는, 미워할 수 없는 아름다운 남자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라고 해두면 될까, 겐지 이야기에 대해 무지하여 그 배경을 잘 모르겠지만, 섬세하고 감각적인 묘사가 이어진다. 그 당시의 정서도 알고 읽어낼 수 있다면 더 잘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알렌테주>


마누엘과 루이스의 여행기. 누구에게나 다정한 마누엘과 이를 불안해하는 루이스. 묵게 될 숙소에서 만난 가출상습범 소녀 엘레나와 그녀의 어머니인 아름다운 플라비아. 다른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두 사람을 보면 친구 사이로 보일지라도, 틀림없는 연인 사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애써 의미를 부여한 화해 여행에서 또다시 싸움을 하면서도, 평생의 단짝처럼 너무나도 잘 맞는 두 사람.  어느 관계에서든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 강요할 수도 없고, 변화를 기대하는 게 실망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벽에 기대선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상상해보기도 하는 두 사람은 결국 현실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평생을 함께 할 수도, 아님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처럼 결국 한 조각처럼 잘 맞는 두 사람이기에 지금을 함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진실은 언제나 나를 무너뜨린다. 141쪽



**



시대가 달랐고, 사는 곳이 달랐고, 관계성 또한 각기 달랐다. 잔잔하게 이는 물결처럼, 고독과 쓸쓸함의 자리가 커져버린 순간을 그려 보여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는 익숙한 것들도 낯설게 만들었으며, 자신의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하기도 했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는 이별을 겪기도 했고, 평온하면서도 나른한 행복의 순간도 있었다. 단편소설을 쓰는 것을 여행에 빗대어 표현한 작가의 말처럼, 이번 작품집은 각각 이야기 속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 기분이 들었다. 가벼운 듯 가볍지 않았고, 무거운 듯 무겁지 않았다. 붕-하고 들뜬 기분과 한없이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교차했다. 사람은 자신만의 가진 고독의 자리가 있을 것이다. 존재함으로서 얻어진 당연한 굴레와 같이. 그러나 이야기 속 모든 인물들이 결국 둘이서 하나였듯이. 둘이였다 하나 되는 과정도 있었지만. 당연한 말로 함께하기에 기댈 수 있는 것이다. 쓸쓸하고 고독에 파묻힌 삶의 이야기라도. 




(이 리뷰는 소담출판사의 '꼼꼼평가단7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