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F가 된다 S & M (사이카와 & 모에) 시리즈 1
모리 히로시 지음, 박춘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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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본격 미스터리?!! 본격 이공계 미스터리 소설



『모든 것이 F가 된다』






이 소설은 이공계 미스터리의 최강자 모리 히로시의 대표작이라 한다. 작가에 대해서는 잘 못랐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최근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출간된『작가의 수지』의 대략적인 책 소개를 보면서 호기심이 일었다. 소설가는 얼마나 버는지, 인세나 수입 관련된 부분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책인 듯 했다. 작가가 소설을 쓴 계기도 독특하다. 철도 덕후가 원 없이 덕질을 하기 위해, 설정만 그럴 듯한 게 아닌 전문성을 갖춘 치밀함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이공계 소설을 쓰기 위해 시작했다고 한다. 


소설의 큰 이야기 축과 인물소개는 다음과 같다. 출판사 리뷰를 참고한 것이다.


14세 때 부모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았으나, 다중인격으로 판정되어 풀려난 뒤 외딴섬에 세워진 하이테크 연구소의 밀실에 15년 째 격리되어 살고 있는 천재 공학 박사 마가타 시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연구소를 찾은 N대학 공학부 건축학과의 사이카와 소헤이 교수와 제자 니시노소노 모에는 마가타 박사가 1주일 동안 외부와의 교신을 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마가타 박사의 방으로 향하던 순간 갑작스런 시스템 오류가 발생한다. 당황한 그들이 박사의 방 앞에 이르렀을 때 밀폐되었던 문이 열리며, 웨딩드레스가 입혀진 사지 절단된 시체가 운반용 로봇에 실린 채 나타난다. 마가타 시키 박사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다. 


최첨단 시스템에 의해 24시간 감시되고 있던 박사의 방은 어떤 침입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밀실에 숨어 들어가 그녀를 살해하고 도망친 것일까. 뜻밖의 살인사건과 시스템 오류에서 비롯된 외부와의 연락 두절로 연구소는 혼란에 빠진다. 그런 와중에 외부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헬기에 있던 무전기로 연락하려던 신도 소장마저 살해된 채 발견된다. 한편 부소장 야마네는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 있는 연구소의 사정을 내세우며, 사건을 잠시 은폐하려는 계획을 조심스레 내놓는다. 사이카와 교수와 제자 모에는 마가타 박사의 컴퓨터에 남겨져 있던 ‘모든 것이 F가 된다’는 메시지를 실마리 삼아 밀실 살인에 숨겨진 비밀을 밝히기 위한 조사에 나선다. 



**




소설은 어떤 만남 속 대화로 시작된다. 주인공 콤비 중 조수격인 대학생 모에가 혈연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성사 시킨 마가타 사키와의 만남이다. 그러나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마가타 시키는 왠지 모르게 차가운 로봇같이 느껴진다. 모에와 나누는 그녀의 대화 방식은 낯설고 기계적인 데에 비해 호기심이 가득하다. 사람과는 직접적으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화면으로만 대화하는 괴짜이기도 하다. 


이른바 밀실 살인 사건이 발생된 지 얼마 안돼 또 한 번의 살인 사건이 발생된다. 사이카와 교수와 모에 콤비는 서로 다른 관점으로 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섬 밖의 세상에선 평범하지 않은 것들이 이 섬의 연구소에서는 평범한 것이 되고, 소통은 메일 같은 메신저로 이어질 뿐, 직접적인 대면이 없는 곳이다. 개인 거처의 독립성이 주가 되는 곳. 유용한 시스템에 의해 조절되는 공간. 즉, 이중밀실인 셈이다. 연구소, 그 연구소가 있는 섬. 



완벽한 밀실을 구조하고 그 안에서도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발상과 트릭은 기발하고 놀랍지만, 그에 비해 정작 중요하게 다뤄줘야 할 인물들이 일종의 장치로만 활용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사이카와 교수와 모에의 케미를 비롯해 별다른 매력을 못 느낀다는 점이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작가는 트릭과 밀실을 만들고 이를 풀기 위해 과정 속 이공계 지식들을 발산시킬 때 왠지 모를 희열과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놀라움의 반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끌리진 않았다. 풀어가는 과정은 길고 장황했으며, 딱딱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인물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재능이 있는 이는 천륜을 어기는 것 또한 용납되어지는 것인지,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런 일들을 벌였음에도 가진 능력과 변명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체가 놀랍고 신기했다.


그러니 본격 이공계 소설을 창조하기 위해 인물들이 소모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동기나 문제해결 과정에서 발휘되었어야 할 각각의 요소들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증발하고 만다. 


좀더 정밀히 다뤄야 할 심리적인 묘사 부분이 사건과 잘 부합되지 않는 느낌이 든다. 즉. 밸런스 붕괴 같다. 사건과 인물을 적당히 배합시켜야 되는 게 아닐까.

작가는 어떠한 사건을 다룰 때 중점적으로 보는 시선이 다른 듯 하다. 왜 그러한 일들이 벌어지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세밀하지 못하다. 전반적으로 도식적이고 기계적인 느낌이 강하다.


사건도 중요하지만 인물의 매력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텍스트에서 탐정 역을 하게 된 사이카와 교수는 골초에 특이한 기질을 가진 괴짜인데다, 내면에 꿈틀대는 새로운 자아는 아드레날린의 폭발이 이뤄지는 긴장의 순간 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왠지 모르게 별다른 매력을 못 느끼겠다. 모에라는 대학생 역시 마찬가지. 설정은 있으나, 텍스트 밖의 독자로서는 그저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점은 90년대에 이런 소설이 쓰여졌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등장하는 지식과 언어는 생소하지만 신뢰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공상소설에 약간의 미스터리가 가미 됐다고 느낄 뿐. 애매하다. 


읽다 보니 히가시노 게이고의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가 떠올랐다. 이 작품도 드라마화 되어 인기를 끌었듯이,『모든 것이 F가 된다』역시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로 각각 제작되었다. 읽다 보면 느낄 테지만, 솔직히 드라마보단 애니메이션쪽이 소설의 이미지를 극대화 시켜주고, 표현하기에도 수월했을 것을 것 같다. 이 텍스트의 감성을 잘 포옹할 수 있는 장르가 애니 같다고 느낀 이유는 가상 공간을 표현하는 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갈릴레오 시리즈는 영상화되고 나서 추가된 인물인 우츠미와 유카와 교수 케미, 캐릭터성이 조화로웠기에 매력적이었다. 모리 히로시의 다른 작품 시리즈를 더 찾아보면 알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만으로는 더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나와는 상성이 맞지 않았고 취향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심 분야와 가까워졌을 때 다시 찾아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좋은 부분들에 비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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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펭귄클래식 19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최진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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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랑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첫사랑』





저자 투르게네프는 1818년 아룔 현에서 태어나, 포악하고 전제적이었던 어머니와 이상적인 남성상인 아버지의 냉정함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첫사랑』은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한 작품이기도 하다.


19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처음 경험한 사랑의 감정, 그 본질에 눈뜨게 되는 한 소년의 성장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성숙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주인공인 블라디미르는 부모님의 시골 영지의 이웃이 된 자세키나의 공작부인의 딸 지나이다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신기하게도 이 시대에는 아름다운 여성에겐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게 되는데, 그녀는 여지를 줄 듯 안 줄 듯 그들이 서로 대적하게 만든다. 블라디미르는 처음 겪는 열병같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소년이였고, 그녀가 원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모른 채, 미소와 애정어린 눈빛 하나만으로도 착각하며 설렜다가 절망하기도 한다.


사람을 본다는 것,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본래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먼저 보게 되는 듯 하다. 몇 번의 만남과 인사로 상대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오류는 이 소설에서도 자연히 발생된다. 심지어 블로다미르는 시간이 흐른 뒤, 첫사랑을 회상하며 지나이다를 묘사할 적에 과거의 '연인'이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이 소년이 그녀의 '연인'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다수의 연적들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그가 그중 특별하게 대해졌다 느껴졌다면 순수한 열정 혹은 다른 이유가 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겠다. 어린 소년은 직선적인 루신 박사와 달리 그녀의 미소와 말에 가려진 진짜를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길지 않지만, 소년이 화자로 발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 순수한 열정, 열에 달뜬 듯한 감정, 흥분, 설렘, 기쁨 그리고 분노, 좌절, 절망, 포기 등 다양한 감정 변화를 읽는 독자가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야기 속 갈등은 소년이 '진짜' 연적의 상대를 알게 된 순간, 취하게 된 태도로 인해 발생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어린 소년의 첫사랑에 내포된 함의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다. 단순히 사랑의 감정을 경험한 이야기라 하기도 애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의 유년시절과 그가 느꼈던 감정들을 작품 속에 그대로 녹여냈다고 한다. 특히 자신이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꼽는 아버지에 대한 동경이 그러하다. 지나이다에 대한 감정에 대한 묘사에 비해 아버지에 대한 감정 묘사의 극히 일부, 군데군데 있을 뿐이지만 그 힘의 파장은 분량에 못지 않다. 가히 복합적인 감정의 덩어리가 아닌가 싶다.


또한 시간이 흐른 후, 지난 시절의 자신이 어린 아이였음을 인정하고 이제는 성숙해졌다 말한다. 그러나 이때 화자가 어떤 광경을 목격하고서 내린 판단만 봐도 그는 여전히 아이같이 느껴진다. 잘 모르겠지만, 신체적 고통을 인내하는가 사랑인지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에.


어쩌면 우린 사랑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선 모두 어린아이가 되는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사랑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지나이다가 권한 여러 놀이 중 만약을 가정하며 상상을 이야기 하는 것만 봐도 그녀 역시 사랑에 빠졌고, 그 상대의 생각이 궁금하여 그녀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일말의 실마리라도 얻으려고 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



여러 물음과 흥미로운 지점들이 포함돼있다. 러시아 작품들을 읽을 때의 곤란함, 인물들의 이름이 길고 복잡했지만(다른 러시아 소설에 비해 쉬운 것일수도), 각 인물의 개성을 잘 묘사해주었기에 단순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머릿 속에 장면이 잘 그려지는 묘사가 인상적이기도 하다. 문장이 시원했고, 여려 겹으로 꼬아 놓은 것이 아니기에 고전문학에 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도전해볼 수 있는 좋은 책인 듯 하다. 


세계문학고전은 출판사별로 다양한 구성으로 출간돼 있는데, 구미별로 찾아 읽으면 될 것 같다. 같은 작품이라도 역자에 따라 그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첫사랑』같은 경우, 민음사의 번역보다 펭귄클래식의 번역이 가독성이 더 좋았기에 선택하게 됐다. 민음사에서 나온『첫사랑』은 이 작품 외 2편이 더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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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밤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2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석환 옮김 / 해문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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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집시의 집에 숨겨진 이야기



『끝없는 밤』





보통의 추리소설과는 달리 이 소설의 사건은 거의 후반부쯤에나 발생한다. 그전에는 한 한량과 순진한 재벌 처녀와의 로맨스만 이어진다. 그들은 운명적으로 집시의 땅 그 언덕에서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소설은 영국남자 마이크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시작된다. 순수한 여인 엘리의 배경을 모르고 만났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나, 상당한 유산을 물려 받을 그녀 옆엔 많은 인물들의 시선이 교차된다. 마이크가 특히 경계하고 싫어하는 그레타라는 여인은 젊은 여성이지만 엘리의 옆에서 친구이자 의지가 되는 사람으로, 그녀를 조종하다시피 움직이게 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를 경계하는 변호사, 연이어 사업실패를 하는 삼촌, 새어머니 등등 모두 하나같이 수상해보이는 인물만 등장한다.


반면 마이크의 옆에는 괴짜지만 실력있는 건축가 산토닉스가 있다. 건강이 나빠 요양중이지만, 마이크의 부탁에 따라 집시의 땅에 집을 지어주는 인물이다. 반면, 마이크의 어머니는 마이크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이는 중요한 반전과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별다른 사건 없이 그들이 만나고 사랑에 빠지며, 반대의 끝에 결혼을 하게 되고 결국 저주받았다는 그 땅에서 집을 짓고 살아가는 이야기만 차례로 나열되고 있다. 마이크는 꿈도 없이 떠도는 인물로, 그의 시점으로만 전개되기 때문에, 그가 무척 순진하고 검은 속내라곤 하나도 없는 듯이 느껴지게 한다. 더군다나 가장 경계하는 인물이 일에도 능숙하고 매혹적인 외모를 가진 그레타라니, 지나치게 경계할 때 뭔가 더 수상해 보이긴 했지만...


이 소설의 사건은 엘리의 죽음이며, 그 핵심은 이와 관련된 마이크의 고백에 있다. 흔히 서술트릭이라고들 한다. 홈즈의 시대에는 없었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시대에는 있었다는 작법. 이는 치밀한 구성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 진행으로 구축되어야만 그 맛을 한층 더 잘 살릴 수 없는 기법인 듯하다. 자칫 잘못 하다간 김이 팍 새어버리듯, 이야기의 맛도 멋도 모두 증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작품 중엔 이와 비슷한 작법으로 서술된 앤터니 호로비츠의 <모리어티의 죽음>이 있다.


<끝없는 밤>의 아쉬운 점은 치밀한 구성에 비해 이야기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엘리의 죽음에 감춰진 비밀과 있는 힘껏 잡아뒀던 분위기가 막상 그 빛을 발하게 될 범인의 등장의 순간 아, 역시 하고 예상과 맞아 떨어진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무척 놀랍고 재밌는 이야기이었을 것 같다.


왜 마이크는 어머니를 두려워했는가, 산토닉스의 마지막 말에 담긴 뜻은 무엇인가, 

마이크는 왜 그리 그레타를 경계하고 싫어했는가, 집시 부인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왜 끝없는 밤인가. 


이러한 물음들의 대한 답은 모두 마이크의 고백 속에 있다. 해소되지 않는 것 없이 끝나니 완결성은 탄탄한 작품인 듯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스포일러는 이 책의 소개에 있다. 


첫번째 살인, 두번째 살인, 세번째 살인, 네번째 살인 - 여기까지는 욕망에 의한 살인이었다. 그러나 이제 살인하는 재미가 붙은 그는 자기의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드디어 그는 지금까지 살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며 다섯 번째 희생자의 목을 조른다. 애거서 크리스티만이 창조할 수 있는 교묘한 범죄의 세계 - 우리는 이 작품을 읽으며 끝없는 고독을 느끼게 된다. 범죄 세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영혼의 고독을..... (예스24)


개인적으로 내겐 애거서 크리스티보단 아서 코난 도일의 홈즈가 더 매력적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읽을 것이 아직도 무수히 많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때론 아무것도 모르고 읽을 때 그 재미가 더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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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술가로 살기로 했다 - 창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고민 해결 프로젝트
에릭 메이젤 지음, 안종설 옮김 / 심플라이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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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다른 나라, 다른 세대의 예술가들의 현재 고민은,




『나는 예술가로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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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독서단>이라는 프로그램을 한창 재밌게 봤던 적이 있었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고정 멤버들이 교체되고, 포맷이 변경되어 갈수록 성격이 모호해진 듯 했지만, 놓을 수 없었다. 책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었음은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중 어떤 주제에서 이 책을 알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메모한 목록 중에 있었으니, 누군가가 추천한 책 인 것은 확실하다.

이 책의 저자를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창작자들을 상담, 코칭하는 전문가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미국에서 가장 저명한 창의력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심리치료사. 오리건대학과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등에서 심리학, 문학, 철학을 공부했으며 창의적 글쓰기로 석사학위를,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대단한 이력이다. 앞으로 언급할 내용에도 있을 테지만, 여러 직업을 전전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퍽 부럽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예시가 있었고, 사람 고민하는 것은 매한가지구나, 라는 것만 확실히 알 수 있을 뿐, 우리나라에 창작자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창의적인 직업을 선택하거나,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지망생들 중 앞으로가 불안하고 답답해서 어떠한 솔루션을 기대했다면 과감히 덮으라고 말해주고 싶을 만큼, 현실적으로 너무 딴 세상 이야기이기도 하다. 밥벌이의 지겨움과 고된 현실, 창작이 막혔을 때의 고민만이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공통점이라 볼 수 있겠다.



**



저자는 창작자들에게는 큰 신뢰와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모양인지, 그들도 확실한 솔루션을 얻기 보단 이 사람에게 상담을 받음으로써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듯, 홀가분한 기분이 느끼는 듯 했다. 

25명의 각기 다른 분야의 창작자들과 전자우편으로 질문과 답을 주고 받은 것을 그대로 기록한 게 이 책의 전반적인 구성이다. 작가지망생부터 다수의 책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 작가, 화가, 보석디자이너, 가구디자이너, 사진작가, 교사, 카운슬러 등등 그 직업군도 다양하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창작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지만, 그들은 사실 모두 프로라는 사실이다. 아직은 아마추어에 불과한 창작자들, 지망생들이 얻고자 하는 답은 찾을 수가 없다. 으레 그렇듯이 사실 그런 답은 자신 안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는 것 뿐. 심지어 지망생으로 나오는 창작자들 역시 완전 초보 창작자가 아닌 프로 직전의 아마추어들이다. 

또한 언뜻 언급되는 연령대만 봐도 40대 후반~60대 전,후반(더 젊은 연령대도 분명히 있었겠지만)으로 대개 중년들인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창작 활동을 하다 보니 자신의 세계 안에 갇혀 나쁜 습관들이 굳은 살처럼 박히게 되어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물론 생활에 치여 고민이 더해진 것도 사실이다. 

상담 과정은 과거와 현재의 고민, 앞으로의 2개월 뒤 기대하는 것에 대해 우선적으로 묻는다. 답이 오면, 다시 현재의 정확한 상황 판단을 위한 추가 질문이 한 뒤, 앞으로 2주 동안의 계획과 최소 목표, 궁극적 목표 설정들 중 우선순위를 지정해준다. 경과를 지켜보고, 2주 간의 실행 보고서가 오면 이에 따른 필요사항들에 대해 말해준다. 이어 앞으로 3주 동안 작업할 내용에 대해 상의하는 방식이다. 

질문과 답이 서신을 통해 오고 가는 것 뿐, 직접 대면해서 하는 상담이 아니라 자신의 고민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 해결할 수 있도록 제안과 방향 제시만 할 뿐인 것이다. 그것 또한 상담을 청한 창작자들이 스스로 세운 계획과 상황 속에 이미 주어진 것들이다. 제 3자의 객관적 시선으로 봐주는 것과 같다. 


말 그대로 저자가 상담을 하며 제안한 것들 중에 기억에 남는 것들을 정리해보자면 이러한 것들이 있다.


- 내면 깊숙한 곳에 숨은 "예술적 테마" 끌어내기


- 매일 꾸준히 한 가지에 일에 몰두하기, 물론 창작 활동을 말함.


- 글을 쓰는 건 내 글에 책임을 지는 일과 같은 것


- 준비 작업을 하고, 충분히 예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일단 쓰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


- 모든 걸 포기하고서라도 쓰는 게 즐겁다면 해야 된다는 것


- 유명작가든 지망생이든 언제든 비판 받을 수 있고, 거절 당할 수가 있다


- 창작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인지, 결과로 나온 작품을 바라보는 것을 즐기는 것인지, 창의성이 향하는 목표지점이 어디인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 결국 답은 늘 자신안에 있다는 것(더 나아갈 것인지, 이대로 만족하며 멈출 것인가)


- 조급해 하지 말고 자신감 형성하기, 자신 있게 과감히 결정해버리기


- 스위치를 켰다 끄듯이 새로운 날들로 열어 젖혀야 하는 것, 변화를 주저하지 말 것, 이해하는 것을 넘어 실행에 옮기는 것


- 전통적 치료법이 목표는 통찰력, 실존적 치료법의 목표는 새로운 희망?


그나마 얻은 것은 이러한 창작활동을 하며 자신이 즐거워하는 지점이 어떤 것이며, 다른 모든 것들 배제하고서라도 가장 먼저 택하고 싶은 것 인지를 고민해야 하며, 매일 꾸준히 해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


이 책이 자기계발 분야 서적으로 분류되어 있는지 이 리뷰를 쓰며 알았다. 알았다면 읽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은 게 한창 방황하고 힘들 때 닥치는 대로 읽었던 자기계발서들은 하나같이 성공담과 더불어 '답은 네 안에 있는 거란다'라는 결론만 내었을 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돈벌이로 택한 일을 잘 선택할 수 있도록 건강한, 동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청춘이라고 불리는 시기에는 자주 피로함을 느끼곤 했던 수많은 어제의 '나'와 또 어제가 떠오른다. 너무 많은 좌절과 낮은 눈높이로도 오갈 데 없어 절망하고 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으니까 괜찮다는 세상과 앞선 세대의 시선 속에서 고개만 수그리게 되는, 그런 피로한 시대에 속한 자로서...


꿈꾸는 사람들이 행복한 오늘을 맞이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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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김선우 지음 / 새움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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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떻게 다를까,


『우리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김선우 시인의 산문을 처음 접한 건 최근 출간된『부상당한 천사에게』를 통해서였다. 

이전에 시를 맨 처음 접했을 때, 나의 감상을 비롯하여 어떠한 닫힌 생각 속에서 바라봤기에, 주목하지 못한 작가이기도 했다. 


어떤 책을 만나는 데에는 뚜렷한 목적도 있겠지만, 많은 긴장 속에서 느슨한 여유가 필요할 때, 알고 있었으나 잊고 있었던 이름으로 인해 꺼내 들기도 한다. 내겐 김선우 시인이 그러했다. 곧 다른 산문 역시 더 읽어 싶어져 찾게 된 책이다. 2007년도에 나왔으니, 올해로 나온지 10년이나 된 책이다. 그래도 이제라도 만나서 참으로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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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총 세 장으로 나눠 구성되어 있다.
1장은 꿈의 학교라는 제목으로, 부산에 있는 '인디고 서원'에 방문하여 그곳의 아이들과 토론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서점은 청소년을 위한 서점이라고 한다. 시인은 아픈 몸을 이끌고, 아파도 절대 잘 안 챙겨 먹던 약까지 먹으면서까지 이곳을 방문한다. 여기서 시인은 맑은 눈을 가진 아이들과 꿈, 삶,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두 가지 정도가 있는데, 첫 번재는 아이들이 가지는 꿈에 대한 태도였다. 장래희망이나 목표, 또는 이상향과 상상력과 합심한 꿈까지, 다양한 색채를 지니고 있었다. 

두 번째는 그곳의 선생님으로 계신 어떤 질문자가 던진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녀가 아픈 어머니를 간병하며 얻게 된 시선은 자신 안에 내재된 또다른 여성성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과거에서의 모습이 아닌 지금보다 훨씬 더 시간이 지난 뒤의 중년, 노년의 여성으로서의 태도나 시선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닌 이미 그 속에 내재된 모습이었다는 것이 뜻밖이었다.
마치 계절이 바뀔 때마나 그때 그때 옷을 꺼내 입듯이, 이미 내 속에 있는 수많은, 늙은 여성의 모습들을 그때 그때 꺼내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질투가 아닌 안타까워하며 포용의 자세로 너른 품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은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다 개천가에서 오줌을 눌 때 그곳에서 함께 오줌 누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그러면 안된다며 혼이 났다고 했다.
여자는 조신해야 하기에 바깥으로 뛰어놀기 보다 좀더 얌전한 태도를 가져야 하며, 남자는 강해야 하고 일생에 딱 몇 번만 울어야 한다는, 이상한 강요점들은 여전히 사회 전반에 만연한 것들이다.

생리현상에 성은 구별 지을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생물학적인 차이일 뿐이라고 말한다.

지금을 남성보다 강한 여성이 활약하는 여성성의 시대로 보는 게 아니라,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성차별주의가 발생시키는 억압과 부자연스러움, 착취의 문제에 물음표를 던지는 게 작가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인 것이다. 이는 모두가 더불어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던지는 물음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대다수의 수컷 동물들이 보이는 힘을 통한 서열 정하기, 강자를 중심으로 서열이 정해지며 경쟁하는 건 인간 사회 속 남성의 힘의 논리와 가깝다고 말한다. 평화가 필요하기에 여성성에 대한 화두가 던져진 것이고, 생명을 잉태하고 보살펴 온 몸의 기억들, 친밀성, 공명하는 힘, 사랑하고 연민하는 힘이 구원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모두가 공생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원적 능력이라고 생각하기에, 여성성이라고 통칭되는 것들을 드러내서 적극적으로 발현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장은 천 개의 뜨거운 심장이 뿜어내는 신호음이라는 제목으로, 일간지에 연재했던 칼럼과 시사주간지에 실었던 글을 모아놨다. 사회를 바라보는시인의 날선 시선들이 담겨 있는데, 이는 최근에 나온 산문집에서의 글들과 그 성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시인이 쓴 산문 속 그가 가진 일관된 태도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횡포에 부끄러워하며, 죄스러운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이 그러하다. 인간에게는 그러할 권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순되지만 인간의 법규와 절차에 따라 그 생태계가 무참히 무너지고 있는게 현 세태의 부정적인 모습 중 하나이다.

피를 먹고 자란다는 민주주의 '민주'의 행방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시대가 퇴보되는 것과 같이 동일한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잘못된 실수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의 타락상, 노조라고 다르지 않음을, 약자로 향할 때 더 슬프기만 한, 보살핌 노동은 관습적으로 여성에게 요구되어 온 일들이었으며, 여성과 노동의 가치가 폄훼되는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 공동체의 비극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자연 속의 생명력을 귀하게 여기며, 조심히 그 세계 속에서 고요히 한 생 거쳐갈 뿐인 인간들이 산과 물과 바람의 길을 막아 재해를 일으키고, 이를 막기 위한 해결 방안 역시 인간의 편의로만 판단하기에, 생태계는 점점 오염되고 있다고 한다. 

그와중에 이득을 취하는 구조 역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고 있으며, 가진 자의 이득을 위해 건설되는 것들이 못 가진 자들의 터전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 그 피해는 오로지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민이라는 것도 슬픈 현실이었다. 

문화, 해외파병, 한미FTA , 위안부, 교육, 이민 등등 그 시절의 뜨거웠던 주제에 대한 시인의 태도는 새로운 시각을 하나 더 열어주기도 했고, 같이 분노하며 슬퍼하게도 했다.


다양한 화두에 대해 시원스럽게 말하는 시인이 참 좋았다. 내면 속으로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바깥으로 또 그 바깥으로 향하는 시선이 참 반가웠던 것 같다. 이렇듯 시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그 언어에 잘 담겨 있으니 단어도 문장도 모두 생명력이 넘쳐 읽는 독자에게도 생생하게 전달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 장은 손가락이여 심장들이여, 어떻게 이 고양이를 살리죠? 라는 제목으로 시인과 비평가의 관계성에 대해 주목했다. 시인은 시를 쓴 운명적 계기를 앞서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시를 분석하는 시 비평에 대한 시인의 솔직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시인은 비평가와 더불어 공생할 관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좋은 비평이 나와야 함을, 때문에 원로 작가든, 신인 작가든 상관없이 비평 그 자체로서 문학성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또 다른 세계로써 그 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그러한 이성적인 관계성을 가지기를 기대한 것이다.

시 비평이란 무엇일까, 이전에는 일반 독자들에게 좋은 시들을 소개하는, 그리하여 자신이 비평하는 대상 시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가지고 대하고 있는, 주로 언급된 인물로는 김현이 있다. 김선우 시인은 시인과 평론가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획득하여 더불어 문학의 길을 함께 걸어가길 바란다고 하였다. 그러나 일부 평론가들의 일종의 선언들이 시인들이 만들어나가는 시 세계에 대한 자기검열의 압박이나 권력적인 용어 선택으로 인해 이분법적으로 구분 짓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일례로 나는 읽으면서 소위 2000년대 이후 등장한 '미래파' 시인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정작 그 용어로 묶인 시인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시적 발화 자체가 자기 부정의 일환인데, 문학은 역시 어느 것을 통해서든 인간을 바라보는 것인데, 이를 '주체의 자기동일성'이라든지, '탈주체'라든지, '자연의 매트릭스'라든지, 이러한 선을 긋고 일방적으로 나눠버리는 게 문제인 것이다.


소통을 거부함으로써 다른 매개체를 통해 소통을 하려는 노력이나, 주체가 대상에 빙의해 발화하는 샤먼적 언어에 대한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또한 그러한 용어 사용으로 인해 카테고리 안에 갇혀진 시인들과 그 밖의 시인들이 스스로 가하는 자기검열과 소외감은 어떻게 할 것인가. 

비평의 권위적 용어에 갇히게 되고, 억압 받게 되는 것에 강렬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나 담론으로 엮인 시인들은 어떠한지, 혹은 그 시대를 살았으나 다른 미적 가치를 추구하여 또다른 세계관을 구축해가는 시인은 어디에 엮으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점이 들기도 하다. 


물론 시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로 바라보는 좋은 평론가도 분명 존재한다. 앞서간 과거의 인물이 계속 소환되지 않도록, 더 좋은 평론가도 만나볼 수 있음 좋지 않을까. 실제로 이젠 비평의 장벽도 너무 높게 느껴진다. 지성을 강조하고 문제적 주제 선점을 위한 선언은 단언하건대 자중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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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는 그의 몸을 자유자재로 통과하며, 혀와 잇속을 지나는 바람소리, 굴리는 발음에서 오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특유의 관찰력으로 전달해준다. 각 구절 별 문장 속에서, 그 문장 속 단어 하나하나에서 읽으면 읽을수록, 시인은 우리 언어에 특화되어 있음을 실감한다. 시를 통해서도 그렇지만 산문 또한 이토록 매력적이라니, 그렇게 알차고 리듬감 있게 전개되는 방식이 더욱 좋다. 한데 뒤섞여 씹히는 말이 아닌, 각각의 방향으로 한껏 뻗어나가는 자태가 참 부럽기도 하다. 


시인의 산문을 읽고 난 후, 시를 읽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풍경과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성의 변주로만 읽었던 것들에서 천진한 인간성으로 더 폭넓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인의 다양한 시각과 관점들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전혀 떠올리지 못했던 색다른 관점도 있었지만, 어떤 부분은 한쪽으로 쏠려 있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미당에 대한 시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은 일치하여 신기하기도 했다. 


다음은 시인의 신작 시집과 더불어 또 다른 에세이도 찾아보려 한다.




우리가 문명의 힘으로 가하고 있는 무수한 폭력들, 강자인 인간으로서 약자인 인간 이외의 생물종들에 대해 보이는 오만과 폭력, 강자의 논리로 약자를 집어삼키려는 무수한 전쟁의 역사, 힘의 논리 속에 폭력적으로 착취되어온 계급과 인종의 성의 역사...도처에 끊임없는 전쟁들을 보세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구요? 정말 그래요?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거예요. 언제나 이 비교격이 문제예요. 우리 모두는 사람 하나 꽃 하나가 다 귀한 존재들이거든요. 공생하고 연대하고 보살피고 껴안고 가야 할 많은 것들에 대해 우리는 종종 너무나 오만해요. 이 오만한 폭력의 기원에 슬프게도 손의 자유가 있어요. 손이 자유를 얻어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참 아름다운 것들이 있지요.(...)그런데 지금 우리의 손은, 우리가 안아준 것보다 더 많은 악행을 함께 저질러 오고 있잖아요. (...)이것이 인간의 손을 바라볼 때 거의 언제나 어떤 복합적인 슬픔을 느끼게 되는 이유일 거예요. 직립의 슬픔이기도 하겠구요.

/63 - 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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