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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밤 ㅣ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2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석환 옮김 / 해문출판사 / 2008년 2월
평점 :
저주받은 집시의 집에 숨겨진 이야기
『끝없는 밤』
보통의 추리소설과는 달리 이 소설의 사건은 거의 후반부쯤에나 발생한다. 그전에는 한 한량과 순진한 재벌 처녀와의 로맨스만 이어진다. 그들은 운명적으로 집시의 땅 그 언덕에서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소설은 영국남자 마이크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시작된다. 순수한 여인 엘리의 배경을 모르고 만났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나, 상당한 유산을 물려 받을 그녀 옆엔 많은 인물들의 시선이 교차된다. 마이크가 특히 경계하고 싫어하는 그레타라는 여인은 젊은 여성이지만 엘리의 옆에서 친구이자 의지가 되는 사람으로, 그녀를 조종하다시피 움직이게 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를 경계하는 변호사, 연이어 사업실패를 하는 삼촌, 새어머니 등등 모두 하나같이 수상해보이는 인물만 등장한다.
반면 마이크의 옆에는 괴짜지만 실력있는 건축가 산토닉스가 있다. 건강이 나빠 요양중이지만, 마이크의 부탁에 따라 집시의 땅에 집을 지어주는 인물이다. 반면, 마이크의 어머니는 마이크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이는 중요한 반전과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별다른 사건 없이 그들이 만나고 사랑에 빠지며, 반대의 끝에 결혼을 하게 되고 결국 저주받았다는 그 땅에서 집을 짓고 살아가는 이야기만 차례로 나열되고 있다. 마이크는 꿈도 없이 떠도는 인물로, 그의 시점으로만 전개되기 때문에, 그가 무척 순진하고 검은 속내라곤 하나도 없는 듯이 느껴지게 한다. 더군다나 가장 경계하는 인물이 일에도 능숙하고 매혹적인 외모를 가진 그레타라니, 지나치게 경계할 때 뭔가 더 수상해 보이긴 했지만...
이 소설의 사건은 엘리의 죽음이며, 그 핵심은 이와 관련된 마이크의 고백에 있다. 흔히 서술트릭이라고들 한다. 홈즈의 시대에는 없었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시대에는 있었다는 작법. 이는 치밀한 구성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 진행으로 구축되어야만 그 맛을 한층 더 잘 살릴 수 없는 기법인 듯하다. 자칫 잘못 하다간 김이 팍 새어버리듯, 이야기의 맛도 멋도 모두 증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작품 중엔 이와 비슷한 작법으로 서술된 앤터니 호로비츠의 <모리어티의 죽음>이 있다.
<끝없는 밤>의 아쉬운 점은 치밀한 구성에 비해 이야기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엘리의 죽음에 감춰진 비밀과 있는 힘껏 잡아뒀던 분위기가 막상 그 빛을 발하게 될 범인의 등장의 순간 아, 역시 하고 예상과 맞아 떨어진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무척 놀랍고 재밌는 이야기이었을 것 같다.
왜 마이크는 어머니를 두려워했는가, 산토닉스의 마지막 말에 담긴 뜻은 무엇인가,
마이크는 왜 그리 그레타를 경계하고 싫어했는가, 집시 부인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왜 끝없는 밤인가.
이러한 물음들의 대한 답은 모두 마이크의 고백 속에 있다. 해소되지 않는 것 없이 끝나니 완결성은 탄탄한 작품인 듯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스포일러는 이 책의 소개에 있다.
첫번째 살인, 두번째 살인, 세번째 살인, 네번째 살인 - 여기까지는 욕망에 의한 살인이었다. 그러나 이제 살인하는 재미가 붙은 그는 자기의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드디어 그는 지금까지 살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며 다섯 번째 희생자의 목을 조른다. 애거서 크리스티만이 창조할 수 있는 교묘한 범죄의 세계 - 우리는 이 작품을 읽으며 끝없는 고독을 느끼게 된다. 범죄 세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영혼의 고독을..... (예스24)
개인적으로 내겐 애거서 크리스티보단 아서 코난 도일의 홈즈가 더 매력적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읽을 것이 아직도 무수히 많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때론 아무것도 모르고 읽을 때 그 재미가 더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