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우울
가와사키 소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소심하고 겁 많은 프라모델 마니아 다나카 서장과 그의 유능한 부하들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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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다나카 겐이치는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했던 수재이자도쿄대 출신 국가공무원 1종 시험에 합격한 경찰 관료 엘리트이다그러나 그의 인생의 주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이라기보다 그저 공부를 잘했기에주변의 권유가 있었기에단순히 아버지가 경찰관이셨기에도쿄대 문과 1류에 들어갔고경찰 관료가 된 것이다주변에 잘 휩쓸리고 출세나 야망이나 정의나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인물인 것그나마 있는 인생 최종 목표란 정년퇴임 후경찰청 어느 산하단체에 들어가 프라모델 구 일본 해군의 연합함대’ 전체를 완성하는 것이다.

 

프라모델 생각으로 사는상당한 프라모델 마니아인 주인공.

 

플라스틱 모델의 일본식 줄임말인 프라모델은 플라스틱으로 된 조립식 모형 장난감이다조립식 키트가 내장되어 있으며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부품을 조립하여 만드는데 다나카는 부품 도색부터 정교하게 하나씩 만들어나가는 걸 추구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다나카 겐이치는 갑작스러운 경찰청 내부의 인사이동으로 시코쿠의 시골 경찰서 서장으로 발령받게 된다선배로부터 '현장 사건에 참견하거나 관여하지 마라네가 할 일은 부하 직원이 올리는 서류에 도장을 찍는 것뿐이다.'라는 조언을 들었고이를 그대로 이행할 생각으로 늘 안주머니 속에 도장을 넣고 다닌다재임기간 동안은 조용히 프라모델 조립만 할 수 있을 거라는 다나카의 기대와는 다르게 조용한 시골에 별별 사건들이그것도 엄청난 스케일로 연달아 발생된다명탐정 코난인가소년탐정 김전일인가 가는 곳마다 사건이 터지는 인물의 특성 수순을 그대로 밟고 있다.

 

일본의 경찰사회에서는 일명 커리어라고 하는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는 게 아닌 관리직은 현장에 대해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게 보통의 관례인 듯 하다일본드라마에서도 형사드라마는 그 장르적 특성에 따라 무수히 많은데열혈경찰과 고위관료의 특성이 대체로 비슷한 양면을 보이기 있기 때문이다물론 주인공 특유의 열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각 롤에 맞춰 달라지기도 하지만.

 

그런데 기발하게도 다나카 겐이치는 이와는 전혀 무관하다정말 도장만 잘 찍고 싶고조용히 지내고 싶은데자꾸만 사건과 엮이게 되고 심지어 해결하는 격이 돼버리는 구성이 대놓고 노린 재미 포인트이다직장에서도 온통 프라모델 생각밖에 없는 남자가그와 관련된 생각들을 혼잣말로 내뱉게 되고그게 수사의 힌트가 되어 해결로 이어지는 방식인 것이다라고 내뱉었더니라고 받아들여 열 배는 더 열심히 뛰는 부하직원들의 유능함에 무사히 사건이 종결되고 한 에피소드가 마무리된다.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부임/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사투/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분노/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고투/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숙적/경사 기쿠치 하루나의 동요/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귀환


총 7가지 에피소드 식의 이야기들이 해프닝처럼 진행된다.

 

처음 시작이 보기 좋은 오해로 시작되어반복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프라모델 제작에 관해서는 상당히 완고한 제작 정신을 지닌 주인공다나카 서장은 프라모델을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긍지에 후퇴는 없다라는 무의식의 한 마디가 교체는 없다”(일본어상으로 발음이 같다고 함)로 전달되고일선 형사들의 열의를 더 불태우게 한다그런 작은 오해의 시작으로 사건은 순방향을 타고 무사해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매번 다른 사건이 발생될 뿐이같은 오해는 계속해서 반복된다.


엘리트 관료들 사이에서는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되어가지만, 부하직원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으로 변모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빽(?)도 생기게 되니...이런 우연함으로 가득한 삶이면 살아볼만 하지 않은가. 본인은 절대 의도하지 않았지만, 좋을대로 해석되는 오해들로 인해 뼛속부터 경찰인 사람이 돼버리고, 그러나 머릿속엔 온통 프라모델 생각뿐인..별다른 갈등과 장애물이 없는, 유연한 삶이 아닌가. 물론 이런 유능한 부하들이 있다는 가정 하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도 생각보다 잘 구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실제로 영상화해도 될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한다표정변화가 없는 모리 부서장비서 격인 기쿠치 경사돼지마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행동대장 마쓰노코지 순경과 니노미야 주임수사관이들에게 각각 비슷한 오해와 우연들이 겹쳐 사건해결에 공을 세우는 것은 정작 본인들이지만이를 모른 채 뛰어난 직감과 통찰력으로 사건을 면밀히 보고 있다는 오해로 다나카 서장을 존경으로 대한다그의 아내인 가오리는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그들만의 기념일만 잘 챙겨주면 만사 오케이인 인물로 드물게 등장한다.

 

사건이란 것도 결코 작지 않다조용한 시골마을이지만연쇄살인사건테러뺑소니공갈협박주가조작납치 등등 그 종류와 스케일도 남다르다어떤 부분은 아예 엉뚱하게도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짜인 사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어설픈 구석도 보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도 단순한 구성의 반복인데다 읽고 나면 또 다음이 궁금해지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 없이가볍게 읽기에 아주 좋다.

 

각 에피소드의 앞엔 말줄임표로 가득한내면의 소리 같은 표현들이 이어지는데처음엔 의미를 전혀 파악하기 힘들기도 하지만읽다보면 누구의 속내인가 파악하는 재미도 있다.

 

또한잦은 부상으로 남들이 살아가는 동안 다 경험하지 못할 온갖 상황과 부상을 입게 되는 게 또 다른 웃음 포인트 같다마치 매 사건마다 부상과 공적을 등가교환하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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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인 가와사키 소시는 일본에서 아주 어두운 호러미스터리를 잘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고 한다그러다 보니 기존 독자들에게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우울은 다소 놀라웠을 것 같다아주 정반대의 분위기로 코믹한 경찰소설을 가지고 나왔으니 말이다그의 전작도 궁금해졌지만다나카 겐이치의 다음 이야기도 더 만나보고 싶다.


어조나 문장을 판단하는 건 어렵지만, 나열하는 식의 표현들이 이어졌기 때문에 그리 매력적이진 않다. 그러나 정보전달은 잘 되니 그 기능은 제대로 하고 있는 듯하다. 이 또한 번역이 아닌 원문으로 읽는다면 더 잘 와닿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원문을 읽을 능력은 없지만.

 

요즘 내 즐거움 중에 하나인 해머시 맥베스 시리즈와 그 결이 닮은 듯하다비슷한 듯 다르지만확실한 건 팍팍한 일상 속에 하나의 큰 즐거움이 되어준다는 점이다잠깐 동안 유쾌한 이야기 속 세계가 잠깐의 일탈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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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
엔리코 이안니엘로 지음, 최정윤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상실 속 희망이 교차되는 휘파람 소년의 성장기,



『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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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마을 마티넬라를 배경으로 이시도로의 익살스럽고도 동화 같은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구성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눠져 있다. 1부는 평화로운 마을을 배경으로 이시도로의 순수한 소년 시절을 환상적이고도 유쾌하게 보여주며, 2부는 대지진 이후, 상실을 겪게 된 이시도로가 조금씩 현실과 마주하며 성장하는 이야기가 보여주고 있다.



말보다 더 능숙하게 휘파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소년 이시도로매일 욕실에서 사랑의 편지를 쓰는 낭만적인 공산주의자 아빠 퀴리노사랑스러운 파스타 장인 엄마 스텔라. 다정하고 행복한 분위기가 가득한 이 가족은 독특한 자신들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이시도로는 특별한 소통 방식을 가지는 동시에, 삶에 대한 여러가지 태도들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습득하게 된 게 아닐까.


이시도로는 태어났을 때 "응애대신에 "프리"하고 휘파람부터 불었다그때부터 이시도로의 휘파람이라는 독특하고 멋진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특히, '알리라는 인도 검은 새와 휘파람으로 대화를 자유자재로 나누게 된다. 무려 두 살 배기 아이가 말이다. 


이는 그들만의 하나의 '언어' 이며, 휘파람 언어인 '우를라피스키오'를 만들어 낸다.


작품 초반부에 이시도로의 가족을 소개하며 이름 짓기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가 등장한 것은 이시도로에게 붙여질 다양한 이름에 대한 암시가 아니었을까 싶다. 평화로운 이 마을에서는 한때 성 따라 이름 짓기가 유행이었고, 그 뜻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 익살스럽고, 어처구니 없는 이름투성이다. 이시도로 역시 그런 위험에 처할 뻔 했으나, 다행히 그런 유행이 한차례 지나간 후였고, 후에 불리게 된 다른 이름들은 전혀 우스꽝스러운 게 아니었다. 이런 이름짓기가 유행한다는 자체가 이야기 속 마을의 분위기가 어떠한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1부는 전반적으로 이시도로의 가족, 이시도로의 첫사랑 마렐라, 이시도로를 무대 위로 올려 그의 재능을 널리 펼치게 도와주는 칸초네 아저씨, 이시도로에게 폭넓은 가르침으로 표현력을 길러준 프랑스 민속학자 르노 아저씨 등 소박하고도 유쾌한,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평범한 일상 이야기가 이어진다.


때론 떠들썩하게, 때론 고요하게. 1부 이야기 속 분위기는 대체로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부모님의 행복한 결혼식, 마렐라의 갑작스러운 뇌성마비로 인한 헤어짐, 1980년 6월 26일 라체도니아 광장의 기적 등 굵직한 사건들이 중심이 된다. 


특히 라체도니아 광장에서 노첼라 아저씨의 연주에 이어 이시도로의 우를라피스키오가 펼쳐진 후, 염려 속에서 관객들에게 혁명적 연설을 하는 이시도로에게, 이 신기한 휘파람으로 노래하며, 말하는 소년에게 사람들은 점점 이끌리게 된다. 


소년의 말에 귀 기울이며, 우를라피스키오를 하나 하나 따라해 보는 사람들 마음 속에 <자유롭고단결하고굳건하라주인도 노예도 없다.>는 말이 용기와 희망으로 다가오게 된다. 관객을 하나로 아우르게 한 휘파람 소년의 힘용기와 희망을 주는 휘파람 언어를 보며 이시도로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에 대해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1부의 말미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인해 부모님을 잃게 된 이시도로는 갑작스러운 상실을 겪으며, 이내 말을 잃게 된다. 아이였지만 마냥 아이 같지만 않던, 애어른 같던 이시도로는 벙어리로 몇 년을 살아가게 되지만, 여전히 휘파람 언어를 나누며 자신의 곁을 지키는, 형제 같은 검은 새 '알리'와 함께 한 단계씩 성장해간다. 


2부에서는 마을과 멀리 떨어진 어느 지역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이시도로의 모습이 그려진다. 처음 수도원 생활을 시작할 때 알게 된 간호사 레나타 누나, 가족을 잃은 슬픔에 이시도로와 비슷한 듯 다르게 극복하며 살아가는 장님 엔초 체호프 아저씨 등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치유해가는 인연들을 만나게 된다.


어느 정도 성장하여 수도원을 떠나게 되었을 때, 이시도로는 엔초 아저씨(빈첸초)의 집에 머물게 된다. 이른 아침, 나폴리 길 안내 등 도시 산책을 도우며 지내게 되고, 또 하나의 비밀을 알게 됨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관계 속에서 이시도로는 좀더 현실을 마주하게 되고, 점차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하게 된다.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기 시작됐을 때 이시도로에게 뜻밖의 선물과 같은 인연을 만나게 됐음을 알리는 마지막 욕실에서 보내는 사랑의 편지는 읽는 이로 하여금 뭉클하게 했다. 마치 아버지 퀴리노에 이어 아들 이시도로의 사랑이 아름답게 이어지고 것처럼.


자신의 전부와 같은 가족을 잃었지만, 그 상처를 잘 헤아려 볼 줄 알았던 소년의 성장기는 아프지만 온기와 용기를 품고 있다. 솔직하고 투명한 아이의 시선이 당혹스럽게 느껴지기도 했고, 유쾌하고 사랑스럽기도 했다.


이시도로는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을 마주하며 현실을 알아가고 배워나가게 된다. 아주 어린 소년일 때부터 다정한 부모님으로부터 잃어봐야 알게 되는 것에 대해 듣고 익혔기 때문일까. 그래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마치 숨처럼, 자연스럽게 내뱉는 말처럼 능숙하게 휘파람 언어를 구사하는 이시도로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희망을 전달해줄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넘기 힘든 산 같이 막막한 역경이래도, 누군가에겐 함께함으로써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걸 친히 보여주는 삶을 살아갈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좌절만 남는 상황 속에서 다행히 별 탈 없이 견뎌내고, 천천히 세상 속에 스며드는 삶의 방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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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작가의 첫 작품이자, 여러 권위 있는 상을 수여한 작품이다.

국내 문학과 다르게 외국 문학 작가들은 그 스펙트럼이 넓다 해야 할까,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 같다. 배우이자 감독, 그리고 작가로써 활약할 수 있다니. 감탄스럽고 신기하다. 그래서 인지 작품 속 여러 장면들이 마치 화면으로 보여주는 듯 생생하게 그려지기도 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적정선을 지키며 조심히 진행돼갔다. 


이시도로가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아픔을 긍정하며, 이겨내가는 끝에 그토록 그리웠던 인연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앞으로의 삶도 잘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가진 특별함은 여러 다른 사람들에게 또다른 위안이 되었을 것만 같다. 1980년도 라체도니아 광장의 기적처럼. 또다른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을까, 하고 내심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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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트리스텔리체란다이시도로세상은 네가 좋아하는 놀이와 닮았단다놀이터에서 하는 그거 있잖니한 사람은 이쪽에또 한 사람은 반대쪽에 앉아서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하는 시소 말이야. 72-73

 

아이들은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알리가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의 꿈은 바로 현실이 되지만 어른들의 현실은 꿈이 실현된 현실이 아니야……."

157-158

 

"아이는 이렇게 생기는 거야." 조금 후에 엄마가 말했다.

"뭐라고요어떻게요?"

"불가능한 것도 믿어야 한단다."

160

 

이해하기 위해서요이해하려면 몸으로 체험해봐야 해요머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바꾸어야 하죠뭔가를 이해하려면 몸의 일부를 바꿔봐야 해요당신을 변화시키면 알게 될 거예요당신의 일부를 잃고 새로 얻게 되면 이해하게 될 거예요잃고 나면 얻을 수 있어요.”

211-212

 

기억해라이시도로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흥얼댈 뿐이고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노래를 부른단다.”

263

 

“(우리 모두는 살아가는 법을 알지만 세상을 들려주는 법은 모르지이것은 최고의 예술이자 완전한 재창조란다세상을 작게 조각내서 먼지로 만들어 불어서 날려버리는 사람이 없으면 세상도 존재하지 않아재료를 노래나 휘파람가곡 또는 패러디소설낱말 놀이음악춤으로 변화시키는 사람이 없다면 세상은 그저 짝짓기태어남과 죽음배설과 섭취가 무작위로 무감각하게 반복되는 곳일 분이다. ()”

323

 

기독교인유대인이슬람교도들은 신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말하지창조하기 이전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이렇게 말해. ‘오페라리 엑스 니힐로.’ 그런데 난 그 반대로 말하고 싶구나무로 회귀하는 작업 무를 만드는 일이라고이것이 내 인생이었으면 한단다힘겹게 얻은 최고의 무내 임무이고 과제이자 일상을 건설하는 것이지.”

350

 

말은 지진이 일어나기 전 내가 말을 할 줄 알았던 어린 시절과 연결되어 있다촌스럽고 무뚝뚝한 농부의 말이었고아빠의 공산주의자 연대의 파급력 있는 외침이거나 욕실에서 쓴 사랑의 편지의 감성적이고 사색적인 말이었다노첼라 아저씨의 재미있는 말르노 아저씨의 이국적이고 신비한 말아빠를 납치하려고 앴던 청년의 입에서 나오는 침울하고 껄끄러운 말아니면 엄마의 숨에서 느껴지는 귤과 누가 향의 맑고 부드러운 말이었다

364-365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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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 공간디렉터 최고요의 인테리어 노하우북 자기만의 방
최고요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꿔보는 것은 어떨까,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목차 이미지 출처: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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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낡은 아파트이다. 30년 이상 되었고, 구조물만 튼튼할 뿐, 그외의 것들은 거의 날림으로 시공된 것을 살아가면서 절실히 느끼고 있다. 바로 옆집만 해도 몇 년 전 리모델링을 하여 공간의 낡은 부분을 손보았고, 지금도 종종 공사하는 소음이 들리곤 한다. 낡아서 고칠 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와중에 우리집은 삭막한 분위기 속, 세월의 흔적 그대로의 모습에서 전혀 변화하지 않고 있다. 살고 있는 이들이 그렇게 무심하기 때문이다. 한때 인테리어 공사를 시도해보려 하였으나, 여러가지 여건 속에 무산되었고, 결국 그런대로 살아왔다. 가끔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면 안쓰럽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사는 이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집이 가엽게 느껴졌지만, 어떻게 손봐야 할 지, 내 선 안에서 가능한 부분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고요님의 블로그도 역시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다. 낡은 다가구 주택이 어떻게 변신하였는지, 그 변화된 모습이 놀랍고 신기했다. 마법의 손이라도 가지신 건가, 난 이런 센스가 없지, 공간디렉터란 무엇일까. 이렇게 하나 둘 호기심과 궁금증이 일었다. 그리고 마침 그 노하우가 담긴 책을 받아보게 되었다.





큰 돈을 들여야만, 엄청난 노동력을 들여야만

내 집이 가치 있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집을 가꾸는 것은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찾는 일입니다.  (14쪽)


가만히 앉아서 제자리에 있는 물건들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


나에게는 그런 공간이 필요했다. 


모르면 몰랐지 누구나 한번 겪어보면 알게 된다.

사실 집이라는 곳은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39쪽)


자신의 공간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나'라는 사람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 저는 이런 것들이 소수만을 위한 특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혜택은 우리가 얼마나 부자인지, 얼마나 시간이 많은 사람인지와는 상관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고, 또 반드시 누려야 한다고 믿고 있어요.


(…)


집을 가꾼다는 것은 우리의 생활을 돌본다는 이야기와 닮았습니다. 방치하지 않는다는 의미죠. 어느 구석, 어느 모퉁이 하나도 대충 두지 않고 정성을 들여 돌보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삶을 대하는 방식이자 행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40-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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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취향 찾기


센스가 없다는 말 뒤엔 나의 귀찮음과 게으름이 있었다. 잘하는 사람은 타고난 것에 노력을 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엔 지속적인 관심이 있었고, 그렇기에 더 좋아할 수 있었던 것인데, 집순이가 집을 방치한 채 두었으니 생활 속 활력이 생길 리가 없었다. 주말이면 종일 지내는 공간이 익숙한 편안함만 빼면 아늑함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볼 수 없는 곳으로, 그렇게 삭막한 상태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왔었다. 항상 집으로 가고 싶어했지만, 그 집은 내가 돌아갈 곳이기에, 나의 가족이 있는 곳이기에, 나의 쉼이 있는 곳이기에 원했던 것뿐이었다. 그 공간을 사랑한 적은 없었다.


고요님이 어릴 적 살았던 집에 대한 묘사를 보다보면 한적한 오후의 따스한 햇살이 머무는, 참 좋은 집이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늘 꿈꾸던 집 같은, 뭔가 과하지 않고, 안락한 느낌의 집.



사람들은 자가인가 전세인가 월세인가에 따라 집 가꾸기의 적극성과 주저함이 달라질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어진 상황에 맞춰 하면 좋을텐데 늘 상황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이때 공간을 가꾸는 저자의 마인드는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 내 소유의 집인가와는 상관없이 지금 내가 머무는 공간을 편안하고 좋아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의 중요함을 말한다.  


이것저것 모든게 완벽하게 맞춰진다면야 정말 좋겠지만, 세상엔 꼭 내맘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이건 결국 선택을 해야만 한다. 완벽함을 바라지 아니하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에서. 그렇기 위해선 나만의 취향이 있어야 한다. 이에 나는 취향이 딱히 없는데...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자 바로 취향은 어디서 찾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기가 막히게 좋은 구성이다. 앞선 내용에서 생긴 물음을 바로 다음 장에서 해소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지내는 사람의 본질이 담긴, 생활패턴에 따라 탄생한 공간, 즉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나만의 것, 취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럼 나의 취향을 어떻게 찾는 게 좋을까. 저자는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 지 알아가고자 할 땐, 일단 따라 하고 싶은 공간 이미지를 찾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계속 눈에 들어오는 스타일이 있을 것이고, 그 스타일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 중 하나인 핀터레스트를 통해, 각 이미지간의 공통정을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이어 나만의 무드보드를 만들어 시각화하면,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집을 가꿉니다. 나를 닮은 우리 집이 진정성 있고 따뜻한 공간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요. (68쪽)


# 실천으로 옮기기


먼저 손쉽게 시도할 수 있는 것들부터 변화를 시도해본다. 침구나 커튼, 패브릭과 소품을 바꾸는 것부터 시도해보는 것이다. 그리고선 정리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기준은 내가 손을 댈 수 있는 분야부터, 하나씩 차례대로. 잡동사니 정리에서도 내가 쉽게 손을 댈 수 있는 부분부터 시도해보는 것. 남겨야 할 것들과 버려야 할 것들의 분류 작업을 하면서 사랑하고 아끼는 물건만을 남기는 것이다. 



언제나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비움'. 공간을 구성하며 집중해야 하는 것은 물건보다는 전체의 분위기다. 물건은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솎아내는 대상이자 치열한 겸열의 결론이어야 한다. 비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 공간에 대해 오래 고민해본 사람들은 알고 있따. (92쪽)


간단하게 말하자면 제가 생각하는 정리정돈이란 '물건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남기는 작업'이자 '물건의 제자리를 정해주는 작업'입니다. 정리와 정돈 작업으로 나누어 생각해볼게요. (93쪽)


# 인테리어 계획


본격적인 인테리어 계획에 들어갈 땐, 그대로 둘 것과 바꿀 것을 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인테리어를 생각할 땐 그 집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 공간별로 나의 생활 패턴을 돌아봐야 한다. 라이프스타일은 사람마다, 시간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나의 일상을 떠올려 볼 때 더 확연히 그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일에 가깝다. 


그리곤 나의 취향별 모아놓은 무드보드에서 실현가능한, 지금 나의 공간과 비슷한 부분을 찾아 원하는 디테일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다. 저자는 좋다고 생각하는 남의 것의 일부분을 따라한다고 해서 그대로 똑같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는 곧 '나다운 것'이 된다고 말한다. 내가 가진 물건들과 어우리질 때 말이다.


# 스케치 작업


상상했던 부분들을 실제로 스케치 작업을 통해 하나씩 실현 가능성을 더해가본다. 실측 사이즈를 알면 더 구체적은 계획을 세울 수가 있다고 한다. 


사실 스케치의 의미는 똑같이 꾸미는 것에 있지 않고 공간의 성질과 분위기를 정하고 설레는 상상을 시작하는 데에 있어요. (156쪽)


# 바꿀 수 있는 것들 한에서


고치기 어려운 것들을 굳이 다 바꾸려고 애쓰지 마세요. 저희 집 같은 경우도 낡은 느낌을 굳이 감추지 않고 적당히 드러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친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도록 인테리어를 했어요. 정성이 조금만 들어가도 집은 확실히 달라집니다. 우리는 시공 전문가가 아니니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너무 힘을 쏟을 필요는 없습니다.  

(177쪽)


초보자가 쉽게 도전할 수 있는 것에는 페인팅이 있다. 페인트의 속성에 따라 여러가지 선택사항이 달라지겠지만, 이를 실행하고 몸소 느껴봄으로써 얻어지는 효과도 분명히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또한 깨끗하게 청소를 끝낸 뒤, 곰팡이 등을 모두 제거한 뒤에, 하는 게 중요하다. 결국 정리정돈 작업이 가장 기본으로 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공간별 페인팅 작업과 가구, 소품 배치, 타일을 붙이는 작업 등을 셀프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전해주고 있다. 좁은 공간을 나누고, 조명을 바꿔주고, 스프레이 작업 등과 같이 실제로 하나씩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런 실전에서 흥미와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면,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들은 쉽게 포기할지도 모르겠다(나와 같은 사람?).



#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


좋아하는 물건을 하나씩, 차근히 모아 채워넣는 작업이다. 이를 테면, 이건 꼭 있어야 하는 것이라든지, 계속해서 눈에 밟히는 것들을 하나씩 골라 넣는 작업이다. 나도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는 책장과 푹신하고 편안한 의자는 꼭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서 공감이 갔다. 


저자는 매일 마주하며 쓰는 것들일수록 더 신경써서 골라야 방치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 가꾸며 살아가는 것



우리 집에 와본 지인들은 매일 세팅을 하면서 살면 피곤하지 않냐고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저는 집이 어느 정도 집다운 모습을 갖추게 될 때까지 들였던 고민과 노력의 과정을 '생활감'이라는 이름으로 간단히 망가지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여 있고 아름다운 상태, 그 자체가 본래의 모습인 집을 꿈꾸었기 때문이에요.  (242쪽)


(…),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다 저를 위해서입니다. 아침에 습관적으로 물건들을 살피면서 저녁에 다시 돌아올 나 자신을 생각해요. 이 집에 들어와서 기분이 좋겠구나, 하고요. 나를 돌봐주는 거죠. 피곤하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돌아올 나를 위로하는 것이고요.  (245쪽)


나를 위한 공간을 위해 품을 들이는 일은 어쩌면 수고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상태의 공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을 때 느껴질 나의 감정도 그대로 상상이 된다. 나라도 내가 좋아하는 공간은 오래도록 변치 않은 모습으로 있어주길 바랄 것 같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역시 부지런해질 필요가 있다. 좋아하는 공간을 얻는 일이란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



좋아하는 나의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머무는 공간에 대한 청결성만 생각하면서 정작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이나 분위기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나의 공간을 가꾸는 건 즉, 나의 삶은 가꾼다는 것과 같다는 말에 너무 공감이 갔다.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며 돌아오는 곳이 아늑하고 편안한,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공간으로 있어준다면, 그런 것 또한 바로 행복이 아닐까. 


공간 디렉터일을 하는 저자는 자신이 어떻게 공간을 들여다보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직접 실천에 옮기게 되었는지, 취향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차근히 하나씩 말을 건네듯 전해준다. 때론 타인의 시선들 때문에 고심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사람이 머무는 공간은 즉 그 사람을 뜻하는 것과 같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생각해보면 정말 지금의 나와 너무 닮았다. 의욕도 없고, 만사 귀찮고, 누적된 피로는 풀 생각도 못하고 그저 아무 표정없이 일상을 보내는 지금의 나의 모습. 그렇게 가꿔진 공간 속에서 사는 건 나의 선택과 권한 밖이라고 느꼈을 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게 과분한 사치같이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오래 머문 그림자 속에 되려 편안함을 느끼듯, 변화가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 좋아하는 곳에서 살고 싶다면 말이다. 오랜 시간이 걸려도, 때론 원치 않는 방향으로 결과가 나오더라도. 하나씩 차근차근 해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우선 나에겐 취향을 찾는 게 맨 우선일 것 같다. 돌이켜보면 한 번도 집안 분위기를 환기시킬, 인테리어를 찾아보지 않았다. 이건 나의 집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시도조차 무용지몰일 거라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마음에 걸렸던 것은 한번도 바꾸지 않은 커튼에 있다. 벌써 이 십년이 넘게 낡은 패턴과 세월의 흔적 그대로 담긴 커튼을 그저 그 상태로 두기만 했었다. 


주변의 지인들도 커튼 정도는 쉬이 바꿀 수 있을 거라 말했지만, 나는 늘 낡은 집이라 틀부터 바꿔야 한다며 온갖 핑계를 댔었다. 귀찮고 게을렀기 때문이다. 내가 매일 쉬고 잠을 자는 공간이면서, 내가 늘 앉아 있는 책상과 맞닿아 있는 그 커튼을 이제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지금 이 마음이 변하기 전에 나의 취향을 찾아 커튼을 찾아봐야 겠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휴머니스트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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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 어쩐지 의기양양 도대체 씨의 띄엄띄엄 인생 기술
도대체 지음 / 예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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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의기양양 도대체 씨의 띄엄띄엄 인생 기술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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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인터넷에서 '행복한 고구마라는 만화를 봤다흔히 말하는 비유처럼 황새를 쫓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뱁새 이야기나백조를 꿈꿨던 미운 오래 새끼 같은 이야기 같았지만 결말이 조금 달랐다인삼 밭에 있는 고구마는 인삼이 아니라서인삼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불행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인삼이 아니어도사실은 고구마였어도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꼭 누구처럼 성공하지 않아도멋지거나 예쁘지 않아도특별한 존재가 아니어도존재함으로써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그 지점을 바라볼 수 있게 한 그 그림이 정말 좋았다그런데 마침 이끌려 보게 된 책이 지금아니 늘 슬럼프 구덩이 속으로 몸을 구겨 넣는 나에게 주고 싶은 책이 되었다.

 

이번 생은 망했다며 넋 놓고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그냥 흘려보낸 시간들은 다시 되돌릴 수가 없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포기하지도 못했다내 인생 단 한 번 운도 없었으니앞으로 한 번쯤 운이 트이지 않을까 기대해본 적도 있었다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고민해보았지만 나아지는 것도 없었다난 뭘 해도 늘 여전히 같은 모습이었고그래프가 요동치듯 기분은 수시로 바뀌곤 했으며어느 순간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이 세상에서 지워지고 싶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나고 싶었던 게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주변에 지인들 중 워커홀릭이나 즐겁게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지지부진한 생을 살아가는 데가 더없이 한심스러웠고그런 말이 그대로 나에게 화살처럼 날아와 내 마음에 박히기도 했다뭐라도 하지왜 집에만 있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그런데 잘 모르겠다확실한 건 태생이 집순이라는 것과 게으름을 지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서 성실히 최선을 다하며흘러가는 시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삶... 지금껏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크게 바뀔 것 같진 않다그래서 나쁘다고 손가락질 받을 건 아니지 않을까답답해 보여도 이게 내 삶의 방식일 수 있으니까.

 

집순이 기질이 다분한 도대체 씨의 삶의 기술이라고 해야 하나살아가는 방식이 나와 흡사한 부분이 좀 많았다그래서 더욱 공감하고 지인으로 알고 지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앞서 '행복한 고구마'를 그릴 수 있는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에 매력이 더했다군데군데 스며있는 유머와 사고방식이 긍정적이었고물론 긍정적이기 위해 노력한 것일 수도 있지만기본적으로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책은 총 6부로 나뉘어져 있고제목과 파트별 타이틀도 어찌나 공감이 가든지. (1부 어쨌든 출근은 해야 2부 장점은 있어 3부 이러려고 이렇게 사는 게 아닙니다! 4부 망한 걸까 5부 이 와중에 즐거워 6부 무엇이 되지 않아도이건 꼭 같이 나눠보고 싶었다.

 


**


 


주말이 보낼 때 자주 드는 생각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니참으로 기발하다한 수 배워가는 기분.



그동안 매일같이 사간 여행을 하고 있었다니스스로 대견하다.



이건 마치 영원불변의 법칙 같은...



이런 생각으로 몇 년을 잠 못 이루고 보냈는지...



가질 수 있는 게 충분해서 기쁘네...



애송이다운 '폴짝이 포인트



소름 끼치게도 한심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매일 가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다이어트 글을 북마크할 때의 기분이다.

 


그건 바로 인생의 진리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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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일을 찾는 게 너무도 어렵다하지만 만약 찾게 된다면이제 스스로를 그만 괴롭힐 수 있을 것 같다.


바보가 아니야, 47

 

나는 그대로였다더 이상 돈 계산을 하지 않아도 되고운송 프로그램을 다루지 않아도 되고어제 잠깐 본 사람들의 얼굴을 오늘 다시 기억해내지 않아도 될 뿐이다해야 할 일이 달라졌을 뿐이었다나에게 맞는 일을 맡았을 뿐이다그 이유만으로 나는 더 이상 바보가 아니게 되었다.

 

전에는 지긋지긋 했지만 이것마저 못하는 시절 속에 살아보니 매일 노동을 할 수 있는 것이 무척 감사하다.


일상의 힘, 54

 

누군가는 한없이 슬퍼할 자유도 없는 월급쟁이의 비애라고 할 것이다그러나 나는 그것이 일상의 힘이라 믿는다.

 

게으른 동시에 죄책감을 느끼는 행태를 너무 자주 반복한다어쩌면 파멸의 순간이 자주 찾아오는 것도 견딜만한 지옥에 있기 때문일지도이게 다 게으름 DNA 때문이다.

 

애써 괜찮다고 위안하며 그냥 살아가고 있는 것일 뿐.


먹고살 건 많아, 163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정말 괜찮은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뾰족한 수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삶은 너무 고달프다그러니 서로에게 혹은 자신에게 건네고 있는 것이다격려하듯위로하듯확인하듯다짐하듯조용히 달래듯먹고살면 됐지먹고산다는 게 어디야먹고사는 게 중요하지야야먹고살 건 많아.

 

하지만 사실은

당신도 이미 알고 있듯 정말 괜찮지는 않은 것이다.

 

하고 싶을 위해서라면 하기 싫은 일은 감내할 수 있을 것 같다근데 하고 싶은 일이란 뭘까.


종합세트, 232

 

이젠 인생의 모든 순간을 내 마음에 드는 일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물론 그러면 좋겠지만 아마 그런 삶은 여간해선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그냥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을 견딜 수밖에인생은 종합세트이니까.

 

나도 내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이해 못할 타인의 삶까지 관여하고 싶지 않다이런 사람이 있다면 저런 사람도 있겠지.이해보단 인정으로.


이유를 묻지 마세요, 253

 

우리는 서로를 꼭 완전히 이해해야 할 의무도이해시켜야 할 의무도 없다그냥 서로를 바라보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재는 그런 사람인가 보구나’ 하며.

 

그런 와중에도 욕심은 잘 버려지지 않고여전히 부족하지만그래도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보려 한다.


별수 없죠, 264

 

나에게 맞는 수심과 유속의 강을 찾으면그때 배를 띄울 수 있을 거라 믿으며조금씩이라도 내 배를 만들어가고 있을 수밖에 없다.

영영 배 같은 거 띄울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렇대도 그렇다면 별수 없죠’ 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한정되어 있을 테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외쳐보는 것이다.

 

좋은 책을 읽고 나누고 싶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진다하지만 책 선물은 마치 내 취향을 강요하는 것 같아 저어 될 때가 많다그래서 어느 순간 잘 안 하게 되는 것이다하지만 도대체 씨의 이 책 만큼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안 그래도 고된 삶나부터 스스로에게 너무 심한 채찍질은 이제 그만 두고서 ''부터 살펴보는, ''에게 잘하는 삶을 살아보자고 말해주고 싶다.


 


(이 리뷰는 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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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와 같은 말
임현 지음 / 현대문학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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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살아간다는 것과 부끄러움에 대하여,



그 개와 같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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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임현의 첫 소설집엔 10편의 단편이 실렸다. 임현이라는 작가는 생소했지만, 그를 알리는 첫 작품집이 기대가 됐다. 한데 실린 단편들을 차례차례 읽어나갈 수록 혼란스럽기도 했고,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며, 살짝 가미된 유머에 웃어보기도 했다. 


몇몇 작품들 속 인물들은 무언가를 표현하고, 글을 쓰고자 했다. 이는 꼭 그 인물들이 작가의 분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읊조리듯 말하는 어조는 마치 혼잣말하는 것처럼 보였고,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 게 다수 차지하고 있어, '나'라는 하나의 자아 속 여러 내면의 모습들이 세분화되어 여러 군중 사이에 스며들어 있는 듯한 인상을 줬다. 날 것의 경험들을 토대로 하나씩 지어진 이야기들이 때론 엇갈리듯, 때론 정방향으로 쌓여 올려져 있었다. 


그 개와 같은 말은 무엇일까, '개'같다는 말은 보통 잘 풀리지 않는 고통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나오는 표현 아닌가. 이를테면 어머니보다 더 먼 미래를 본 아이가 자신의 미래를 알기에 고통스러워 할 때? 제자와의 일방적 관계를 비겁한 변명으로 회피하려고 할 때? 아무렇게나 베껴쓴 글이 다시 돌아와 나를 괴롭힐 때? 끝을 암시하는 꿈을 꾸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때? 말로써 사람을 찌를 때? 소중한 사람을 지켜주지 못한데서 오는 비루함과 자책? 오해의 소지를 안고 살아가야 할 때? 매순간 불안을 떨쳐낼 수 없을 때?일까. '개'같은 삶은 순간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가능한 세계>

 

뇌종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아버지의 죽음 뒤로 홀로 남겨진 모자(母子)의 이야기이다아홉 살 소년인 나는 무척 똑똑한 아이다한편으로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력을 가졌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이를 이상증세로 보는 어른들나는 어머니의 뜻대로 상담을 받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자신이 테러리스트가 될 운명을 타고난 것처럼본 것 그대로 실행이 될까 두려워하는 소년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인물로 인해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고 하지만, 다가올 일들을 알고 있기에 여러 변수와 맞닥뜨릴 때마다 열린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 때문에 여러 변수와 가능성을 염두에 두게 된다면얼마나 고된 삶이 되겠는가소년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록하는 것과 무관하게어차피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날 거란 생각이 든다이를 직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결국 불행한 미래를 바꾸기 위해 여러 가능성을 닫아 두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이란과연 이라 할 수 있을까.

 


<고두>


<고두>는 화자가 직접적으로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군대에서 사고를 당해 유공자가 된 아버지아버지의 당당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태도를 빌어 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고백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정의도덕아버지와 같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신념그런 믿음을 설파하던는 연주와의 관계에 이르렀을 때 자기합리화와 이기적 변명만을 늘어놓는다과연는 아버지와 다른 태도로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부정한 자들의 도덕과 정의, 그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세계에 대한 믿음그런 현실의 일면을 화자의 언어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사람들은 적극적인 혐오를 통해 그 세계 바깥에 존재한다고 믿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면서 말이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인간으로서 도덕과 윤리를 마땅히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결국은 다 자기만족이란 허울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닌지. 소설보다 더 충격적인 현실 속 사건들처럼 많은 질문들을 던지게 된다.

 

모든 이타적인 행동에는 이기적인 의도가 숨어 있단다선물을 준다는 것은 돌려받을 대가를 바라서이고 남을 위한 칭찬은 곧 나의 평판으로 이어져서 훗날을 도모하는 밑거름이 되지알아듣겠니지금 당장의 손해처럼 보이는 행동들이 나중의 이익을 담보하게 된단다손해 아니라 투자선물 아니라 거래. 32-33

 


<엿보는 손>

 

나는 어느 모임에서든 주목을 받길 원하지만 늘 소외받는 인물이다. 이와 반대로 실제로 그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유제호에게 강력한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어느 날 나는 유제호의 신작 소설이 자신의 작품과 유사하다 못해 동일한 것을 보고 흥분하여 이 일의 진위를 따지고자 한 통의 메일을 보내게 된다유제호라는 인물이 자신의 아버지의 자서전이야기나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며,‘를 만나고 싶었으며앞으로도의 이야기를 예상하여 쓸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말한다유제호를 만나러 그를 찾아간 날그의 집에서 발견된 원고는 내가 행동하고 저질렀다고 믿을 법한 일들이 서술되어 있고방문 너머로 존재하는 건 그의 사체일지아님 텅 빈 공간일지 알 수 없는 채로 끝이 맺어진다.


해프닝의 가벼운 분위기로 시작된 소설은 화자의 자리를 재배치함으로써 사실 진위 여부의 책임을 독자에게 전가한다뭔가 익숙한 듯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어떤 책은 누군가의 삶을 완벽히 뒤바꾸어놓기도 합니다그러나 그 경우저자의 능력보다는 독자의 잠재력이 더 요구되는 것 아닙니까제아무리 훌륭한 고전이라 한들 그걸 읽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평가가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잠언시집 한 구절에 새삼 감동을 받았을 때는그 책의 무게감 때문만이 아닙니다마침 그런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81

 


<좋은 사람>

 

어떤 사람을 안다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 깊이 연관되어야 된다는 뜻일까. 자주 표현되는 '좋은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이었다영화를 찍는 우재와 글을 쓰는 나이야기의 중심은 우재가 영화 제작비를 벌기 위해 한 아이스크림 광고 공모전을 준비할 때 도와줬던 후배의 죽음에 두고있다자신의 식당을 촬영장소로 내어준 남자와 연기를 했던 후배그리고 메인으로 촬영을 돕게 된 나나와 우재는 어떤 면에서 많이 닮았기 때문에 더 잘 맞기도 했고더 잘 틀어지기도 했다.


후배의 죽음을 알린 우재는 에게 화를 내며 후배를 좋은 사람의 칭하는 부분에 대해 지적한다. 이에 나는 자신과 우재가 겪은 조난에 대해 부풀리듯 말하던 우재의 모습이 떠오르게 된다.


생각해보면 대개의 경우 그랬다알고 있지만 정말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일반적인 관계 속에서 죽음이라는 틈이 생겼을 때나중에 회상하기를 '좋은 사람인데 안 됐다'라고 말을 하곤 했다. ‘좋다좋은상태로 간략히 하나의 테두리 안에 그를 가두고서그 외의 다양한 일면들을 생략된 채. 애도의 상투적 표현으로 사용해왔던 건 아닐까좋은 사람이란 무엇일까잘 알지 못함과 최선의 애도의 표현은 이렇듯 함부로 하는 배려가 되어 버린다무심코 말해버린 것들 속에서.

 

“()넌 아무것도 모르잖아원래 질이 나쁜 사람일 수도 있는데 그런 사람이 죽으면 너는 뭐라고 말할 건데네가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해왜 다들 무책임하게 좋았다고만 해불쌍하니까씨발 존나 불쌍하니까 다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생각하라는 거야뭐야그럼 좋은 사람 이외의 그 애는 다 어디로 가는데어떻게 좋은 게 그 애의 전부야왜 함부로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무언가의 끝>

 

털이 붉은 토끼 꿈과 죽음들아버지의 열의가 담긴 집, 그 집에선 형과 형수, 가 살았고, 종국엔 나만 남게 되었다아버지의 죽음지하 방에 세 들어 살던 어떤 남자형의 사고그 집에 세를 주며 살고 있는 나다양한 세대가 살았지만이젠 덩그러니 나만 남게 되었다가까운 죽음들 앞에 항상 꾸었던 털이 붉은 토끼 꿈남겨진 자들의 삶형수와 나의 삶이 차분하고 나른하게 이어진다

묘한 잔상꿈 이미지와 함께 이야기들은 대체로 산발적으로 흩어진 느낌이 들었다. 어떤 ‘에 대한 이야기인가책임에 대한 이야기인가갈피를 잘 못 잡겠다어떤 여운이 남는 듯한데 무엇 때문인지 잘 파악되지 않는게 아쉽다.

 

그리고 나는 그 일에 대해 아주 잊고 살다가 어떤 장면들 속에서 섬뜩해지는데 이를테면 지하철을 탔다가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 여자에게 폭언하는 노인을 보면서친절하지 않다고 뺨을 맞았다는 마트 직원의 일화 같은 것을 들으면서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 나쁘긴 나쁜데 진짜 나쁜 일이라면 누가 그 노인에게 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는가 친절하지 않은 것과 뺨을 때리는 것 중 뭐가 더 나쁜 쪽일까 생각하는 중에 그 남자를 자꾸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누가 더 나빴던 것일까. 139-140

 


<그 개와 같은 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약점과 흠을 낼만한 말들을 잘도 찾아내서 한다는 어느 소설의 구절이 떠올랐다그건 참으로 무섭고 비참하게 만드는 말들이다. '나'는 세주와 대화 하던 중 연경에 대한 일화가 떠올랐고어릴 적 하천에 내던져진 개가 떠올랐고철교 밑 허술한 집이 떠올랐다매일 같이 스쳐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중 인연으로 엮일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기본적으로 더 각박해진 느낌이다기본적인 예의 같은 것들이 상실된 기분그래서 안그래도 잘 그려지지 않는 앞날이 비참하고 무섭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이를 테면 그 개 같은 말처럼 말이다.

 

미혼모라든가장애인 같은 말들이 나는 무서워요그런 것들은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인데 그게 내가 될까봐 무서운 거지.()언젠가 버스에서 기사와 다른 운전자가 싸우는 것을 보았는데 그 사람이 기사에게 평생 버스나 운전해라,라고 말하는 거예요나는 그 말이 너무 슬퍼서 이봐요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화를 내고 싶었지만 못했어요.()주의가 산만하고 수업에 방해가 되길래 단순히 경고 차원에서자꾸 이러면 부모님 모시고 오라고 한다겁을 주려고 했던 건데그 녀석이 조금도 기죽지 않고 생글생글한 얼굴로선생님은 계약직이잖아요하는 거예요.(선생이라는 것이 생선처럼 비리고 값싼 말처럼 느껴졌어요그리고 이제껏 그 아이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었나 생각하니 무섭더라구요정말 비참하고 무서운 기분이 들었어요.”

 


<거기에 있어>

 

신혼여행 길에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무영과 은우무영은 한쪽 팔을 잃게 되고은우는 기억하지 못한 채 무언가를 잃어버리게 된다일 때문에 바빠진 은우와 강박 증세를 보이는 무영변한 무영을 견뎌내는 것이 홀로 남겨진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은우비참하고도 슬펐고폭력적이어서 더 아프게 느껴졌다긴장감 속 차분하게 이어지는 은우의 진술은 앞으로 밝혀질 사건의 진실을 대해비참한 고통을 더해주었다아무 일도 없다고 말하는 은우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믿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모든 게 그날의 일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다이렇게 미루고 나면 원망할 수 있었다뚜렷한 대상이 있었고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할 수 있었다누가 불행의 원인을 스스로 짊어지고 싶어 하겠는가그럴 바에야 희생당한무능한 존재로 남는 편이 나았다. 199

 

잃어버린 것이 있었다. 분명 그날 이후로 은우는 무언가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은우는 알지 못했다.
어느덧 호숫가의 인적은 바람에 쓸려 간 듯 모두 사라져버렸다.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더 어두운 무영의 형체만 서 있을 뿐이었다. 은우는 묻고 싶었다. 당신이 오역한 문장을 고쳐놓은 것을 보았느냐고. 아직 무영은 그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늦은 가을이었다. 은우는 혼자 남는 일이 가장 두려웠다.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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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왜곡앞선 이야기 속 뺑소니 사건의 목격자의 진술 다시 등장한다이번엔 그 목격자 본인의 이야기로남편과 닮은 사람의 목격담이 종종 들려오는 와중에 한 뺑소니 사건을 목격했다며 진술에 임하는 남편뭔가 어색하고 의뭉스러운 면을 보이며자신을 꼭 닮은 사람을 봤다며 불안함을 보인다. 자신이 단독자로써 존재치 못한다고 믿는, '닮는다는' 것에 대한 불안은 점점 심해져간다. 불안함이 전이된 듯 역시 혹시 홀로 버려질까 불안해하게 된다.



<말하는 사람>

 

한 때 화목한 가정을 꿈꿨던 나와 문영은 오래전에 멀어졌다관계나 현상에 대해 몰두하는 문영은 언제나 글을 쓰고자하며, 세상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려 한다재혼한 남편에게서 폭행을 당하는 어머니의 무언의 의중에 따라 모른 척 했던 나는 그 불행에 일조하는 것이 되었을까문영과는 왜 가정을 이루지 못했을까문영의 마음속에 남은 어릴 적 초대되어 갔던 친구의 집, 가난한 살림의 풍경에서 뛰쳐나간 기억그리고 그때의 미안한 마음과 부끄러움을 회상한다문영에게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털어놓았다면 달랐을까문영은 어떤 식으로 말해주었을까.

 


<불가능한 세계>

 

부정적 상황을 가정하며 의기소침하는 소진과 그와 반대로 지금의 안온함과 불행과의 거리감에 안심하는 민재. 소진은 자신이 자꾸만 달아나려 했기에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 남아있다. 아버지마저 잃게 될까 전전긍긍하는 것과 달리 소진의 아버지 장 교수는 연구에만 몰두한다. 이 연구의 문제점에 심각성을 알지 못한 채, 늙은이 취급만 한다 여기는 딸과 매순간 부딪히기만 한다. 아버지와의 불화가 잘 해소되지 않은 채 감추고 싶은 것들까지 민재에게 들키게 된 소진은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한 임신에 대해서도 불안해한다. 민재는 소진의 과도한 불안과 의심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그들에게 문제가 될 만한 것은 거의 없어 보였다. 당연하고 일상적이며 전혀 도드라진 데가 없는 생활이었다. 이런 식의 사소한 견해 차이조차 어느 가정에서나 겪고 있는 평범한 갈등일 뿐이었다. 다만 그런 것들 가운데 언제든지 다르게 보일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혼자 자신의 이름을 불러보았을 때 소진은 왜 이제껏 한 번도 그래보지 못했나, 내가 나를 부르는 것뿐인데 무슨 이유로 슬퍼지는가, 전에는 하지 않았던 생각에 빠져버린 적도 있었다. 265쪽

 



 **



대체로 일상적인 대화 속에 파고드는 균열과도 같은 아득한 틈이 느껴지는 주제가 군데군데 들어가 있었다. 명확한 점도 있었지만 모호한 점도 있었다. 이러한 모호성은 소설의 특성보다 시적 특성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모호함 그 자체가 어느 부분에선 시적 세계를 더 확장시키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소설에서 그런 특징이 느껴지는 것에 조금 당혹스러웠다.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이야기들이라 먼 듯 했지만, 어떤 부분에선 더없이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확실한 건 그저 쉽고,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개성이 분명해 읽는 이로 하여금 호불호도 많이 갈릴 듯 같기도 하다.


여러 단편들 가운데 가장 많이 얼굴을 드러낸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인간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까, 윤리와 도덕은 그러한 면에서 비롯된 것일까, 고민해야 할 주제가 연달아 등장한다. 


이야기 속 인물들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순간은 대개 타인에게 어떤 식으로든 민폐를 끼쳤다고 인식하는 순간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들키고 싶지 않았던 면을 보게 되었거나, 의도치 않게 파헤친 형국이 되었을 때 주로 발동되는 것 같았다. 아직 풀리지 않은 실마리들 투성이다. 

한편으론 '개'같은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부끄러움이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하다. 겉에 드러나 있는 것들, 그 사람을 보여주는 것들은 거창한 수식어나 가정환경, 학벌 같은 부수적인 것들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에 있다는 것을. 때때로 쉽게 오해하고, 보이는 것만 보고, 쉽게 배려라는 것을 하기 때문에 발생되는 '개'같은 순간들. 그 순간엔 그 사람의 안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배려가 정말 배려가 되고, 감춰진 것들 속에 빛나는 무엇의 진가가 발휘될 수 있도록 말이다. 


아직도 뭐가 뭔지 잘 알지 못하는 것들 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집은 큰 여운을 남긴다. 반드시 생각할 거리를 던져둔 채 유유히 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져간다. 읽어나가는 와중에도 풀리지 않은 것들에 대한 난항이 거듭됐지만, 좋은 작품임은 확실하다. 계속해서 생각하며 곱씹게 되는 책이기 때문에...소설가 임현의 다음 작품도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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