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우울
가와사키 소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소심하고 겁 많은 프라모델 마니아 다나카 서장과 그의 유능한 부하들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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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다나카 겐이치는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했던 수재이자도쿄대 출신 국가공무원 1종 시험에 합격한 경찰 관료 엘리트이다그러나 그의 인생의 주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이라기보다 그저 공부를 잘했기에주변의 권유가 있었기에단순히 아버지가 경찰관이셨기에도쿄대 문과 1류에 들어갔고경찰 관료가 된 것이다주변에 잘 휩쓸리고 출세나 야망이나 정의나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인물인 것그나마 있는 인생 최종 목표란 정년퇴임 후경찰청 어느 산하단체에 들어가 프라모델 구 일본 해군의 연합함대’ 전체를 완성하는 것이다.

 

프라모델 생각으로 사는상당한 프라모델 마니아인 주인공.

 

플라스틱 모델의 일본식 줄임말인 프라모델은 플라스틱으로 된 조립식 모형 장난감이다조립식 키트가 내장되어 있으며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부품을 조립하여 만드는데 다나카는 부품 도색부터 정교하게 하나씩 만들어나가는 걸 추구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다나카 겐이치는 갑작스러운 경찰청 내부의 인사이동으로 시코쿠의 시골 경찰서 서장으로 발령받게 된다선배로부터 '현장 사건에 참견하거나 관여하지 마라네가 할 일은 부하 직원이 올리는 서류에 도장을 찍는 것뿐이다.'라는 조언을 들었고이를 그대로 이행할 생각으로 늘 안주머니 속에 도장을 넣고 다닌다재임기간 동안은 조용히 프라모델 조립만 할 수 있을 거라는 다나카의 기대와는 다르게 조용한 시골에 별별 사건들이그것도 엄청난 스케일로 연달아 발생된다명탐정 코난인가소년탐정 김전일인가 가는 곳마다 사건이 터지는 인물의 특성 수순을 그대로 밟고 있다.

 

일본의 경찰사회에서는 일명 커리어라고 하는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는 게 아닌 관리직은 현장에 대해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게 보통의 관례인 듯 하다일본드라마에서도 형사드라마는 그 장르적 특성에 따라 무수히 많은데열혈경찰과 고위관료의 특성이 대체로 비슷한 양면을 보이기 있기 때문이다물론 주인공 특유의 열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각 롤에 맞춰 달라지기도 하지만.

 

그런데 기발하게도 다나카 겐이치는 이와는 전혀 무관하다정말 도장만 잘 찍고 싶고조용히 지내고 싶은데자꾸만 사건과 엮이게 되고 심지어 해결하는 격이 돼버리는 구성이 대놓고 노린 재미 포인트이다직장에서도 온통 프라모델 생각밖에 없는 남자가그와 관련된 생각들을 혼잣말로 내뱉게 되고그게 수사의 힌트가 되어 해결로 이어지는 방식인 것이다라고 내뱉었더니라고 받아들여 열 배는 더 열심히 뛰는 부하직원들의 유능함에 무사히 사건이 종결되고 한 에피소드가 마무리된다.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부임/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사투/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분노/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고투/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숙적/경사 기쿠치 하루나의 동요/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귀환


총 7가지 에피소드 식의 이야기들이 해프닝처럼 진행된다.

 

처음 시작이 보기 좋은 오해로 시작되어반복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프라모델 제작에 관해서는 상당히 완고한 제작 정신을 지닌 주인공다나카 서장은 프라모델을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긍지에 후퇴는 없다라는 무의식의 한 마디가 교체는 없다”(일본어상으로 발음이 같다고 함)로 전달되고일선 형사들의 열의를 더 불태우게 한다그런 작은 오해의 시작으로 사건은 순방향을 타고 무사해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매번 다른 사건이 발생될 뿐이같은 오해는 계속해서 반복된다.


엘리트 관료들 사이에서는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되어가지만, 부하직원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으로 변모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빽(?)도 생기게 되니...이런 우연함으로 가득한 삶이면 살아볼만 하지 않은가. 본인은 절대 의도하지 않았지만, 좋을대로 해석되는 오해들로 인해 뼛속부터 경찰인 사람이 돼버리고, 그러나 머릿속엔 온통 프라모델 생각뿐인..별다른 갈등과 장애물이 없는, 유연한 삶이 아닌가. 물론 이런 유능한 부하들이 있다는 가정 하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도 생각보다 잘 구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실제로 영상화해도 될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한다표정변화가 없는 모리 부서장비서 격인 기쿠치 경사돼지마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행동대장 마쓰노코지 순경과 니노미야 주임수사관이들에게 각각 비슷한 오해와 우연들이 겹쳐 사건해결에 공을 세우는 것은 정작 본인들이지만이를 모른 채 뛰어난 직감과 통찰력으로 사건을 면밀히 보고 있다는 오해로 다나카 서장을 존경으로 대한다그의 아내인 가오리는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그들만의 기념일만 잘 챙겨주면 만사 오케이인 인물로 드물게 등장한다.

 

사건이란 것도 결코 작지 않다조용한 시골마을이지만연쇄살인사건테러뺑소니공갈협박주가조작납치 등등 그 종류와 스케일도 남다르다어떤 부분은 아예 엉뚱하게도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짜인 사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어설픈 구석도 보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도 단순한 구성의 반복인데다 읽고 나면 또 다음이 궁금해지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 없이가볍게 읽기에 아주 좋다.

 

각 에피소드의 앞엔 말줄임표로 가득한내면의 소리 같은 표현들이 이어지는데처음엔 의미를 전혀 파악하기 힘들기도 하지만읽다보면 누구의 속내인가 파악하는 재미도 있다.

 

또한잦은 부상으로 남들이 살아가는 동안 다 경험하지 못할 온갖 상황과 부상을 입게 되는 게 또 다른 웃음 포인트 같다마치 매 사건마다 부상과 공적을 등가교환하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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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인 가와사키 소시는 일본에서 아주 어두운 호러미스터리를 잘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고 한다그러다 보니 기존 독자들에게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우울은 다소 놀라웠을 것 같다아주 정반대의 분위기로 코믹한 경찰소설을 가지고 나왔으니 말이다그의 전작도 궁금해졌지만다나카 겐이치의 다음 이야기도 더 만나보고 싶다.


어조나 문장을 판단하는 건 어렵지만, 나열하는 식의 표현들이 이어졌기 때문에 그리 매력적이진 않다. 그러나 정보전달은 잘 되니 그 기능은 제대로 하고 있는 듯하다. 이 또한 번역이 아닌 원문으로 읽는다면 더 잘 와닿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원문을 읽을 능력은 없지만.

 

요즘 내 즐거움 중에 하나인 해머시 맥베스 시리즈와 그 결이 닮은 듯하다비슷한 듯 다르지만확실한 건 팍팍한 일상 속에 하나의 큰 즐거움이 되어준다는 점이다잠깐 동안 유쾌한 이야기 속 세계가 잠깐의 일탈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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