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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 F. 스콧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법
모린 코리건 지음, 진영인 옮김 / 책세상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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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긴 대공황의 발단은 미국이었다. 1929년에 발생한 주식시장의 대붕괴를 시작으로 시장은 급격히 무너졌고, 가혹한 실업사태와 심각한 디플레이션 등을 초래했다. 이는 당시 유명 경제학자들도 예측하지 못한 급작스런 나락의 시작점이었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대공황이 촉발되기 직전 미국의 위태로운 자화상이 담겨있어 흥미롭다. 소멸되기 직전 아름답게 부유하는 총천연색 거품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소설을 읽으면서 곧 닥칠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알기 때문인지, 이들이 누리는 호사와 풍요로움을 양가적인 감정으로 읽게 된다. 흥청망청 써대는 그야말로 돈으로 가득 찬목소리들을 시끌벅적하게 듣고 있다보면 아름답지만 마냥 그렇게 비치지는 않는 위태로운 이중적 배경에 매료되기도 한다.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작중 인물과 시대적 배경을 통해 곧 들이닥칠 위기의 사회상을 예측하려고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 시대를 이야기함으로 해서 어쩌면 유일하게 예측한 사람일 수 있게 된 사실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경제학자도 하지 못한 일을 소설가가 해낸 일은 과연 이상한 일인가. 문학작품 안에서 미래사회를 예견하는 장면 중에 실제 지금의 문명이 구현해 살아가는 걸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인간의 상상력이란 미래를 예견할 수밖에 없이 현재의 몇 배를 능가할만한 가능성의 힘으로 존재할 수 있다. 현실 밖의 이야기, 어쩌면 그것이 예술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때때로 이러한 상상력의 범주에는 지금을 가장 충실하게 드러내는 방식인 민낯의 본연에서도, 그 예측이 반영될 수 있는 일이다. <개츠비>에 등장하는 상류층의 허위의식과 이에 마찰하는 중산계급 출신 남성의 묘한 인연의 실타래를 보면서, 개인의 삶이 시대와 맞물려 어떻게 파국을 맞는가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곧 개인의 삶을 집요하게 파헤침으로해서 그 시대를 바로 보고 예견하는 꼴이 된 셈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 책은 영미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로 언급되거나, 수많은 작가들이 사랑하는 소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와 같이 오롯이 <개츠비>만을 위해 이야기되는 책으로도 칭송되는 일이 적지 않다

작가 모린 코리건이라는 이는 문학 비평가이기도 하지만 작품에 매료된 이래로 20년이 넘게 이 소설에 대한 강연을 전국구로 하며 다니는 열혈 팬이라고 고백한다.  

모린 코리건의 관심과 행보처럼 책을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게 있다면 거듭하게 되고, 그러다 작가의 일거수일투족을 연구하고 알아내는 기쁨이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사사로운 계기의 관심의 시작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한 소설만을 위한 일로 점철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부러운 열정인 것이다. 




워낙 <개츠비>가 소설뿐만 아니라 여러 장르에서 재현 또는 재해석 된 터라 내용이나 작가의 개인사적인 일들, 개괄적인 작품세계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지 않았다. 다만 이 책으로 훨씬 더 피츠제럴드라는 작가의 사생활에 대해 알게 된 점, 이것에서 오는 선입견들이 <개츠비>를 해석하는데 큰 장애가 되지 않다는 점도 새롭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개츠비>의 작품세계에 새로운 재해석의 시선을 느끼게 된 면은 크지 않았는데, 이는 워낙 많은 작품 연구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돌고 있기도 한 이유겠고 무엇보다 이 책이 피츠제럴드 개인사에 더 초점이 가지는 인상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개츠비라는 인물은 자신이 만든 환상의 불씨에 불을 붙이기 위해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장작을 쌓아 올리는 노력형의 인물이다. 그의 환상에는 데이지라는 사랑의 대상이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지만 사실은 그 자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환상만으로 쌓아올린 갖은 노력이 데이지라는 인물의 본연에 대한 사랑만을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덧씌운 허상적 인간에 불과했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강박적으로 제 인생을 포장하고 한 대상을 위해 집착하는 과정은 편법적이고 추한 인간의 욕망을 잘 드러내 준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우리는 개츠비를 통해 자신의 열망을 위해 도전하고 마침내 이루어 내기까지의 순수한 열정, 그 숭고함을 엿본다. 그것은 안타깝고 나름대로 매혹적인 인간의 단면일 수 있기 때문에 그를 달리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톰과 데이지가 사는 전형적인 물질만능주의가 있는 한 쪽닉과 개츠비처럼 신흥부자들이 일군 쪽 그 어디에도 정상적인 사람이라고는 없다비정상적인 것들이 이루어 낸 거품과 허상을 막아줄 탄탄한 다리는 놓이지 않은 것이다닉이라는 사람의 일인칭 화법이 주는 쓸쓸함의 온도로 그 예측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개츠비는 중산층 출신이지만 상류층을 선망했고, 노력하면 그것이 이루어질 수도 있었던 특기할만한 시대를 살아냈다. 개츠비가 살던 시대 이래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처럼 요원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개츠비는 위대한 개츠비일 수 있지는 않을까 싶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거라고는 이름하나였던 소년에서 제 스스로 이름을 바꾸고, 꿈꾸던 이상적 인물이 된다. 비록 그것은 영원히 잡히지 않을 꿈, 인간의 영혼마저도 소유하려고 드는 무모한 일이었지만 그 거품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작품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느껴진다면 그것은 인간의 이상향과 낭만, 이에 반하는 욕망의 충돌이 서로 교차되고 동반되어 내려가는 지점일지 모르겠다. 이 책에서는 피츠제럴드의 글쓰기에서 가장 위대한 주제가 빠져죽을 상황에서도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기 위해 노력하는 고귀함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라는 모티프로 상징되는 수면 안과 밖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즉, 내려갈 것을 알게 되어도 끊임없이 그 위를 향해서 올라가려는 발버둥을, 우리는 도저히 응원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개츠비로 하여금 인간의 복잡한 단면, 한 시대의 마지막을 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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