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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ㅣ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평점 :
묘한 일 인건 인생이 바람 하던 쪽이 아니라 오히려 무관심했거나 이쪽이 아닌 저쪽의 편에 가까워지기가 더 용이하다는 사실이다. 마음의 주변부에서 맴돌던 것들이 도처에 머문 지도 몰랐다가 어느 틈에 밀고 들어와 기습을 당하는 꼴이란 참으로 고약한 후폭풍을 맞는 일이다. 전복되고 정중앙으로 안착된 이 황당한 상황을, 그렇지만 꼭 나쁜 결과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도 인생의 흥미로운 아이러니 같은 일이다. 삶의 고착화되지 않은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해준다는 면에서 그렇기도 하고, 돌아보면 이러한 일들이 교묘히 바란 일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이런게 인생의 묘미라면 묘미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의 방향이듯 일방통행, 선회, 급선회, 비틀어지거나 유연하게 흐르는 삶의 지속성으로 우리는 끝없이 다져지는 존재인 모양이다. 마치 속내를 알 수 없는 바다를 항해하는 돛단배의 신세처럼 표표히 흘러가는 망망함으로, 인생은 걸려오는 그것이 무엇이든 만남의 연속인 것이다. 그것을 모두 만나고 견뎌야 한다.
장석주와 박연준 두 작가의 연서와도 같은 에세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보면서 맞닿을 듯 그렇지 않은 미세한 두 평행선 위를 걷는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원히 닿지는 못 할, 두 개의 평행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역시 우리가 서로에게 항시 다른 사람이라는 인식을 하게 한다는 점 때문에 그렇다.
늘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고 전보다 가까워지는 사건이나 계기를 맞이하게 되지만, 그것은 언제라도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걷게 되는 단초일 수 있는 반복의 영속일 것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고 해서 같은 생각을 하게 되거나 완벽히 일치하는 지점을 만나는 일이란 영원히 요원하다. 다만 우리는 서로가 각자의 줄 위에서 조금 가까워지거나 필요에 의해 조금 멀어지는 유연을 부리며 같이 걸어가는 사이인 것이다.
여기 두 작가는 서로를 향해 십여 년을 그렇게 조심스럽고 천천히 물들어 가듯 배려하며 걸어간 흔적들로 다분하다. 이 책에는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고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토대를 단단히 쌓아 올린 시간이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여기서의 시공간은 잠시 템포를 잃고 둘에게 쉬어가라는 선물처럼 ‘시드니’에서의 생활로 시작된다. 둘은 거의 똑같은 일상을 함께 하면서 느슨한 시간을 마음껏 만끽하는 것으로 끝난다.
박연준 작가 시선의 시드니가 반, 뒤이어 장석주 작가의 시드니 이야기가 반, 이렇게 나란한 두 일상의 시선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는 게 묘미이다. 두 사람 모두 시드니의 소소한 자연과 만난 사람들, 모처럼의 여유와 낯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그 개성은 사뭇 다르다.
박연준 작가의 글에서는 그녀가 언급하기도 했던 ‘생동’에 대한 느낌으로 사로잡힐 때가 많다. 어리다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 ‘파닥임’이라는 말을 꺼내는데 그 가운데서도 ‘생동’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어쩐지 작가의 글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를 이야기하거나 오늘 겪었던 일화들을 이야기하는 어느 때고 그 구체화된 생각의 생동감이 파닥이면서 친화적인 글쓰기를 한다는 인상을 준다. 웃음소리와 투정이 옆에서 들리는 것 같고, 웃거나 찌푸릴 때의 미간이 움직이는 게 보이는 언제라도 생각의 잠을 깨우는 발랄함이 느껴져 좋다.
반면 장석주는 완강한 말의 긴장이 느껴지는 글을 쓴다. 광활한 크기에 압도당할 막연한 공간에 서서 조망하는 입지로 물러난다. 작은 것을 보더라도 달아날 수 있는 만큼 아주 멀찌감치 둘러서서 자발적 외톨이로 자신을 오롯이 두는 것 같다. 일단 그런 거리에서 폭넓게 사고한 이후에 섬세하거나 자상함을 놓치는 법 없이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글을 쓴다. 이러한 사고의 흐름을 따라 그곳을 이해하는 방법도 퍽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둘의 시드니 여행기가 어디까지나 여행기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서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을 잊지 않게 되는, 현실의 연결을 생각하게 되는 이유를 상기하게 하는 글이다.
장석주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이 그곳에 서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주변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박연준의 글에서 시드니임을 한시도 잊지 못했다면 장석주의 글에서는 시드니를 자주 잊게 됐다. 이런 식으로 둘의 같거나 다른 일상의 시선, 내면에서 벌어지는 사뭇 다른 광경을 보게 된다.
어느 편이 더 좋아서 편애할 수 없는, 나란히 이어지는 두 개의 선이 긴장과 이완의 탁월한 궁합으로 펼쳐진다는 생각이 든다.
숲길을 천천히 걸으며 깨끗한 숨을 들이키는 일처럼 반복될수록 좋은 일이 있다. 이 책은 두 번 세 번 읽을수록 좋을 그런 밤의 산책을 부르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