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유]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떠나는 이유 - 가슴 뛰는 여행을 위한 아홉 단어
밥장 글.그림.사진 / 앨리스 / 2014년 12월
평점 :
떠나온 자에게 여행이란 때 때때로 안개 속을 따라 걷는 일과 같을지 모르겠다. 흠잡을 데 없이 안전한 길을 알아보고 그 위에서 펼쳐질 낭만을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마음먹은 대로 벌어지는 일이란 대게 없다. 맞닥뜨린 일상은 여행자로 하여금 뜻밖의 돌발들로 가득차다. 불 꺼진 방에 놓인 아이처럼 더듬대고 무안하게 되는 일이 더 많아진다. 그러나 이러한 여행의 미숙은 낙오되는 일이 아니며, 경험의 좋고 나쁨을 경쟁하는 일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다만 생각지 못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는 사실 ‘낯설게 놓인 나’를 발견하는 일, 그 뿐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쌓임으로 해서 이상한 희열도 생기고 무기력했던 일상에 생동감을 더할 수도 있게 된다. 누구나 여행지에서라면 기꺼이 길을 잃고 싶어지는 것이리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마치 거대한 안개섬처럼 뇌리에 둥둥 떠돌아 다니며 잠시 휴식을 취하게 해준다. 그곳은 피어오르는 연기의 활화산이 내뿜는 묘한 자취로 특유의 향과 기류로 흐른다. 잠들어 있는 듯 보이지만 언제든 큰 용암을 끌어안고 분출될지 모르는 큰 비밀을 안은 잠재된 섬이다. 이 알 수 없는 동요에 우리는 길의 휴지를 깨우고 동시에 다독이는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닐까. 여행을 통하는 길은 이토록 오묘하며, 보지 못한 세상과 합류하는 큰 물길을 맞는 일이다.
여행의 진면모를 들출 수 있을 때까지 누구나 여행의 현실적인 문제들에 맞닥뜨려야 하는 문제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과정이다. 여행자에게 필요한 충분한 시간과 여비의 확보 문제는 언제나 발목을 붙잡는 요건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러한 문제들만 해결된다면야 이후의 일정은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는 편리한 세상이다.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보는 사람의 수만 가지 걱정도, 첫날 도쿄에 가서 먹을 저녁 식사로는 어디가 좋을지 고민에 빠진 사람이라도 당장 인터넷 검색 창에 ‘난생 처음 뱅기를 타다’ ‘도쿄에서 먹은 맛난 저녁’를 쳐보면 된다. 차고 넘치는 정보들이 부실하기는커녕 가장 좋고 효율적인 하루로 빼곡히 설명되고 있다. 가장 구미가 당기는 몇몇 사람의 일정을 내가 원하는 쪽으로 짜 맞추기만 하면 나만의 일정으로 손색이 없다. 예상되는 실수들도 여행기를 읽다보면 왠만한 대처들로 예측 가능해진다.
만약 천편일률적인게 싫다거나 개성 없는 여행이 될까봐 관광지를 일부러 피하고 싶다는 사람이있다면 이또한 문제될 게 없다. 제 구미에 맞게 키워드를 ‘한적하고 고즈넉한 곳’을 넣어 검색하면 이대로도 훌륭한 루트가 제공된다. 이방인으로 손색없을 한적한 장소들은 세상에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홀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을 때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들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음식의 짜고 느끼하다는 소소한 투정부터, 현지의 대체적인 인상, 돌발 상황, 풍경의 세세한 묘사, 개인이 보고 겪은 감정의 기록들까지 읽고 나면 앞으로 겪을 대강의 마음가짐 정도를 정비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렇게까지 미리 알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러는 이유는 거의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갖지 못하고 떠나는 자들이의 보다 효율적인 안배를 위한 제반들이다. 일 년 중 단 일주일을 얻어 떠나는 자의 휴가라면 어쩔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전업 여행가라도 처음에는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고민하다가 모든 것을 접고 여행가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는 걸 많이 들었다. 본격 여행가가 된 이후에도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로부터 관광과 여행의 사이를 설명해주느라 바쁜 것 같았다. 가령 돈이 얼마나 많아야 그렇게 여행을 할 수 있냐는 둥, 어느 나라가 가장 재밌었냐는 둥 하는 것들에 대한 답을 말이다.
그러나 몇몇 여행가들의 책만 들춰봐도 이러한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그들도 별 수가 있어서는 결코 아니었다라는 것이 공통된 대답이다. 또한 가장 좋았던 나라를 말할 때 그 맞지점을 추리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너무나 다양해서 무용할 지경이다. 결국 여행은 목적에 따라 개인의 성향에 따라 여행이든 관광이든 하고 싶은 대로 계획하고 꾸려내면 될 일인 것이다.
여행의 목적을 여행이냐 관광이냐의 단 두 가지 정도로만 간단히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관광이라고 해서 진정한 여행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짧지만 깊은 교감을 얻었거나 혹은 세 달을 넘게 다녔대도 얻은게 없을 수도 있다면 뭐라 단정지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여행을 단지 많이 보는 데에만 급급해하지 않고 짜임새있게 계획해본 사람이라면 역시 오감을 다 여는 모험가에게 더 유리할 것이란 생각은 든다. 최소한의 정보로 무조건 부딪히는 쪽이 훨씬 여행의 생동감을 준다는 면에서 좋을 순 있다. 차분하게 주변을 돌아보고 남이 알려준 정보로 사실을 확인하는 쪽 보다는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내 감만으로 느껴보는 편이 여행의 묘미를 증폭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 밥장이 알려주는 여행의 비법이란, 책을 덮고 나서야 미미하게 느껴지는 어떠한 여행자의 태도와 같은 것들이었다. 그가 느낀 맛과 향기, 사람들의 말과 행동들, 풍경을 상상하는 생동감이 크게 느껴질수록 그곳을 정말 가보고 싶은 충동대신 어디든 좀 이렇게 여유롭게 걷고 말하고 싶다라는 그런 태도를 배우게 된다.
여행의 처음과 끝의 소회, ‘행운, 기념품, 공항+비행, 자연, 사람, 음식, 방송, 나눔, 기록’ 총 아홉가지 단어들로 그가 겪은 여행의 정의를 풀어내는 재치는 이질감 없이 녹아든다. 각각의 장소와 시간, 들었던 말과 밀려오는 기억들, 편린의 사진, 그림 한 장의 상상력, 상기된 사상가와 예술가들의 언급, 주변의 말과 그림들을 뒤섞여 보고 있으면 마치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빛과 같은 어떤 큰 기운들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작가는 어떠한 문장을 읽을 때 그림과 색으로 상상해본다는 습관을 고백하는데, 문득 이러한 태도 때문에 세상을 남다르게 보는 예술가의 기질이 생겨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감으로 전달되는 필터들이 마침내 손으로 흐르는 통로에까지 참으로 영험한 혜안처럼 숨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그가 경험한 여행의 일일을 보면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가득했다고 고백하고 싶다. 빛과 색이 나이를 먹는 만큼 변모해가는 것처럼 여행자의 여행이 거듭될수록 그 눈에 부디 잃어가는 것들이 가득 보이기를. 더많은 색을 세상 속에서 보고 알아차리게 되기를 응원해 주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