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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시나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새삼스러운 인식, 작품 안의 개별적 삶 속에서 드러나는 중심과 변두리, 서사의 환기 등 사로잡는 것들의 찬란한 아름다움에 온통 시선을 빼앗긴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이웃해 드리우는 불안과 고통이라는 그림자를 동시에 두려워하곤 한다. 문학 안에서 보고 싶은걸 보게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이면을 동시에 떠안는 이 오묘함을 우리는 왜 사랑할까. 삶의 어쩔 수 없음이라 이해하고 불가항의 이끌림 속을 내달리는 문학의 매력은 무엇인가.
작품을 읽다보면 작가가 쓰면서 느꼈을법한 진실의 반응들이 궁금해 전작을 모조리 찾아 읽게 되기도 하고, 이야기 안에서 마구 뒤얽히고 때론 맥없이 풀려버리는 몰입의 유희에 빠지게 된다. 과연 소설이란 매력에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는 계기가 있는 것이다. 이는 물론 훌륭한 소설을 읽었을 때나 가능한 일이긴 하다. 얼핏 구조와 골자가 비슷한 듯 보여도 좋은 글을 쓰는 작가들의 글에는 그들만의 새로운 단서들이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마치 연금술사와 같은 능력들로 단지 읽는것 만으로도 삶의 마법 같은 기능들이 상기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권의 책으로 그 책을 알기 전의 나와 이후의 나로 구분될 만큼 거대한 사건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내게 그런 소설이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문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별다른 도리를 찾지 못한다. 허구의 세상이지만 문학을 읽는 인생은 보지 않은 인생보다 지혜의 윤활류를 제공받는데 유리할 것이 분명하다. 자주 이런 식으로 마음의 위안과 표석이 되어주는 단단한 지지대를 만날 수 있어 기쁘다.
어떤 좋은 소설은 첫 문장의 강한 이끌림을 시작으로 독자로 하여금 소설의 마지막까지 한달음에 이르게 하는 매력이 있다. 한편 어떤 소설은 내내 알 수 없는 여운이 지지부진 남아 딱히 진전이랄 게 없는 미미한 속도로 밀고나가는 소설이 있다. 양 어느 쪽이든 좋은 소설이기에는 별로 상관없는 요건이지만, 이야기 속을 자유롭게 선회하는 유형들이 참으로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간단치 않은 미로처럼의 이야기 속을 왜 우리는 기꺼이 뛰어들고 길을 잃는 황당함을 경외할까.
결국 이야기의 힘이 느껴지는 소설들에는 작가의 장악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체의 강렬함 따위로 느껴지는 그러한 힘이 아니라 여러 의미들을 쥐고 흔드는, 주제 너머의 포괄적인 힘이라 말하고 싶다. 그 지평은 끝없이 펼쳐져서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나 무한의 자유로움을 얻어 발휘되는 그러한 장악력에 가깝다.
작가가 구축해낸 서사의 연금술은 마치 내게만 일어나는 내밀한 손길처럼 그것을 꼭 눈치 채는 사람에게만 영롱하게 빛난다. 그러니 내통하는 즐거움이란 얼마나 큰가! 진정 느끼고 감복하는 자에게 허락된 참으로 아름다운 축복과 같은 일이다.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을 읽으면서 내내 기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러한 개인의 감복의 현장을 함께 공유하는 내통의 현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설가 김중혁과, 문학 애호가인 이동진기자 두 사람의 긴밀하고도 서로 다른 책이야기는 전에 없던 밝고 다양한 문학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졌다. 어떨 땐 화통한 웃음으로 일갈할 수 있어 좋았고(무엇보다도 엄숙함이 없어서 좋았고), 등장인물 간의 다양한 면모를 살피게 된 캐릭터 분석이나, 작가의 전기, 여러 곁가지들의 에피소드들, 아쉬운 점과 퍽 좋았던 점 등 실로 방대한 양의 이야기를 빼곡히 전해들을 수 있어 좋았다.
미처 읽지 않은 책은 반드시 메모해 두었다가 찾아 읽게 만드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읽은 책이라면 깊은 동감을 불러일으켜 비옥한 추억을 되새겨 주는 것 같아 반가웠다. 그러나 내게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시간은 마치 빈약한 밀가루 덩어리에 이스트를 가미하여 크게 부풀어 오른 빵같은 시간이었노라고 고백하고 싶다. 내가 허투루 읽은 빈약한 공간들을 제대로 짚어주고 채워주는 시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빨간책방 한가득 에워싸는 맛좋은 빵의 향기를 충만한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었던 나눔에 그저 고마웠다.
여기에서 다룬 소설들은 대게 거대한 바다를 마음껏 표류하게 되는 일처럼 막막함한 무게감으로 짖눌릴 때가 있었지만, 두 사람의 재치 있는 해석과 뻔하지 않은 감상기 덕분에 주변까지 환해지는 길잡이가 되어 주는 듯 했다. 고상하진 않지만 단단한 품격을 갖추어 작품에 대한 예를 다하고, 무심한 울림과 때론 격정적인 울림으로 삶을 위로하는 찬가처럼 공간을 꽉 채운다. 그래서 언제든지 이 책이 생각날 때마다 나직이 따라 부르고 싶은 충동의 악보를 제공받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의 삶에 문학이 함께 한다는 것은, 견고한 주름을 일일이 헤집으면서 다음 장으로 달려가는 인생의 한 자락을 제공받는 일처럼 고마운 일이다. 그 치밀한 혼란과 다양한 황홀을 함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길, 그 위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소설이 내게 준 위로들을 생각해 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