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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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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여정을 꿈꾸게 되고 건너편 능선 너머를 바라보게 되는 고요하고도 벅찬 울림의 시간이 내내 함께 하였다. 윤대녕의 신작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읽으며 들었던 함의들을 상기해보면 작가가 전하는 바가 어쩌면 생각의 활에 관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늘 자발적 혼자이기를 원했고 은둔의 초라함을 들키는 데에 부끄러움 없었으며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공간에 대한 방랑자 신세를 즐기는 사람이라,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작가의 이 상반되는 기질의 아이러니가 소설가라는 사람들의 나이테에는 자연스럽게 새겨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너무 함몰된 외로움에 빠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이제 그를 많이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작가가 생각하는 상상의 활은 언제나 때가 되면 유연하게 휘어져 기필코 발끝이 닿는 그 어딘가를 향하게 만들고 그것은 또다른 능선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리고 책을 읽어가면서 알게 된 것은 그 방랑벽이 내키는대로 마구 행해졌던 것이 아니라 나름으로는 매우 규칙적인 삶으로부터 비롯되는 인과의 결과인 듯이 행해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뭐 막무가내여도 상관은 없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는 짐을 꾸려 어디론가 향하는 충동적인 일련의 행위조차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말해 주었다. 어려서부터 시작된 가출의 기억, 청년 시절 본격적이며 주기적으로 ‘떠남’의 행위가 마음으로 수시로 들락거렸고 일정한 때가 오면 다급한 신호로 자신만의 체계와 질서를 허물고 다시 짓게 되는 수많은 만남들로 이어졌다. 이제 그의 인생에서 여행이란 당연하고도 아주 중요한 주름처럼 집요하게 잡혀져 있다.




이 책은 작가가 고백하는 유년기로부터 시작되는 외로움과 공간에 대한 남다른 인식에 대한 진실의 고백서이다. 덧붙여 나는 이제 더 이상 윤대녕과 같은 ‘문어체와 같은 구어체’를 실제로 구사하는 사람이 별로 남지 않았음을 새삼 아쉬워 하면서 들려오는 이 독백과 대화를 특유의 정취로서 기억하고 싶었다. 그의 소설들이나 에세이를 보면 그의 담백한 어조와 느린 여유로움의 정서가 느껴지곤 한다. 허구의 풍경과 실제 그의 삶이 들려주는 추억 저편에서의 말들은 그가 배운 이전 세대들의 유교적 예의와 성찰이 그의 말 끝 손 끝에 매달려서 그 맥이 다하였음도 알게 된다. 이와 더불어 그의 소설이나 에세이에서 공간을 기억하고 묘사하는 데에는 과연 능가할 작가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구축이 아주 그럴 듯 하게 비춰진다. 그래서일까, 읽는 내내 다음 공간을 기대하게 하고 그래서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 문학의 진수가 펼쳐지는 것을 자주 목도하게 된다.




가끔씩 등장하는 묘령의 여인들과의 인연이 시작되고 끝난 곳, 할머니와 어머니의 자궁을 연상케하는 부엌의 품, 눈과 마음을 씻던 수많은 공간과 특별한 추억들이 도사리는 곳, 그에게 이러한 공간들은 얼마든지 있어 보인다. 세상 어느 곳에라도 그의 마음이 머물면 특별해지는 마법이라도 전수되는 일처럼 보이기도 하고, 죽는 날까지 이어질 인연들을 생각하면 무척 부러워진다.



언제라도 길의 잠을 깨워 그곳의 소리를 전해 듣고 자신이 꼭 가야할 곳을 찾아 몸을 눕히고 또다시 은둔의 시간을 맞이하는 모습은 또 어떤가. 비록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소통 하는 데에는 서툴지 몰라도 어려서부터 내내 익숙한 자연과의 소통에는 능통한 것 같다. 작가의 ‘떠남’에는 어떤 특정한 환경에 매료되었다거나 특별한 애착으로 공간을 기억하여 수반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다만 어디론가 떠나있다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그 공간의 별날 것 없는 것들도 으례 승화되기 마련이다. 수반되는 공간에 대한 애착 정도로만 그의 ‘떠남’에 대한 근원을 찾아볼 수 있을 따름이다. 더구나 이 공간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즉 그것은 대게 그의 외롭고 한적한 정서와도 맞물려 전해진다. 그래서 늘 그가 머문 공간은 서늘한 그늘로 탈바꿈되고 만다. 아홉 살 때 떠나온 고향집의 부엌이나 우물의 상징, 견디기 힘든 단칸방에서의 생활, 그의 유년시절을 꽉 채운 결핍과 외로움의 결정체로 기억되는 정서의 바탕에는 가족사가 있었고 공간과 개인의 역사가 맞물린 인과가 틀림없이 일고 있다. 그곳을 추억하며 어떠한 서늘한 이미지로 각인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추억을 더듬다 보면 연관이 있다. 작가는 아직도 때가되면 어디론가 집필의 목적으로 일정기간 머물 곳을 찾아 떠나며 그곳에서의 이질적 체험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더욱 그의 소설이 윤택해졌음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가 달렸던 수많은 국도와 길들이 이어지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발길 닿은 어느 곳에서의 특별한 만남들에 깃이 세워지고 그것들을 따라가다 보니 절로 운율과 리듬이 생긴다. 그의 인생은 어쩌면 좋아하는 교향곡의 악보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사라진 그곳들을 상기하면서 다시 복원하는 글쓰기를 하는 것은 그의 귓가를 맴도는 노래에 대한 당연한 기술인 것이고 계속 이어질 웅장하고도 슬픈 어떤 선율을 만들어 내는 중이다. 작가의 길을 따라 그가 잃어버린 수많은 공간에 대한 아주 깊고 슬픈 애도를 전하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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