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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때가 되면 이별도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 모두는 그것이 당장 오늘이나 내일에 있을 일은 아니라는 듯 살아간다. 외면해야 사는 태도는 그렇게 살아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를 찾지 못해서일수도 있단 생각을 들게 한다.
줄리언 반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꼬박 읽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여기에 실린 죽음과 그것을 맞이한 살아 남은 사람에 대한 감정을 온전히 다 느꼈다고는 말할 수가 없는 이유가 바로 이 외면이라는 감정에 휘둘리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에 대한 충격과 슬픈 감정의 수치를 연구한 기사를 본 일이 떠오른다. 거기에는 기르던 애완, 부모, 형제, 자식의 죽음에 이은 가장 큰 수치로 배우자의 죽음을 꼽고 있다. 이는 역시 자기와 일생을 가장 많이 공유한 사람에 대한 부재의 고통이 얼마나 크고 아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들게 한다.
줄리언 반스 역시 문학적 동지이면서 열렬히 사랑해마지 않던 아내의 죽음을 갑작스레 맞이한 비극을 겪었고 그래서 참으로 오랜 시간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했던 감정의 맥이 느껴진다. 본인의 고백에 따르면 심장과도 같았던 아내의 죽음이었기에, 이별이라는 거대한 슬픔의 늪을 경험하는 것은 역시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깊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을만큼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다만 잘 알지 못하는 경험이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남겨진 사람들이 어떤 슬픔에 당면하고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애도하는 법을 만들어 나가는 지 눈여겨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기대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로 의아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다시, 그가 소설가라는 점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작가가 하는 애도의 방식이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비행자의 집요한 추적의 보고다. 비행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는 것도 의아한데, 기구를 탔던 실존인물이 최초의 기록을 세우는 역사적 정황이 설명되다가 이내 2장에서는 역시 실제 인물 둘을 놓고 사랑과 이별이라는 픽션을 상상하게 한다.
의아하지만 어쩌면 작가 자신이 가장 이상적으로 상상하는 이야기의 시작과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분명 그의 아내가 이 책의 컨셉을 듣는다면 미소를 지어줬을 멋진 시작과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학이라 함은 인간의 삶과 죽음 이별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리고 특히 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죽음은 가장 최적화된 요람과 같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그의 아내를 위한 문학적 애도의 가장 깊은 층위를 걷는 이야기들이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아픔에 대한 절절한 감정이 들끓는 방식은 아니다. 공중비행을 하는 행위처럼 삶은 중력과 무관한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싶어지는 일이지만 때가 되면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야 하는 숙명을 역시 받아 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삶은 어김없이 맞이해야 할 아쉬움과 아픔, 이별을 반복적으로 견뎌내는 일인 것이다. 하늘을 나는 순간은 정말이지 짧았고 지상 즉 현실에서의 사랑과 이별 역시 돌아보면 지리멸렬한 듯하지만 순식간 이다. 특히 2장에 나오는 인물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지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와 허구의 짜임은 흥미롭지만 나열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두 인물로 함축되는 인간의 사랑과 긴 이별의 뒤안길에서 너도나도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진열품과같은 인간의 똑같은 허무를 느끼게 만든다.
이러한 수순으로 3장에 오면 줄리언 반스의 가장 침잠해 있는 죽음이라는 개인 체험들이 깊은 지하세계에서도 마구 튀어 오르며 그 여러 층위들을 마치 비행하듯 표현하고 있다. 엄중하지만 마치 모든 슬픔을 경험한 신의 위치에서 지하세계의 여러 계단들을 탐험하고 조용히 문을 닫아 버리는 사제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상실이라는 극심한 상태에 이르렀어도 어김없이 시간이 흐르고, 때가 되면 그것들이 불가해한 것이라 믿게 되는 진정효과도 생긴다. 심하게 뚫렸을 삶의 구멍이 곧 메워지리라 믿으면 곧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고백을 따라 아주 솔직한 감정 선을 따라가다 보니 이러한 자연스러운 감정선이라는 것도 과연 그런가라는 의문만 낳는다. 결과론적으로 그 과정의 섬세함은 제대로 느껴본 일이 없는 사람들의 얕은 위로였나 싶어지는 것이다.
작가에게 사람들이 하는 수많은 조언과 충고들,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 대리인으로 부재가 어느 정도 메워진다거나 하는 따위의 이야기들이 과연 당사자에게 어떤 즉효로서 처방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배려가 아니라 심하게 말하면 거의 ‘독’에 가까운 말이라는 것을 목도했다.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눈치가 보이자 일부러 고인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거론한 일화라던가 하는 일은 그를 더욱 외롭게 만든 사람들의 얕은 배려로 보이는 것이다.
반스는 아주 천천히 그 자신의 솔직한 감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그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보여졌을 지언정 그 나름의 방식을 찾던 중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그 틈이 시간이 흘러 자연히 메워진대도 그만큼 또 다른 타인에 대한 실망이나 공허의 틈으로 벌어지고 말 사단을 예단했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삶이 영속되고 죽은 아내로부터 이미 잃어진 공간에 대해서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걸 그의 체험으로서 말하고 있다.
애도의 행위는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만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슬픔에 빠졌어도 우리는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욕구와 윤리적 환멸이라는 양극단에서 속수무책으로 자신의 무능력을 자책하면서 괴로운 나날만 더 길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래서 그의 우울과 슬픔의 감정에 이미 각인되고 내재화된 애도를 통해서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애도의 차원 밖에 대기한 낯선 애도를 보게 한다. 작가가 체험한 죽음에 대한 인식은 보다 깊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게 해서 체험에 동질감을 느낀 사람을 진정으로 이끌어 올려 주고, 애도의 여러 층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만의 사랑을 헌정한 셈이다.
아내가 죽고 난 이후 이 책이 나오기까지 그의 긴 침묵은 결코 타인들이 말하던 대로의 옳고 그르고의 애도에 관한 보편성을 긍정 혹은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재하는 그녀와 함께하는 일상은 어떤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고 그 사랑이 어떻게 또 이어졌는지, 지극히 자연스러운 애도의 한 방식을 이 책으로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