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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정혜윤의 <마술 라디오>를 읽고 나니 과연 귓가가 촉촉해진 것 같다. 종종 작가의 말을 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보면, 언제나 준비된 사람 같다는 인상이었다. 물으면 곧바로 그 말에 대한 답변은 물론 얽힌 일화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일화들도 엮어서 언제나 근사한 이야기를 펼쳐 보이곤 했다. 어떻게 저런 섬세한 일들까지 다 기억나는 것일까, 그녀의 입과 뇌는 마치 라디오와 전파처럼 대등한 관계의 선으로 강하게 남았다. 남이 자신에게 준 시간에 대한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 열의와 열정이 점점 견고해져서 너무나도 근사해 보이곤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PD로서 유명하기도 한 그녀이지만 에세이스트라거나 강연자 혹은 소외되고 자신이 발언할 자리가 생기면 목소리를 내는 아주 활동 반경이 넓은 사람으로도 그녀를 기억한다. 나는 근 십년이 조금 못되는 기간 동안 부지런히 책을 낸 작가로서 그녀를 알고 기대해왔다.

특히 이번 <마술 라디오>를 읽으면서 작가가 가장 많이 해온 일, 또 독자들이 그녀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하는 것 같아 무척 반가웠다. 작가의 가슴 속 아주 볕 잘 드는 곳에 모아둔 일들에 대한 라디오 전파 대신 종이버전의 작업물인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이야기를 구전하듯 구어체의 문장으로 우화나 제3세계의 이야기인 것처럼 들리는 것도 대단한 특색이다. '이 이야기는 바로 너에게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야' 라는 듯, 밀어처럼 들리기도 하고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은 암호처럼 묘하게 들리기도 한다. 또 격의 없는 말투에서 허물어지던 경계가 어떨 때는 화자에게서가 아닌 바로 당사자에게서 직접 듣는 시공간의 만남이 함께 하기도 한다. 과연 작가가 내내 그립지 않고서는 다른 도리가 없을 그런 사람들이 정말 거기에 있었다.




소위 한국은 역동적인 사람들의 나라라고들 하지만 그만큼 한이 많은 나라라고도 한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그 이면과 본연의 삶의 그림자를 응시하게 하는 독특함이 있다. 삶의 단조로움을 못견뎌하듯 역동성을 가졌지만 그러한 태도의 이면에 슬픔과 한이라는 외부적 영향의 그림자를 낳게 된 것이다. 이 책의 거의 모든 면들에는 이러한 한국적인 슬픔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날 이런 일이 벌어졌다. 어때 정말 재밌지 않니?’ 와 같은 단순한 우화라고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지혜, 놀라운 우연, 애꿎은 일과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투지 등 수많은 방편들이 도처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끝없이 펼쳐질 것 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개인들의 역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친가 외가 양쪽 할머니들께 들었던 이야기들이 불현 듯 생각나기도 했다. 어릴 때 자란 고향의 풍경, 전쟁 체험에 얽힌 비극, 본인들이 들은 더 이전 시간들에 관한 이야기, 함께 보낸 이웃들의 기막힌 이야기 등, 들으면서 정말이지 내 귀로 금방 날아갈 개인의 역사가 아까워 울었다. 곧 사라질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완전히 압도 당했었달까. 역사의 한자락을 목도하고 경험한 사람들의 생날의 이야기 때문 이어서기도 했지만 모두가 귀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면, 삶의 일부분 세상 그 어딘가에 남겨지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황망함이 앞선다. 그야말로 인생역경을 지나 파란만장한 인생의 굴곡을 다 이야기 할 수는 없을지라도 인간으로 살아간 역사의 증거는 최소한만큼이라도 허용되지 않는 걸까? 우리는 고작 참으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적인 인생이라는 덧없는 말로 그 격정을 표현할 도리밖에 없다




여기 나오는 거의 모든 이야기는 격렬한 삶의 뛰어듦과 내제된 고독들이 배여 있다. 당연하게도 일상은 반복적이며 끊임없이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면서 지속되는 일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제기되는 삶의 의미와 공허에 대한 자각을 들게 만든다. 그래서 바라건대 모두의 삶에 잔잔한 평온함이 깃들기를 바라고 또 염원하게 된다. 삶은 자꾸만 평형을 움직이게 해서 스스로의 삶에 지고 말 일상의 훼방을 놓는일 투성이지만 그 중심점을 결국은 스스로 찾게 되는 일련의 반복의 순환이다. 용케도 여기 나오는 사람들의 심지에는 저절로 터득한 알 수 없는 힘이 있다는 것, 평범하지만 위대한 사람들의 용기가 있다.



보잘 것 없이 돈도 없고 재능이나 지식이 부족한 모든 미완의 삶을 사랑하고, 애도하며, 그들의 그 작은 역사를 응원하고 또 배우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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