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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 마스다 미리 산문집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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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스무 살이 되더니, 어른이라는 명사를 감당할 준비나 비전도 없이 어영부영 어린 시절과는 안녕을 고하게 되었다. 책임질 일이 많아진다는 건 조금 안 채였지만 갖고 있는 막연한 두려움만으로 앞으로 누리게 될 자유에 대한 기대감이 감해 지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간 인생의 목표나 다름없었던 대입을 이루고 나니 더한 기쁨도 없는 것 같았고, 명찰을 달지 않는다고 얻어맞거나 머리가 금발에 허리길이까지 온들 가위로 잘리는 일 없는 (당연한)일상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매우 달콤한, 인내의 선물 같았다. 과연 성인이 되고 느낀 해방감은 불합리와 단절된 아름다운 세상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때의 나는 어른이라는 사람들은 모두 현명한 생각을 갖고 도덕적인 완벽체인 줄로만 알았던 것 같다. 물론 커가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별 깊은 인식까진 해본 적이 없고 다만 살아지면서 졸업장을 받는 일처럼 저절로 터득이 되며 얻어지는 일처럼 보였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간 알고 느끼는 게 얼만데. 일면 어른이란 말의 근사함을 훼손하고 싶지 않았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시절 내가 생각한 어른의 삶이란 지금의 내가 한심하게 생각하는 딱 그 정도의 수준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말하자면 겨우 ‘별 생각 없이 나이든 사람’인 것을 말한다. 나이가 들어도 꾸준하게 배울 의사가 있어야 하지만 그걸 귀찮아 하고, 사회와 융화해 가는 진통도 겪어야 진짜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지만 망각해 버린 사람 말이다. 

이 단순한 생각조차 당연시 못한채 제 고집만으로 우기고 차단해 버리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은 '이상한 어른들의 세상'을 황망히 알아버린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혀 성장하지 않은 아이 때의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가면 노인이 된 들 한심한 소리를 멈추지 못하는 듯 하다. 그러니 성장은 평생 동안 지속돼야 할 인간의 과업이구나 싶어지는 것이다.

      

   

   

 

십대의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몸의 변화를 겪게 되면서 ‘나는 어디서부터 온 걸까?’ ‘왜 태어났을까?’하는 정신적 혼란에 직면한다. 마치 어느 행성으로부터 날아온 메시지를 해석하는 일처럼 시도 때도 없이 궁금해지고 무기력해지며 그 낯선 느낌들의 통로가 궁금해서 끙끙 앓는다. 이 성장의 격변 속에서 뭔가 아리송한 답이라도 찾는듯 시절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몸의 어른으로 완성되고 부쩍 성장한 정신도 갖추게 된다. 

 


스무 살이 넘어도 성장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울타리의 안위에 벗어난 동시 삶에 대한 고단함이  밀려오고 각박과 불신, 불필요한 타협에 이르는 순수와의 이별을 호되게 겪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시련으로부터 계속 일어서려는 내안의 의지와 추진이 없다면 안타깝게도 그저 그런 어른으로밖에 남지 못하는 것 같다. 세상이 다 그런 법이기 때문에 나의 이기도 당연한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가 몸 안 깊숙히 자리 잡는 사람을 너무 많이 봐왔다. 

나는 이러한 무치함들로 부터 벗어나는 의지가 세상을 더 많이 이해하고자 하는 힘으로부터 생긴다고 믿는다. 사춘기 시절 세상을 더 알지 못해 명쾌하게 내리지 못했던 것에 대한 답은 살아가는 내내 배워야 할 것들에 대한 빈공간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어른이란 사람들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는 내게 어떤 책을 만나고 부터 일어났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관심이 없었고 그만큼 무지했던 시절, 이 책으로 진일보 할 수 있었다. 참으로 근사한 생각을 하는 이 사람을, 무작정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책에서 언급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어졌다. 나와 내 부모, 곁의 친구나 동료 정도로의 소통과 앎만이었던 삶에, 내가 사는 세상으로까지 인식을 확대하게 해준 말들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된 전이의 경험은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알던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였고 부끄러워지고 무조건 다 알아야겠다 싶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내가 가진 생각들은 그에 반하는 말의 타당과 끊임없는 의심들로 둘러 싸여 있다. 그러니 배우고 바꿔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진리와도 같은 것이다. 매번 또 다른 삶의 앓이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타인에 대한 이해가 힘든 세상이다. 그것은 각자 어떤 특별한 계기로 이루어야할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인 모양이다. 

지금에 와서 내가 생각해 보는 어른이란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사람, 계속해서 주위를 환기하고 성장해 나가는 사람이다. 그 때 날 일깨워 준 소중한 만남이 있었기에 조금은 염치 있는 사람이게 되었고, 계속해서 내 주변의 사람들과 연대해가는 삶을 꿈꾸게 하는 닻이 내려 진 셈이다. 여전히 나는 책을 읽거나 소중한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모든 곳에 내 모자란 배움의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스다 미리의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를 읽으면서 과연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어도 비슷한 고민들을 해 나가야 하는 구나 싶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어른이 있어 참 다행이고 고맙고 그래서 무척 사랑스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작품의 묘미는 역시 공감일진대 한 시기를 지나오거나 맞이할 사람들 모두에게 위안과 격려를 준다는 점은 언제나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중요한 정점이 된다. 

 

사십대를 맞이한 작가의 낯선 중년기가 어떤 일상과 맞물려 유쾌하게 엮여 가는지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귀엽고 활력이 넘쳐 보인다. 염려하는 주름투성이 볼품없는 사십대로 보이기는커녕 여전히 사랑스러운 소녀가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젊음과 결별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내면을 가꿔야 하는 타당이라는 걸 그녀에게서 배우는 듯 하다.

 

 

이 책은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에세이긴하지만 결코 그녀의 하루하루가 가볍게 비춰지지 않는다. 그간 국내에 소개된 만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스타일로, 만화책이 몇 컷으로만 전해지는 짧은 말과 생각들로 상상되는 묘미의 것이라면, 이 책은 오롯이 그녀의 사생활과 주변의 이야기들로 픽션이 아닌 현실감으로 크게 다가오는 매력의 책이다. 그녀는 역시 하루하루 세상과 만나고 자신의 지혜를 베풀며 곁의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줄 아는 어른이다.

 

      

 

 

 

우리는 누구나 처음 살아보는 나이를 경험해야 하고 젊음과는 멀어지면서 괜한 쓸쓸함, 기대감으로 또 앞으로의 나이에 맞서는 낯섦을 겪는다.  

마스다 미리의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는 나이가 들어서도 역시 변하지 않을 소중한 가치에 대한 견고함, 안일함엔 소심한 복수라도 할 줄 아는 용기, 세상에 좀 더 나은 ‘나’일 수 있는 의지가 돋보이는 책이다.  

여전히 세상을 배우고, 어제의 나보다 오늘이 나은 사람이기를 희망해 보는, 누가 뭐래도 지속가능해야 할 '어른'인 삶을 참 근사하게 살아보고 싶어지는, 용기가 전해지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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