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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박람강기 프로젝트 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안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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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들의 우상이라는 호기심으로 알게 되어 몇몇 작품을 읽어본 바는 있지만 거장다운 아우라와 품위와 온화함이 넘칠 거라는 예상을 깨고, 어딘가 독립적이고 괴짜 같은 면모로 소설가 챈들러를 알게 되었다. 그의 작품이 하드보일드 소설의 역사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었는가에 대한 알려진 사실들은 다만 감정이 배재된 글이라는 게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으로 내내 장애물처럼 함께했던 것 같다. 제법 독창적이고 유능하달 수 있는 유명 작가들이 챈들러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느니, 영향을 미친 작가로 손꼽히는 매력이란 과연 어떤 면이었을까 하는 포커스에만 너무 시선을 둔 탓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한 채 단순한 인상만으로 그를 알고 있었단 착각만 남았다. 선입견만 지속될 뿐이어서 그 어떤 타이틀도 의식하지 않고 작품을 대해보리라는 다짐이 필요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된 챈들러의 매력이란 그만의 ‘꿋꿋함’과 같은 사적인 태도에 대한 면이었다. 상당히 매료될만한 강단이 느껴지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가장 먼저 든다. 더불어 지인들에게 호소하는 목소리에서 자주 그의 '화'와 '변'이 느껴지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인 순수를 느끼게 해주었달까, 그는 다만 정말 글을 잘 쓰고 싶었던 사람이었을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편지들의 주 내용은 어쩔 수 없는 일들에 대한 타협이 자기 안에 전혀 고려되지 않다는 고집의 관철, 작품이 늘어지거나 변형되는 것들로부터 무던히도 지키려 노력했던 것처럼 보인다. 자주 언성이 높아지고 더러는 절연되는 싸움의 나날이지만 그에게 관계의 모색이란 가장 먼저 고려되지 않아도 좋을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에겐 오로지 작품에 대해서만 고집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로 그럴싸하게 챈들러 스타일이 만들어졌다. 이는 자연히 작가로서의 독립적인 개성을 무한히 내뿜는 면모로 비춰지고 이러한 강단이 작품 속에서 잘 녹아들게 되었다.

     

     

 

 

챈들러의 냉철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은 인생을 외롭게 살게 한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물음은 정작 다른 이유였음을 알게 된 대목도 중요하다. 말하자면 예술가로의 삶에서 본인이 믿고 추진한 작품에 대한 면면의 기술은 언제나 옳은 것이었고 그것은 다음 세대들의 귀감이 되는데 손색이 없다. 마침내 그만의 역사로 남게 된 것이다.

 

 

다만 작품에 대한 철저한 독립성과는 무관하게 그는 자신의 심장박동과도 같았던 아내의 죽음으로 자해를 하는 등 외로운 삶으로 귀결된 증거들은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그를 외롭게 했던 삶의 경로들이 작품을 위한 담보로 맞바꾼 게 아니라는 건 다행스럽지만, 내내 발휘되던 냉철하고 독립적인 고집이 왜 자신의 삶에는 발휘되지 못했던 것인지 아쉬움이 남는다.

 

 

 

      

살아가다 보면 한 치 앞의 상황에 대한 판단의 잣대가 매번 신중하게 지휘되지는 않겠지만 상황의 경중을 떠나 기본적으로 발휘되는 기질은 분명히 있어 보인다. 개인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고, 어떤 가치관으로 걸어가느냐에 대한 릴레이 경주 같은 실시간적 판단과 유보치들이 누적되기 때문이다. 지금 한 생각이 결론적으로 옳았던지 짧은 생각이었던지 간에 시간이 흐르지 않고도 순간에 알아지는 정도의 판단 같은 것들은, 그래서 거의 적당하게 발휘된다. 이는 삶의 마디마디에 놓인 지혜와 경험치로 살아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차곡이 쌓아지는 생각과 판단들, 그것들이 결국 그 사람을 규정하는 어떤 이미지로 남게 되는 것 같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의 편지글들을 보면서 그야말로 어떤 삶을 꾸리며 살아온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묘미는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전해지곤 했다.

 

 

    

 

그는 어떤 것에도 쉽게 찬사하지 않으며, 냉철한 눈으로 주변의 가장 후미진 곳을 들여다보려는 작가적 시선을 둔다. 시시한 것들의 교묘한 술수에 권위를 내려놓거나 쉽게 수긍하는 태도를 가장 경계했던 삶이었던지 친화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었고 원망을 사는 일이 잦았지만 이러한 모습들마저도 꿋꿋한 예술가의 고집으로 보인다.

 

 

대신 그는 대중이라는 가장 위대한 대상들과 타협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그 바탕의 본연에는 늘 ‘재미’를 두어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늘 해온 성실한 작가였다. 진정 매일 눈을 뜨면 작품에 대해 생각하는 지독한 소설가적인 삶을 살았던, 단지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이면 그만인 그런 독립적인 삶을 꾸려냈다. 둥글둥글한 삶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오늘 해봤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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